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2, 2022

11월 11일, 캐나다의 현충일, 6월6일 한국의 현충일, 진정한 고마움을 느낄수있는 국민들의 진심을 본다.

 매년 11월 11일을, 캐나다에서는 현충일로 기념하고, 캐나다를 지키기위해 젊음을 불사르고 하늘나라로 먼저간 전우들을 생각하고, 동시에 그전우들의 덕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편안하게 삶을 즐기면서, 생업에 종사할수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산다.

오타와에서 있은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재인식하고, 이제는 몇 안남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생존전우분들을 모시고....한국전 참전했던 선배전우들을 모시고 그날의 처절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고마움을 다시한번 마음으로 부터 나타내고, 젊은 세대들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조국에 위기가 닥쳤을때 내가 할일은 무엇인가를, 현충일 기념식을 통해서, 터득하게 하는, 의미깊은 오늘의 추념식은 그래서,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전캐나다를 대표하여, 성대히 거행되는 의식인 것이다.

90을 넘긴 역전의 용사분들의 군인정신을 발휘하여 발걸음을 한발짝 한발짝 떼어 걷은 행진의 모습에서 실질적으로는 앞뒤좌우의 거리가 좀 맞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그정신만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패기찬 발걸음을 보면서,  실질적으로 전쟁을 치렀건, 아니면 평화유지군으로 전세계를 다니면서 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자부심은 과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기상을, 오늘 다시 또보게 되면서,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의 현충일 (Remembrance Day)행사에는 신통하게도 정치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은점도 특이한 점이라 할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수상 Trudeau는 지금 G20 정상회담 참석차 이시간에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Cambodia의 수도인 프놈펜에 있긴 했지만....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오늘의 내가 있게한 내조국, 대한민국을 잊을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님도 지금 프놈펜에 정상회의 참석차 고국을 떠나 그곳에서 외교전쟁(?)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시간 조국의 야당 짜라시들은, 방안퉁수짖을 해대면서, 계속적으로 "윤석열 하야"를 외쳐대면서, 국력을 소모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데, 그 맨앞에 전과4범에, 친형수에게 '19멍을 찢어 죽일년....'이라는 쌍욕을 해댄놈, 패륜아가 찌라시당을 리더랍시고 운전하고 있으니... 

그상황속에서 정말로 경제를 비롯한 국가의 모든  정책에 진정으로 협조를 할 리더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친형의 장례식에도 참석안한 탕아다운 행동을 보여준 그가.... 야당 대표라니... 이런놈을 쳐다보면서, 나는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은 국민중의 하나라라는 점에 감사함을 그냥 지나칠수없다. 먼저 이런 탕아를 직접 보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뜻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탕아 죄명이는, 가장 깨끗한척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쳐 대면서, 뭉가의 촛불부대원들을 충동질 하고 있는데.... 국익을 위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이리 저리 뛰고 있는데에 대한 응원은 고사하고 계속 뒷통수를 치는 망국적 행위만 해대고 있는, 이런 탕아를 어떻게든 국민들 시야에서 완전제거 해야 하는데....

국가적 참사를 당한 이태원 사고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그후에 잘잘못을 따져도 늦지 않을텐데....,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말과같은, 속이 빤히 보이는 망국적 행위를 해대는데, 그런 정치적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의 행동은 전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더러운 꼼수를 꾸짖는 것이다.

역전의 용사들을 보는 이곳에서의 시각은 고국 대한민국에서 봤던 역전의 용사들을 보는것과는 똑같은 공식에 대입해서 평가하는것은 여러면에서 적절치 않기에.... 이곳에서는 징집제도가 아닌, 조국을 지키기위한 일념으로 군에 자원입대한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마지못해 징집당해 군복무를 완수한 경우와, 자진입대해서 조국수호를 위해 봉사한점에서 하늘과 땅차이로 다르다. 우리의 징집제도는 처한 나라의 형편에 따라 어쩔수 없는 병역의무 형식이라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면서, 그렇게 해야만 우리대한민국이 존속할수 있다는 처절한 현실을 괴로움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에서 이해하고 협조해야 한다.

