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nd,2010. Clear. Monday.
오늘은 이곳 Ha Tay(Antioch)시내의 유적을 보기로 하고, City Map을 구하기위해 Hotel Front Desk에 우선 들렸다. 여유분이 없어, 자기네가 소지하고 있는 시내지도를 Copy해서 한장 건넨다. 바쁜 관광지에 있다면, 많이 구비해 놓고, 고객이 요구할시 한장씩 꺼내줄텐데...
'걸어서 구경할수 있는 유적지를 추천해 달라' 했더니, 싸인펜으로 표시해 준다. '이곳은 Catholic Church, 이곳은 Christian Church, 이곳은 Mosque, 박물관, 시장..... 족히 하루는 걸릴거다'라고 설명해 주면서, 제일 가까운곳은, Christian Church라고 강조(?)한다. Christian Church가 있다는 설명에 혹시 내가 잘못 이해를 했나해서 재차 확인 했더니.... 그렇타고 한다. 발길을 그곳으로 돌렸다. 불과 5분 거리에 있었다. 시내 간선도로의 삼거리 갈림길의 가운데 우뚝 서 있는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모슬림 국가에서 개신교회를 본다는 기분이 묘했다. 굳게닫힌 철대문을 통해 교회건물의 정문이 보이고......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내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교회정문의 바깥기둥에 걸려 있는 동판으로 새겨진 명찰에, '한국의 광림교회가 이곳에 2003년도에 교회를 세우다' 그리고 목회자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게 아닌가? 이렇게 반가울수가 또 있을까?
캐나다에 이민와서 고생끝에 내집을 처음 마련할때만큼이나 감격의 가슴이 저며옴을 느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명찰에 표시된 내용을 더 자세히 보니 '매주 월요일은 휴무'라고 되여 있다. 실망이었다. 그러나 그밑의 설명은 '긴급히 목회자를 만나고 싶으신분은 아침 9시 이후에 교회건물왼쪽에 있는 채소가게에 들려 안내를 받으시요' 라고 되여 있다. Lunar가 차고 있는 시계를 보니 아직 20분전 9시이다. 어디서 지루한 20분 이상을 기다린단 말인가.
길건너에 여자용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가 눈에 띈다. 귀여운 젊은 아가씨가 가게문을 열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를 반긴다. 그러나 또 문제다. 언어가 서로간에 먹통이기 때문이었다. 답답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녀가 우리가 목회자분을 만날려고 한다는것은 알고 있는것 같았다. 왜냐면은 Antioch을 포함한 터키의 동쪽 깊숙한 곳에서 목회자분과 같이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무척 희귀하다는것을, 탐방하면서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터키전통 Cai(Chai)Tea를 대접해준다. 고마웠다. Tea 를 마시고 있는데, 아가씨가 급히 가게 밖으로 나가더니 한 젊은 사내를 데리고 들어온다. '안녕'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의외였다. 그는 두손을 머리쪽으로 대면서 목사님은 지금잠자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제기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좋다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손목시계를 보이면서, 9:30분경이면 만나볼수 있게 해주겠다는 Body Language를 열심히 해주고, 가게를 나간다. 궁금했다. 이젊은 남자가 목회자분의 일상에 대해 알고 있다는게 말이다.
60대 중반까지의 긴시간을 살아왔는데도, 짧은 몇분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게 이렇게 지루함을 느껴보기는 처음인것 같다. 9시10분이 되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옆에 있다는 채소가게 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Lunar 가 말린다. 기왕에 기다렸으니 조금만 더 인내해 보자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만약에 만남이 성사되지 않을바에야 여기서 시간을 소비하는게, 다음 스케쥴을 위해서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Lunar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아까 만났던 젊은 사내가 있지 않은가. 나를 보자 반겨한다. 채소가게라고 밖에 간판도 표시되여 있었지만, 안에는 그런 가게 분위기는 전연 없었다.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통화를 한다. 직감적으로 목회자분이라고 생각되였다. 윗층에서 내려올것이라는 Motion을 한다. 됐다싶어, 급히 Lunar쪽으로 달려가 빨리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다시 되돌아 왔다. 앳때고 젊은 한국분이 벌써 내려와 있었다. 좀의외였다. 나를 보자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목회하고 있는 Rev.Chang이라고 소개한다. Lunar가 도착했다. 넓은 소파가 있는 방으로 안내받고... 얘기가 시작됐다.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의 강남 어딘가에 있는 '광림교회' 담임목사께서 2000년도에 이곳을 방문하게 됐는데, 개신교회가 없음을 알고, 이곳에 지교회를 세우기로 마음을 굳히고, 3년동안을 현지 당국과 협상하고, 또 주위여건을 살피고, 물론 기도의 효력이 있었기에, 건물을 구입하고, 2003년도에 광림교회 지교회로 문을 열고 현지 선교에 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Rev.Chang은 3년전에 선택되여, 신혼초의 생활을 접고 이곳에 2대 선교목사로 파견되여, 그동안 현지인 선교를 해왔단다.
