며칠전 연평도 포격2주년 추념식을 했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일방적으로 조국 대한민국이 주적 북한이 예고도 없이 퍼부어댄 포탄에
연평도 주둔 해병과 민간인 그리고 많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었다.
향군회원님들과 한인교포분들과 같이 추념식을 하면서, 이번 고국방문에서 느꼈던것과 똑 같은 현상이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고국방문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뻐스와 특히 관광뻐스의 앞 유리판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표어를 다 부치고 다니면서 조국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독도분쟁에서 죄없는 민간인과 방어를 하고 있는 국군장병의 목숨을 잃어버린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 나라가 떠들썩 하게 독도사수를 주장하고 있는 법석을 보면서, 북한의 Sudden Attack으로 침몰당한 천안함 그리고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NLL 침범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도 조용한 국민들의 생각과 정서를 생각해 보았었다. 친북파성향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었다.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2주년 추념식이 한인회관에서 있었다. 날씨도 포근했었고, 관심만 있다면 많은 교포들이 참석할수 있는 초겨울 날씨였었다. 정작 참석했어야할 교민사회의 리더들과 향군의 고참분들과 회원들의 참가율은 저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국에서 보았던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에 걸린 그여파가 이곳에까지 깊이 옮겨져 있는것으로 해석을 했다.
교포사회의 언론사들역시 마치 동맹이라도 한것처럼, 이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분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All TV에서 나온 기자만이 그나마 현장을 동영상으로 취재하는게 유일했다.
교포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국민계몽은 미디어의 몫이 굉장히 크다는것은 다 알고 있다.
세계는 공산당의 종주국 쏘연방이 문을 닫은후 동서냉전의 시대가 사라지고 지금은 화해 무드로 향해 달리고 있다. 쏘련 위성국들이 거의 다, 러시아 마져도 민주주의식 선거제도를 채택하여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각하는바데로 대표자들을 선택하여 일을 시키고 있은지도, 그날 이후로 30여년이 훌쩍 흘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공산주의 대부 중국마져도 문호를 활짝 개방하여, 국민들은 서방세계의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자유를 만끽하고, 시장 경제의 맛을 즐기고 있고, 월남과 큐바 마져도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자유는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며칠전에는 Burma마져도 폐쇄정책을 끝내고,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서고, 미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Obama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었다.
오직 한반도만이 이러한 세계의 대변혁에 역으로 발길을 걷고 있다. 며칠후면 북한은, 조국 남한의 대선이 치러지는 기간을 통해 장거리로켓를 쏘아 올리겠다고, 남한을 위협하는 발표를 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항의가 빗발 치지만, 정작 당사국인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선거전을 치르는 대선후보들은 북한의 이런 망나니 행동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대개 살피고 있는것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대선주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다시 천안함, 연평도,NLL침범사건들이 발생했을때,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 특히 국토사수를 위해 젊음을 바쳐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었을때, 희생자만이 억울하다라는 생각을 국민들 머리속에 깊이 심어주는, 즉 조국방어를 위한 희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할수만 있다면 국민의 의무중에서 가장큰 국방의무를 하지않고 출세시키려는 부모들의 얄팍한 잔꾀를 더 부추기게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져가는 이때에, 대통령을 비롯한 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들을 상대로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그분들의 생각은 진정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조국수호를 위한 국방정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실무자선에서 해결해도 할수 있는, 학생들의 급식에 까지도 매주알 코주알 읊어대는 대선주자분들이다. 이럴때 북한이 망나니 행동을 해서, 남한의 국민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케 한다면 그원인을 찾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라는 메세지 하나 이 못던지는가? 국방과 안보의 현장에서 총 칼들고 올빼미가 되여 불침번을 서고 있는 장병들의 마음은 편안할까? 과연 임전무퇴정신이 그들속에 배여 있다고 믿어야 할까?
미국병사의 인터뷰 얘기는, 그래서 미국이 강국일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입력 : 2012.11.19 03:00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 韓美 너무 다른 대접]
2006년 7월 28일 오전 3시. 자고
있던 셰릴에게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공포에 떨고 있던 셰릴에게 남편을 치료하던
의사가 곧이어 이메일을 보냈다. '방금 브라이언 몸에 있던 파편을 다 제거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쓰여 있었다. 3일 뒤 브라이언에게
"사랑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 사이 국방부 관계자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남편의 상황을 알려주며 안심시켰다. 동네에 사는 다른 군인 부인들도
찾아와 셰릴에게 각종 선물이 담긴 보따리를 주면서 위로했다.
