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22, 2011

삼복더위에 콩삶아 메주를 만드는 Lunar를 누가 말려....













삼복더위에 콩삶아 메주를 만드는 Lunar를 누가 말려....

큰 들통에 하루전부터 물에 불렸던 콩을 넣고 삶았다. Lunar가 된장과 간장을 직접 담가 보기위해 시도해 보는 것이다.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Peak time을 피해 콩을 삶는데, 시간이 흘러 갈수록 냄새가 구수해진다. 가끔씩 큰 국자로 휘저어 가면서 불을 세게 했다가 또 약하게 조절 하기도 하면서, 다익혀졌나를 확인하기위해 내가 직접 한두알씩을 꺼내 맛을 보기도 하면서 이 삼복 더위에 콩을 삶는 것이다. Lunar는 그녀 자신으로서는 처음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보는 어떻게 보면 메주와 된장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달려보는 그러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즉 숙성하여 완성된 메주를 직접 보는것이 궁금한것 같아 보인다.

궁금한점이 발생하면 그녀는 나에게 물어본다. 낸들 뭘 잘알고 있다고?. 나는 시골서 자라면서 어머님과 누나들께서 매년 가을철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콩타작을 하고, 돌을 골라내고 콩을 물속에 잠겨 놓았다가 다 불었을때, 커다란 가마솥에 가득 넣고, 장작 아니면 볏짚으로 장시간 불을 때 완전히 익힌 콩을 도구통(절구통)에 잔뜩 옮겨놓은후 도구대(절구)로 찧어서 반죽을 만든후, 아직도 채 식지않은 뜨거운 콩반죽을 커다란 암반에 옮겨서 어머니와 누나들이 직사각형의 메주를 만들었던 기억이 어렴푸시 기억에 떠오르는게 전부인데, 그러한 엉터리 기억도 Lunar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마음에 의지가 되는가 보다. 그런데 분명한것은 어머니께서 삼복 더위에 메주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더위에 그녀는 시도를 하는 것이 다른점이라 하겠다. 이렇게 5-6십년이 지난후에 직접 부딪칠것을 미리 알았었다면, 기록이라도 해두었다가 지금 이시간 처럼 Know-How가 필요할때 당당하게 사용할수 있었을텐데..... 라는 넋두리를 혼자서 해 보기도 한다.

몇번씩이나 익혀진 상태를 손수 입에 넣어 확인한후 드디어 절구통 대신에 스테인레스 양푼에 넣고, 부엌에서 사용하는 Knife set 를 꽂아 두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 칼집을 깨끗이 씻어 절구대용으로 사용해 보기로 하고, 어설픈 콩 으깨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구대를 사용했더라면 운치도 있고 더 쉽게 찧을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잘 삶아진 콩이라서 생각보다는 쉽게 잘 으깨지는것 같았다. 지금 이순간 전까지만 해도 도구통과 도구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었다거나, 집에서 사용하는 살림의 한구퉁이를 차지하고 있어야 된다는점을 생각해 본일조차 없이 살아왔었는데, 이럴때 사용할수 있도록 구비해 두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어나는, 필요할때만 생각케 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하는 순간이기도하다. 몇번 안했는데도 손목이 아프고 어깨가 아파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Lunar가 내가 쉬는 동안 하고 다시 내가 또 해보고 하면서 다 으깬다음 Lunar가 손수 메주를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가기 시작 한다. 들통에 넣고 끓일때는 많아 보이던 콩이, 옛날 학교 다닐때 알루미니움으로 만든 점심도시락통 크기로 4개하고 반개를 만드니까 끝이다.
방윗묵의 천장에 매달려있는 시렁에 주렁주렁 몇십개를 메달아, 메주를 띄우는때는 냄새가 고약해 어린 나는 코를 막고 다녔던 기억이 되살아 나게하는 그많던 양의 메주를 만들기위해 어머니는 가마솥에 여러번 끓여 냈던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프다거나 힘들다거나 하는 투정없이 의례히 아녀자로서 해야 하는 살림을 하는것 쯤으로 삶을 사셨던것을 지금에야 이해할수있을것 같다. 그시간에 아버지나 형님들은 옆에서 도와 주었었다는 기억은 전연나지 않는것으로 보아, 이러한 집안 살림과 집안의 남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왔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생각을 우연히 해보게 된다.

옆에서 지켜 보니, 메주의 모양을 만드는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것 같아 보인다. 모양이 이그러지기도하고, Tray에 들러 붙기도하고.... 겨우 4개 정도를 만드는데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는 두사람이 매달려서 헤매고 있으니, 그것도 미로를 빠져 나가기위해 이리저리 헤매는것 처럼, 확실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잘 될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걸고 달리고 있는 셈이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우리 부부가 메주를 만드는것을 시기(?)해서 인지, 그시간부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찜통더위가 계속된다. Lunar는 걱정이 하다 더 늘었다. 더운 날씨에서는 메주가 적당히 곰팡이가 서식하도록 하는 장소가 되지 못하고, 썩어 버릴까를 염려해서다. 웬만큼 더울땐, 앞뒤 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Air Cond.이 필요가없이 지내기가 아주 좋은 시골 집인데도 지금은 아니다. 바람이 불어도 더운 바람이 통과하기에 시원함을 못느낄정도다. Lunar는 그러한 속에서도 좀더 바람이 잘통하고 시원한 곳을 찾아 메주가 담긴Tray를 들고 옮겨 다니는데 열성을 다한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정성을 쏟는다고 하는 것일까?

