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28, 2015

월남전의 처참함을 대변한 당시어린소녀, 이제 전쟁 고통의 흔적을 지운다. 전쟁엔 승자 패자 똑같다는 교훈.

6/25 전후 세대들은 월남전(Vietnam War)에 대한 좋고 나쁜 기억들을 아직도 어제일처럼 머리속에 간직하고 있다.  월남 사이공이 함락하고, 마직막 구조헬기가 미대사관 옥상에서 피난민들 싣고 떠오를때 미쳐 기회를 잡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절규했었고, 그보다 몇년 앞서, Napalm 폭탄을 맞아 도망치던 어린 아이들중에서 완전 나체로 두팔을 새가 날개펴듯히 벌리고, 공포에 질려 울부짖으면서 도로변에서 방향도 모르고 쫒겨 달아나던, 그순간을 포착한 기자는 그해에 Pulitzer 상을 수상했었던, 월남전의 아픔을 대변한 당시 그어린 소녀가, 캐나다로 건너와 새삶을 꾸리면서 살고 있다는 뉴스를 몇년전 접한바 있다.

내가 2012년도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캐나다 동부지회의 책임자로 봉사하면서 우리한인사회에도 많은 월남전 참전용사분들이 이곳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계심을 알았었다. 이분들이 이Phuc여인의 사진과 기사내용이 실린 나의 블로그를 읽는다면 당시의 참상이 머리속을 뱅뱅 돌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전쟁의 정신적 결과에는 승자나 패자가 따로 있을수 없음도 깊이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소녀가 폭탄의 불길에 화상을 입어 온몸이 흉터 투성이인데, 이를 이제 완전히 제거하기위한 수술이 진행 된다는 또다른 희망의 뉴스가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퍼지고 있어, 이번에는 슬픔이 아닌, 응원의 박수를 전세계가 보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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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에서 보여졌던 Kim Phuc, 어린 소녀의 모습은 당시 월남전의 살아있는 증거였었는데, 사진에서 그녀의 화상은 보여지지는 않았었다. 다만 어린 꼬마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를 향해 통곡하면서 무작정 뛰었을뿐이었다. 양팔은 뭔가를 털어내려는듯 휘청대고 있었으며, 완전 나체인채로 였다.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이 불이 붙어 벗어던졌기때문이었다.

그후 40년 이상을 그녀는 그런 흉터를 긴 옷소매속에 감추면서 살아왔는데, 엉뚱하게 입고있던 옷의 소매가 떨어지면서, 1972년에 월남전 폭격당시 떨어뜨린 Napalm탄이 빗나가 그녀가 그유탄을 맞은이후로 고통속에서 살아왔던 그흔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게 된것이다. 이제 그녀가 그런 상처를 치료하여 원상으로 되돌아갈 기회가 온것이다.  이런기회가 오기전까지는, 그녀는 생전에는 안되고 죽어서나 그런 아픔에서 해방될것으로 생각해온 아픔이었었다.

"지나온 세월동안, 나는 이다음 생을 마감하고 천당에 갔을때에나 이런 흉터와 아픔의 고통에서 해방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왔었다. 뜻밖에도 이제 그런 천국을 지상에서 만나게 된것이다"라고, 레이저를 이용한 화상치료 전문의를 만나 치료받기위해 Miami에 도착하면서, 고백한 말이다.

지난달말에 52세의 Phuc씨는 '마이아미 피부재생및 레이져치료' 전문의 Jill Waibel씨로 부터 장기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계속 치료를 받으면, 그녀의 왼쪽 팔에서 시작되여 목을 지나 머리까지 퍼져있는, 울퉁불퉁한 피부와 두꺼운 흉터자국들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될것이라고 치료의미를 설명한다.

담당의사, Waibel의 설명에 따르면, 아픔과 고통이 끊이지 않고 그녀를 괴롭혀왔는데, 그러한 고통도 말끔히 없어지게 될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의 곁에는 남편 Bui Huy Toan씨와 또 다른 남자가 동행 했는데, 그는 다름아닌 로스안젤레스에 있는 AP통신의 사진작가 Nick Ut씨로 그녀가 9살때부터 그녀의 삶에서 떼어 놓을수 없는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은 나의 삶에서 처음 시작이자 마지막과 같은 분이다"라고 Uncle Ut씨를 그녀는 그렇게 설명한다.

