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0, 2011
10월27일, 목요일 사십삼일째(오전), 청산도여 안녕, 장보고 공원에서 아낙네들과 어울려
10월27일, 목요일 사십삼일째(오전), 청산도여 안녕, 장보고 공원에서 아낙네들과 어울려
이틀밤을 같이 지냈다는 정때문에 헤여짐이 무척이나 아쉬웠나보다. 주인 아줌마가 하룻밤 묵은방값과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고 극구사양을 한다. 세상에 더 받겠다고 해야할 입장이 꺼꾸로 안받겠다니....Lunar와 밤늦게까지 살아온 얘기를 하면서, 주인과 손님의 자세를 잊어버렸나 보다. 그분은 민박집주인으로 장사를 하시는 분이고, 우리는 손님으로 그집에 묵은것인데..... 하룻밤방값과 밥값을 나름데로 계산해서 드렸더니, 이번에는 절반만 받겠다고 고집하셔서, 한참을 실랑이한끝에 주인아주머니의 손에 겨우 쥐어 드렸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소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던 손수건 몇장을 건네주는것으로 정을 표했다.
그녀의 차에 우리부부 그리고 일터로 나가는 주인집남편과 그의 사촌동생이 같이 타고 항구대합실로 가는길에 남편과 사촌동생을, 지금은 폐학교가된 청산중학교에 내려 주면서 그들과 함께 마지막 기념촬영도 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생 30명의 중학생이 있었는데 그마져 다른학교로 전학가고 해서 결국 페교를 시켰는데, 완도교육청에서는 골육지책으로 Food Court로 개조해서 앞으로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서게 될 계획으로, 개축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들이 오늘은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주인남자는 말도 없고, 어제밤에도 우리와 대화를 거의 해보지 못했었다.
선착장에서 주인아주머니는 일상의 일터인 관광안내를 하고, 우리는 배가 떠날시간까지 선착장뒷동네와 주위 경관을 구경하러 발길을 재촉했다. 큰길가의 뒷쪽에는 폐가들이 보인다. 분명히 도시로 떠난사람들의 집인것 같았다. Lunar가 아침부터 멍개를 먹고 싶다고 어제 생선회를 즐겼던 그곳에 들려 한접시를 구입해서 초장에 찍어서 입맛을 다졌다. 씹고난 다음에 입안에 남아 있는 멍개 고유의 향이 신선한 기분을 준다. 개눈감추듯 한접시를 금새 해치우고,선착장에 되돌아 와서 승선표를 살려고 하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벌써 우리의 표를 사서 건네 주는게 아닌가? 고마웠고, 의외였다. 하룻밤 풋사랑이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짧은시간 정을 주고 받은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는데, 그정표의 뜻으로 이렇게 배삯을 대신 내준 그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석별의 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배에 올랐고, 그녀는 오랫동안 손을 흔들고......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는것이라고 누군가 한말이 생각난다. 이제 각자의 길로 돌아섰는데, 언제 다시 또만날수 있을까는 아무도 장담못한다. 그녀의 앞날에 좋은일만 있기를 그리고 남편분도 건강하고 오래오래 두분이 해후하기를 빌면서, 갑판에서 포구의 대합실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응시했었다.
완도선착장의 관광안내소에서 볼만한곳에 대한 안내를 받고, 안내 지도를 받아 '다도해일출공원완도Tower'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면서 언덕길을 올랐다. 무척숨이 가빠진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다. 중간쯤 올라 쉬면서 눈아래로 보이는 완도항을 비롯한 바닷가를 둘러 본다. 다도해의 산봉우리들이 보이고 다시 그뒤로 바다가 또 이어지고 그옆으로 산등성이가 또 보이고.... 한장의 그림이다. 윗쪽 언덕위에 멀리 떨어져 보이는 Watch tower를 향해 다시 발길을 옮긴다.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은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울것으로 믿어지기에 무거운 발길을 또 재촉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Tower 꼭대기에 올랐다. 물론 Fare를 지불하고서.