콩을 삶고 남은 물이 Brown색갈로 변한채 한양푼이나 된다. 이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결이 좋아 진다고 애기를 해주었다. 어렸을적 콩을 삶고 남은 물로 어머니와 누나들이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결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서 였다. 도시에서만 어린시절을 보낸 그녀에게는 이러한 체험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것 같아서, 여자로서의 본능이 발하여 실제로 직접 체험해 보고져, 기회만 있으면 부딪혀 보고져 하는 열망이 강하게 일어나는것 같다. 메주를 직접 만들어 보고져 함과, 콩삶은 물로 머리를 감아 보고져 하는 생각, 남자인 나는 콩물에 머리를 감아 보고픈 생각은 전연 없다.

굳이 한여름인데도 지금 시도해 보는 이유가 있다. 우리 부부가 시골집에 머무는 기간이 여름철 4개월 정도인데, 이기간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토의 집은 콘도이기 때문에 메주가 발효할시 나오는 고약한 냄새를 소화해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주위의 눈총이나 제약을 받을 필요가 전연 없기에, 더위에 썩지만 않고 발효가 잘 된다면 장소로서는 최적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며칠을 더 말려야 될까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모양이 외부의 충격에 변하지 않을 정도로 굳어지면 그때는 메주를 끈으로 얽어매서 더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곳에 매달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머니가 메주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볏짚을 이용하여 메주를 싸매서 방윗묵의 시렁에 매달아 놓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Lunar에게 그렇게 해야 하는거라고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위와의 씨름인데, 앞으로 이러한 찜통 더위가 며칠을 더 갈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앞으로 2-3일은 더 지속될 것이라 하는데, 암튼 Lunar가 잘알아서 직사광선이 안들이치고 더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곳으로 계속 옮겨 놓을 것이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한다해도 좋은 경험으로 삼을 것이고.....나도 그녀와 같이 이작업에 동참한것은 물론이고 Foreman 역활까지 한셈이니....격세지감을 느낀다.

4일후 메주의 표면이 Dry해져서 손으로 만져도 손에 묻어나지 않게 됐다. 이제는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하고 햇볕이 안드는곳에 매달아 놓아야 하는 숙제가 앞을 막고 있다. 옛날에 어머님이 볏짚을 사용하여 메주의 몸체를 싸서 주렁 주렁 매달았던 생각이 나면서 이럴때 볏짚이 있으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수 있는데.....라는 엉뚱한 생각이 났다. 어떤 끈을 사용해야하나를 놓고 나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Lunar가 그문제는 해결됐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녀가 보여준것은 3 파운드 Cooking Onion을 담았던 얇은 net였다.
정말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됐다. 가끔씩 어쩌다 한번씩 사는 오니언주머니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생각을 했을까? 조심스럽게, 깨어질새라, 갓난아이 품에 안듯해서 주머니에 넣었더니 그이상 좋을수가 없었다. 시골집에서 가장 서늘하고 햇볕안드는 곳을 찾아 그곳에 Bar를 설치하고 하나씩 주렁주렁 매달아 보았다. 5-60년전의 어머님이 방윗묵의 시렁에 매달던 생각이 또 났다. 이제는 메주를 잘 말리는일만이 숙제로 남아 있을뿐이다. 벌써 메주 곳곳에는 하얀 곰팡이들이 서식하고 있는게 보인다. 아직까지는 성공인데....

Thursday, July 21, 2011

Atlantis' 우주선 최후 비행 마치고 무사히 귀환, Good Bye.


정확한 햇수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1969년도 아닐까?, 아폴로 우주선 11호가 달착륙을 성공하고, 그중의 한우주인이 캡슐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성조기를 들고, 달표면을 껑충껑충 걸었던 장면을, 당시에는 귀하게 여기고 비쌌던 흑백 TV를 갖고 있는 이웃집에 동네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숨소리를 죽여 가면서 보았던 기억이 이아침에 떠오른다. 그뒤 미국의 우주탐사선 비행계획이 여러번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러, 계속 연구를 해오던 Atlantis'계획이 이제 종지부를 찍게 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아쉽기도 하고, 이연구로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됐는데, 그혜택이 우리 인류에게 어떻게 반영됐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마음 저변에 아련함을 느낀다.

지금 우주공간에는 쏘련과 미국이 주도로 쏘아올린 우주 정거장이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 우주정거장에는 항상 우주인이 그동안 상주해 왔었다고 한다. 우주선이 힘찬 굉음을 내면서 플로리다 또는 러시아의 우주쎈터를 떠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우주 정거장에 도착, 독킹하여 우주선의 문을 열고 정거장으로 들어가 며칠씩 연구하고, 또 때로는 정거장에 상주해 있는 우주인에게 보급품을 전달하고....