The iconic 1972 photograph that won Nick Ut the Pulitzer Prize. Kim Phuc was 9 years old when a South Vietnamese plane accidentally dropped flaming napalm on its own troops and civilians, burning and scarring her for the rest of her life.
“그분은 당시 나의사진을 찍었었고 지금은 그분이 나와함께 여기서 나와함께 새로운 인생여정을 걸으며, 새로운 삶의 장을 열고 있다" 라고.

현재 65세인 Ut씨는 1972년 6월8일, 당시 월남군의 전투기가 잘못판단으로 Phuc씨가 살고 있던 거주하고 있던, 수도 사이공 외곽에 있는 Trang Bang에 네이팜탄을 투하, 많은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는 사고를 당한후, 그곳 현장을 뛰쳐 나오는 순간에 당시 9세인 Phuc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이다.
Ut씨는 당시 어린소녀가 월남말로 "너무 뜨거워, 너무뜨거워"외쳐 대면서 아우성치는 그녀를 AP 통신의 미니밴에 싣고, 바닥에 눕힌후 불길에 탄 그녀의 피부를 벗겨낼때, 어린 소녀는 "너무너무 뜨거워, 나는 죽을거야, 나는 죽을거야"라고 지쳐 흐느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한수 치료를 받게하고, 곧바로 사이공에 있는 AP통신사로 달려가, Phuc이 불길에 싸여 허우적 거리는 사진을 포함한 당시의 상황을 정리하여 그해에 Pulitzer 상을 수상하게 됐었다. 
Phuc소녀는 당시 온몸에 화상을 입어 고통속에서 헤메였으며, 그와 비슷하게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목숨을 잃었었다고 Waibel씨는 참혹상을 설명한다.
Napalm탄 스틱은 마치 젤리같아서, Phuc 같은 피해자들은, 보통 일어나는 불길에서는 피할수 있는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게, 발산되는 열을 피할길이 거의 없었다고한다. "네이팜탄 불길은 피부에 닿으면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붙어있게된다" 라고 Waibel씨가 설명하면서, Collagen이 피부를 망가뜨려 많은 흉터를 만들고, 그두께는 보통 피부의 4배이상 두꺼워져 흉칙스럽다고 설명한다.
지난 수년동안 그녀는 인고의 재활운동을 하면서 원상을 찾기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었지만, 그녀의 왼쪽 팔은 오른쪽 팔처럼 사용이 잘안되여, 그런 왼쪽팔의 영향으로 그녀가 그렇게 배우고 싶어했던 피아노를 치는 꿈을 접어야만 했고, 가벼운 가방같은 소품도 그녀의 왼쪽팔을 사용하여  들고다니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꼬마였을때, 나는 나무오르기를 무척 좋아해서 마치 원숭이 처럼 오르 내리곤 했었다.  내가 화상을 입은뒤로는 나무를 그렇게 올가갈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그러한 놀이를 더이상은 할수 없어 무척 괴로웠고, 불구자가 된것을 확실히 알게됐었다"라고 구아바열매를 따서 나무 아래에서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던지곤 했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Phuc은 과거를 회상한다.
본인도 모르게 신경이 퍼져있는 피부를 잘못 건드리면 그고통이 너무도 심했는데, 1990년대 초에 그녀의 남편과 함께 캐나다와 이주해와 살면서, 계절이 바뀔때에는 더 심한 고통이 그녀를 괴롭혔었다. 이들 부부는 토론토시 외곽지역에 살면서 현재 21살, 18살된 두아들을 두고 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여, 참을수 없는 고통,"증오와 괴로움, 고통, 희망이 없는 삶"속에서 헤여날수 없을 절망상태에서도, 육체적 정신적 평화를 마음속에 유지할수 있었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수술, 치료약, 의사들도 내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치료해주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기적을 그리면서 이러한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는날을 항상 염원했었다"라고 아픔을 설명했다.
당시의 기자 Ut씨는 Phuc을 마치 딸처럼 여겨 수시로 전화를 해서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고 염려 했고, 그때마다 Phuc은 그녀의 고통을 호소하곤 했었다.  그는 Vietnam을 방문해서 병원 방문을 하고 그곳에서 Agent Orange와 또 Napalm탄에 맞아 Phuc처럼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전쟁의 흔적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간다면 Phuc을 위해서 할수 있는 희망이 과연 있을까?라는 절망감속에서 헤맸었다고 한다.
Ut씨는 그녀의 치료에 대해서 희망보다는 낙망이 더 커져가고 있었다. "43년이 지난 오늘, 이러한 치료를 하는데 Laser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훌륭한 의사가 그녀를 치료할수 있을거라고 희망을 걸고 있다.  그녀가 이제 막 18 또는20세의 젊은이라면 더 쉬울텐데, 그녀는 이제 50세가 넘었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이다"라고.


