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07, 2022

기회가 된다면 또 가보고 싶은 세계적 명승지, 인도네시아 발리섬.

세월은, 요즘같은 때에는 빛의 속도보다 다 빠르게 내옆을 스쳐가고 있음을 절감한다. 

속마음으로는 5년전, 10년전이나 달라진게 없다는 생각으로 머리속을 꽉차있으나,  사물을 보고, 그에 대해 일어나는 Reaction은 너무도 더디다. 어디 그것뿐만이겠는가.  금방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었던 지난날의 추억들이 막상 꺼내서 옮겨볼려고 하면, 어느새 하얀 백지가 되곤하는 난처한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 아 그래서 들어오는때와 나갈때를 잘 구분하면서 살아가는게 지혜로운 삶이구나...."라는 철늦은 탄식을 자주 하게 된다.

여행객들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다녀왔던 추억을 더듬어 봤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곳을 다녀왔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을 뼈속깊이 느낀다.  아쉬움이 함께 하는점은, "왜 그때 그곳에 갔었을때, 더 많은 Local Peoples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좀더 가까이서 그들의 살아가는 삶의 Pattern을 관찰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다.

그곳을 탐방하면서 보고 느꼈던 순간을 기록해 놓은 블로그를 찾아서 다시 여기에 옮겨 본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7/04/47bali-denpasar-farming-home.html

인도네시아,4월7(금요일),Bali섬 Denpasar,Hindu Temple, Farming Home탐방에서 코코넛오일,쟁기질,모내기도 체험했다.

Bali,Bali.....많이 들어왔고, 어렸을적, 많이 들어본 "남태평양" 영화가 전세계를 휩쓸고, 뭇 연인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던, 그런 기억이 항상 머리속에 남아 있었던 곳,  어젯밤 드디어 그현장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곳이, 이곳 Bali의 수도이자, 경제, 관광, 모든면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Denpasar시내의 Segara Village Hotel에서 Bali의 첫날을 보냈다.

Bali의 인구는 약 4백만명으로 그중에서 Denpasar시의 인구는 약 백만명쯤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하며, 인구조사는 매 5년마다 실시한다고 한다. 여기도 별수없이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하늘은 회색이고.... 호텔방에 들어오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라는 느낌이었다.

Segara Village Hotel 경내를 우선 알아야 겠기에 아침에 기상해서 이곳 저곳을 걸었다. 위의 사진은 Reception Desk로 어젯밤에 이곳에서 Check-in을 한곳인데, 아침에 보니 생소했다. 지붕을 덮은 풀은, Alang Alang이란 갈대종류인데, 이풀의 수명은 약 25년동안 지속된다고 하니, 토론토에서 지붕할때 Asphalt Shingle과 거의 수명이 같다는 것이다. 신기하다.  이곳에서 볏짚으로 지붕을 하면 습한 기후관계로 약 4개월이면 수명을 다한다는 것과 많이 비교된다.

Resort 호텔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것같다.  수영장이 4개쯤 되는것 같고,  아래보이는 곳은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Buffet식당이다.

호텔백사장인데, 휴양객들의 발길이 생각보다는 많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봐서 백사장의 수영조건이 인기를 끌지는 못하는것 같아 보였고, 가끔보이는 수영객들과 Motor Boat가 같은 구역에서 Mooring되여 있는것으로 봐서, 기대에 못미치는것으로 이해된다.

이곳  Bali섬에는 고층 건물이 전연 없었다. Bali섬에서 자라고 있는 Palm Tree의 최고 높이가 25미터쯤 된다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Palm Tree를 신성시 여겨서, 건물높이를 Palm Tree보다 높게 짖는것을  성스럽재 못하다는 통설에 따라, 25미터이하로 건축하기에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Tour Guid, Gooday가 시간전에 와서 우리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힌두교 신자로,  머리에 그들의 진통인 수건을 항상 두르고 있는것 같아 보였다.  어젯밤 공항에서 약 15분 정도 늦게 나와 자칫 우리와 길이 엇갈릴번했던점이 미안해서인지,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동하는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이친구는 40대 중반인데, 영어 소통이 무척 편했다.