한번은 부부 우주인을 올려 보내 그곳에서 부부관계를 하게 하는 실험도 한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뒤 그부부가 임신 했었다는 후속뉴스는 내가 못봐서 였는지는 몰라도 듣지를 못했는데, 아마도 임신에는 실패한것으로 보아야 할것같다. 그러나 많은 연구를 한 결과 인류의 좀더 낳은 생활에 보탬이 되는 실험을 한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내용은 문외한이라서 알지는 못한다. 그 결과가 또한 어떻게 우리 실생활에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주 탐사계획이 꼭 성공만을 한것은 아니다. 여러번의 폭발 사고로 아까운 인재들이 우주공간에서 목숨을 날렸던, 가슴아픈 기억들도 생각난다. 레이건 대통령때로 기억한다. 우주선이 발사되여 불과 8분정도 치솟아 오르다, 연료통의 조그만 Gasket이 leaking 하여 우주선 전체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폭발하여, 두줄기의 하연 연기로, 마치 구름조각이 떠 있는듯한 형체만 남겨 놓아, 대통령을 비롯한 이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인류들을 아연 실색케 한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사고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고 발달시켜, 오늘 장엄한 30년 비행의 기록을 남기고 막을 내렸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낳은, 미지의 우주공간을 탐사하기위해, 다른 계획을 세워서, 태양계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는 행성을 탐사하고 그다음에 우주인을 탑승시킨 또다른 우주선을 화성(Mars)에 착륙시켜 그곳의 생태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엄청난 사고 났을때, 그들은 누구의 잘못때문이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들어 보지 못했다. 다만 왜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나를 연구하고 또 연구하여, 오늘의 좋은 결실을 맺는것을 보면서, 미국의 정신을 보는것 같다.
그들은 프론티어 정신으로 남의 잘못을 헐뜯기 전에 원인을 찾아 서로 해결할려고 노력하는 위대한 협조의 정신을, 과학이건, 정치건 한목적의 달성을 위해 서로 머리 맞대고 최대 공약수를 찾는 뉴프론티어 정신,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큰것 같다.

요즘 미국의 살림살이가 여간 여려운게 아니다. 미국이 지고 있는 부채가 너무나 많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의 지도자들 사이에 걱정이 많아져, 이를 해결 하고져, 대통령이 여야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토의하고, 안되면 며칠 있다가 다시 초청하여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고 협상하여 결국 마무리를 지어간다는 뉴스와 이들의 도전 정신이 맞딱뜨려 지는것을 보면서, 고국의 정치판도 머리에 떠 올려진다. 새로 당대표가 됐다는 자는 한솥밥을 먹고 있는 대통령을 향해 정치를 잘못한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해대는것을 보면서, 남에게만 손가락질하는 누워서 침뱉기식 추태를 거침없이 해대는것을 봤다. 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여 대통령의 통치에 도움이 돼는 고견은 나누지 못하고 밟아 뭉게려고만 하는가? 그렇게 하는 처신이 다음 투표시를 겨냥하는 인기몰이식 작전이라고 생각하는걸까? 고국의 우주선 계획이 러시아의 우주센터를 빌려서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그과정에서 잡소리가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것을 보면, 헐뜯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곤 했다. 왜 미국은 일구어 가는데 한국은 Bickering이 일어나는가? 대국으로는 발돋음하기위해서는 먼저 기술도 경제적 부도 좋치만,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조하고, 타협하여 모두가 수긍하는 하나의 골을 터뜨리는 정신이 먼저 생활화 되여야, 한국도 미국과 같은 원대한 우주탐험 계획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

여기에 오늘 마치막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Alantis'우주선에 대한 뉴스 기사를 옮겨 싣는다.

4명의 우주인이 탑승한 아틀란티스 우주선이 마지막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목요일 아침 7시 57분, 막 해가 뜰려고 하는때에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 착륙 했다고 한다. 이번 비행이 아틀란티스 우주선 프로그람의 마지막 비행으로 우주 탐험비행은 이것으로 끝나고, 오늘 비행을 마치고 귀환한 마지막 비행선은 케네디 센터내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주선이 착륙한 활주로부근에는 30년 우주탐사 여행의 마지막 비행을 축하 할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며 모두가 "Good Bye"의 환호성을 내비쳤다.

앞으로 우주 정거장은 민간회사들이 맡아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며
미국의 다음 계획은 우주 공간에 태양계를 중심으로 떠 돌아 다니는 행체를 연구하고, 그다음 우주인을 탑승한 비행선을 화성에 보내는 계획이 진행 될것이라고 한다.

http://www.thestar.com/news/world/article/1028100--the-space-shuttle-has-landed-for-the-last-time?bn=1

Sunday, July 17, 2011

어찌하여 외신기자가 군개혁을 걱정하는 나라가 됐나...