담당의사 Waibel씨는 laser광선을 이용하여 화상을 입은 환자, 특히 Napalm탄으로 화상을 입은 환자들을 상대로 10년 넘게 치료를 해온 전문의 이다.  환자 한명을 치료하는데 US 달러로 약 $1,500 내지 2,000달러가 소요된다.  그러나 닥터 Waibel은 Phuc씨가 치료상담을 위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와 왔을때 무료로 치료하겠다는 제의를 한것이다.  의사 Waibel씨의 시아버지가 몇년전 교회모임에서 Phuc여사가 자기의 이야기를 신앙고백처럼 할때 그녀의 과거를 알게되면서, 며느리인 Waibel에게 그녀를 치료해줄수 없겠느냐?라고 의견을 개진했었다고 한다.

Waibel씨의 진료실에서 처음 치료를 시작하면서, 향이 나는 촛불을 켜놓고 laser치료로 피부가 타는 냄새를 정화시키면서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손을 꼭잡고 기도를 드렸었다.
Phuc씨는 의사 Waibel에게 "고통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고", 너무도 괴로웠었다 라고 치료를 받으면서 호소했다.
닥터 Waibel씨가 Phuc여사를 치료하기위해 사용되는 laser치료는 원래는 눈가의 주름살을 없애기위해 개발된 치료법이라고 설명한다.  laser광선에서 나오는 열은 물이 끓는 온도까지 올라가 상처난 피부의 티슈를 태워 날려 보내는 방법이다.  그렇게한후 바로 피부에 두껍게 치료를 하게되는 크림을 바르고, 동시에 Dr. Waibel씨는 보호안경을 끼고 laser광선을 쏘게된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하게되면 Phuc여사의 피부에 빨간 사각형모양의 반점이 나타나면  '빕' 소리가 나는 laser광선을 쏘아 태우게 되면 옆에서 시중들고 있는 간호사는 배큠클리너 호스를 그부위에 대고 타고남은 재를 흡입처리한다.
이러한 치료과정을 거치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 피부에 생성된다.  그러면  laser를 쪼인 피부의 티슈를 통해 의학적 약품성격인 담백질형성(Collgen-building)이 자리잡게 된다고 한다.  이렇한 치료를 적어도 7번 이상 하게되는데 그기간은 약 8-9개월 걸릴거라고 닥터는 설명한다.
담요로 꽁꽁 덮혀있고, 고통을 줄이기위해 사용된 약으로 졸음은 쏟아지고, 치료를 받으면서 생겨난 조그만 빨간 반점이 피부에 생겨나고, Phuc여사는 손가락이 약간 손바닥쪽으로 굽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가 어렸을때 피부이식수술을 했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 laser치료는 그때에 비해서 고통을 견뎌내기가 무척 쉽다고 했다.
"이번 수술은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몇주후에는 그녀는 캐나다의 살림집으로 되돌아가게된다. Phuc여사는 그녀의 피부치료부위에는 빨간흔적이 있으며 피부가 땡기고 가려움증이 있는데, 이런현상은 피부의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쯤은 넉근히 참을수 있어 치료를 계속할것이라는 결의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치료는 일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회복될수 있다는 희망에 맘껏 부풀어 있고, 모든것에 감사해 하고 있다" 심경을 밝히고 있다.