오늘의 첫번째 방문지, Royal Hindu Temple, Taman Ayun을 향해서 달리면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Bali에서 호텔업을 하기위한 첫째 조건은 호텔전체 면적의 최소한 25%는 정원으로 가꾸어야 하며, 법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Bali는 다른 섬, Sumatra, Java와 달리 인구의 90%정도가 힌두교도들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700개의 언어가 각부족별로 통용되고 있으며, 공식언어는 인도네시아어 하나라고 했다.


도로 양쪽에 커다란 장식물들이 보기에 평화롭게 보였는데, Benjor 라는 힌두교인들의 전통적인 Celebration의식의 일종으로 약 한달간 지속되는데, 지난주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Bamboo와  Coconut나무의 잎을 이용하여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장식을 하고, 각자의 집앞에 하는데, 이것도 잘사는집과 못사는집에서 걸어놓은 장식자체에 차이가 나는것을 확인시켜 준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주, 즉  Sumartra, Java에서와는 다르게 힌두교 특유의 우상같은 많은 시설들이 눈에 많이 띄고, Gooday는 역사와 이들 시설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드디어 오늘 탐방의 첫방문지, 흰두 사원, Taman Ayun Temple입구에 도착했는데, 앞에 보이는 커다란 우뚝솟은 두개의 기둥, Chanti Bentar Gate가 길양쪽에 버티고 서있는, 상징물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인도네시아는 화산이 많아 활화산이 많이 있는데, 화산이 힌두교에서 믿는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그상징물로 사원이나, 공공건물, 또는 개인집에도 이런 상징물을 꼭 입구에 건설해 놓았단다. 이상징물은 마을과 마을의 경계선에도 항상 건설되여 있다는 설명이다.  Taman의 뜻은 정원, Ayun은 아름답다라는 뜻이 있단다.
정문을 통과하기전 길왼쪽에 보이는 다리 난간에 힌두교의 공양방식인 조그만 그릇에 먹을것과 향을 태우고 있는 이유를, 그대들이 믿는 신에게 바치는 행위이며, 밥과 나물은 특히 나쁜 신들이나 마귀같은것들을 막아내주는 것으로 설명한다. 조그만 얇은 Container에 담아 놓았는데, 오후가 되면 이를 다시 청소하는 사람들이 수거해 간다는 것이다.



이사원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1634년에 건축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발리에서는 매 5년마다 시장, 군수등등 공직자들을 선출하는데, 이들이 공무를 집행하면서 어려운일이 발생시, 이곳에서 공동회의를 해서 해결하는 집회장소로 이용돼고 있으며, 또한 이곳에서는 쌈닭(Fighting Rooster)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장소로도 사용된다고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마네킹을 세워놓은 것들이다.

사원안에서도 지붕이 붉은 기와가 덮혀있는 건물은 사원의 기능을 갗춘 건물이 아니고, Alang Alang풀로 지붕을 덮은건물은 힌두교 사원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한번 덮으면 25년동안 다시 지붕을 덮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건물안에서 올려다본 지붕은 아주 정교하게 잘 엮여서 촘촘히 정성스럽게 비바람을 잘 막을수 있도록  엮여 있어보였다.  기왓장은 흙을 이용하여 만들었기에 그속에는 각종 불순물이 포함되여 있다고 간주되기에 신성하지 못하고 Clean하지도 않기에  Temple건물의 지붕에는 사용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Gooday의 설명은 이어진다. 이곳 Bali에서 힌색은 좋은뜻으로, 검정색은 나쁜뜻으로 구분되는데,  Offering 할때,힌색은 또한 Good luck을 뜻하고, 검정색 Offering은 Rice나 채소로 Bad luck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럴때 우리는 Harmony가 필요한데, 오른손과 왼손을 맞닥뜨려 손뼉을 치면 바로 Good Thing과 Bad Thing이 합쳐져 하모니를 이루기에 하모니는 꼭필요한 삶의 지혜라고 설명한다.