얼마전 이북과 대치하고 있는 최북단 강화도 주둔 해병대 기지에서 일반병 고참이 부대내에서 왕따(Ostracize) 당해서 그분풀이로 잠자는 내무반에서 총기 난사를 벌여 동료병사 여러명이 죽고, 본인도 자살을 시도 했으나 미수에 그친 충격적인 군대내 사고기사를 보았었다.
그병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부대내에서 고참취급도 안해주고, 무시당하고 하는등의 왕따에 더 이상은 참을수 없어, 총기와 탄약을 몰래 빼내어,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동료 병사들을 향하여 난사했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왕따의 참혹함을 우리같은 늙은 세대는 그자체가 뭔지는 상상도 안되지만, 어렴푸시 그원인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해 볼수는 있을것 같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사회적 변화를 실감하는 사회속에서 오늘의 젊은이들은 삶을 꾸려가고 있다. 특히 IT산업의 발달로 많은 아이들이
Physical exercise 보다는 책상이나 길가 모퉁이에 둘러 앉아 불과 3-4인치 크기의 모니터를 통해 Cyber세상을 휘젖고 다니면서, 웃고 울고, 때로는 바로 옆의 친구들에게 전송하기도 하는 요상한 세상속에서 그들의 육체단련과는 상관없는 상상의 세계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커가는 아이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나 이웃과의 경쟁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고있는 한국사람들의 공동체의식이 함께하는 사회적틀속에서, 필요한것이니 사달라고 할때는 부모들이 거의 받아 들여, 아이의 기를 살린다는, 그래서 그아이가 잘 자라 부모인 내가 못다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 줄것을 마음속에서 기대하고, 옆집과의 경쟁에서 뒤지고 싶지 않다는 심리때문에, 왜 이물건이 필요한가를 같이 논의하고, 때로는 아이들의 요구를 꺽어서 세상살이가 마음먹은데로만은 안된다는것도 교육차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하는 부모님들이 훈련 시켰어야 했으나, 현실은 그반대로 지난 4반세기사이에 대부분의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Spoil 시켜 버려, 성장하는 아이들이 상대방 의견 존중과, 협조, 양보등의 교육없이, 모든것은 나 위주가 되여야 한다는 개인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버린것이다.

6/25 남침이후 4/19시대에 어린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나의 세대에서는, 너무도 가난하여 겨울을 무사히 나기가 어려운 세월을 살았었지만, 그속에서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교육을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넣는 암기식교육이 아니고, 먼저 인성을 기르고, 어른을 공경하고, 사회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협조와 양보를 미덕으로 알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부모님들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키워서, 연령이 차면 의례히 군대에 가는것이 당연한 보편적인 사회기강이었었고, 또 국가를 지키는 질서의 기본이었었다. 군대생활 3년을 잠깐 기억에서 꺼내 본다. 제대하는 그날까지 항상 배가 고파, 고향에 돌아가면 꽁보리 밥일망정, '어머니에게 매달려서 배처져라 한번 먹어 보리라'라는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손발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동동 구르고 손을 비비면서 추운 겨울에 보초를 섯었고, 그러면서도 고향에 편지를 보낼때는 '불효자는 국가에서 주는 좋은 음식을 먹고,열심히 군무에 충실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군생활을 즐기고 있으니 아무걱정 마십시요'라고 썼었다. 심적 신체적으로 어려움에 쳐해 있으면서도, 내자신보다는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했기에, 잘 있읍니다라는 편지를 보내곤 했었고, 그속에서 강인함, 인내, 협조,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초석을 배웠기에, 사회생활을 그정신으로, 오늘 잘살고 있는 조국의 기틀을 쌓는데 주져 없이 동참하여 조국건설의 현장에서 뛸수 있었던 원동력을 만들어 줬던것이다. 그래서 군대생활 했던것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삶의 어려운 고비때마다 정신무장을 다지는데 되돌아보곤 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군대생활을 평하기를 '군대는 인간 재생창이다'라고 표현 했었다. 군대는 젊은이들의 집합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사회에서 보다는 유보가 되고, 항상 공동체의식속에서 생활을 하기에, 항상 바삐 공동체로서 움직여야 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지진 배를 움켜지고 구보를 시작으로 막사청소, 길청소, 아침식사 그리고 훈련장으로, 다시 병영에 돌아오면, 사역에 고참병 뒷시중에, 집단으로 고향의 부모님께 안부편지쓰기, 보초, 산속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로 세탁하기...등등 거의 전부가 개인 행동은 없었다. 시간이 되여 취침 점호를 마치고 소등하면 불과 일분도 안되여 깊은 잠속에 떨어져 몇분 잔것 같은데, 벌써 기상 나팔 소리가 귀를 요란하게 울리면 기계적으로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는, 같은 일상이 반복되곤 하는 생활이었었다. 그렇게 귀찮고 왜 쓸데없는 아직 자아가 발달안된 어린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이러한 일상이 일초의 여유도 없이 이어지나를 생각해 보곤 했었으나, 결론은 제대후에 터득했었다. 개인에게 자유시간을 주게 된다면, 고된 병영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젊은이들이 몇명 안되고, 고생 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게 더 쉬운 방법이다 라는 생각을 막기위한 훈련이었다라는 결론으로 말이다.