제발 깨끗이 완치되여 월남전의 상징으로 각인되였던, 꼬마 Phuc이 수십년이 지난후까지 그녀의 피부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깨끗이 걷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게됐다는 이후에 소식이 좋은 결과를 안고 다시 세상에 알려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http://www.thestar.com/news/world/2015/10/25/laser-treatment-could-end-pain-for-iconic-napalm-girl.html

Tuesday, October 27, 2015

병가로 10년-20년 이상을 쉬면서 월급을 챙기는($4천6백만달러), 복마전속의 토론토시,

토론토시의 행정은 겉으로는 전부 공개되고, 깨끗한것 처럼 보이지만, 그깊은 속을 들여다 보면 아무나 집어 먹어도 되는 아수라장에 무주공산같은 곳이며, 노조의 행패는 아무도 이를 말릴 사람이 없을 정도다.  수만명이 넘은 시직원들이 은퇴를 하거나 사퇴를 했을때 그후임자를 선발하는 공채같은 광고를 본일도  없다.  전부 Nepotism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간혹 간부급 채용 공고는 신문에 발표되는것을 보았지만, 이에 응모할수 있는 자격은 매우 까다로워 보통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들게 한다.

죤토리 토론토 시장은 하루에 한번이상 매일같이 언론에, 특히 TV에 나타난다.  그는 달변가로 그가 하는 소리를 들으면 토론토시 행정은 모든게 만사형통이고, 문제점이 있어 보이지 않는것 같다. 그에게 건의 사항을 이멜로 보내면, 보낸지 1분도 안돼, 자동답장이 온다.  그리고 그뒤로는 함흥차사다.

오늘 토론토시를 감사한 감사원장의 강도높은 재검토 감사 내용을 보면 정말로 시민들이 낸 세금이 자기네들 주머니돈 쓰듯히 남용하고 있다는 내용에 아연 실색할 뿐이다.

장기병가(몸건강 상태가 안좋아 쉬고있는 시직원들)로 앉아서 봉급을 타먹는 시직원들의 제도 악용에 대한, 강도높은 재검토 내용을 놓고, 금요일 시감사위원회들간에 강한 비난을 퍼붓는 가운데, CFO Rob Rossini는 이들에 대해 "몸둥이에 기생하는 '사마귀'에 비유했었다.

그러한 '사마귀'들은, 이들을 감시해야할 인적자원관리자들의 완전에 가까운 감독부재로 부터 시작해서 병가로 쉬면서 월급만 타먹는 사마귀직원들의 숫자가 통탄할 정도로 늘어났는데도 시관계자들은 이들의 클레임과 그에 합당한 예산을 그들에게 지출하고 있었다.

시감사원장 Beverley Romeo Beeler씨는 그녀가 재검토하여 만든 38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에서 - 사실은 지난 3월 1일 Toronto Sun Paper가 독점기사에서, 장기 병가로 10년에서 20년간(51건은 후자 즉 20년 이상) 쉬면서 월급을 타먹는다고 폭로 했었다 - 1,285명이 장기병가로 출근하지 않고 월급을 챙기고 있는데, 이는 지난 6월말 현재 시직원 20명당 1명이 병가로 쉬고 있는 셈이다.  감사원장 Beverley씨의 보고서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지출총액이 2004년에는 $19.7백만 달러였었는데, 금년도에는 $4천6백만 달러를 지출하게 될것으로 예산한다고 했다.  이는 133%가 증가한 액수이다.  지난 5년 동안에 50%가 증가한 숫자이다.