며칠 뒤 브라이언은 귀국해 워싱턴 D.C.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셰릴은 며칠간 브라이언을 병원에서 간호했다. 이후 셰릴과 브라이언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켄터키주(州)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기장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비행기에 영웅이 한 분 타셨습니다. 브라이언입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의 영웅과 그의 부인을 잊지 마세요. 군인의 부인들은 미군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셰릴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집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집 내부도 전역자처우협회(VA)에서 브라이언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싹 수리해 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셰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집도 고쳐져 있었고,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배려였다"고 말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한 사회의 시스템은 이렇게 소리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해 9월 28일 브라이언은 부대 최고 훈장인 '퍼플 하트'를 받았다. 3개월 뒤 셰릴도 국가로부터 '몰리 피처 어워드'라는 상을 받았다. 미 포병과 방공협회에서 미군에게 헌신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브라이언은 2008년 3월 정부 지원으로 방위산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초 셰릴은 워싱턴 D.C.의 한 행사에 초청받았다. 엘리자베스 돌 전(前) 상원의원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셰릴은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적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는 그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일방적으로 조국 대한민국이 주적 북한이 예고도 없이 퍼부어댄 포탄에
연평도 주둔 해병과 민간인 그리고 많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었다.
향군회원님들과 한인교포분들과 같이 추념식을 하면서, 이번 고국방문에서 느꼈던것과 똑 같은 현상이 이곳 한인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고국방문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뻐스와 특히 관광뻐스의 앞 유리판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표어를 다 부치고 다니면서 조국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독도분쟁에서 죄없는 민간인과 방어를 하고 있는 국군장병의 목숨을 잃어버린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온 나라가 떠들썩 하게 독도사수를 주장하고 있는 법석을 보면서, 북한의 Sudden Attack으로 침몰당한 천안함 그리고 연평도 포격사건 그리고 NLL 침범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도 조용한 국민들의 생각과 정서를 생각해 보았었다. 친북파성향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었다.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2주년 추념식이 한인회관에서 있었다. 날씨도 포근했었고, 관심만 있다면 많은 교포들이 참석할수 있는 초겨울 날씨였었다. 정작 참석했어야할 교민사회의 리더들과 향군의 고참분들과 회원들의 참가율은 저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고국에서 보았던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에 걸린 그여파가 이곳에까지 깊이 옮겨져 있는것으로 해석을 했다.
교포사회의 언론사들역시 마치 동맹이라도 한것처럼, 이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분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직 All TV에서 나온 기자만이 그나마 현장을 동영상으로 취재하는게 유일했다.
교포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국민계몽은 미디어의 몫이 굉장히 크다는것은 다 알고 있다.
세계는 공산당의 종주국 쏘연방이 문을 닫은후 동서냉전의 시대가 사라지고 지금은 화해 무드로 향해 달리고 있다. 쏘련 위성국들이 거의 다, 러시아 마져도 민주주의식 선거제도를 채택하여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각하는바데로 대표자들을 선택하여 일을 시키고 있은지도, 그날 이후로 30여년이 훌쩍 흘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공산주의 대부 중국마져도 문호를 활짝 개방하여, 국민들은 서방세계의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자유를 만끽하고, 시장 경제의 맛을 즐기고 있고, 월남과 큐바 마져도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자유는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며칠전에는 Burma마져도 폐쇄정책을 끝내고,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서고, 미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Obama 대통령이 버마를 방문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기도 했었다.
오직 한반도만이 이러한 세계의 대변혁에 역으로 발길을 걷고 있다. 며칠후면 북한은, 조국 남한의 대선이 치러지는 기간을 통해 장거리로켓를 쏘아 올리겠다고, 남한을 위협하는 발표를 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항의가 빗발 치지만, 정작 당사국인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선거전을 치르는 대선후보들은 북한의 이런 망나니 행동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도 눈치는 대개 살피고 있는것을 느낄수 있다.
