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15, 2015

Day 34, Japan, 친구부부들과 류쿠왕조 탐방, Okinawa여행 ( 12월 1일,2014)

아침 새벽에 집앞의 파킹장과 도로변에 떨어져 흩날리고 있는 낙엽을 나와 숙자 둘이서 Sweeping을 한참 했다. 서울 도심지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잎들이 떨어지면서 바람에 날려 길(Road)로 떨어져 보기 흉하기도 하지만,  청소하여, 며칠동안 집을 떠나있는 사이,옆의 주민들에게 낙엽으로 인한 불편함을 줄이기위한 것이다.

 3일전만 해도 폭염에 헉헉거리면서 tour를 하면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씻어 내기에 바빳었는데, 지금은 기온이 뚝 떨어지고, 또 눈까지 내려 몸을 움추리게 하는 서울의 날씨에 적응하는데 약간의 감기기운까지 곁들이는 혼돈까지 있었다.
 오늘은 서울에 거주하는 친지부부 4쌍과 함께 Okinawa, Japan으로 2박3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에, 멀리 홍천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Mr. S 부부가 8시30분 경에, 우리 부부가 묵고 있는 Mr. K집에 도착했다. 막 낙엽을 다 치우고 난 후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부터 S의  너스레에 배꼽을 잡고 웃을수 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재주꾼이기도 하다.

3 Couples가 한차에 동승하여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오랫만의 여행, 그것도 일본의 "오키나와"에서 자못 기대가 컸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벌써 다른 2 친구부부는 도착해서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아시아 4개국 여행을 시작하기전, 미리 일본 여행을 할수 있는지의 여부를 Lunar가 오늘 같이 여행 떠나는 친구들과 협의를 해서, 마련된 뜻깊은 행사라고 할수 있는 Tour다.

어렸을적부터 만나 Fellowship을 나누어온 친구들이라 스스럼이 없어 나는 항상 상봉할때마다 Lunar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워한다.  모르고 지내던 남편들, 즉 남자들도 오래 사귀어온 친구처럼 격의없이 우정을 나누고, 살아온 삶의 얘기들을 나누고...... 어쨋던, Senior들이 부릴수 있는 옹고집은 다 뒷전에 두고, 안팎으로 의기투합이 잘돼 살맛이 나는 시간들을 공유함이 좋다.


Check-in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동이 있어, 시간이 소요돼는 Happening이 발생했다.   여권에 Lunar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분이 우리보다 먼저 Check-in을 했는데, Air ticket 발권이 Lunar것으로 된것이다.  그분은 국적이 한국이고, Lunar는 Canada라서 수정이 꼭필요했기 때문에 그분을 다시 찾아 재발급하는 혼동이 있었던 것이다.  원인을 찾아 보았는데, 이번 여행을 주관한 '참좋은 여행사'의 무성의로 일어난 Mistake 였음을 알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꿈많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다 날아가 버리고 할머니들이 된 모습에서 풀잎위에 맺힌 아침이슬과 같다는, 우리 인생살이가 순간임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오후 2:30분경에 Okinawa 섬의 Naha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Custom clearance를 통과하는데 또 말썽이 일어나 우리 일행 모두는 골탕을 먹었다.  여행사가 입국수속 서류를 작성해 주고, Guide의 설명에 따라, 그말을 믿고 세관통관을 하는데, 서류미비로 전부 퇴자를 맞은 것이다.
여행사는 입국 서류의 앞면만 Fill-it-up하고 뒷면은 공백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Lunar는 금새 재작성하여 입국수속을 마쳤는데, 다른 친구들이 불편을 많이 겪고, 오랜시간을 허비해야만 했었다.
친구들 모두가 입국수속에서 부터 기분이 좀 엉키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 만 했다.  황당한 상황인데도 Guide는 코백이도 보이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려 이런 황당한 Guide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  완전히 허허 벌판에 알몸으로 버려진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오키나와'라는 말의 뜻은 수십개의 섬이 일렬로 반듯하게 연결돼여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체 16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60개의 섬에만 주민들이 거주하고 나머지 100여개는 무인도 라고 한다.  또한 오키나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연합군의 군사 기지이기도 해서,  비행장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것으로 이해됐다.  훈련중인 전투기의 이착륙이 자주 목격돼기도 했다.
곧바로 '에이사' 전통 Dance공연장으로 우리 일행을 포함한 43명의 Tourists들은 한뻐스에 타고 이동했다.  Guide의 설명에 의하면, Dance의 주제는 "자손들 잘돌보고, 구경잘하고 가십시요"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3개의 섬은 '남산', '중산' 그리고 '부산'이다. 그중 '중산'은 1609년부터 '류쿠왕국'이 당시 중국의 승인을 얻어 탄생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때는 이곳에서 90일간 미국과의 싸움에서 주민 12만명이 죽고, 왕조는 멸망했다고 한다.  이번에 치러진 오키나와 시장(Mayor)선거에서는 현 Abe수상의 정치적 반대파의 인사가 당선되여 앞으로 어떻게 마찰을 피해갈지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됐다고 한다.

