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장"이란 '장'자리가 대한민국에 있었다는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왜 이런조직이 있어야 하고, 이를 관장하는 위원장이 국록을 먹어야 하나? 얼는 봐서는 그취지가 잘못인식돼 왔었던 그뭔가를 정의롭게 파헤쳐서 억울한 국군포로들과 국민들의 원한을 풀어주는것 쯤으로 이해하고 싶었었다.
뉴스보도를 봤더니, 진실화해위원장이란 자가 취급하고 있는 6.25전쟁중에 발생했었을때, 본의 아니게 중공군 포로, 아니면 북괴군에 포로로 잡혀있던 기간동안에 억울하게 인권유린당했던 사례들에 대한 정확한 진실규명을 해서 피해를 본 우리국군 포로분들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역활이 주임무인것으로 알게 됐었다.
탈북 국군포로 90세의 김모씨는 지난 24일 진실화해위원장, 정근식을 찾아가, 김씨가 이날 과거사위에 6.25때 북한군, 중공군에 붙잡혔는데 제네바협약에 따른 송환이 거부됐고 포로수용중에 가혹행위를 당한것을 규명해 달라는 신청서를 한모씨등 다른 국군포로 2명과 공동명의로 체출한 직후, 그분들이 정근식으로 부터 들은 얘기는 '거제도'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듣고, 진실화해위원장, 정근식의 사상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했다.
진실화해위원회 또는 과거사위는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에 따라 출범한 국가기관이란다. 지금의 문재인 정권의, 과거사위원회는 우리국군포로들이 고문 당했던 것을 규명하는것보다, 중공군, 북괴군들의 포로생활 어려움을 설명하기위해 그자리를 꿰차고 있으면서 국록을 매달 타먹는, 문재인의 찌라시중 한명이라는것을 알았다. 기가 막힌다.
북한에 오랫동안 잡혀있다 어렵게 1994년에, 6.25전쟁중에 소위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여 생활하다, 탈출했던 조창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80명의 국군포로가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하해 무사히 우리 대한민국에 귀환했었다. 이분들 가운데 생존자는 이날 과거사위에 진상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김,한씨를 포함해 18명인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현재 북한에는 300-500여명의 국군포로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는것으로 추정된단다. 인권단체는 "우리정부가 국제사회와 연대해 국군포로 송환에 보다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김대중이가 이북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회담 할 당시에, 그는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한 단 한마디도 김정일과 나누지 않았었다. 그래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는데에 그의 선동술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3년전, 즉 2018년 9월18에는 공군 1회기를 타고 문재인이가 평양을 방문 했었고, 판문점에서도 김정은이와 만났었다. 그때에도 문재인은 국군포로의 귀환을 위한 아무런 대화한마디 김정은과 상의한적은 없었다. 트럼프가 싱가폴과 판문점에서 김정은이를 만났을때도, 역대 미국대통령들이 노력해왔던것 처럼, 트럼프는 6.25전쟁중에 사망 또는 포로가 된 미군들의 유품과 미국귀환을 위해 조용히 의견교환이 있었다는 Hearsay를 들은 기억이 있다. 참 많이 대조된다.
http://www.jlcxwb.com.cn/news/content/2018-09/19/content_230145.htm
과거사위원회를 없애라. 국록만 축내고 북괴군의 포로신세가 되여 고생하다, 어렵게 탈북하여 귀환한 전쟁영웅들에게, 정근식은 중공군, 북괴군의 포로수용소 생활에서 고생했던점을 거꾸로 강조했었다고 하니..... 기능도 발휘 못하는, 겉껍데기뿐인, 과거사 위원회를 비롯한 수많은 얼뜨기 조직들을 다 해체하여,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더이상은 괴롭히지 말아야한다.
면담자들, 鄭위원장에 사과 요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정근식 위원장이 6·25 때 북한·중공군에 붙잡혔던 국군 포로와의 면담에서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면담에 동석한 북한인권단체 물망초는 “국군 포로들이 북한군과 중공군의 가혹행위와 관련한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갔다가 되레 중공군 포로 피해 이야기를 들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과거사위는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출범한 국가기관이다.
탈북 국군 포로 김모(90)씨는 지난 24일 서울 중구 과거사위 사무실을 찾아가 정 위원장을 면담했다. 김씨가 이날 과거사위에 6·25 때 북한군·중공군에 붙잡혔는데 제네바협약에 따른 송환이 거부됐고 포로 수용 중에 가혹행위를 당한 것을 규명해달라는 신청서를 한모씨 등 다른 국군 포로 2명과 공동 명의로 제출한 직후였다. 한씨 등은 건강상의 이유로 진상규명 신청서만 제출하고 이날 면담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 위원장은 면담에서 “저는 6·25 당시 거제도 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의 피해에 관심이 많다. 이들을 만나 피해상을 조사해보려고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고 물망초 측은 전했다. 북한군·중공군의 포로가 됐다가 탈출한 고령의 국군 포로 앞에서 국군과 미군에 잡혔던 중공군 포로 피해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국군 포로 어르신이 면담 후 정 위원장의 ‘중공군’ 언급에 어이가 없어 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호소했다”면서 정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정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위원장으로서 말한 것이 아니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당시 중공군 포로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라면서 “남북 화해를 위해서는 중공군의 피해도 알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면담서 국군 포로분들에게는 신청서를 잘 검토해보겠다고 긍정적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귀환한 국군포로는 총 80명...이 중 18명 생존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유엔사는 북한군·중공군에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국군이 8만2000여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은 포로 교환 과정에서 전체의 10분의 1정도인 8343명만을 송환하고서 “이제 포로는 없다”며 국군 포로 수만명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북한은 대신 이들을 탄광, 공장 등 전후(戰後) 복구 사업에 투입해 종신 노역을 시켰다. 제네바협약 제118조는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한 후 지체없이 석방하고 송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북한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1994년 조창호 소위(귀환 후 중위로 진급)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자력으로 북한을 탈출해 귀환했다. 이들 가운데 생존자는 이날 과거사위에 진상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김·한씨 등을 포함해 18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에는 300~500여명의 국군포로가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 단체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와 연대해 국군포로 송환에 보다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5/26/Y5G4WWB3OZGGXF5WGYNZNFPGYY/
이딴 중공 북괴 주구를 핥는 망나니가 교육감에 나온다고요? 이런건 애초에 이적죄로 사형인데 쓰레기 교수활동이나 오래도록 목숨 잘 부지하면서 잘 해왔네요. 개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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