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2, 2021

‘디지털 고려장’으로 떠밀려 가는 노인들… “우리는 개가 아니다”아우성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컴퓨터 할까?

 한국에서는 흔히들 얘기 하기를 "김대중 대통령이 IT, 인터넷을 전국민에 보급한 공로자"라고 칭송한다.  나는 그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인터넷 보급은 그분의 공로다. 너무도 자비심이 많아, 당시 컴퓨터의 불모지였던 이북의 김정일 공산집단에 까지 수백대의 컴퓨터와 Computer Engineer을 파견하여 교육시킨 선구자(?)였었다.  북괴로 부터 받은 그대가는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상대로 해킹을 해서 돈과 정보를 빼가는 악질적인 집단들중의 선두를 지키고 있는 골치아픈 암덩어리가된지 오래다. 

그분이 대통령하면서, 기술혁신을 주창했지만, 정작 본인은 컴퓨터와 Cell Phone 사용을  자유자재 혼자의 힘으로 할수 있었을까?  전화에 전화번호 입력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멜 주고받고, 문서작성정도는 할수 있었을수 있었겠지만, 그외 고도의 기술,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일상생활의 한부분이겠지만,  예를 들면 사진첨부같은, Video에 Audio 즉 음악을 삽입할수 있었을까? 

미국의 현대통령, Joe Biden이 보좌관의 보살핌없이 자유자재로 컴퓨터, 전화기를 이용하여 업무를 볼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보좌관이나 비서를 둘수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의 경우는 예외로 칠수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그럴 능력이 없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내가 겪은 아주 간단한 경험담을 얘기해볼려고 한다.

며칠전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아파트를 렌트 할려고 했고, 운좋게 Tenant를 찾아, 렌트 합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에이전트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데로, 에이전트가 작성한 서류를 들고 나를 찾아오면 사인을 할려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전자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하는지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아주 간단하다고 설명하는데...

"화면에 뜬 서류의 오른쪽 맨상단에 있는, 둥그럽게 아이콘표시되여있는 이멜주소를 클릭하시고 ....부터 시작하여 다듣고보니, 나의 머리가 복잡해 졌다.  운좋게 더듬더듬 전화를 통해서 알려준데로 했는데, 이번에는 공동 Owner로 되있는 아내도 서명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똑같은 절차로 하면 된다고 하는데.... 서류에는 아무리 찾아도 아내의 이멜이 있다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에이전트가 서류들고 찾아와서 해결했었다.  에이전트가 나와 아내앞에서 가르쳐 주었을때는 어렵지 않았는데....

이얼마나 황당한가 말이다.  내자신을 내가 바라봐도 너무도 한심하다는 자괴감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생각에 기분이 무척 무거웠었다. 아내는 나보다 더 어려워 하는 처지다.  큰 이변이 없는한 최소한 10년 또는 15년정도는 더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개가 아니면서 개취급 당하기는 원지 않는데... 삶의의미는? 

아이에게 도움을 청할려고 해도 문제에 부딪치기 전에는 Questions를 머리속에서 끌어내지도 못하는 판인데...어쩌다 물어볼 생각이 떠올라 아이에게 물어 봤을때,  아이는 내 Laptop을 사용하여 몇번 키보드를 두드려놓고는 "아빠 다됐어요" 다시 나에게 돌려주고는 설명해줄 생각도 안한다.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우선 언어에서 전문용어를 나는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직접했다는것이다.

오늘 뉴스를 보면서, 이렇게 소외된 계층으로 분류되여, 세상을 살아갈 바에야, 요즘 흔히들 쉽게 얘기하는 "100세시대의 삶"이 과연 가치가 있는것일까?라는 의문을 자주 하게된다.

시대가 변하면 따라서 변화해야 하지만.... 머리의 회전과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른데, 피사체를 봤을때 그에 대한 Concept이 다른데, 쉽게 적응이 될수는 없다. 아니 안된다.