나는 65년도초에 자원입대해서, 67년도 말에 제대를 했었다. 군번도 1145.......다.  근무지도 논산훈련소를 나와서 최전방 대성산부대에서 근무했었고, 년가 휴가도 3년동안에 2번밖에 기회가 주어져, 동료전우들에 비하면 불이익을 많이 당했었던 기억이 있지만,  당시에는 부모님의 빽이 없었떤 내자신의 처량함을 한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감사할 뿐이다. 최전방에서 고생하면서 모든 고초를 당하게 하면서 단련을 미리 시킨 창조주의 Guide에 감사함을 단 1초도 잊은적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현충일 추념식을 항상 지켜본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현충일과 내가 고국에서 겪었던 현충일을 많이 비교해서 기억을 더듬는다. 매년 그날이 되면 현충일로 추념하면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전우들의 희생을 감사해 하면서 살아가지만,  한쪽은 진정성이 여실히 내눈에 보이지만, 다른쪽의 현충일은 미사여구가 너무도 표현된, 쑈적인 면이 많이 보여, 씁쓸함을 항상 느꼈었다.

이곳에서는 11월달이 되면 붉은색의 Poppy핀을 가슴에 모든 국민들이 어린아이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는 분들까지 하나씩 구입해서 Lapel에 꽂고, 현충일까지 먼저간 전우들에 고마움을 표하고 현충일날 당일, 수도 오타와에 모여 마음으로부터 감사함을 표하는 의식의 엄숙함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역전의 용사들이 자체적으로 이추념 행사를 진행 한다는 점이다.이곳의 정치꾼들은 현충일 행사를 악용하여 이익을 따질생각은 그래서 없어 보인다는 점이 특이하다.

행사가 다 끝나는 순간이되면, 역전의 용사들은 가슴에서 Poppy를 Lapel에서 떼어 충혼탑앞에 있는 제단에 내려놓은 의식이 진행되고 행사는 마감된다.  행사 진행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광경을 보면서..... 현충일 추념식은 이렇게 순수하게 진행되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있곤 했다.

재향군인회원이건, 일반 국민이건 모두가 합심하여 진정으로 먼저간 전우들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스스로 느끼게 하는 분위기에 감탄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광경이 이곳 국민들의 진심을 그대로 보여주는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내년에도  현충일 추념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우리조국은 6월6일이 현충일이다. 국가를 지키다 먼저 하늘나라로간 전우들의 희생을 마음속으로 부터 존경하고 감사해 하는 혼연일체의 국민적 관심이 그날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악랄한 공산독재 체제정권을 3대째 세습하여 국민들을 억압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하고 자유를 완전 박탈하여 마치 소 또는 말처럼 고삐를 걸어 괴롭히고 있는 북괴 김정은 3대 정권을 할수만 있다면 전세계인들의 이름으로 처단하여, 북한주민들도 우리와 같은 자유를, 일상생황에서 배고프지 않고, 느끼면서, 즐기면서 살수있도록 북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음을 깊이 느끼고, 할수만 있다면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용하여 더늦기전에 자유의 Beacon을 밝혀야 한다. 

People place poppies on the Tomb of the Unknown Soldier at the National War Memorial following the National Remembrance Day Ceremony in Ottawa, on Thursday, Nov. 11, 2021. The legion said anyone who wants to use the poppy should consult with the organization first. (Justin Tang/The Canadian Press)

5 of Enright’s uncles fought in the First World War, but he won’t wear a poppy

This is part of a series of columns by Michael Enright, reflecting his more than 50 years as a journalist and CBC broadcaster covering Canadian and global news events.

France, the Western Front, 1916: It had rained all night and most of the day. The trenches were knee-deep in mud. The war was in its third year.

Sgt. Edward Folger, my uncle, was leading his squad back to their camp for some food, and above all, rest. A military vehicle — a scout car roaring along the road to the camp — splashed mud on his men. When they reached camp, Sgt. Folger asked who drove the scout car. Someone pointed to a young lieutenant. Folger walked over to the man and punched him in the face, breaking his nose. 

He was court-martialed and reduced to the rank of private. But apparently my uncle was efficient in killing Germans, and by the end of the war in 1918 he was restored to the rank of sergeant. A Globe and Mail report of his death in 1972 said he had survived the first German gas attacks and won the Military Medal, but died in a rooming house of illness and malnutrition.

Folger was one of five uncles who fought in the 1914-1918 war. All told, more than 620,000 Canadians served. That's seven per cent of a population of about eight million at the time.

