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1, 2019

문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것은 차라리 김정은이를 칭송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도 기사회견을 뒤늦게 인터넷 통해서 보면서, 지난 2년 동안에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뿌리채 흔들어 놓고, 젊은이들의 실업자 천국을 만들어 놓고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마치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는 그의  국민무시하는듯한 발언은  청와대식구들과 여의도 촛불당 의원들을 제외한 5천만 국민들의 분노만을 샀을 뿐인 회견이었는데, 차라리 북괴 김정은이를 칭송해주고 싶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었다. 왜냐면, 김돼지는 처음부터 철권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면서 국민들을 꼼짝도 못하게 하고, 자기주장을 그대로 발표하지만, 문대통령은, 겉으로는 국민을 하늘처럼 받드는것처럼 하면서, 내막적으로 김돼지보다 더 강압적으로 언론이나 국민들을 Tremple 하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에서 주야로 열심히 뛰고있는 국민들의 애환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이에대한 정책반영은 완전 묵살된 기자회견이었다. 택시운전사의 분신 자살은 왜 발생했었나? 생각한번이라도 해 보았는지? 탁상공론 만으로 세운 정책, 즉 "카카오 카풀"을 시행하는 졸속행정에 대한 문대통령의 생각은 뭘까? 분신자살한 운전사의 깊은 뜻을, 이번에는 직접 현장을 찾아 어려움을 듣고, 택시업자나 승객들 모두가 Win Win하는 정책이 정말로 어떤것인가를 경청했으면 한다.


적국수장의 신년사 생중계,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영방송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Nod가 없었다면 가능했겠는가? 천지개벽같은 KBS의 생방송의 부당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은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생방송은 전임정부에서는 생각도 할수없는 황당한, 문재인 정부의 좌경화 정책을 그대로 들어낸, 국가 안보면에서 아주 불길하고 불안한 편파 방송이었었는데, 수십명 모인, 날고 깉다는 기자들중에서, 속으로는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후한이 두려워 아무도 꺼내지 않고 슬쩍  넘어간, 기자들의 책임의식 회피의 절정이었었다.

적국의 동향을 살피는, 예를 들면, 남침 징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주민들의 삶내용 등등, 같이 고통을 나누는 내용이었다면 몰라도, 미북정상회담과, 3번씩이나 했던 남북정상회담시 북한비핵화 약속이, 북한의  미온적인 비핵화 실천의지로 아무진전이 없는데도 이를 설명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확실치도 않은 김정은의 한국방문을 고대하는 소리만 했었다.

우리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점을 대통령은 인식했어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직 8년동안에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사회의 양극화는 그정점을 찍어, 중산층이 거의 사라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정책적으로 평준화를 유도한다해도 각개인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를 실질적으로 평준화 하겠다는 것인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한마디도 없었다. 지구상에서 최고악질적인 독재정책을 펴고 있는 김정은 Regime 하의 이북에서 조차 Black Market을 통해서 있는자와 없는자의 Gap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게 지구촌의 현실인것을....

 
"문 대통령은 이에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기자회견문 (발표)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그에 대해서 필요한 보완들은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정책기조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다"고 했다.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2년이라는 긴시간이 흘렀으면, 지금쯤은 그결과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시점이다.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경제침체로, 젊은이들 실업자천국, 공무원증원, 등등의 부작용만 늘어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밀어부치겠다는 그심보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꼭 지켜볼것이다.

 

거론하고 싶지도 않은 새빨간 거짖말에 남한과 맹방인 미국에 대한 공갈 협박이 가득한 내용이었다. 이제는 문통을 지지하는 촛불세력들 마져도 등을 돌리는 이반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청와대 특별 감찰반원들의 보고서를  통해서 인지 했을법도 한데....

신년 기자회견은 정말로 꼴볼견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마치 용상에 앉아 신하들에게 하명하는식의 태도를 보면서,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른가?라는 생각으로 꽉찼었는데, 의자에 앉아서 기자회견하는 세계정상들을 본일이 없다. 몸이 불편해서였다면 사전에 양해를 구했던가? 했어야 했다.

기자회견 내내,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들이  고대하고 바라던, 속이  확뚤리는 송곳같은  질문은 없었고, 단 한명, 지방방송의 여기자분이 그나마 대통령의 옹고집불통의 경제정책 고집에,  한마디 질문을 했는데, 본질을 벗어나, 여기자가 자기 소속을 밝히지 않았다고 다른 동료기자가 그녀를 힐난하는 작태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내막적으로 완전히 자갈이 물려있다는 증거로 보였었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비난 한마디 없었다. 송평인의 칼럼을 아래에 옮겨놓았다.

