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y 01, 2013

그녀와 만나 같이 살아온 40주년의 의미(4월 28일)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자주 인용된다.  그말이 20대 청년때는 무척이나 긴 세월같이 느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할때는 직장을 갖고 있다는것만으로도 출세(?)했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내가 태어난 조국은 가난하고 또 가난 했었다.

이곳 캐나다에서 정신적으로 황량한 이민자의 생활을 시작한지도 정확히 38년이 됐다.
지금 같은 생활조건이었었다면, 감히 이민보따리를 싸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다,태평양을 가로건너, 물설고 낯설고, 혀꼬부라지는 소리만이 귓전을 때리는 이곳 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민자 신분을 갖고 첫발을 내디딘 이후로 강산이 거의 4번 변한 긴세월이 지났다.
고려말 충신 길재의 시한수가 머리에 떠오른다.  부질없이..... 왜 이시간에.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당시의 수명은 지금보다는 훨씬 짧았을 것이다.  그분은 잘은 몰라도 한평생을 같이한 반려자와 40년을 같이 지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 했을 것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수십년씩 연장되여 옛날 그시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골프도 하고, 비행기 타고 세상여행도 하면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세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이웃집 마실가는것 보다 더 가깝게 쉽게 그리고 편리한 삶을 공유하지만, 공허한 마음은 가슴을 뻥 뚫어 놓고도 남을 정도로 커져 있다는것을 통감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그중에 한사람임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40대후반과 50대 초반때에는, 괜히 마음이 공허하여 인생을 헛살아온것같은,  그리고 이런식으로 살아온 인생의 끝장을 맞이 하는게 아닐까?라는 초조함이 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남의 인생은 다 화려하고 잘살아온것 처럼 보였고, 나자신만이 선택을 잘못하여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채 사라져 버리는것은 아닐까? 하고싶은것 마음데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끝나는것은 아닐까?라는 핑계와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일어날때마다 살아온세월에 후회만 더 두꺼워지고, 나를 둘러싼 주위 여건에 그이유를 연결시키곤 했었는데 그 타킷의 중심에는 같이 살아온 반려자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정신적 공허함과 허탈감속에서 방황을 할때, 이를 이해하고 견제해 주는이가 없이 내마음데로 헛된 이상을 찾아 헤메였었다면....... 라고 상상을 해 보는것 자체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도록 그결과가 머리속에 그려진다.  아무래도 모든면에서 남자인 나자신보다는 제약이 더 많았던 그녀의 생각이라고 해서 살아온 세월에 대한 공허함이 나와 다를께 있었겠는가?  겉으로 표현만 안했을 뿐인것을 지금은 잘 알고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지만, 그것 자체도 직접 대놓고 표현은 해본일 없고, 그져 마음속에서만이다.

지난 40년 동안, 그날을 기념하기위해, 기억을 만들기위해 흔히들 쉽게 들먹이는 여행이라던가, Eating out한다던가, Surprise event를 만들었다든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것으로 회한만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이번 40주년을 맞이 하면서도 며칠전부터 구상을 해 보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당일에는 행동으로 옮기는데 뭔가 쑥스럽게 간지러운것 같은 느낌이 나를 꽉 붙들어 메는, 다른 표현으로 말한다면 해본 경험이 없기에 당일날 저녁에 겨우 그녀에게 한다는 소리가   "여보 우리 오늘 저녁에 Eating-out 하자" 대답은 엉뚱했다 "아이들 두놈다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다음에 합시다. 난 괜찮아" 였다.  난 괜찮아 하는 그말의 뜻을 음미해 보았다.  말은 안했지만, 가슴속에 이날을 깊이 새기고 살아왔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그마음에 뒷통수가 뜨거워옴을 전율했다.   다른 부부들은 잘 한다고 들었고, 또 보았었는데.....

우리는 하루 세끼를 챙긴다.  특별한 날이나 명절날에는 세끼 먹는 밥상차리는것 외에 또다른 별미를 준비한다.  다 그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같이 살을 맞대고 살아온 40년을 맞이하는 그날에도 세끼는 어김없이 소화했다.  다른때는 여행도 다녀보고.....  그러나 짧지않은 세월을 같이 살아오면서 그날에 의미를 두고 이벤트를 했어야 했지만,  그런데 자연스럽지 못하게 살아온 지난 삶들이었기에...... 점수를 딸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평상시의 그 습관데로 보내고 말았다.

주위에서 상당수의 친지들이나, 인생후배들은, 은퇴후 우리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을 자기네들 은퇴후의 삶의 Role Model 표본으로 생각하고 희망하면서 우리부부를 눈여겨 보고 있다는 부러움과 존경의 표시로 인사받기를 쑥스러울 정도로 상당히 받았었고, 그런 얘기는 지금도 가끔씩 듣고 있다.  그분들의 눈에는 우리 부부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또 계절에 따라 정기적으로 여행 다니고, 여름이면 시골 Cottage에서 골핑하면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는 그모습이 좋게 보였던 것 같다.   정말로 그분들에게 보여진것 처럼 삶의 Model로서의 내면도 알찬 삶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며칠전 마친 Ethiopia 여행하는것도, 이번처럼 40주년을 기념 하기위해서 특별히 계획을 짜서 그시간데에 맞추어 했었다면...... 그런 생각도 해 보지만, 만약에 그랬었다면, 아마 실행에 옮기지못했을지도 모른다.  인위적인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기회가 되면 잡는것, 그자체가 우리 부부에게는 더 어울린다는것을 어렴푸시 느껴본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부부의 삶에 큰 변화는 없을것이다라는 확신(?)이 더 굳어진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Lunar 도 형식에 얽매이는, 보이기위한 삶 자체를 무척이나 싫어하는면에서 우리부부는 참으로 서로의 뜻이잘 맞는다.  이런 삶의 자세도 바꾸고싶은 생각은 전연없다.

40주년 맞이하는 그날에는 저녁밥상이 더 단조로웠을 뿐이다.  두아이들도 자기네 삶 살기에 바쁘게 보냈을 것이다.   이다음 며칠후에 기회가 되면, 그날이 엄마 아빠 40년 전에 결혼하여 가정이라는 울타리속에서 같이 살면서 선물로 두아이를 얻게 됐고,  또한 너희들이 있었기에 때로는 이민자로서 어려운 시간을 보낼때도 견디어 낼수 있었다 라고 설명해줄 생각이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부부둘이서 기념사진 한장 찍어서 보관해 놓은게 없다.
Senior의 삶을 살기에 하루 앞을 자신있게 내다 보는것 조차 확실하지않은 그런 시기라는것을 새삼 절감한다.  40주년 핑계대고 Costco 에 가서 둘만의 사진한장을 마련해두어, 앞날을 준비하는 것으로 40주년기념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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