그동안은 영어로 설교를 해 오다가 지난해 12월경부터, 열심히 터득한 터키어로 Sermon 을 시작했다고 설명해 준다. 현재 35세이며, 사모는 2세 탄생을 위해 몇개월전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는데, 약 일주일전 예쁜 쌍둥이 딸이 태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좋아 하신다. 오는 4월초에 Rev. Chang도 귀국하여, 예쁘게 새로 태어난 쌍둥이 딸과 함께 다시 되돌아올 계획이라고, 기대에 가득찬 설명해 주셨다.
이곳에 부임후 고국에서 부모님이 이곳을 방문한것외에는 한국사람은 우리부부가 처음이라면서, 한국말을 할수 있어 너무나 좋다고 하신다. 한창 신나게 젊음을 Enjoy할 시기에 선교사의 큰짐을 지고 외롭게 이곳에서 지냈을 Rev.Chang의 어려운 뒷면을 쉽게 파악할수 있어, 마음이 아팠다. 이런분들이 소금역활을 말없이 조용히 감당하기에, 우리부부같은 나그네들이 덤으로 예상치 않은 사랑을 나누게 되는게 아니겠는가?라고 확신하게 됐다.
현재 이교회에는 많은 외부인들에게 관광코스로 알려져, 많을때는 하루에 300명 이상이 다녀 가기도 한다라고 설명해 주신다. 모슬림만 있는 이곳에 희귀한 개신교회가 있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충분히 관광코스로 될만도 하겠구나 라고 생각된다. 재정적인 지원은 본교회에서 일체 받고 있으며, 교회건물은 전에는 불란서계통의 은행으로, 그다음에는 이곳 안디옥시의 청사건물로도 사용됐었다고 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수는 아직은 미미한편이며, 신자들의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안정이 덜된, 즉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위한 수단으로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고 현지선교의 어려움을 토론한다.
모슬림국가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쉽게 기독교로 개종한다는것은,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집안의 저항이 얼마만큼 클것이라는것은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20대 초반의 아까 그남자분은 열심으로 교회출석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집안의 반대가 지금도 무척 심하다고 설명해주신다. 신앙적으로 서로 많이 의지 하면서, 그남자분은 교회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Rev.Chang의 아버님도 목회일을 평생 하셨다고 한다. 나와 나이가 같단다. 우리부부의 여행담을 듣더니 더 놀란다. 어떻게 이런 구석진곳까지 오셨냐는 것이다. 한국분들이 터키관광을 많이 오지만, 이곳에 올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설명해 준다. 한국에서, 또는 북미대륙의 한인사회에서 '선교여행'을 많이 떠난다. 우리부부는 감히 '선교여행'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본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교만한것 같이 느껴져서다. 진정한 선교여행은 이렇게 성경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을 둘러 보아야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느낄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아브라함의 생가, 그리고 이곳에서 St. Peter Church를 탐방하면서, '성지순례'여행에는 너무나 많은 상업적 수단이 포함되여 있음을 교계의 지도자분들이 깨닫고, 고생스럽지만, 아직은 발길이 많지않은 ,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가 뚜렷히 보이는 이런곳을 탐방해야 옳은 성지순례라고 확신이 선다.
Rev.Chang에게 '아까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지금 이시간에 Rev.Chang은 잠을 자고 있다는 시늉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말로 잠을 이시간까지 자는겁니까?'라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서 아마도 쉬고 있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것 같다고 설명해 주신다.
현지인들에 대한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위해서는, 꼭 한가지 방법밖에는 없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어느 기업인이 현지에 투자하여 사업체를 운영하고, 현지인을 고용하는것과 선교를 연계시키면, 가장 효과적일것이라는 내용이다. 긴설명을 듣고 보니 나도 그말에 상당부분 수긍이 갔다. 티키Tea도 잘미시고.... 시간이 너무나 많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시내안의 다른 유적지탐방을 포기하고, 이제 Tarsus 로 Apostle Paul의 출생지로 갈계획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이 이곳을 방문하셨을때 모시고 갔었던 적이 있다고 하신다.