Performer들은 그들 고유의 전통 Custume을 입고 춤을 추었고,  한국의 고전 Dance와 비교해 보았을때 매우 단순할 뿐이었다.  뒤이어 4명의 Drummer들이 열심으로 북을 두둘겨 대면서 춤을 추었으나, Exciting한 Feeling은 주지 못하고, 밋밋할 뿐이어서 약간 실망이 갔었다.  공연내내 이곳을 지나는 하수구에서 내뿜는 고약한 냄새(Stinks)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볼때, 정유재란이 발발 했을때, 일본 침략군들은 조선반도에서 "이삼평"이라는 분을 이곳으로 끌고 와서 살게 함으로써 첫번째 조선인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시조가 된 셈인데, 이를두고 일본인들은 그분을 '정중히 모셔 왔다'라고 하고, 조선인들은 '납치해 갔다' 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옥천'Cave 탐방을 했다. 수백만년전부터 형성된 지하동굴의 종류석은 장관이다.  손재주가 많은 일본인들 답게 동굴안을 구경하는데 불편함을 최소화 하는라, Path위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아주 귀중한 종류석들을 잘라내여 흉칙하게 만들어놓은점이 옥에 티로 보였다.








이곳이 Path를 만들기위해 종류석을 절단해 흉칙하게 된 몰골이다.

수백만년을 지나면서 흘러내린 석회석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종류석은 신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중의 제일인것 같다.  미국 와싱턴 근교에 있는 Luray Cavern, Cuba의 Varadero인근에 있는 Cave, 중국 내륙지방 여행시 본, 크기가 어마어마한 Cave, 이곳에서는 이동하는데 Boat를 타고 움직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지하 동굴에 하천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옥천동굴역시 전체적으로 종류석의 형성된 구조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길 없었다.  Mr. S가 4분의 Queens을 거느리고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게 웃고 있다.

Guide의 무성의한 태도와 안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관광기분은 아주 엉망이다.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는점은, 같이간 친지분들은 나와 Lunar가 느끼는 그런 감정은 아닌것 같은 점이다.  이런점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본인들 생각에 달렸겠지만, 나는 정당한 여행경비를 지불하고, 엉터리 관광 안내를 받는게 너무나 기분 엉망이다.  그래도 대놓고 Guide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주문을, 동행한 친지들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하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에, 아시아 4개국을 여행하던때와 비교가 되여, 더 속상한 것이다.


원주민들의 전통가옥중의 하나이다.  윗층에 있는 거실에 오를기위해 통나무로 된 Ladder가 우리가 보통 사용하던 사다리와는 판이하게 다른게 특색이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인식되여 음식 또한 좋을것으로 상상을 많이 했었는데, 저녁에 Steak식사를 했는데, 고기가 너무나 질겨 맛을 잃게 했다.
식사를 하는동안 불편이 참 많았다.  식당 Staff들과 전연 대화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만을 못한다 해도 세계 공통어이다 시피하는 영어소통은 됐어야 했는데,  음식먹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Tour Guide는 우리일행을 식당에 안내해 놓고는 사라져 버려 더 난처했었다.

우리 일행이 식사한 곳에서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 Geisha옷을 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과 함께 한컷했다.  순순히 응해 주어 그녀가 고마웠다.

첫날 이곳에서 느낀 감정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한국인들인것 같았다.  곳곳에 한글로 안내문이 적혀 있는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러나 그것 뿐이고, 이들은 한국말 구사를 전연 할줄도 모르고, 영어 또한 먹통이어서,  이곳이 과연 국제적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여 있는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여행객들이 거의 한국인들이라서 였을까?  암튼 이들의 자세가 영 맘에 안들고,  또한 Guide의 여행객에 대한 태도가, 도와주는 자세가 아닌, 이들과 합세하여, 자기 주머니에 돈만 챙기는 스크루치와 똑 같다는 생각이 었고,  이를 여행사 사장이 알고나 있는지?  만약에 알면서도 방치하거나 동조하고 있다면, 이른 분명의 의기투합한 사기행각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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