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6, 2010

지중해 동쪽 끝자락의 Samandag 흑색해변과 'Besikli Cave' 탐방,터키

















































March 21st.2010. Clear,Afternoon.

'Otel(Hotel)Counter에 들려 'Samandag'에 대한 뻐스와 역사적 자료에 대해 문의했다. 아침나절에 베드로 성당갈때 이용했던 뻐스정류장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정류장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다시 지도를 펴보이면서 Samandag을 보여주었더니 뻐스차장에게 물어 보더니, 그뻐스를 타라고 한다. 뻐스는 시내를 관통하여 달린다. 이름도 모르는 시내 삼거리에서 뻐스가 우리를 내려 놓으면서 'Samandag'표시를 한 뻐스가 오면 타란다. 그리고는 1TL을 운임으로 받아간다. 나는 이뻐스가 그대로 그끝까지 달려 가는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더크고 고급스런 뻐스가 다가왔다 'Samandag'이 보여 무조건 올라탔다. 2.50TL을 이번에는 미리바쳤다. 약 30분 이상을 달려 'Samandag'시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Samandag beach'로가는 뻐스를 찾아서 타고 또 가라는 표시를 하고 떠난다. 시키는데로 다시 표시가된 뻐스를 탔다. 또 약 20분을 털털거리면서 돌무쉬는 달렸다. 이번에는 1.25TL요금을 냈다. 3번을 바꾸어 타고 드디어 해변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확트인 지중해 동쪽끝자락의 모래사장은 'Black Sand'로 덮혀 있다. 겨울날씨에서 움추리고 있던 많은 Local사람들이 오후의 맑고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 해변으로 산책을 나온것이라고 한다. 여름성수기에는 바캉스족으로 해변은 붐빈다고 한다. 해변가 뒷쪽의 산등성이에 있다고 하는 '지하동굴묘'로 발길을 옮겼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수 있을정도로 입구를 가르키는 안내판은 빈약하게 보였다. 화살표를 따라 계곡속으로 걷고 또 걷고.... 좁은 계곡을 다 통과하고 넓게 보이는 입구에 입장료를 수금하는 Kiosk이 앞을 가로 막는다. 3TL씩 세금(?)을 지불하고, 아무런 안내자료도 없이, 그냥 길을 따라 계속 올라 가라는 손짖을 하는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것 같다. 가끔씩 내려오는 사람들과 조우할때 '얼마쯤 더...'물으면 게속 가야 한다고 손가락으로 산꼭대기쪽을 가르켰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Irrigation이 보인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까지 수로를 만들어 이용했었구나라고 감탄을 하지않을수 없었다.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이라도 그속에 담그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한다. 아주 조그마한 노점상을 벌이고 앉아 있는 초로의 부부가 보인다. 그들을 보면서 동굴에 다 왔다는감을 느낄수 있었다.
미소를 나누면서 그들을 지나쳐 왼쪽으로 꺽어 가니 동굴입구가 보인다. 입구에는 4개의 큰 column이 버티고 서있다. 동굴바닥과 벽에는 조각된 흔적들이 보이고, 여러개의 분리된 방들이 있고, 돌관(Stone coffin)으로 보이는 페허가 그대로 바닥에 있다. 고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주후 1-5세기경에 이곳 지하동굴이 건설됐다고 한다. 동굴안의 묘지에 있던 Monuments는 오래전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헤쳐져 그자취를 찾아 볼수가 없다고 입구의 설명서에 나타나 있어, 안타까웠다. 이곳의 지방사람들은 이동굴의 묘지를 "Besikli Cave'라고 부르고,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The Tombs of the Kings'로 부른다고 한다.

지하묘지는 산속바위를 깍아 만든 두개의 Sarcophagus가 윗층, 아랫층에 있는 구조였다. 여기서도 옛왕조들의 사후보장(?)을 이런식으로 확인했었다는 증거를 보면서....힘없이 끌려 다녔어야 할 서민들의 삶을 미루어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다.....인간사회에서만 존재(?)할것으로 믿어지는 고차원의 '약육강식' Formula를 본다. 이곳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탁트인 해변가의 절경도 일품으로 느껴진다. 옛왕족들이 이곳에 터를 잡을때, 어찌 수려한 주위 경관들을 생각지 않았겠는가? 그영혼들이 우리 부부를 포함한 관람객들의 주위를 돌면서 뭐라고 메세지를 전해줄까? 이곳도 유적지보호시설과 관리인은 전연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많은 훼손이 계속될까?. 내려오는길은 아까와는 다르게 좀 쉽다. 오를때는 미쳐 보지 못했던 큰 협곡이 숲속길 오른쪽으로 그위용을 나타낸다. 협곡속에서는 젊은이들이 계곡을 따라 경관을 즐기면서 웃음이 흘러 나올때 메아리가 요란하게 퍼진다. 공기의 공명현상일까?

지중해 동쪽 끝쪽의 Samandag의 Beach에는 젊은이들이 물속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는 장면, 양손에 신발을 들고 모래사장을 걷는 모습, Angling을 하는 꾼들, 각양각색이다. 해변가는 지저분하게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다. 성경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첫번째 전도여행을 떠났던 곳이기도 한데, 당시에는 이지역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언어로 Selucia라 불렸었는데, 이슬람 국가로 바뀌면서 Samandog으로 개명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Selucia지명을 물으면 아무도 아는 현지인들이 없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리더들, 특히 한국계 교회 리더들이, 바울의 첫번째 전도여행 출발지인, Selucia가, 이슬람국인 터키어로 바뀌어 통치되고 있다는 아픈  역사를 뼈속깊이 느끼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입술 써비스만 남발 되는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Black sand로 형성된 이곳 해변의 길이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길다고 한다. 멀리 바다가운데는 유람선으로 보이는 큰 배 한척이, 외롭게(?)정박해 있다. 주위의 유락시설은 얼른 보기에 잘 되여 있는것 같지는 않다. 지중해 바다에서 해수욕은 못해도 발이라도 바다물속에 담그어서 그흔적을 남겨보자는 생각으로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면서 모래사장을 걸어 봤다. 기분이달라진다. 아직 새파랗게 젊었을 신혼때, Lunar와 함께 고국의 남단섬'홍도'를 여행했던 기억이 떠 오른다. 그곳은 모래가 아닌, Pebble Beach였었다. 추억은 아름답다. 지금은 은퇴한 초로의 모습으로 이곳까지 와서 발을 담그고, 모래위에 발자국을 만들고 있다. '인생은 유랑하는 존재'라고 누가 얘기했던가. 모래뒤에 새긴 발자국이 오래오래 남겨져 있어, 우리 부부가 왔다 갔다는 흔적을 우리부부의 후손들이 볼수 있었으면.... 하는 철부지 생각을 초점없이 해본다. 다시 3번의 뻐스를 바꾸어 타고 길을 재촉했다.

달리는 뻐스차창으로 특히한 광경이 보여 디카의 셧터를 눌렀으나, 쉽지 않아 놓치고 겨우 한컷을 담았는데, 다름이 아닌 질흙(Terracotta)항아리들을 만들어 길가에 진열시켜놓은 광경이었다. 색갈도 갈색보다는 옅은 Greenish인것 같았고....여러곳에서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 진열하는것으로 보아 판매하는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내용을 자세히 알수가 없었다. 물론 대화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서글퍼 하면서 말이다. Antioch에서 나그네 신세의 여행자인 우리부부는 하루의 일정소화에 피곤한 몸을, 침대에 던지면서 3월21일,2010년의 한획을 긋는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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