Lunar가 오늘 쉬시는데, 특별한 스케쥴이 없으시면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잠깐 망설이더니, 동행하겠다고 하신다. 3년 근무동안에 Tarsus를 다녀온게 전부라고 하시면서..... 오늘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자동차 여행을 하겠다고 하신다. 도와주고 있는 그남자분의이름은'오즈귤'이며 그도 함께 같이 가기로 하고, Rev. Chang이 차량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고....아주 짧은 감사의 기도를 해주셨다. 위에 계신분도 우리의 짧은 기도를 이해하여 주시고, 가는길까지도 보살려 주실것으로 확신했다. 바로 준비를 마치고, 모두같이 호텔로 돌아와 Check-out을 하고, 차를 몰았다. 편하게 가면서도, 시간을 많이 아낄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바로 앞에는 조그만 River가 흐른다. 'Orontes River'. 강이름을 빌려, 호텔이 그이름을 사용하는것으로 이해 됐다.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한번 쉬고, 3시간 30여분을 달려 Tarsus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닌가. 점심을 우선 먹어야 했다. 시내를 관통하면서 식당을 찾았다. 복잡한 시내거리 한복판에 페허가된 돌로쌓올린 성문이 보인다. Rev.Chang이 간단히 그성문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아주 오랜옛날에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을 방문했던 기념으로 만든 Gate라고 local 사람들사이에 전설로 내려오고있다는 것이다. 클레오 파트라가 이곳까지 왔었다? 허긴 황제를 움직이는 그녀였으니.....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Lunar가 모두에게 점심을 제공할테니 좋은 식당이 보이면 그곳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오후 3시경이 됐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말은 이런때 사용하는것이 적절한게 아닐까? 좋아 보이는것으로 오더를 하고 ......이번 터키여행하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비싼 음식으로 점심을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무척 비쌌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Rev.Chang과 같이 온 젊은 남자집사분을 대접해서 좋았고, 이분들 덕택에 우리 부부도 덩달아 좋은 음식 먹을수 있있고.... 젊은 집사분은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고 까지하면서 오늘 나들이가 너무나 좋다고 한다.
Apostle Paul's Birth Place는 기대와는 달리 나를 실망시킬정도로 남아 있는게 없었다. 주변은 전부 주거지역으로 둘러 쌓여 있어, 유적지의 품위를 느낄수 없을 정도였다. 옛집터로 보이는 Foundation은 모두 유리로 덮어 더 이상 파괴되는것을 막고 있었고, 옆에는 지붕으로 커버된 우물(Well)이 있고, "Paul's Well'간판이 걸려 있었다.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논 큰 Bulletin Board에는 사도 바울의 일생에 대한 설명이 다행히도 영어로 설명되여 있었다. 끝구절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네로 황제가 주제하는 사형장에서 칼로 목을 베어 죽임을 당했다"라고. 경제적으로, 학문적으로, 사회적 신분으로 보나, 당시에 그의 존재는 부러울게 아무것도 없는 신분이었는데, 그분을 영접한후로는 모든것을 버리고, 진실된 삶의 길은 그분을 뒤따르는것이라는것을 깨닫고, 목숨까지 초개처럼 버리면서 복음선교와 신약성경 거의 전부를 다 기록했을만큼, 곧고, 두려움을 모른 그의 신앙관을 음미해 보면서, 나는 또 다시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서리집사직책도 나에게는 과분함을 깊이 느낀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보살려 달라는 마음의 기도를 염치도 없이 겨우 할 뿐이었다.
