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02, 2012

Who's the real owner on 센카쿠 또는 위오다이오




요즘 세간의 뉴스의 중심에는, 일본어로 '센카쿠', 중국어로는 '위오다이오'로 불리는 남지나해쪽의 조그만 바위섬8개가 우뚝 서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밖이었던 이섬이 갑자기 뜨거운 감자가 된것은, 하나도 신기해 하거나 또영토로서의 이용가치가 높아서도 아니다.

인구는 늘어나고, 자원은 고갈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욕구는 커지고 하는등의 요구를 정부가 찾다보니 이제는 버려진 바위섬까지 눈독을 들이고, 혹시라도 그주위의 바다에 부존자원이 있지 않을까하는 바램에서 한발 앞서 자기네 영토라고 선언을 하는 그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이, 이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이유로 무력충돌의 일보직전까지 와 있는 상태다.

이섬의 역사를 보면 13세기경에는 중국이 이섬의 주인이었음을 확실하게하는 기록이, 그것도 일본인 탐구학자의 연구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후 청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의 국운이 쇠태해 지면서, 이섬에 대한 영유권 선포를 할 여유가 없는틈을 타서, 19세기 말경에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일본의 한기업가에게 이섬의 사용권을 허용하기에 까지 이른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미국이 중심이 된 연합군에 항복하여, 일본본토및 부속도서들을 접수 하고 관리 하다가,  민주주의 국가로 새 출발한 일본정부에 전권을 인계하고 점령지에서 철수한다.  이때 센카쿠 열도를 일본에 넘겨준다.   이때만 해도 동서 냉전시대라서, 중국본토를 점령하고 공산정권을 세운 모택동의 중국과는 아직 대화도 열리지 않은 때였기에, 다른 Choice 가 없이 이섬들을 일본에 귀속되는것이 당연시 되는것에 다른 이의가 있을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세계의 정치적 지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뀌어 어제의 적이  아군이 되고, 어제의 왕조가 공화국이 되고.....경제적 성장도 눈부시여, 모든 나라들이 이제는 제목소리를 국제무대에서 외쳐대고 있다.   '위오다이오'섬이 중국과 일본의 영토주장의 한가운데 우뚝 서있어,   이를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는 미국의 입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진다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아시아의 큰 두나라가 무력충돌이라도 하게 된다면, 주위의 작은 나라들에게 절대로 득이 올리는 없을 것이다.  고국 대한민국은 무역을 해서 먹고사는 나라여서, 눈치 보느라 혹시라도 눈알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게된다.
절대로 그런일은 없어야 겠지만,  오늘 뉴스에도 중국의 감시선들이 인근 해역에 접근 했었다고 한다.  일본의 수상은 강한 톤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국민들에게 알리고....
미국은 겉으로는 조용하기만 하다.   서뿔리 Refree역활을 하기에는 얽히고 설킨게 너무나 깊은 관계가 두나라와 연결되여 있기 때문이다.

LA times의 기사를 여기에 옮겨 싣는다.


일본과 중국이 "조그만 섬"소유권 다툼으로 무력충돌직전.

일본말로는 Senkaku, 중국말로는 Diaoy로 불려지는 이 조그만 섬들은 겨우 야생염소 생존할수 있는 곳으로 한일본인 기업가가1800년대말에 이곳에 크게 투자할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되지는 않았었다.

섬들중웨서 가장큰 이섬이 한창 활기를 띌때는, 어부들 또는 유럽에서 여성용 장식구로 인기있는 '알바트로스'새들의 깃털을 수집하여 생활하는 수백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생활 터전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1978년에 이척박한 섬에 생명체가 살아있는곳으로 만들어, 일본영토임을 확실히 하기위해 번식력이 강한 야생염소가 겨우 서식하고 있는 섬이다.  지형적으로도 세상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들이지 못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치전문가들은 이섬이 중국과 일본간의 외교분쟁과 무력충돌 가능성을, 1982년에 있었던 영국과 아르젠티나간의 영토분쟁과 비교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양상으로 갈 조짐은 없는것 같다.

센카쿠(일본명), 또는 다이오이유(중국명)로 불리는 이섬은 전부 8개의 섬으로 형성되여 있고, 가장 큰 섬은 길이가 약 2마일정도이고, 작은섬은 중국본토와 가까운 중국해에 위취한 바위덩위로 형성된 섬들로 섬전체의 면적을 합쳐도 3평방 마일이 채 안된다.

2차대전이후 미국은 이섬들을 일본에 반환해 준 죄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소용돌이 속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9세기까지 중국은 이섬의 영유권을 행사해 왔으며, 중국명"다이아오유"섬은 13세기경에 중국의 문학에도 인용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명나라때는 당시 Ryukyu왕조에 속했던 섬으로 중국과 오키나와를 잇는 뱃길의 등대 역활을 했었다고 한다.  중국어선들은 이섬에 들러 물과 땜감들의 보급품을 배에 싣곤 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기록에 보면 16세기경부터 이섬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일본해적들은 중국쪽 해안을 습격하기위해 이섬을 전진기지로 삼았었다고 한다.

일본의 학자 Unryu Suganuma씨가 2000년도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의하면 중국명 '다이오유'섬은  중국의  영토였었다는데 뚜렷한 증거가 있어, 8개의 섬은 중세기때 중국왕조에 속해 있었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19세기경부터  이주장은 바뀌게 된다.  급속히 현대화되기 시작한 일본은 청나라가 붕괴되면서 영유권을 주장한다.

1880년대에 후쿠오카 출신의 한기업가, Koga씨가 일본정부에 섬전체를 사용할수 있는 허가권을 신청했고, 처음에는 이섬의 주인은 중국이기 때문에 정부가 반대했으나 Sugamura씨의 연구논문에 의하면, 1895년에 일본이 Sino-일본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같은해 대만을 일본의 영토로 편입하면서 일본정부는 이정책을 변경하여 일본령으로 선포한 것이다.

센카구의 뜻은 '섬중에서 최고'라고 한다.   영국해양선원들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섬들의 아름다움때문에 이별명을 부치게 된것이다라는 내력이 있다.

30년간의 사용허가를 받은 Koga집안은 많은 투자를 한다.  가장큰 섬에 그들은 집을 짖고,대피소, 수출을 위한 알바트로스새의 털가공공장을 설치하고, 생선 소스를 만드는 공장도 건설했다.  한때는 248명의 공장인부들이 거주 했었지만,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하는데, 성인들은 이곳에 이주해 살기를 꺼렷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섬에서 살기란 무척어려웠고, 선박들도 이섬에 들리는것을 꺼려 음식등 보급품들은 전량 수입에 의존 했었다고 한다.  Koga씨 가족은 7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끌어 들이고, 교육시설에도 투자 했었다고 한다" 라고 Koga가문의 기록을 연구한 Shaw Sugamura씨는 밝히고 있다.  Koga씨의 아들 Jenj씨는 리스가 끝난 1932년에, 4개의 섬을 일본정부로 부터 사들였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 연료비 상승과  경제봉쇄등의 조치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결국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미군이 점령하여 관할하다가 1972년에 오키나와섬을 일본에 반환 하면서 이섬들도 일본에 귀속된다.  "미국은 이섬의 점유권 분쟁에 끼어 들기를 원치 않고 있다.  동서냉전시대에 미국은 이섬을 비밀에 싸여 있던 공산국가인 중국에 넘겨주고싶은 생각이 없었다"라고 Sugamura씨는 설명한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china-japan-islands-20120925,0,216163.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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