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5, 2010

아쉬운 작별과,베드로가 설교했었던 Antioch의 St.Pierre 교회탐방 그리고 결혼축제 등등....


March 21st.2010. Sunday,Clear. Morning Tour.



피로 했었나 보다. 눈을떴을때는 밖이 훤한 6:30분경이었다. 거실에는 이집의 귀여운 딸 Cilam(Chilam)만이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부부를 위해 Cai(Chai)Tea를 끓이고 있었다. 엄마도, Mehmet도 보이지 않는다. 

Mehmet은 어제 얘기한데로 아침 일찍 직장으로 떠난것을 알수 있는데, 엄마가 안보이는것은 이해가 안되였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아침 8시 뻐스로 HaTay로 떠난다는것은, 어제저녁에 Mehmet이 얘기해줬기에,식구모두가 다 알고 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Back Pack을 정리하고....

Cilam이 Tea를 준비해서 Tea Table에 놓는다. 이제 곧 헤여질 시간이 되는데, 귀여운 Cilam에게 줄 선물이 없어 미안하고 안타깝다. 비상시에 사용할려고 간직하고 다녔던 예쁜 검정색 볼펜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주면서 공부잘하고 예쁘게 잘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을 했다. 그뜻을 그녀가 알리가 없다. 그래도 벽에 대고 혼자 얘기하는식으로 말이다. 내마음을 전하는 것이니까. 부엌쪽 리빙룸에는 어제밤에 사용했던 큰 Tray가 있는게 눈에 띈다. 아침에 마시는 Tea맛은 그향이 더 감미롭다. Cilam이 미소를 짖는다. Lunar와 둘이서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큰 벽이 있어, 둘이서 서로 여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미소와 눈빛의 교감뿐인것을 본다. 엄마가 가쁜숨을 쉬면서 현관문을 열고, 한손에 플라스틱쇼핑백을 들고 들어 온다. 미소를 짖는다. 부엌으로 향하더니 금새 빵을 담은 접시를 들고, 준비해둔 Tray의 커버를 젖히고 아침을 하자고 한다.  빵은 따끈하다. 그것도 그들이 상용하는 얇은것이 아니고 서구사람들이 먹는 두툼한빵, 아마도 우리를 위해, 이빵을 구하기위해 새벽같이 빵집에 가서 새로 구운것을 사온것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그내용을 알아 차릴수 있었던 것이다. 고맙기 그지없다. 낯설은 하룻밤 객일 뿐인데....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그들나름데로 정성을 쏟아 붓는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Lunar가 그녀가 입을려고 BackPack에 준비하고 다녔던 T-Shirt를 꺼내 엄마에게 주면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그녀도 우리가 느낀것 처럼,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것 같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한단면을 서로가 체험하는 순간이다. 주시는것도, 거두어 가시는것도, 지나고 보면, 절대자되시는분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것을, 이순간에도 깊이 느낀다.
8시 뻐스를 타기위해 마을 어귀의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Cilam은 나하고, 엄마는 Lunar와 같이 걷는다. 이제 헤여지면 평생동안 다시 본다는 보장이 없는, 단지 하룻밤 마음의 정을 나눈 사이일 뿐인데, 그들의 삶이 내눈에는 팍팍해 보였고, 깨끗해 보였고, 선해 보였고..... 그들 눈에는 우리부부가 어떻게 보여졌을까? 뻐스가 멀리서 다가 오고 있다. 헤여 지는게 마치 절친하게 지내는 식구들과 멀리 길을 떠나기위해 작별하는 순간처럼 마음에 큰 공허가 생긴다. Lunar는 엄마에게, 나는 딸 Cilam에게 우리가 간직하고 다니던 비상금중에서,하룻밤 호텔비용 이상의 금액을 슬며시 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게라도 정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그리고는 뻐스가 오기에 그쪽으로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떼는데, 엄마가 Lunar를 꼭 껴안고 놓아 주지를 못한다.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해 보이고, Lunar또한 같은 mood임이 보인다. 딸 Cilam도 엄마곁에서 고개를 엄마품에 파묻고 흐느끼는것 같다. 이분들의 앞으로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굳건해 지기를 바랠뿐, 아무것도 내가 해줄것이 없는 마음이 무겁기도 한다. 감사. 또 감사. 뻐스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녀는 그자리에 서서 시야에서 안보일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순간은 이제 역사속으로 깊이깊이 묻혀가고 있다. 뻐스는 우리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안되는 뻐스안의 손님들도 아무말이 없이 눈빛만, 낯선 나그네인 우리둘에게 쏠려 있는것 같다. 아마도 생김새가 다른 우리가 헤여지는 광경을 목격했기에 더한것 같다. 뻐스는 계속 달려 어느새 산계곡사이의 길을 달린다. 양옆에 산이 있는 계곡사이의 길옆에는 주둔해 있는 군부대가 보인다. 위병소도 있고, 병사들의 복장은 녹색과 검정색의 Camouflage된 유니폼이다. 약 45년전에 전방부대에서 했던 병영생활을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며칠전 Group Tour시 Mustafa가 터키군의 얘기를 해준 기억이 난다. 터키에는 약 6십만 대군이 있고, 터키의 모든 성인 남자는 군복무의 의무가 있다고 했다. 복무기간은 18개월이었었는데, 지난해 부터 15개월로 단축운영되고 있다고 했었다. 군대생활의 기술을 터득하기위해 상당기간 훈련을 해야하고, 또 기술병과는 더 긴시간의 훈련을 해야 하는데....15개월은 너무나 짧은게 아닌가?를 혼자 생각을 군부대를 지날때 했었다.


















