내가낸 세금이이렇게 이름만 걸어놓고, 병가라는 이름으로 일도 안하고 월급만 타먹는 '사마귀'들에게 착취 당하고 있다니..... 내년도에도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것은 분명하다.  토론토 시장, John Tory는 지금 영국 런던에 가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비즈니스인지는 몰라도..... 영국방문이 중요한게 아니고, 24시간 꽉 막혀있는 교통란을 해소하는게 우선인데..

http://www.torontosun.com/2015/10/23/citys-long-term-disability-benefits-hit-46-million-this-year

Sunday, October 25, 2015

시한부 인생을 사는 7세 꼬마를 위한, St George 마을의 조기 크리스마스 축제 및 응원 - 가슴뭉클한 인심.

세상살기가 팍팍한 요즘 세상이다.  좋은것을 좋게 보지않고,뭔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보편적인 심리가 우리가 살아가는 Community에 존재하는것을 본다.  일부러 낙서를 하는것을 보통이고,  때로는 집을 짖고 있는 주택단지에 들어나 집단으로 불을 지르는 심술을 부리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는 험한세상이다.

이런 강팍한 세상살이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는듯이, 온타리오주 남부의 한조그만 타운, St George에서 지난 토요일 일어난 가슴뭉클한 내용의 뉴스보도를 보면서,  이런 세상이, 그리고 인심이 있어서 아직도 세상은 살아볼 가치가 있음을 느끼면서, 이들 동네 사람들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주 남부의 조그만 타운, St. George에서는,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기까지는 2달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7세 아이를 위한 하얀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토요일 초저녁에 열렸었다.
닥터들의 설명에 따르면, St. George타운에 거주하는 환자소년 Evan Leversage군이 더 생명을 연장하여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성탄일을 비롯한 홀리데이 시즌까지 살수 있을지의 여부가 확실치 않다는 설명에, 동네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모아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토요일 초저녁에 열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크리스마스 성탄 퍼레이드 행사를 치렀던 것이다.
동네 이웃들은 토요일 오후까지 힘을 합쳐 소년이 살고 있는 그의집 마당을 비롯한 주변을 인조눈(Artificial Snow)을 뿌려 놓았으며, 집주변의 나무들에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걸어 놓았으며, "산타 할아버지 꼭 들려 주세요"라는 문구를 창문에 걸어 놓았었다. 또한 인조눈 제조기(Snow Machine)을 빌려와, 12월 25일,크리스마스 때에도 보기가 쉽지않은 하얀 성탄절을 확실히 장식해 놓고 퍼레이드를 준비해 놓았었다.


소년 Evan은 2살때부터 뇌에 치료를 할수없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으며, 담당의사는 지난달 그의 가족에게 지금 그종양이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된다.  그후 Evan은 그가 하고 싶은 목록들을 적었는데, 그중에는 나이아가라폭포, 영화, 그리고 좋은 식당에 가서 외식하는것 등등이었다.  물론 크리스마스축제를 보는것도 포함되여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9월중순에 Evan은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원하는 내용들을 만든후, 그의 어머니, Nicole Wellwood는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할수만 있다면 그의 아들을 위해 오는 10월달중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할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는데, 그녀의 요청에 모두가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런 소식은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나는 비록 이런 일들이 이루어 질것이라는고는,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으로 봐서, 생각지도 않았었다. 이렇게 열렬한 응원과 사랑을 동네에서 쏟아져 나올줄은 몰랐었고, 또 전세계로 부터 열렬한 응원은 기대하지는 않았었던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랑의 응원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어려운 처지에서 지냈던 나에게 용기와 정신적 햇볕을 가져다준게 사실임을 감사한다"라고 엄마 Wellwood여사는 설명했다.

엄마 Wellwood여사는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많은 도움을 받아왔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싱글맘이 되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모든게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단체로 부터 보살핌을 받는것, 특히 크리스마스때는 항상 우리 가족을 위해서 많은 도움을 받아왔음에  감사하고 있어요"라고.


그런데도 이번에는 모든 예상을 뒤엎고, 상상을 초월하여 수많은 도움들이 도착하고 있음니다.
자선단체 GoFundMe 에서는 성금모금 운동을 벌려왔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펼쳐질 즈음에는 $30,000달러를 모으기도 했었다. 이성금은  Evan소년의 가족생활비에 쓰이게되고,  Evan의 두형제들의 교육(RESPs)을 위해 적립을 할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움들은 믿어지지 않는 매직과 같은며, 또한 많은 용기를 동시에 주어서 감사하다"라고  Wellwood여사는 감사해 하고 있다.

