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9, 2009

총칼 없는 조용한 혁명의 큰힘 - 김 추기경님의 서거에서 본다.


혁명하면, 머리에 떠 오르는 첫번째 생각은 총칼과 위장복( Camouflaged)을 입고 군화발로 짖밟는 군인들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김 추기경님의 선종을 보면서, 혁명의 뜻을 다시 재정립해야만 한다고 나의 짧은 생각을 더듬어야 했다.
지금 고국 한국에는 혁명이 그것도 전 국민들이 함께 동참하는 혁명이 매일 일어나고 있고, 그것을 뉴스를 통해 보고 있는 나를 비롯한 많은
교민들이 숙연한 자세로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음을 본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이 극히 평범하면서도, 걸어야할 길을 실천으로 평생을 통해 보여주시는 혁명을 하셨고,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는 전국민이 그혁명의 길에 동참하시게 하셨다.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을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사설] 추기경이 남긴 선물


근래 한 지도자의 죽음이 이토록 큰 울림을 준 적이 있었던가.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행렬은 길고 뜨거웠다. 지난 사흘 사이 40만 조문객이 추기경의 유해가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을 찾았다. 거기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좌와 우, 지역과 나이, 정치와 이념으로 가르던 내 편 네 편이 없었다. 사람들은 새벽 2~3시부터 모여들어 조문이 시작되는 새벽 6시엔 이미 3㎞ 넘는 줄을 만들고 이 줄은 조문이 끝나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영하 추위 속에 서너 시간씩 기다려야 하지만 그 흔한 실랑이나 고함, 새치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몸이 불편한 노인에겐 "앞으로 가시라"며 양보했다.

우리는 명절 귀성표나 아파트 청약 따위를 위해 긴 줄을 서 본 일은 있지만 이처럼 자기 이익을 초월해 한마음으로 순수한 줄을 만든 적이 없다. 살아서 사랑과 희생, 나눔을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 준 추기경은 더 큰 가르침을 남은 이들에게 주고 갔다.

지혜로운 사회는 한 시대를 대표한 위인의 죽음을 통해 앞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시대를 준비한다. 추기경이 사제로 서품된 1951년부터 선종한 2009년까지 58년 세월은 전쟁과 폐허・분단・독재・산업화・민주화・분열까지 시련과 성취와 고뇌가 응축된 대한민국 역사 그 자체였다. 추기경은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을 어미닭처럼 품어 안고서 "참아라. 고통에는 끝이 있다"고 일관되게 얘기하며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줬다.

전국 각지에서 추기경을 조문하러 내달아오는 발걸음들은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한 정신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산에서 다음 시대를 열어갈 새 소명을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노력으로 승화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의 선진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착, 인류 공동발전 기여처럼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숱한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김 추기경은 자신의 묘를 일반 성직자와 똑같은 크기로 하고 평범한 삼나무 관을 써서 검소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추기경이 안구(眼球)를 기증해 앞 못 보는 두 사람이 새로운 빛을 찾는 것을 보고 자기 신체 일부를 내놓기로 약속하는 시민들이 줄을 잇는 등 희미하던 장기기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수(數)와 힘의 논리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조용한 혁명이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추기경은 자신의 부재(不在)를 통해 더 큰 존재를 드러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진정 달라질 수 있다면 이는 추기경이 남긴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입력 : 2009.02.1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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