Antioch(HaTay)의 Otogar에 내리니 허허 벌판같다. 도시외곽인것으로 추측된다. 옆의 행인들에게 몇마디 대화를 시도했으나, 이곳은 더 먹통이다. 답답했다. 시내뻐스라도 이용해보고 싶은데... 방향감각이 없다. 신약성경 'Act' 11장 25-26절에 의하면, 이곳 Antioch에서 제자들이 최초로 '크리스천'이란 칭호를 받았다고 하는 내용이 상기된다. 당시의 그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사용된 언어는 터키어? 아니면 히브리어? 아니면 아랍어?.....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오늘에도 이렇게 의사전달이 어려운데.....
그래도 마음은 조급하지 않았다. 경험이 있기에 말이다. 늦게 찾으면 그만큼 늦어질 뿐이기에. 발길 닿는데로 우선 정거장을 빠져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꼬마들이 보이기에 'Otel'싸인을 보여주었다. 깔깔대고 웃더니 자기네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는것 같다. 호텔은 보이지않는다. 

마침 Police Cruiser가 지나기에 세웠다. 그들또한 대화가 불통이었다. 뭔가 그래도 해결점이 보일것으로 기대하면서....손짖으로 오른쪽길을 가르키고는 떠난다. 꼬마들은 그들대로 갈길을 가고...마침 또 다른 경찰차가 지나가기에 붙잡았다. 그들또한 대화가 안됐다. 두명중 한명이 바삐 Cell Phone으로 어디엔가 통화를 하더니 나보고 받아 보란다. 영어가 통하는 다른 경찰인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것을 얘기했더니, 다시 동료경찰에게 바꾸란다. 우리부부를 아예 차에 태우더니 달리기 시작한다.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길가에 있는 호텔앞에 차를 세우고, 안에 들어가 살펴보라는 뜻의 손짖을 한다. Reception Desk에서 확인후, 다시 밖에 나와 OK싸인을 했더니, 좋아하면서 차를 몰고 시야에서 멀어진다. 고마웠다.