초저녁이 시작되면서 시한부 소년 Evan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특별한 방문을 받고, 그의 손에 이끌려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눈썰매 모양으로 만들어진 퍼레이드용 썰매에 올라타고 거리를 행진할때 이광경을 지켜보았던 동네 사람들 및 퍼레이드 구경을 온 많은 사람들로 부터 박수세례를 받았으며, 열렬한 응원을 동시에 받았었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랑스런 아들을 쳐다보는 엄마와 가족들의 슬픔과 그들의 아픔에 대한 상상을 조금 할수는 있었지만, 그들만큼 마음이 아프지는 않다. 오늘저녁 동네 사람들과 전세계로 부터 쏟아져 들어온 사랑의 손길과 응원에  나자신도 마음이 무척 풍부해진 기분이지만, 직접 동참하지 못한 내자신이 한편으로는 그런면에 눈을 감고 살아온것은 아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게 해주었다.


http://www.cp24.com/news/town-holds-christmas-early-for-terminally-ill-boy-1.2626051

Saturday, October 24, 2015

TKPC 산행대원들, Sunnybrook Park, Don Valley PKway Area Trail walk - 캐나다 단풍의 절정 감상

오늘의 산행(Trail Walk)은 토론토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여러개의 공원을 서로 이어주는 Trail Path를 걷기로 하고, 시작점인 Edward Garden 에서, 가까운 교회 Parking Lot에서 대원들이 모여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가슴속에 더 깊이 담아두기위한 Trail Walk을 하기로 대원들이 의견을 모아, 9시에 모였다.

교회를 출발하여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Lawrence와 Leslie 교차로의 남서쪽 코너에 있는 Edward Garden에서, 오늘은 Car pool없이 각자가 알아서 그곳에서 모였다.  차에서 내려 사방을 둘러 보니 황금색으로 도배한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전경이 대원들을 맞이해주는것 같았다.  하늘은 잔뜩 찌뿌렸지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해서 마음놓고 비가 내리기전까지 무사히 Trail Walk을 할수 있을것 같았다.  우선 대원들의 안전한 산행을  빌어주는 기원이 곁들인 대원들의 마음을 모아 여성대원 한분이 윗분에게 간절함을 간구하는 간단한 의식을 올렸다. 그리고 시작됐다.


Edward Garden은 오랫만에 방문한 셈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처럼 교회에서 엎어지면 코닿을곳이지만, 이상하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들리지 못했었는데, 나에게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깊은 공원이기도 하다.  약 40여년전 이른 여름에 캐나다땅을 이민자의 자격으로 처음 밟은후, 첫번째 야외활동으로 이곳  Edward Garden을 방문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대머리도 아니고, 날씬한, 갓 30세가된 앳된 청년이었었다. 당시에 공원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이 영어로 대화하는것을 보면서, 내가 그들만큼 부담없이 대화를 할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라고 걱정섞인 이민자의 앞날을 그려 보기도 했었다.

파킹장에서 Wilket Creek Trail 표지판을 따라 언덕을 따라 대원들의 발길은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간히 항상 푸른색갈을 고집하는 Pine Tree들이 황금색으로 변한 동료나무들과 어울려서 그독특한 파란색을 나타내는 위엄도 조화를 이루어 주는것으로 이해가 됐다.  포장된  Trail Walk에는 이미 보물같은 황금색을 잃어버려 갈색으로 변한 낙엽들이 한걸음 옮길때마다 신발앞부분을 덮을 정도로 수북히 쌓여, 바스락 거리는 그소리도, 듣기에 대원들이 주일날 예배시에 즐겨 부르는 Hymn의 한구절같은 정겨움으로 귀를 울려 주는것 같았다.