Black and white photo of men, dressed in fatigues, walking on a dirt road
Canadian soldiers return from the trenches during the Battle of the Somme in November 1916. (Department of National Defence/Library and Archives Canada)

More than 60,000 Canadians were killed and 172,000 wounded. In the Second World War (1939-1945), 1,159,000 served, of whom 44,090 were killed.

November is the time when we honour the dead of both wars. Across the country, members of the Royal Canadian Legion sell the red poppies to mark the moment when, at the 11th hour of the 11th day of the 11th month, 1918, the First World War ended.

  • CBC News will be marking Remembrance Day on Friday with special coverage from Ottawa, starting at 10 a.m. ET. Find all the details here.

It was called the Great War and the War to End All Wars. As a loyal member of the British Empire, Canada had little choice; she had to fight. Canada declared war on Aug. 14, 1914.

It was a four-year bloodbath that in the end reshaped the continent of Europe. Canada, it was said, came of age as a country in that war.

It was a toxic stew of ignorance, gallantry, cowardice, individual bravery, comradeship and slaughter.

One of my uncles in the Royal Flying Corps was shot down over Holland and spent most of the war as a prisoner. Another, my uncle Charles Folger, was gassed in battle at Ypres in 1915. He returned to Canada, a shaken shell of a man.

There was never any question that the Canadians knew how to fight. As historian Jack Granatstein points out, their speed and bravery earned them a reputation as "shock troops" — effective fighters who would carry out the hardest tasks.

The methodical destruction of human life throughout the war was astonishing. One of the most appalling instances took place outside the village of Beaumont-Hamel in northern France on July 1, 1916 — the first day of the Battle of the Somme. 

WATCH: How the battle at Beaumont-Hamel defined Newfoundland: 

How Beaumont-Hamel battle defined Newfoundland

6 years ago
Duration7:15
July 1 marks the 100th anniversary of Beaumont-Hamel, the First World War battle that left 684 men of the Newfoundland Regiment killed or wounded

Some 800 members of the Royal Newfoundland Regiment went into battle that morning. More than 700 were killed or left wounded or missing, including 14 sets of brothers. 

A British commander called it a "magnificent display." The assault only failed, he said, "because dead men can advance no further."

After four months of fighting, the British and Canadian troops managed to move the front line 10 kilometres but failed to break the German line. The Germans and Allies each lost nearly 200,000 men.

Which is why every July 1, while most of Canada celebrates Canada Day, across Newfoundland and Labrador it is a day of mourning.

WATCH: Newfoundlanders killed at Beaumont-Hamel remembered 100 years on: 

Beaumont-Hamel remembered 100 years later

6 years ago
Duration3:35
Some Canadians travelled to Beaumont-Hamel in France, where 100 years ago, hundreds of Newfoundlanders were killed in one of the bloodiest battles of human history

The First World War killed at least nine million soldiers and as many as 13 million civilians.

There is a thin membrane between remembrance and glorification. When we talk about war, we invariably describe our "gallant dead" and those who "fought and died for freedom." 

Every city, every little town across the country, has a cenotaph, a pillar of some kind engraved with the names of those who died. Highways are renamed the Highway of Heroes. Bands play, cannons fire, flags fly high.

Carl von Clausewitz, the Prussian philosopher of war, defined it as "an act of violence to compel our opponent to fulfill our will."

In her powerful study War: How Conflict Shaped Us, historian Margaret MacMillan says we make a great mistake if we think of war as a human aberration. She writes: "We do not take war as seriously as we should."

Poppies are left pinned on a cross after a Remembrance Day ceremony at the cenotaph in New Westminster, B.C., on Nov. 11, 2019. (Darryl Dyck/The Canadian Press)

I will slip a toonie or two into the legion member's tin box, but I won't wear a poppy. I never have. It's one thing to remember our war dead; it's quite another to openly acknowledge that memory.

Maybe it's because of the damage the First World War did to members of my family that I refrain from wearing the poppy. Perhaps I could be persuaded to wear a poppy to honour the memory of those 23 Canadian soldiers executed for desertion and cowardice in the 1914-18 war; in a grotesque coda, the men were pardoned in 2006.

Is war inevitable? Is the pursuit of world peace a dream of fools, a fading vision of our hopes?

The odds are that we will always have war with us. As Margaret MacMillan reminds us, "there has been one somewhere every year since 1945."

https://www.cbc.ca/radio/enright-essay-remebrance-day-1.6644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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