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05, 2013

Ethiopia,Africa,제2의 예루살렘, 수도 AddisAbaba 여행기

이여행기를 다 볼려면,  아래의 여행날자를 기억하고,  화면 오른쪽에 있는 Archive를 찾아 그날자와 년도 해당곳을 클릭하면 차례대로 다 볼수 있음을 참고로 하면 된다.

제2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Ethiopia,Africa 탐방기


Feb.27,2013(수요일) 아디스 아바바에서 박물관, Merketo, Entoto탐방.

애티오피아 공항에서 입국비자를 받기위해 긴 대열에 끼어서 차례가 되여 미화 $20달러 지불하고, 공항을 빠져 나왔을때는 정확히 Addis Ababa시간으로 아침 10정각이었다.  정시에 도착했으면 오전 8시경에 도착했어야 했다. 토론토공항에서 부터 약 40분 늦게 Take off하고, 비자 받느라 시간 지체하고…..
여행이라는것 자체가 기다리고 고생하는것이려니 생각하고 있기에 큰 괴로움은 느끼지 않았었다.

생전 처음 상면하는 이번 여행의 Tour Guide, Allebel과 운전수 Alex가 피켓을 들고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못알아 보니 내가 그들에게 접근할수밖에….. 그렇게 해서 애티오피아 여행은 시작이다.

미니 버스에는 달랑 우리 부부와 그들 두명, 합해서 모두 4명이다.

국립박물관에서 눈길을 끈것은 애티오피아의 왕정제도를 몰락시키고, 공산독재국가를 세웠던, Mangustu Hailmarima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정권을 잡고, 하일레 셀라시해 황제를 Topple 시키고 권좌에 올라, 공산주의로 국민을 지배하면서 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살육했다고 한다. 결국 그도 그죄를 받아 1967년도에 집권하여 1983년에는 권좌에서 쫒겨나, 옆나라인 "짐바브웨"로 가서 현재 그곳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집권하기전에는 애티오피아의 화페는 애티오피아 Dollar였었는데, 그가 화페개혁을 해서 Birr로 바꾸어, 현재 통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하일레 셀라시애 황제는 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직 사회생활을 하기전,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애티오피아의 황제로서, 국민들의 사랑을 지금도 받고 있었고, 그의 부인 Zewudtu의 사진도 나란히 박물관벽에 걸려 있다.  박물관의 규모는 조그만 했고, 진열상태역시 굉장히 열악해 보였고, 엉성해 보였다.

셀라시애 황제가 사용했던 궁전은 지금은 Addis Ababa 대학으로 용도변경하여, 유명한 대학중의 하나가 됐고, 궁전자체는 지금은 그의 유품들을 진열한 박물관으로 꾸며 관람시키고있었다. 진열된 대부분의 벽화는 Axum지역에 있던 벽화들을 옮겨와 진열 시킨것인데,  대부분이 기독교신앙에 관계가 깊은 내용들로, Orthodox교회가 17세기경에 무척 번성했었던것으로 여겨진다.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모습. 전쟁을 하는 모습 등등….

Merketo(Market) 유명하다고 해서 점심후 다시 차를 몰았다.  Guide가 당부를 한다.  차안에서만 지나가면서 구경하자라고.  소매치기, 가방 날치기 등등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북적 거리기 때문에 십중팔구는 희생양이 될 공산이 커서, 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옛날 고국의 시골 시장이 5일만에 섯던 기억을 상상하면서 시장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끝도 안보이게 남녀 노소 할것없이 사람들이 뒤엉켜 정말로 북새통이다.  먼지는 뿌연히 일어나고, 차에서는 굴뚝처럼 연기를 뿜어대고…. 오랫만에 이런 공기를 마시니 나도 모르게 재채기가 나온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고급생활을 해왔었다고… 우리 일행이 타고가는 미니밴 뒤의 범퍼를 한 young 사내 아이가 발로 짚고 올라 타고 아무렇치도 않게 차안을 응시하면서 유유자적이다. 길 양쪽의 시장 바닥에는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물건들이 널려 있고, 없는것이 없을 정도일것 같다.






































정돈된 사회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깨끗하지 못한 이런 풍경을 보니 골치가 어지럽다.

고국의 삼성전화기는 세계 어디를 가나 그인기가 대단한것을 또 보았다.  장터의 가게에서 유일하게 삼성 스마트폰만이 간판 올리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애티오피아에는 한국과의 항공기 왕래가 없음을 알았다. 고국의 물건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것으로 이해가 됐다.

Addis Ababa시내 어디를 가나 Traffic signal lights를 본일이 없다.  차들은 Bumper to bumper로 꼬리를 물면서 바짝 붙어 달리는데….복잡한 네거리를 건널때는 나도 모르게 오른발이 Brake Pedal을 밟으려고 움직여지는것을 여러번 경험했다.  그래도 충돌사고없이 잘들 달린다.
지난번 2011년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달릴때도 도로와 주변이 너무나 더러워서, 이곳을 보고 이와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는 인도밤문하는것을 포기 했었다.  아디스아바바는 그보다 더 엉망이고 도시재정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 얼키고 설킨,계획된 도시가 아니고, 무질서의 도시 그대로다. 주택가, 상가, 관공서가 있는 도로변이나 똑 같이 머리가 복잡하게 무질서 하다.  거기다 당나귀까지 한몫끼어서 등에 물건을 지고 유유히 차량들속을 헤매면서 주인을 거들고(?)있는 모습에서, 5/16혁명전의 조국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렇게 무질서하게 헤매지는 않았던것 같다.