표시를 따라 Edward Garden을 통과하여 Wilket Creek trail이 이어지는 쪽에 이르렀을때, 우리 대원들은 큰 집단의 사람들이, 이른 여름철에 우리신앙의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야외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즐기곤 했던 같은 장소에 모여서 카다란 행사를 하고 있는 광경이 전개됐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 여성단체에서 여성들만이 참가권한이 주어진 Women's Marathon competition이 한창 진해되고 있고, 빨리 반환점을 돌아온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벌써 Finish Line에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한인 여성들은 동참한것 같지 않아 보였다.
우리의 Trail Walk Path를 그들이 점령했기에 우리의 길이 막힌것 같아, 진행요원에게 우리대원들이 걷게되는 Trail 방향을 설명하자, 그들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Fence 밖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다시 편하게 걸을수 있을것이라고 친절히 방향을 가르쳐 주어 어려움없이 계속 발걸음을 옮길수 있었다.


가는곳 군데군데에는 친절하게도 Trail 표시판이 세워져 있어 방향을 찾아 걷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CP Railroad도 만나고,  Leslie길을 연결해주는 다리도 만나고, Millwood Rd를 연결해주는 다리밑을 지나기도하고, Overlea BLVD길을 연결해주는 높은 다리밑을 지나기도 하면서 우리대원들의  Trail Walk은 계속됐다.

잠깐 걸은것 같았는데, 벌써 한시간 넘게 황금색으로 도배된 오솔길을 걸어왔었나 보다.  더 많은 Trail Walk을 하기위한 10여분간의 Break time은 에너지 충전과 같은 보약이다. 걷는 길목의 잔듸위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 Picnic Table이 우리를 반겨하는것 같았다.


대원 한분이 굳이 일행들을 몇명씩 모아 기념(?)사진을 만들겠다고 성화여서 모처럼 사진에 찍히는 모델이 된 기분이 좀 어색하다.  나는 거의 Snap으로 카메라의 셧터를 눌러서 추억을 만들곤 했었을 뿐이다.  도심지 중간에 이렇게 넓은 공원이 조성되여 있다니... 그래서 우리 대원들이 오늘 윗분과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깊고 넓은 그분의 뜻하는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감사하는 산행이 되는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가을의 깊은 정취는 남쪽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는것을 오늘 산행에서도 깊이 느낄수 있었다. 지난주에 이곳 주위를 지나는 Don Valley Parkway를 달릴때는 오늘 처럼 황금색으로 도배 되지는 않았었는데..... 이렇게 해서 또 한해가 곧 마감한다는 뜻을 넌지시 암시해주는 표시로 이해된다.


멋진 폼을 잡고 있는 이부부 대원은 오늘따라 잘어울리는 카플로 사진속에 자리하고 있다.
아직 파란 잔듸위에서 뒤로 보이는 가을의 정취는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지금까지 내가 셧터누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는것 같았다.  카톡으로 이사진을 꼭 그대원부부에게 보내줄 생각이다.
Don Valley Pkway를 자동차로 달릴때 항상 보곤 했던, 내가 보고 느낀바로는 마치 어금니(Molar)두개를 나란히 세워놓은것 같은 조각물을 처음으로 곁에서 보기도 했다. 윗부분에는 나무까지 심어놓아 여러모로 상징하는 의미가 있는것 같았다.
Don Mills Rd를 연결해주는 커다란 다리밑으로는 또다른 Trail Path가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어 이곳을 지나는 산책객, Trail Walker, 그리고 Biker 들의 편리를 도와주고 있어, 시행정이 여러면에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런점은 감사하다는 찬사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다.




Shelter안에서 대원들이 모여, 오늘은 편한 점심을 하게됐다.  다른때 Bruce Trail을 걸을때는 쓰러져 있는 통나무위에 걸터앉거나, 아니면 낙엽위에 눌러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진솔한 삶의 얘기들을 하곤 했었는데, 오늘은 무척 편하다. 그래서인지 밥맛도 더 나는것 같다.  드디어 약속이라도 지키려는듯,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거의 12시를 지난다.