배가 부르고 자유시간이 많아지면, 인간의 본심은, 게을러지고 다른 생각과 공상을 하게되고, 아무도 침범할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특히나 요즘의 젊은이들은,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내가최고다라는 의식속에서 원하면 뭐든지, 관계를 맺고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웃과 친지들은 아랑곳 없이 다 손에 쥘수 있다라는 경쟁적 Selfish 의식속에서 자라 성장했기에, 마음에 조금만 상처를 받아도 이를 극복해 내야 겠다는 마음보다는 먼저 괴로워하고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삶을 살아야 하는가로 번민할망정, 참을성은 뒷전이고 편한것만 추구하는것 같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지내다 갑자기 군대라는 공동체안으로 들어서면, 극복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군대는 국방의 신성한 의무이다. 내가 못나서 별수 없이 할수밖에 없었다라는 생각이, 때로는 몇명안되는 빽있고 인맥있는 몇명의 치한들때문에 그의미에 먹칠을 당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생활을 한다는것은, 내몸둥이는 이미 국가에 바쳐진 하나의 부품일뿐, 내의지데로 자유를 누릴수없다는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기본 상식이라고 보겠다. 그기간동안에는 국가에서 어떤 일을 시키든 명령에 따라야 하고, 훈련에 임해야 하고, 군생활 수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바쁘게 생활해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고국 군대생활의 내면을 신문기사를 통해서나,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서 들어보면 이것이 과연 적의 침략으로 부터 국가를 지키기위한 젊은이들의 집단인지를 구별하기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의식이 결여 되여 있다는것을 금방 느낄수 있을것 같다.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노인의 헛튼 생각일뿐이라고 몰아 부쳐도 할수없다. 군대는 명령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다. 고참은 당연히 신참에게 Respect를 받아야 하고, 고참은 신참에게 군선배로서의 품위를 잃지말고 앞에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군대는 그러한 개념을 없애 버리고, 동격으로 취급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고참에게 신참이 '네가 뭔데 나를 건드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 부대내의 질서의식개념이 없어져 버렸다는 생각이다. 말뚝을 박은 장교나 하사관들은 근무시간이 끝나면 주로 영외 거주를 하기 때문에 내무반에서의 질서는 자연적으로 고참병의 명령과 지도를 받아 질서를 유지 시켜야 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인격존중이라는 미명하에 의무년한을 같이 채우고 있는 장병들 사이에서는 고참과 신참의 서열을 무시해버린 결과를 이제 우리는 총기 난사 사건같은 끔찍한 사고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고 방식은 그유래를 찾아가 보면, 소위 말해서 민주투사라는 자들이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된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자들은, 당시에 빽이 좋고 운이 좋아, 군대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어, 참고 견디어 내야하는 군대생활의 깊은 뜻을 이해 할수가 없다. 그렇게 혜택을 많이 받은 자들이 민주주의를 한답시고, 부레이크 기능을 상실한 기차가 질주하듯 걷잡을수없을 정도로 자유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표 얻기위한 인기몰이식 민주주의를 제창했고, 이제 서서히 배부르기 시작했던 국민들은 이에 쌍수를 들어 동참하면서, 그여파가 명령이 생명인 군대내에 까지 파급된것으로 본다.
군의 리더들도 자연적으로 이들의 정책노선에 동조하는 정치군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통솔하는 군대도 자유를 주는것이 정상인양, 통솔방식을 바꾸면서, 군대졸병들 사이에서 고참이 신참에게 존칭어를 써야 하는 정신나간, 입으로만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오합지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치 안아도 군대입대전 이미 Spoil될데로 된 젊은이들에게, 고참 신참의 구분을 없애 버리는 환경속에서, 질서유지를 바라는것은 처녀가 애낳기를 바라는것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고참이 신참으로 부터 왕따(Ostracize)당하는 군대, 식사도 제멋데로 하는 군대, Discipline이 존재할수 없는 군대로 전락시킨 그원흉과 원인을 찾아 개선하지 않는한, 국민의 혈세는 계속 빠져 나갈 것이고, 정밀한 군대 무기는 적을 섬멸하기위한 제2의 나의 생명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를 사살하는데 사용되는 흉기가 될뿐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잘못된 군개혁을 포함한 국방 개혁을 정부 주도로 연구 관찰하여 그대강을 만들어 관계자및 군원로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여야 정치꾼들에게도 공개 했다고 하는 뉴스를 접했었다. 정치꾼들은 그들데로, 군원로들은 또 그들데로, 군장성급들은 자기 밥그릇에 눈독 들이고, 직접 총들고 싸워야 하는 이등병부터 병장들은 윗선에서 부터 제 밥그릇 다툼을 하느라 정신없는데, 이참에 우리도 우리나름데로 군생활을 해보자는 식으로 고참,신참의 서열을 무시라도 하듯이 편을 짜서 왕따를 시키지 않으면, 총기 난사를 밥먹듯히 하는 개판 군대가 되버린 현실에 자극을 받아서 였는지? 외신기자들이 오히려 한국군 개혁이 절대 필요한 과제라고 기사를 써대고 있는꼴을 보면서, 한심하고 챙피한 감마져 강하게 들었다. 이대로 어물쩡 대다가 정권이 바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관계된 모든자들에게 만연되 있는것 같아 보인다. 국민의 혈세를 Vampire가 피 빨아먹듯이 하고 있는 여야 정치꾼들, 당신들만 아니면 조국 대한민국은 벌써 일등국가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당신들이 국위선양을 위해 한일이, 국가장래를 위해 한일이 하나라도 있는지? 한번 생각들 해 보시구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국위 선양을 위해 목이 터져라 외쳐댄 김연아 선수보기가 부끄럽지 않는가?