이러한 대선주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다시 천안함, 연평도,NLL침범사건들이 발생했을때,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 특히 국토사수를 위해 젊음을 바쳐 군복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이 공격을 당하거나 피해를 입었을때, 희생자만이 억울하다라는 생각을 국민들 머리속에 깊이 심어주는, 즉 조국방어를 위한 희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조국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할수만 있다면 국민의 의무중에서 가장큰 국방의무를 하지않고 출세시키려는 부모들의 얄팍한 잔꾀를 더 부추기게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져가는 이때에, 대통령을 비롯한 또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들을 상대로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그분들의 생각은 진정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조국수호를 위한 국방정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실무자선에서 해결해도 할수 있는, 학생들의 급식에 까지도 매주알 코주알 읊어대는 대선주자분들이다. 이럴때 북한이 망나니 행동을 해서, 남한의 국민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케 한다면 그원인을 찾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라는 메세지 하나 이 못던지는가? 국방과 안보의 현장에서 총 칼들고 올빼미가 되여 불침번을 서고 있는 장병들의 마음은 편안할까? 과연 임전무퇴정신이 그들속에 배여 있다고 믿어야 할까?
미국병사의 인터뷰 얘기는, 그래서 미국이 강국일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연평도 포격 2년] [1] 이라크戰 부상병 "국가·이웃이 안아준 6년… 행복했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병사들… 韓美 너무 다른 대접]
폭발물에 부상 갠스너 중사 - 비행기 오르니 "영웅이 탔다" 모든 승객,
기립박수로 맞아
돌아온 집엔 '웰컴' 플래카드… 휠체어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도 모르게 집 내부 수리도
부대 최고 훈장 받고
재활훈련, 정부 지원으로 방산업체 취직
"브라이언이 다쳤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군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셰 릴 갠스너(30)는 6년 전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미군 중사 브라이언 갠스너(34)의 아내다. 브라이언은 당시 장갑차를 운전하다 조수석 하단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발목을 크게 다쳤고, 오른쪽 다리와 왼쪽 허벅지, 오른쪽 손목에 파편이 박혔다.
그 때부터 셰릴은 블로그에 남편 간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는 국가와 지역 주민, 각종 민간단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부상한 갠스너 부부의 '희생'을 보상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셰릴은 "가족과 친구, 국가와 지역사회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다"고 인터넷 신문 '라이크잇포타임'에 말했다.
셰 릴 갠스너(30)는 6년 전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미군 중사 브라이언 갠스너(34)의 아내다. 브라이언은 당시 장갑차를 운전하다 조수석 하단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발목을 크게 다쳤고, 오른쪽 다리와 왼쪽 허벅지, 오른쪽 손목에 파편이 박혔다.
그 때부터 셰릴은 블로그에 남편 간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는 국가와 지역 주민, 각종 민간단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부상한 갠스너 부부의 '희생'을 보상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셰릴은 "가족과 친구, 국가와 지역사회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다"고 인터넷 신문 '라이크잇포타임'에 말했다.
- 웃음 되찾은 갠스너 중사… 2006년 9월 28일 브라이언 갠스너 중사가 부대 최고 훈장인‘퍼플하트’를 수여받고 아내인 셰릴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셰릴은“군인의 아내로서 최고로 자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 /허핑턴포스트
며칠 뒤 브라이언은 귀국해 워싱턴 D.C.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셰릴은 며칠간 브라이언을 병원에서 간호했다. 이후 셰릴과 브라이언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켄터키주(州)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기장은 마이크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비행기에 영웅이 한 분 타셨습니다. 브라이언입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의 영웅과 그의 부인을 잊지 마세요. 군인의 부인들은 미군 중에서도 가장 힘든 역할일 것입니다." 모든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셰릴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집에 도착하자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집 내부도 전역자처우협회(VA)에서 브라이언이 휠체어를 타고 생활할 수 있도록 싹 수리해 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셰릴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집도 고쳐져 있었고,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배려였다"고 말했다. 나라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위한 사회의 시스템은 이렇게 소리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해 9월 28일 브라이언은 부대 최고 훈장인 '퍼플 하트'를 받았다. 3개월 뒤 셰릴도 국가로부터 '몰리 피처 어워드'라는 상을 받았다. 미 포병과 방공협회에서 미군에게 헌신한 여성에게 주는 상이다. 브라이언은 2008년 3월 정부 지원으로 방위산업체에 취직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초 셰릴은 워싱턴 D.C.의 한 행사에 초청받았다. 엘리자베스 돌 전(前) 상원의원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참전 용사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셰릴은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적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는 그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 "정치인들 뭐라해도 포화 속 뛰어든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 대전=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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