아침에 경험많은 여자대원 한분이 카톡을 나에게 보냈었다."좋은 아침. 이아침에 비가 내리네요. 계획데로 진행 하시나요? ...."라는 내용으로.  답장을 다음과 같이 보냈었다."산사나이들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라고.

그대원이 점심을 먹으면서 항의(?)하는 말을 던진다. "그러면 가시나이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가시나이들도 같이 산행을 하는데 사나이들만 .....그런뜻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여성상위시대라는 세태를 내가 완전히 망각했었던 증거가 폭로된 셈이된것이다.
이렇게해서 또한번 우리 대원들은 파안대소하면서, 점심을 꿀꺽 해치우고, 다시 파킹해놓은 주차장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서, 간간히 떨어지는 빗물과 동행하면서 조금씩 적셔오는 가을비를 맞으면서 걷는 낭만이 싫지는 않았다. 감사.

Friday, October 23, 2015

미국인과 캐나다인 간에 전연 닮지않은 20가지의 다른점.- 곰곰히 생각해 볼일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약4,000킬로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똑 같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다.외부에서 볼때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생활환경이 거의 같기에, 사고방식도 거의 같을거라고, 또 실제로 그들의 대화속에서도 다른게 쉽게 보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오래 살다보면, 참 많이 서로 다르다는점을 터득하게된다.   아래의 몇가지를 우선 예로 들어 얘기해 보자. 


캐나다 정부의 운영방식은 유럽 여러나라들과 흡사한 의회주의이고, 미국에서는 회사의 사장이 전권을 행사하는것 같은, 강력한 힘을 갖인 대통령이 있다.



미국인이나 캐나다인들은 맥주를 즐겨 마시지만, 캐네디언들은 Bar에 들어가 Coors light를 오더하는게 드물다.


캐나다의 보수당은 미국 민주당의 통치성향을 마치 Fascists들에 비유하곤 한다.


양쪽 나라 모두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들이지만, 캐나다에는 많은 아시안 소수민족들이 많고, 아프리카의 흑인들및 히스페닉 후손들이 적은 편이다.

미국만큼이나 캐나다역시 테러와 싸우기위해 폭탄을 투하하는 나라들을 좋아하고 있지만, 그것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영국의 여왕이 아직도 캐나다의 여왕직을 수행하고 있다.


캐나다식 축구는 큰 운동장에서 선수들이 뛰고, 흥미진진하면서 그리고 이해못할점도 있지만, 무척 흥미진진한점이 특이한다.


캐네디언들은 비교적 그들의 종교적 신앙심을 그들 자신속에 간직하지만, 미국인들은 종교적 신앙심을 나타내는데 그들의 손에 또는 사인을 흔드는것을 오히려 선호한다.


캐네디언들은 외국 여행을 하게될때 주로 그들이 방문하는 나라에 대한 대화하는것을 좋아 하지만, 미국인들은 미국얘기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미국인들은 Norm MacDonald, Jim Carrey 그리고 John Candy가 캐네디언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매우 큰 실망을 할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화폐에 대한 재미있는 별명을 사용하는데 실패하고 있지만, 캐네디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1달러, 2달러 동전을 '루니' 그리고 '투리'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캐나다와 미국은 완전히 다른 교육시스템을 갖고있다.  한편으로 미국인들은 바보를 생산하는 천편일률적인 교육제도지만, 대신에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이 캐나다보다 훨씬 강하다.

캐나다는 전국이 매력적이면서도 지독한 강추위가 있다.  그러나 미국은 변화가 많은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국인들은 여러종류의 스포츠경기를 좋아하지만, 하키경기만을 좋아하는것 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Tim Horton이 누구이며, 왜 그에게서 도너츠를 사는가?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깊은 뜻을 무심코 지나친다.

캐나다 인구의 약 14%가 불란서계 후손들로, 대부분의 캐네디언들은 이를 자랑스러워 한다.
캐네다는 불란서언어를 국가공식언어로 사용하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영토를 갖고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인구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적인 언어를 갖고있지 않는 나라이다.

더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보면 재미있게 볼수 있다.

http://www.answers.com/article/1183287/20-ways-america-and-canada-are-nothing-a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