앞쪽에 멀리 보이는 섬이 약 50분전 우리가 있었던 청산도이고, 오른쪽으로 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섬이 제주도, 그리고 신지도와 명사십리로 불리는 신지도 해수욕장 다시 그오른쪽 멀리에 보길도가 보이고, 장보고의 기념관과 청해진유적지가 내려다 보였고 그외 수많은 섬들이 푸른숲으로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완도항을 중심으로 전복양식장 그리고 더 멀리에 넓게 보이는 양식장은 전복의 먹이로 길러지고 있는 미역과 다시마등을 포함한 바다해초양식장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어느화가가 이렇게 자연과 바다와 인간이 어우러져 펼쳐내는 환상적인 경관을 화폭에 있는그대로 담아낼수 있으며, 어느 시인이 글귀로 표현할수 있을까? 감탄, 감탄, 또 감탄이라는 말외에는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모든 시설물들이 새로 건설된점도 있었지만, 잘관리되고 있어 관광객들의 편리를 위해 관련된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볼수 있었다.
전복생산량은 세계에서 3위, 미역 다시마 톳은 전국생산량 1위, 멸치의 대명사 완도멸치 그외 다양한 활어들이 완도하면 떠오르게하는 특산물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해양수산자원을 갖고 있는 완도는 청정무공해 수산물의 저장고라고 한다. 완도어민들의 정성으로 싱싱한 해산물이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조시대 '방념'이란 어구에 김이 붙어 자라는것에 착안하여 김양식을 시작하면서 김의 원산지로 자리잡은 완도의 어민들은 일찍히 양식기술을 터득, 전국에 전수하기도 했다고했다.
설명에 의하면, 해상왕 장보고의 사후, 공도(Island emptied)정책으로 1351년까지 약 500년동안 섬을 비워두어야 했던 역사는 완도땅에 생명넘치는 푸른숲을 자연적으로 키워 내는 요인이 됐다고 했다. 완도난대 수목원은 400여종의 식물이 자라는숲, 200여종의 열대,아열대 식물원, 300여종의 선인장 식물원 그리고 전망대와 자연 탐방로등이 펼쳐져 있어 그위를 걷는것 자체만으로도 생기를 얻게되는 자연의 섬이라고 한다.
흰물보라를 일을키는 하얀파도속에 갯돌 소리를 듣는다. 갯돌이 파도에 쓸려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들려주는 이신비의 소리는 돌과 물, 육지와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의 합창곡이라고 설명한다. 기상대가 없었던 옛날에는 어부들이 이소리로 다음날의 날씨를 예측했다는, 우리의 삶과 함께해온 소리라고 했다.
장보고 기념관에, 물어물어 뻐쓰를 타고 가서, 들렸다. 기념관에 들리기전에 잘 조성된 공원을 보기위해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가까이에 있는 공원안의 정자에서 한떼의 여인들이 여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여기와서 막걸리와 음식을 좀 들고 가시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주위를 봐도 우리둘외에는 아무도 없어 분명히 우리를 향해 Offer를 한것으로 인식되여 발길을 그들에게로 돌렸다. 푸짐하게 차려놓은 음식에 중년, 장년의 아주머니들이 우리를 반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모임이 있을때 지금까지 한번도 지나치는 낯선 사람을 향해 같이 어울리자는 Offer를 해본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예외가 됐다고 하면서 마음껏 마시고 먹으라고 10여명의 여인들이 한목소리다. 전라도 음식이 맛이 있는것은 다 알고 있는사실이었지만, 그들은 흔치않은 물회(전복을 사용한것), 쑥떡, 검정흙미떡, 문조리(망둥어) 그외에 수를 셀수도 없을정도의 많은 음식들을 권한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모습이 이곳에 사는 사람같지가않아 모시게 됐다는 소리들을 한다. 어쨋던 여행하면서 처음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대접을 받는것도 삶의 연장이 아니겠는가. 아쉬운점은 이곳에 도착하기전에 우리는 점심을 먹었기에 처음대하는 많은 음식을 맘껏 먹을수 없는점이었다. Lunar가 우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더 반겨하면서 마음껏 즐기라고 했다. Lunar가 원래 계획은 이곳 장보고의 유적지를 잠깐 보고 다시 육지로 나갈려고 했는데, 주위경관이 좋아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갈생각이라고 하면서, 혹시 민박집 아는곳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중의 한분이 자기네가 민박팬션을 운영하고 있는데 묵고 가라고 했다. 즉석에서 Ok하자 그녀역시 바로 전화로 연락해 방한개를 준비해 두라고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컴퓨터가 들어있어 무거운 Back Pack을 그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우린 다시 발길을 돌려 기념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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