이제 차를 돌려 오늘밤 묶을 도시 Adana로 되돌아가기위해 왔던 고속도로를 한시간 이상 달려가야 한다. Adana 비행장에서 가까운 큰길에 호텔이 보인다. 값이 너무 비싼것 같이 느껴졌다. 다른곳으로 가보겠다고 하면서 발길을 돌리니까 Receptionist가 의미있게 한마디를 해준다. 너희들은 분명히 다시 이호텔로 되돌아올것이다라고. 코방귀로 들으면서 차를 돌렸다. 여러군데를 보았는데, 정말로 마음에 들지도 않으면서 값만 비싸다는것을 느꼈다. 다시 첫번째 들렸던 호텔"Sedef Hotel"로 되돌아와 짐을 풀었다. 벌써 시간은 어둑어둑한 6:15분경이다. 이제 Rev.Chang과 집사분은 다시 Antioch으로 3시간 이상 달려서 집으로 가야 한다. 미안하고 고맙기만 했다. 그분들이 아니였으면, 더많은 비용과 시간을 허비 했을텐데..... 계획은 내가 세우지만, 그진행은 내가 아닌 윗분이 하신다는것을 오늘 여행에서 또 깊이 깨닫고 감사할 뿐이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하룻밤 보금자리에 몸을 맡긴다.
아까 낯에 차안에서 Rev.Chang께서 한말이 생각난다. 어제 우리가 다녀왔던 Samandag 은, 신약성경 사도행전 13장 4절에 나오는 'Seluecia'지역이라고 말이다. 첫번째 순례여행시 사도 바울과 Barnabas가 이곳 Seluecia로 부터 Cyprus에 있는 Salamis로 항해를 했다고 한다. 그곳이 그렇게 성경적으로 의미가 깊다는것을 Rev. Chang이 아니면 꿈에도 알리가 있었겠는가? 또한 Antakya(Antioch)는 얼마전 까지만 해도 '바티칸'처럼 독립된 도시국가 였었다고 한다. 인접한 티키, 시리아 그리고 다른나라들이 자기네 영토로 귀속시킬려고 영향력을 행사할때마다, 주민들의 의견도 어느한나라에 귀속되는게 일상생활에 더 편리한점이 많을것 같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감지한 터키정부가 은퇴한 군인장성들을 여러명 급파하여 주민들을 설득하고 또 터키쪽에 귀속하는쪽에 투표하도록 협박하고 종용하고, 주민투표에 부쳐, 결국 터키에 귀속됐다고 설명해 주셨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게 떠돈다.
그결과로 티키와 시리아는 2년전까지만 해도 국경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곤 했었는데, 얼마전 터키수상이 시리아를 방문하고 난후부터 관계가 정상화 되여, 지금은 두나라 국민들 사이에는 상대국 방문시 시민권만 제시하는것으로 수속절차가 간소화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탄불의 Rev.Kim께서 우리부부에게 시리아 다마스커스 방문을 추천해 주셨던게 아니였을까?라고 연계시켜 봤다. Antioch으로 되돌아가기위해 차에 오르던 Rev.Chang의 외로운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외지에서 사랑하는 Wife와 떨어져 지내면서 밤이나 낯이나 혼자 생활한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닐것이기에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도착 하셨기를...... 오늘밤을 자고 나면 내일은 다시 이스탄불로 향할 것이다. 감사.
저는천주교에나갑니다만Tarsus와Antioch에 꼭가보고싶었는데요 님의여행기를잘보았읍니다.추측컨데님께서는Canada-Istanbul-Adana까지비행기로가셨고. Antioch는bus편으로가셨는가요?천주교회당마져거의없애버린회교국가에서 기독교회를설립운영하시는광림Methodist교회에찬사와존경의마음을드리지않을수없네요,다같은형제들아니겠어요. 가르쳐주시면감사하겠읍니다. 서울에서 김용운 안드레아올림
ReplyDelete우선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ReplyDelete이스탄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Sanri Urfa(성경에서 나오는 갈대아 우르)로 약 한시간 반을 날아가서, 그곳에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생가와 그옆에 있는 '하란'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다시 잘 발달된 시외버스들를 타고 여러곳을 들린 다음에 Ha Tay( 안디옥)에 들렸읍니다. 그지역에서 약 일주일을 주로 탐방하고, 이스탄불로 되돌아 올때는 Adana에서 비행기를 이용 했어요. 터키에서의 시외 뻐스망은 아주 잘 되여 있었고요. 터키 동부 지방과, 성경에서 나오는 아시아 7대 교회는 몇개를 제외 하고는 지금은 지명이 거의 다 이슬람식 터키말로 바뀌어 사전에 자료를 점검하지 않고 가시면 좋은 여행 결과를 얻을수가 없을수도 있읍니다. 자세한것은 저에게 e-mail을 주시면 부족하지만, 같이 여행 정보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읍니다. 감사. 아참. 언제 이곳을 들르셨나 모르겟지만, 우선 늦게 답장 드림을 이해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