부모들의 의식구조도 큰 문제이다. 내아들이 귀하면 남의 새끼들도 똑 같이 귀하다는것을 생활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자식을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치르기위해 국가에 일정기간 바쳤으면,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해도 극성스럽게 참견이나 간섭하지 말고, 국가의 군대를 믿고, 참고 인내 하면서 지켜 보아야 한다. 만지면 터질세라 자기네들이 옹야옹야 떠 받들어 키웠기에 때로는 공동생활의 기본 질서를 지키기위한 인내심이나, 협조, 인화단결등의 부족한 점들을 군대에 가서 배워올 것임을, 옛날 자기네들의 경험을 거울삼아, 굳게 믿고 맡겨야한다. 이번 같은 참사는 명령과 통솔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내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리더들과 배부름이 모든것을 해결해 줄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부모들의 합작이라고 생각되며, 그사이에서 아직 채 피워 보지도 못한채 숨져간 장병들이 희생됐다는것을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걍력한 Discipline과 전쟁을 해야하는 군대의 특성을 이성적으로 살려서 해결책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더욱 강조하고 싶은것은, 고국의 정치꾼들, 특히 좌파성향의 정치꾼들, 유권자들의 표를 의시해서, 현실성도, 실행가능성도 없는, 군대 기강을 뒤흔드는 인기몰이식 막말들을 내뱉는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좀 진지하게 생각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군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소신있는 군리더들의 말을 경청하는 마음과 대화의 문을 열기를 바라며, 당리 당략에만 눈이 멀고 귀가 어두어, 군전문가들이 개혁을 위한 Draft를 만들어 입법화 시킬려고 하는데,통과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들었다. 하루빨리 그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LATimes의 기사는 시사하는바가 크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south-korea-marines-20110717,0,7046887.story

Thursday, July 14, 2011

아침 저녁으로 인사나누는 고추,오이 그리고 호박줄기들

















아침 저녁으로 인사나누는 고추,오이 그리고 호박줄기들

밤사이 호박꽃과 오이(Cucumber)꽃이 몇개 더 환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아침 인사를 한다. 어제 저녁에 물주면서 편하게 잠잘자라고한 대화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아침 햇살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어제는 바람이 세게 불어서 잘자라고 있던 고추한구루가 조금 기울어져 있어, 바로 세우고 흙을 밟아 주고, 다시 조그만 나뭇가지를 꺽어 받침대를 해 주었었다. 지금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대로 있고, 고추나무는 반듯히 서 있어, 자세히보기 전에는 다른 고추나무들과 같아 보인다.

햇볕이 뜨거우나 구름이 끼었어도, 조석으로 Lunar가 물을 주고, 오이줄기에는 타고 기어 올라 가라고 받침대로 만들어 주고, 주위에 계속에서 돋아 나고 있는 잡풀들을 열심히 뽑아주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 오기를 벌써 한달이 지난것 같다. 호박이나 오이, 고추 그리고 토마토까지, 아차 또 있다 다른게 아니라 들깨다. 가느다랗고 조그만 모종들을 처음에 옮겨 심을때는 확신이 없었다. 이것들이 과연 살아남을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 Lunar는 골프를 마치고 오기가 바쁘게 그들에게 뛰어가 물을 주었고, 때로는 비싼 거금(?)을 들여 사온 비료를 주기고 하고, 손질을 했었다. 호박같은 경우는 이젠 숲을 이룬것 같다

엇그제는 Lunar가 첫수확으로 호박 하나와 오이 두개를, 물론 그동안 깻잎은 여러차례 따서 고추장 된장에 쌈도 싸서 먹었었지만, 따서 호박은 Fry Pan에 볶아서 저녁상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오이 두개중 한개는 뒷집의 Barbara네 집으로 가지고 가서 주면서, 금년도 농사의 첫수확으로 오이 두개를 땃는데, 하나는 네몫, 그리고 하나는 우리가 먹는다 라고 하면서 건네 주었더니....너무나 좋아한다. 그마음을 높이 산것 같다. 그녀가 우리가 토론토에 가서 며칠씩 머물때는 손수 물을 주는등의 정성을 대신 쏟곤 했었기에, 둘중 하나는 당연히 그녀몫이라고 생각해 왔던것을 실천한것이다. Lunar가 그녀에게 한마디를 거든다.
"호박과 오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열릴테니, 필요시는 어느때고 건너와서 먹을만큼 거두어 가도 된다,바바라"
"고맙다 Lunar, 잠깐만 기다려줘, Lunar"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금새 조그만 통에 뭔가를 담아와서 건네 준다.
"화분에 심었던 상추인데, 너도 좋아 할거야 먹어봐, 처음에 모종을 할때, 나는 속으로 걱정 하면서 마음 조렸었다. 수시로 토론토에 왔다 갔다 하면, 말라 죽기 십상일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Lunar" Salad를 만들때 사용하는 아주 조그만 미니 상추였다.

어제 초저녁에는 Lunar가 고추밭에 틀어 박혀, 사이에 난 잡풀들을 Spade를 이용하여 하나 하나 잔풀까지 다 뽑아내는 열성을 들였다. 모기가 때마침 출몰할 시간이라서, 걱정이 되여 그만 두라고 했는데 계속하는 고집을 부렸다. 더 신경을 쓰이게 하는것은 그녀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윗옷은 Sleeve가 없는 것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더우니까 그랬을텐지만....
"앗 따거워, 웬놈의 모기새끼들이 이렇게 극성이야" 라고 한마디 내뱉으면서, 철석 소리를 내여 장단지를 내려친다. 결국 다 뽑고 비뚤어진 모자를 다시 한번 바로 쓰면서 자리를 뜬다. 대단한 열성이다. 나는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또 뭐가 아파서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지를 못하는데.....