Entoto산 정상에는 Minilik ll세가 건축 했다는 궁전이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봤을때는 마치 시골 부잦집의 헛간 같은 모양이다. 궁전안은 여러개의 방으로 나뉘어서, 회의실등 여러개의 방이 있었다. 특히 고기를 저장하는 오늘날의 냉장고같은 방에는 고기를 걸어 두었던 벽에는 지금도 소의 뿔처럼 나란히 걸려있는데, 그곳에 고기를 포함한 음식재료들을 걸어 보관 했었다. 애티오피아의 달력으로는 1875년,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안 달력으로는 1883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Addis Ababa시내는 스모그로 도시의 형상이 뚜렷히 보이지 않았었다. 정상에 궁을 건설한 이유는 적의 침입을 한눈에 감시 할수 있었고 국민들 통솔이 용이했기 때문이란다.  지붕의 석가래를 올리고 이를 흐트러지지 않게 묶는데 쓰인 로프는 암소의 가죽이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 당시 5339마리의 소를 도축했다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 오면서 많은 여인들이 자기키의 두배쯤 되는 나뭇가지들을 가지런히 묵어서 등에 지고 시내로 내려오는 모습이 행렬을 이었다.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활에 보탬을 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남자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었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4달러정도 수입이 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그들을 보면서 이해할수 있었다.

한가지 특히한 것은, 그렇게 부딪히고 엉켜서 굴러가는데도, 어느 곳에서도 큰소리 나는것을 못본것 같다.  시장 바닥이면 왁짜지껄 해야 했었는데…. 조용하기만 하다.  그점은 본받아야 될것중의 하나로 생각해 보았다.  이번 여행 내내 어디를 가든, 운전수와 가이드가 연결되여 있어 그점은 우리 부부를 무척 편하게 할것 같다.  오늘 당장에 그런 혜택을 많이 보았다.

저녁 식사는 고급식당에서 했다. Bismark Steak, 스파게티 스테이크, vegetable soup, chicken soup 그리고 Salad 이렇게 주문했다. 운전수는 아예 차에 있고, 가이드가 안내해준 것이다. 그는 먹을 엄두를 안낸다. 우리식비는 이미 여행경비에 포함되여 있기에 부담이 없었지만, 그는 자기는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다고 했지만, 비싸기에 사양하는것 같았다. dish하나에 평균 100 Birr이상이다. 경찰관의 한달 월급이 약 2000에서 3000 Birr이라고 하니 짐작이 간다. 식당은 거의 자리가 꽉 찬것 같다. 써비스도 아주친절했고… 가난한 사회속에서도  잘사는 사람들은 별도로 있는 모양이다.  아까 시장에서 보았던 그런 군상의 사람들이 아니고 다름 모습들이다.  가이드와 운전수가 마음에 걸려, 또 주문한 음식이 양이 많기도 해서 Takeout을 부탁해서, 헤여질때 그들에게 주었더니, 그렇게 고마워 한다.  그들 말로는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European style이라고 한다. 토속 음식은 뭔가 서툴러서 안전을 택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오늘의 아디스아바바를 구경하기위해, 어제 새벽 즉 2월 26일 부터 짐을 꾸려, 새벽 8시에 토론토 공항에 아이가 Ride를 해 주었었다.  11시 정각에 출발해야 하는 비행기에 탑승은 모두 마쳤는데 웬일인지 출발을 안했었다.  약 20분이 지난후에  Captain의 안내방송을 듣고 알았다.  Transit하는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만 참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Air Canada같았으면 그냥 시간되면 출발 했을 텐데….. 기특하기도 하고 지루한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랬었다.

비행거리는 정확히 11512 Km라고 항로표시에 나와 있었다.  비행 시간은 12시간 30분쯤 될것이라고 한다. 머리가 핑도는 기분이다.  nos stop으로 달린다기에 선택했었는데, 그점은 잘한것 같았다.  Ethiopia 항공은 일주일에 두번 운항한다고 우연히 기내에서 알게된 스튜어디스 아줌마가 말해줘서 알았다.  Cabin Crew여자들은 모두가 현지인으로 상냥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점이 그녀와 얘기를 하게된 계기가 된것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기전에 그녀들과 다시 만나서 같이 사진도 촬영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서로 소식 전하자고 연락처를 주고 받았었다.

토론토와는 8시간의 시간차가 있어, 이곳이 먼저 앞서 가고 있다. 날자로만 계산한다면, 하루전에 새벽부터 나와서 다시 새벽녘이 지나서 내렸으니 하루를 공중에서 떠 있었던 셈이다. 의자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스트래칭도 하고….. 어차피 여행은 시작하는 그순간부터 고생인데, 그런생각으로, 호텔 도착하여 바로 또 시내 관공을 시작하니…. 눈이 나도 모르게 감기기도 했었다.
가이드가 설명해주는것 기억한것은 됐지만, 놓친것은 그냥 흘러 갈것이다.

박물관에서 본 3.5백만년전의 유인원은 설명을 들으면서 그런가 보다 라고 하면서도, 100% 수긍은 할수가 없다. 어느 말잘하는 고고학자가 그럴듯하게 설명을 부치고 듣는사람들로 부터 공감대를 얻으면 그것이 정설로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1년전의 것도 잘 모르는게 허다한데…

Addis Ababa가 애티오피아의 수도로 지정된것은 Melinik2세때 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Axum이 초대 수도였었고, 그다음이 Lalibella, 세번째가 Gondar 그리고 4번째가 Addis Ababa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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