여러개의 사원건물중에서 한곳에는 커다란 Lion 형상에 벼이삭이 달려있는 그대로 옷을 입혀 있었고, 요란한 장식물들이 부착되여 있었다.  힌두교 의식에 의하면 이렇게 사자의 상에 옷을 입힌것은 Prosperity를 염원하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다.

Lunar와 Gooday 가 Lion상옆에 서있게하고, 추억을 만들었다.  이친구가 염원하는 그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래면서....
힌두교에서 섬기는 삼위일체신중에서, 가장 힘센,  파괴의 신, Shiva의 형상이 부착되여 있는 커다란 대문뒤에도 사원의 일부가 있으나, 보통때는 개방을 하지 않고, 일년에 두번 개방하는 축제일에만 방문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사원이나, 개인집에는 반드시 Holy head temple이 건축되여 있었다.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우리신체의 형상을 3등분 했을때, 가장 경건한 부분이 머리이기에 Family Temple, 가운데 몸둥이부분은 Body house Temple, 맨밑부분은 Leg temple로 구분해서 사원에는 여러개의 상징적 Temple 이 존재한다.  개인집에서는 머리부분인, Family Temple만 있는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이때문에 사원이나 개인집을 지을때 제일 먼저 건축하는 부분이 바로 Head Family Temple이라고 한다.

위의 건물은 사원으로 섬기는 가옥이 아니기에 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덮혀 있음을 이제는 나도 알수 있을것 같았다.  보이는 요상한 모양의 장식품은 지금 길거리에 세워져 있는것들과 비슷한 장식물로 이곳에 보관하고 있단다.

종교의식을 떠나서, 이렇게 높이 쌓아 올린 파고다의 지붕이 전부 Alang Alang 풀로 덮혀 있다는게 신기하고, 각층을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역시 내가 보기에는 튼튼해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오랜기간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다는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이곳, Bali에서의 힌두교는 인도에서 처럼 그숫자를 셀수 없을 정도로 모든게 신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고 오직 그들이 믿는 신 하나가 유일신이라고 강조해 준다.  인도에서 섬기는 힌두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려고 하면 많은 오해를 유발할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도의 힌두교보다는 덜 미신적인것 같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신이 되는 각종 장식물을 보면, 그근본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머지 않아 곧 축제가 있을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장식물이 걸려있는앞에서 한컷했다.  Bali에서는 Coconut Tree를 매우 신성시 하고 있다는 설명도 해준다. Coconut의 보통키는 약 25미터쯤 되는데,  이보다 높은 건물건축은 신성한 나무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여 건축허가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로 신성한가 보다.


축제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길거리의 장식물이 가장 화려하게 된곳이라고 해서 또 추억기계속에 담았다. Lunar역시 그녀의 ipad에 담느라 바쁘게 손놀림을 하고 있다.
Gooday가 인두교의 상징인 마크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치 독일 사람들이 사용했던 십자가의 끝에 직각으로 꺽인 표지와 비슷한데, 그끝에 붙어있는 표지의 방향이 정반대로 표시되기에, 힌두교에서는 때로는 억울하게 나치독일 사람들것과 같다는 오해를 많이 사고 있다는 한탄이었다.  힌두교의 마크는 십자가 모양의 끝에서 이어진 선이 오른쪽을 향하고, 나치 독일의 마크는 방향이 왼쪽을 향하고 있으니, 착오없기를 바란다고 주문하기도했다.  역사를 보면 힌두교의 마크가 비교가 안돼게 오래된 것인데, 나치독일이 방향만 슬쩍 바꾸어 도용한것이었을까?

두번째 방문지인  Farming House를 방문하기위해 정문을 들어서고 있는 Lunar와 오늘 우리의 방문을 담당해서 안내해줄, Mr Mudi가 우리부부를 반긴다.