"Orontes Hotel". 재빨리 짐을 풀고나와, 지도에서 본 '베드로 교회'를 가는 제일 쉬운방법을 호텔 카운터에서 물었다. 'St Pierre Church?'라고 반문한다. 이곳 Local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기에 그렇게 물었는데, 내귀에는 좀 다르게 들려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그렇다는 시늉을 했었다. 바꾸어 얘기하면 프랑스어를 전연 모르는 나의 무식함때문인것을 나중에야 알았었다. 시내버쓰를 타고 약 10분쯤 가면 된다고 하면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뻐스가 있다고 한다. 요금은 1 TL. 아까 Otogar에서는 택시가 60 TL을 요구하는 흥정을 하면서 동태를 살폈기에 시내 외곽에 있는것으로 생각했었는데....의외였다. 뻐스에 오를때 아예 지도를 운전수에게 보여 주었다. 약 10분쯤후에 차가 서더니 내리라고 하면서, 멀리 오른쪽 산을 향해 가르킨다. 머리속에서 그렸던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지만... 내렸다.

멀리 뒤에는 산이 보이고, 그앞에는 물이 말라버린 개울이 있다. 산중턱에 구경꾼들로 보이는 모습이 보여, 개울을 건너 그쪽으로 발길을 옯긴다. 숨이 조금은 가빠진다. 셧터를 계속 눌러 대면서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입구에 도달했다. 어디에서든 입장료라는 세금은 바쳐야 했다.  산속에 굴을 파서 예배를 보았던 일종의 피난 교회로 보였다. 안에는 30-40명 정도가 Worshiping할수 있는 규모였다. 앞쪽에는 Altar가 있고, 그뒤의 윗쪽에는 Jesus의 조각된 초상이 걸려있고...바닥은 평평하지못했다. 사도 베드로가 선교지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들려 한번 설교 했다는 설명이다. 교통이 없다시피한 그시절에 Roman Empire의 종교압박을 피해, 목숨걸고 선교여행을 한 믿음의 선배들의 심적 정신적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려고 Meditation을 해본다.

교회입구쪽은 후세 사람들이, 비교적 보기좋게 벽을 쌓아 건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밖에서 얼른보면 별처럼 보이는 형상도 해 놓았고....뜻하지 않게 관람중 한국계 젊은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이곳 Antioch(Ha Tay)시와 좀더 좋은 관광 도시를 만들기 위한 Project 계약을 맺어 일하고 있는데, 현지 답사차 나왔다고 자신을 설명했는데, 여러나라에서 참여한 젊은이들로 Team이 구성되여 있다고 했다. 그녀 옆에 건장한 젊은 흑인사내가 있어 얘기를 시작했는데, 그도 같이 일하는 동료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LA에서 구경왔다가 우연히 join하게 됐다고 했다. 역시 젊은이들은 생각이 넓고, 다르다는것을 실감했다. 그녀는 며칠 안됐는데도, 김치가 먹고싶은 생각밖에 다른것은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고 푸념이었다. 잘 마치기를 바래고 헤여졌다.

이곳 Antioch은 터키의 동쪽끝과 지중해 동쪽끝자락에 위치해 있기에 발길이 쉽게 닿는곳이 아님을 안다. Apostle(Disciple) Peter는 당시에 어떤 내용의 Sermon을 해줬을까? 당시에 목숨이 달려 있는 위험속에서 설교를 들었던 교우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흔히 요즘 상당수의 목회자분들이 외치는 '예수 잘믿으면 물질의 축복을 엄청나게 받게 될것이다'라고 했을까? 아니면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이다음 영화로운 삶이 보장된 Eternal life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고 외쳤을까? 나는 후자쪽이었을것이라고 믿어졌다. 아니면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더 절실한 얘기를 해줬을까? 그절실함이란?... 나의 신앙의 자세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마음가짐을 꼭 잊지 말라는 설교였을까? St.Peter's Church는 현존하는 Christian 교회중 가장 오래된 교회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고 하며,교회의 주소는 Antakya-Rehanli Road에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Rome,Jerusalem과 더불이 이곳 '베드로'교회가 성지(Sacred Churches)로 알려져 있다. 1963년도에 당시의 교황은 이곳을 '성지순례'지역으로 지정했었다고 하며, 지구상에서는 첫번째 Cathedral Church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에도 매년 6월29일에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신도들과 목회자들이 특별예배를 이곳 St.Peter(Grotto of St.Pierre)Church에서 진행 한다고 한다.