오이는 물을 계속 주어야 쓴맛이 없어진다고 하기에 정말로 오이만은 계속 물을 들이 댄다. 호박이나 고추 그리고 토마토 깻잎들도 물을 주지만 오이만은 쓴 맛을 없애야 하기에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물값을 돈으로 계산 한다면, 오이, 호박 수확하는데 비할수 있겠는가.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삶의 모습을 보는 기분같아 마치 지금은 다 큰 두아이들이 어릴때 엄마 치마폭을 빙빙 돌면서 자라던 생각을 나게 하는 모습들이다. 약 2주간 비한방울이 내리지 않아 잔듸들이 노랗게 죽어간고 있는 뒷뜰 가운데 마치 사막속의 오아시스처럼 Lunar가 열심히 가꾼 채소밭만이 파랗게 그위용을 자랑하면서, 열매들을 맺기에 분주하게 보인다. 호박꽃속에는 벌들도 있고, 개미들도 바삐 돌아 다니고..... 어려서 배울때는 벌,나비들이 꿀을 따기위해 열심히 다니면서, 덤으로 암수의 꽃가루들을 이꽃에서 저꽃으로 옮겨주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다고 배웠는데, 지금은 개미떼들도 한몫을 하는건가? 어려서 배운 학문(?)의 진실이 바뀐것일까? 그것은 전문가들의 몫일테고..... 고국은 지금 물폭탄이 연일 게속되여 물난리로 고생 한다는데..... 창조주의 깊은 뜻이라고 돌리고 싶다.

노랗게 변해 버린 잔디들을 보면서, 물을 뿌려주고 싶은 마음도 일지만, 그렇게 까지 하면서 그들을 파랗게 놀려놓고 싶지는 않는다.
자연속에서 자라면서 이러한 주위 여건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티온, 강인한 잔듸에게 수돗물을 뿌려 준다는것이 주위에 살고 있는 Neighbor들과도 형평에 어긋나는것 같아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우리집만 수돗물이 연결되여 있고, 주위의 아무도 수돗물을 사용하는 집이 없다. 그들은 모터를 이용하여 지하수를 뽑아올려 사용하기에 집안에 복잡한 물 정화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가 잔듸에 물주는 모습을 보면......눈총을 받는것 보다는 같이 더불어 살고 있다는 이웃으로서의 냄새를 더 주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Lunar의 손길을 받고 있는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그리고 딸기 덩쿨들은 운이 좋은 자들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웃들도 사용 못하는 수돗물을 아침저녁으로 먹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으니 말이다. 암튼 수돗물값 이상으로 싱싱한 결실을 맺어라. 그래서 가을에 몇포기 안되는 김장 김치를 담글때 사용될수 있도록, 늙은 호박을 갈라서 그속의 씨를 꺼내 내년에 또 재배 할수 있도록, 풍성한 식탁을 만드는데 일조를 담당하는 너희들을 우리 부부는 기대하면서, 이아침에도 강렬한 햇볕을 받아 이마에 땀을 맺으면서도 너희들을 보살피고 있단다.

Saturday, July 09, 2011

TKPC대원들, Presqui'le Park Trail Walk,sharing fun and hearts





















시골Cottage에서 출발하기전 일행은 윗분에게 둥그럽게 둘러모여서 신고식을 드린후 공원 정문을 통과하여 계속 전진 했다. 햇볕은 아직 오전인데도 여름철의 한때를 과시라도 하듯, 따가울 정도로 내려 쬐였지만, 가끔씩은 산들바람이 지나치면서 청량제 역활을 해 주어서 걷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정문을 지나 반듯하게 뻗어 있는 도로의 Shoulder를 따라 Beach 1 의 표시판을 지나고 다시 Beach 2를 지나면서 이곳으로 가면 온타리오 호수로 가는데....모래사장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계속 전진 하였다. 길가 양쪽으로는 잡목과 잡풀들이 어우러져 키가작은 숲을 이루고 있어, 마치 태고적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것 처럼 어우러져 있는 meadow 모습이다. Beach 3를 지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보니 문이 아직 닫혀 있었다. Peak season이 아니라서 앞의 Beach 1과 2만 우선 개방한것으로 짐작이 갔다.

마침내 오늘걷는 코스의 최종 목적지인 Marsh Board Walk의 표시판이 우리를 반기고 있는것 같이 보이는 그길을 따라 계속 전진 했다. 보통 속도로 걸었기에 대원들 모두가 큰 낙오 없이 일사 불란하게 걷는다. 일부 대원들은 전에 한번 이곳에 와서 걸어본 경험이 있었으나, 많은 대원들이 처음 걷는 Marsh Board를 걷는 기분이 남다른가 보다.