 

[송평인 칼럼]터가 길하고 불길한 게 아니다


길함과 불길함 가르는 건 사람 처신, 옳다고 여겨도 지나치면 불길해져
집권 2년도 안돼 터져 나오는 반발… 어리석은 보복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지나침 다스릴 줄 알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청와대는 풍수지리상 불길해 언젠가는 옮겨야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대통령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이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필요하다면서 한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 정부 위원회(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책임진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지 의아했다. 풍수지리를 유기체적 자연관의 입장에서 재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터를 놓고 길하니 불길하니 하는 것은 버려야 할 미신적 요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터가 길하고 불길한 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길함과 불길함을 만든다.

한 전직 장군이 자살했다.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을 쿠데타 모의로 몰고 가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검찰이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는 게 없자 세월호 사찰을 물고 늘어져 적폐로 몰아가지 않았다면 그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셰익스피어 연극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 같은 측근이 문재인 대통령의 귀에 대고 의심을 불어넣었는지, 아니 문 대통령이 혼밥을 먹다가 섬광 같은 의심을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체계적으로 편향된 의심이 결국 불길한 일을 초래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촉발된 청와대의 사찰과 외압 의혹도 현 집권세력이 전 집권세력을 단죄하면서 사찰이나 외압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해 놓은 데 기인한 면이 없지 않다. 언론에 나온 동향이나 자기 조직 내에서 다 아는 정보를 모아놓은 것조차 사찰로 매도하고 대통령의 정책을 부처에 관철하는 과정까지 형식적 절차를 문제 삼아 직권남용으로 몰았다. 단지 매도하고 억지를 부렸으면 정치는 본래 그러려니 하겠지만 집권하자마자 검찰을 동원해 단죄했다. 두 실무자의 폭로는 증자(曾子)의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처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가는’ 불길한 예고편이다.

청와대를 옮기고 싶을 정도의 불길함은 궁극적으로 자살 수감 등으로 이어진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사를 가리킨다. 정권이 전직 대통령들을 수사할 때는 모두 이유가 없지 않았다. 재치 있는 미국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맞다. 온갖 것에 다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들끼리 치고받는 거야 높은 데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서로에 대한 피해에 책임이 없지 않은 그들의 싸움이라고 하자. 이번 정권에서는 적장을 치면 부하들은 대부분 놔둔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적폐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전 정권에 속한 고위급 중 한 사람도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어떤 구실로라도 단죄하려 했고 눈에 띄지도 않은 중간 간부의 진급과 포상까지도 일일이 간섭했다. 아예 싹을 말리려는 시도다. 이러니 야당은 권력을 되찾으면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여당으로서는 20년 집권을 도모하지 않는 한 보복을 피할 방법이 없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의 피 터지는 싸움이 예상된다.

조선시대 기축옥사(己丑獄事)는 가장 잔혹했던 사화(士禍)다. 당시 서인(西人) 정철에 의해 희생된 동인(東人) 이발의 후손들은 지금도 제사 준비를 할 때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기면서 ‘이놈의 정철, 이놈의 정철’이라며 울분을 토한다고 한다. 쌍방에 무자비한 피해를 입힌 사화의 역사를 읽으며 조상들은 왜 저런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우리가 그런 어리석음의 회로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꼴이다.  

길함과 불길함의 세계는 옳고 그름의 세계와는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아무리 옳아도 지나치면 반발을 부르고 글러도 지나치지만 않으면 참고 넘어가는 게 세상사다.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다퉈 봐야 평행선을 달릴 뿐이더라. 그러나 한 가지는 동의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나침은 불길함을 부른다. 옳다고 여기는 것도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휴브리스(hubris·오만)에 대한 경고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불길한 징조가 아니다. 청와대 뒤로 가파르게 솟은 북악산이 불길한 형상이 아니다. 진짜 불길한 징조는 34세의 변호사 1년 차인 청와대 행정관이 57세의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는 저 위력, 아니 57세의 육군참모총장이 34세의 변호사 1년 차인 청와대 행정관이 부른다고 카페로 나가는 저 굴신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9/2019010902657.html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9011001501 

lifemeansgo.blogspot.com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21/3/70040100000121/20190109/93610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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