성경신약 '사도행전' 11장 19-30에 나오는 이곳 Antioch(Ha Tay)는 초기교회의 명성외에도 Catholic Church, Greek Orthodox Church 그리고 Muslim 본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Mosaic Museum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양의 Ancient Masaic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Antioch시내경관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교회옆 뒷쪽으로 산책로가 위로 쭉 뻗쳐 있기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때의 젊은이들이 우리앞서 산위로 오르고 있었다. 바위를 뚫은 조그만 굴(Cave)이 보인다.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 이곳을 통하여 물줄기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더전진하니 동네꼬마들이 비탈진 산허리에서 양떼를 먹이고 있었다. 유적관리의 허점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미쳐 당국의 손이 못미쳐서일까? 바로 밑에는 성역으로 모두가 섬기는 교회이고, 조금윗쪽산수풀속에서는 양떼들이 딩굴면서 풀을 뜯고... 교회에서 하산하는길에 동네어귀에서 공동으로 빵을 굽은 여인들을 만났다. 그들 전통의 '라마존'빵을 굽고 있었다. Lunar가 접근하면서 인사를 한다. 금방 구워낸 빵으로 만든 '라마존' 하나 건네주고, 그뒤에서 '셧터'를 누르고 있던 나에게도 하나 건네준다. 언어는 안통해도, 마음은 통하나 보다. 고마웠다. 공동으로 한곳에서 음식만드는 화덕을 여러번 터키여행에서 보아 왔는데, 오늘은 On time에 그광경을 직접 본 것이다. Oven안의 뜨거운 벽에 반죽한 빵을 떨어지지 않게 부쳐서 구워내는 기술(?)이 나의 눈에는 신통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뻐스정류장까지 내려오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이렇게 해서 점심을 떼운것이다. 호텔에 도착하기에는 아직도 두블록이 남았는데, 갑자기 북소리와 톤이 높은 나팔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골목을 완전히 점령한채 한떼의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면서 나팔불고, 북(Drum)을 치고.... 축제판이다. 우리를 보더니 모두가 손짖을 하면서 함께 하자고 야단들이다. 이럴때 춤을 잘 하면 좋을텐데... 그래도 용기를 내여 그들속에 뛰어들어 빙글빙글 돌면서 그들이 하는데로 따라 했다. 어쨋든 신난다. Lunar도 합세 했다. 이런 예상치 않은 경우를 만나 또 다른 세계를 볼수 있다는 맛에 힘들기도 하지만 Back Packer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왜 이런 Feast가 길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전연 알수가 없는점이 몹시도 아쉬웠다.

다시 호텔로 발길을 옮기는데, 음식점 Show window로 Cook이 재빠르게 얇은 빵을 이용하여 Doner를 만드는게 신기해서 들여다 보고 있는데, 안에서 젊은 Waiter가 우리를 보고 안으로 들어 오라고 손짖을 한다.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그가 영어를 하면서 반가워한다. 자기 이름은 Ali이며 여름철 관광성수기에는 우리가 이미 지나온 도시 Antalya에서 영어권에서온 관광객들을 Guide하고, 비수기인 겨울철(지금) 이곳 고향에 돌아와서 이렇게 Part time Job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금전 Feast를 구경한 얘기를 했더니 '정말로 좋은 구경을 했다'고 말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터키식 전통 결혼식 축제라고 알려준다. 결혼날까지 3번의 축제가 벌어지는데, 첫번째 축제(Chase Party)는 결혼 3일전 낯에 동네 사람들이 어울려 오늘 우리가 본것처럼 한다고 한다. 두번째 축제(Hanna Party)와 세번째 축제(Wedding Party)는 모두 밤에 벌어진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예상치도 않은 터키식 전통 결혼식에 대한 이해를 할수 있었다. 감사. Cai Tea값을 받지 않고 선물로 여기라면서, 이곳에서 멀지않은 지중해안도시 Samandag을 꼭 구경하라고 강력히 권해준다. 고마웠다.


http://www.youtube.com/watch?v=FyWSj9YeL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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