온타리오 호수 뒷면에 빽빽히 들어선 갈대숲을 뚫고 만들어진 Board Walk은 새로 건설된지가 꼭 1년된다. 호수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숲 가운데로 놓여진 Board Walk은 약 1.5키로쯤 된다. 약 3년전까지 있던 Board Walk은 낡아서 다 뜯어 내고 지난해에 Volunteer들에 의해 완전히 새로 건설된 것이다. 전구간에서 2개의 2층으로 된 전망대가 있고, 맨안쪽 깊숙한 곳에는 쉬어가는 의자와 넓은 공간이 마련되여 있어 걷는 사람들의 편의를 챙겨 주고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서 보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갈대밭의 파란 모양이 어릴적 시골에서 보았던 들판의 파란 벼줄기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곤 한다. 갑자기 멀리서 하늘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의 소리같은 음이 들려 그쪽 하늘을 무의식중에 쳐다 보았다. 비행기는 아니고 커다란 백조 한마리가 반대편 호수로 높이 떠서 날아가는 소리가 그렇게 들린 것이다. 커다란 날개를 휘저어 날아가는 순간의 공기 저항이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로 들리는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의 아름다움에 대원들의 탄성이 연발한다. 그들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그러한 환희에 찬 탄성이 나올법도 하다. 나는 그렇게 감흥은 없다. 내집 드나들듯 했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Board Walk을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인다. 아마도 방학을 맞이 하여 부모들과 아이들이 어우러져 나들이 나온것으로 보였다. Board Walk을 걷는것은 마치 물위를 걸어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갈대숲이 적고 대신에 물이 많이 고여 있는 곳을 지날때는 무리를 지어서 춤을 추고 있는 물방개때들, 그밑으로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작은 송사리같은 물고기들이, 또 개구리들도 한몫끼고, 하얗게 꽃을 피운 White water lilies들로 Walker들의 시선을 끈다. 모두가 웃으면서 지나칠때 인사를 주고 받는 넉넉함이 마음에 든다.

전망대에 다다르기전에 있는 또다른 넓은 공간의 쉼터에서는 이곳 서양어린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그들의 부모들과 같이 이곳에 와서 곤충잡는 조그만 net을 사용하여 얕은 호수속에서 물고기와 다른 생명체를 채집하여 물담아 놓은 병에 넣고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모습도 귀여워 보였다. 엄마되시분들이 열심히 그병속의 물고기와 다른 생명체를 보면서 설명해 주는, 현지 실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실습은 여름방학동안에 이곳에서는 밤에도 실시되여 참석한 꼬마들은 이마에 Flash light를 매달고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열심히 물속에서 물고기와 다른 생명체들을 채집하고 있던 모습을 작년에 본적이 있다. 밤에는 light bug(반딧불) 들도 많이 날아다녀 어렸을적의 반딧불과 얽혔던 기억들을 되살려 주기도 했었고.

원래는 Caledonia북쪽의 Bruce Trail을 걸을 계획이었었으나, 우리 부부가 시골에 있어, 참석을 할수가 없었기에 수고하고 계시는 대원 N에게 사정을 얘기 했더니, 그렇타면 아예 우리 시골집의 공원에서 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에 오늘 산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미 광고가 나갔기에 N 대원이 일일히 전화를 이용하여 오실 대원들에게 알려주는 수고를 많이 하신것 같았다. Lunar는 계절병이기도한 심한 알러지 때문에 참석못하고 나만 대원들과 합류하여 공원안의 Marsh Board Walk까지 걸었던 것이다.

Marsh Board Walk까지 걷고 되돌아 올때는 Beach 2로 방향을 바꾸어 호숫가 백사장을 걸었다. 백사장이라고는 하지만 관리를 제대로 못해 Muddy한 평평한 평지같은 곳으로, 물놀이 보다는 구기종목을 즐기기에는 안성마춤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사장으로 통하는 오솔길 옆의 잔듸에서 커다란 거북이를 보았다. 대원들이 먼저 앞서 가고 나는 맨뒤에서 그들을 뒤따라 가고 있었는데 길가 풀속에서 뭐가 꿈틀거리는 물체가 보여 자세히 가까이서 보았더니 등껍질에 이끼가 잔뜩낀 큰 거북이 였다. 알낳기 위해 모래사장을 찾아가는 것일까? 궁금함을 안은채 다시 발길을 옮겼다. 아직은 물놀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고 있었다. 방학을 맞이 하여 이곳에 부모들과 같이온 아이들은 호수속으로 뛰어 들어가 물놀이 하면서 추억을 만들고 있는 광경이, 나의 어렸을적 그시절과 Overlap 된다. 우리 대원들이라고 왜 물놀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는가. 목적이 Trail Walk이었기에 그러한 준비를 한다는것은 상상도 못했었기에 수영복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 여자들의 곡선을 눈요기 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Trail Walk도 하고 호숫가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고, 비키니의 아름다운 여인들도 덤으로 눈요기하고,Swamp속에 건설된 Board Walk을 걷는다는것은 답답한 도심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속으로 들어와 복잡한 머리속을 Refresh하는 의미에서 오늘의 Trail Walk은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 보고 싶다.

다시 도심생활속으로 되돌아 가는 대원들의 차량들을 환송하고 나니, 갑자기 고도의 섬속에 우리 둘만 남겨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며칠후면 다시 만나게 될 대원들이지만, 어쨋던 만났다가 헤여지는것은 우리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그렇게 공허하게 만드는가 보다. 오늘 Trail Walk에 참석했던 14명의 대원들이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를 마음속으로 부터 빌면서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