중학교다닐때 겪었던 생각이 Overlap된다.   시골의 여름철은 동네 모정(어른들, 아이들 모두 모여서 끼리끼리 모여 시간 보내는곳)에 모여 친구들과 놀고 있을때, 당시의 어른신들은, 꼬마들이 듣기에는 시금털털한 꼰대들이 느려터진 창(노래)을 한다라고 킥킥대면서 "저걸 노래라고 하시나?"등등의 우리끼리의 야유를 퍼부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꼬마인 우리들은 한창 유행하던, 지금의 트롯노래들이 신식노래라고 자랑했었는데...

지금 시대에서는 내가 꼰대 소리를 들으면서, 어렸을적 경험했던 때를 덧없이 기억에 떠올려본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지금의 나처럼 황혼인생을 살아갈때는 어떤타입의 꼰대소리를 들을까? 

일러스트=유현호
일러스트=유현호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디지털 격차가 낳은 소외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일궈왔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주로 밤에 일해오던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를 겪고 추락사할 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려 한다.

문제가 생겼다. 영국의 행정 편의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그를 골탕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서 의사 권고에 따라 일을 그만두었는데 걸어다닐 수 있고 모자를 제 손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더 나쁜 건 그 모든 절차를 인터넷을 통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노인에게 냉랭하고 고압적이다. “디지털 시대잖아요. 인터넷에 나와요. 예약 없이 오셨으면 이만 가 주세요.”

그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친절한 사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게 신청 사이트예요. 더블클릭하세요.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한 다음 내용을 입력하세요.” 다니엘은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자신의 손에 쥐여진 낯선 플라스틱 도구를 말 그대로 ‘들어 올려’ 컴퓨터 화면에 가져다 대려 한다. 사서는 웃음을 터뜨린 후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노인의 수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세상.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서류 접수를 직접 도와주던 일자리플러스센터 직원은 ‘잘못된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흔히 ‘정보 격차’로 번역된다. 모든 것이 전자화되는 사회 속에서 세대⋅계층⋅문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정보 및 기술 활용 능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를 일컫는 용어로 소개돼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 그 모든 것을 통칭하는 용어가 바로 디지털 디바이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에 설치했던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무슨 디지털 디바이드냐 하겠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나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한국의 1984만 가구 중 1980만 가구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97.1%가 인터넷 메신저를, 92.7%가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카톡으로 연락하고 유튜브를 본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디바이드는 이 땅에 존재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위치에 있었던 은행이 지점을 폐쇄하자 그곳을 방문하던 노인 50여 명이 항의의 뜻으로 집회를 열었다. 은행 측은 해당 지점을 키오스크를 활용한 화상 상담을 제공하는 디지털 라운지로 바꾸는 것이지 완전한 폐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프라인에서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므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매장 아르바이트 직원을 전자식 단말기인 키오스크로 대체해왔다. 터치스크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키가 작은 어린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등은 음식을 주문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 격차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누군가는 저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반면, 아르바이트로 고용될 수 있었던 청년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또한 일종의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줄 아는 사람,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얻었다. 반면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있는 단순 접객업 외의 기술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돌아와보자. 다니엘의 이웃집에는 중국 공장의 직원과 짜고 운동화를 밀수해 판매하는, ‘차이나’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청년이 산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팔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은 차이나가 손에 쥔 몇 안 되는 기회다. 하지만 바로 그 기회의 창을 다니엘은 넘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진다. 영화 속에서는 다니엘과 친해진 차이나가 다니엘의 서류를 대신 제출해주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고, 관료제와 디지털 디바이드에 갇힌 다니엘의 고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부수적 현상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피해와 간극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6년 25.9%였지만 2020년 현재 40.3%까지 높아졌다.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60%의 노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방역패스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코로나를 만나 ‘디지털 고려장’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다니엘이 남긴 마지막 편지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12/11/A3TWL4YN2BCSTDHFPX2ANKY6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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