마침 오늘부터 이들이 섬기는 매6개월마다 벌어지는 축제일(Cauitan Ancestor)이 시작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낙네들이 축제에 사용될 각종 장식물을 만들기에 분주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코코넛 나무잎사귀를 가공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조금만 장식물들을 만들고 있다.


Lunar가 다른 젊은 여인이 코코넛 나뭇잎을 이용하여 만드는 조그만 장식물을 만드는 장면을 보고 있다가, 이렇게 하면 더 예쁘고 쉽게 할수 있을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Florist의 전력이 여기서 생각지도 않게 발쉬되고 있는 순간이다.

이곳 Farming House, Rumah Desa 라고 불리는 집안으로 힌두교의 사회적 계급에서 제일 낯은 천민인, Sudra 출신이라고 자신의 집안을 소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전연 불편하거나 챙피함을 느끼지 않는것 같다.  살아온 인생의 2/3정도를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도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숨기고싶은 대목은 가능하면 피해가는 경향이 많이 있는면이 비교되기도 하는데..... 그는 활짝 웃기만 한다.

오늘 저녁에 이집안의 전식구 39명이 고향에 찾아와 함께 지내면서 만 하룻동안 진행되는 축제참석하게 된다고 한다.  이식구들이 찾아오면 잠을 잘 방들이 있어야 될것 같은 생각이 들기에 질문했더니, 바로 더안쪽으로 많은 집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집안의 여인네들이 축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식품중의 일부가 한군데 모셔져 있는데 찬란하다고 해야 할까. 수고를 많이들이 모습이 보여지는것 같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는 올래 90세라고 하는데, Bitter Nut을 애용하는 중독자인것 같았다.  버마 여행시에 많이 봤던 기억이 있어서 Mudi에게 물었더니 보통 담배피우듯이 상용하는 기호품이라고 하는데, 이할머니와 Mudi가 직접 만드는 과정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치아(Teeth)가 검붉게 색이 변해 있는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또다른 축제용 장식물들이 마당에 즐비하게 준비되여 있다.  대식구제도가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넓은 집안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도 아낙네들이 또 다른 장식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한집안에 살면서, 숙명으로 받아 들이고, 순종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한다면 내가 너무나 서뿔리 판단하는 것일까?
 정원에 있는 과실나무에는 커다란 Jack Fruit열매가 멍청하게 매달려 있는게 얼른 보면 두더지같이, Porcupine처럼 뾰쪽한 껍질로 덮힌채 매달려있다.  몇년전 아시아 여러나라 여행중, 월남의 Delta Triangle지역에서 탐방하다가 점심먹으로 들어가는 식당의 입구에서 이와 똑 같은 Jack Fruit을 봤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Mudi가 우리를 안내한곳은 그들의 전통 Library라고 생각되는 서재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그가 우리부부의 First Name을 써 달라고 부탁해서 Lunar가 써주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들은 당시에 종이가 없었기에, Coconut 잎을 사용하여 기록을 남겼다고 하면서 책이 아닌 한묶음의 얇은 나무조각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그곳에는 이들이 사용해 왔던 고유글자들이 즐비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들, 즉  Balinese들이 사용한 글자는 처음보는 형상으로, Mudi설명에 의하면,  영어알파벳의 F.P.Q. X.Z의 발음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알파벳숫자는 전부 18자라고 했다.
 Lunar가 써준 우리의 이름을 그들의 문자로 지금 Mudi가 Coconut 잎사귀에 새기고 있다.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사용하여 새기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연 글자가 나타나지 않는데, 뭘 새기고 있다는 말인가?라고 의문이 들었다.  그가 다새기고난 다음에, 검정물감(옛날 한국에서 사용했던 먹물)을 조그만 헝겊에 묻쳐 그가 새긴 잎줄기에 문지르고 다시 깨끗히 닥아내자, 글씨가 선명하게 나타나는게 아닌가.  그래서 변하지 않고 조상님들의 기록이 보존되고 있다고한다.

 이들이 사용해온 달력은 Wuku(욱크)라고 했다.  이들의 축제일은 꼭 그들이 사용해온 달력에 근거하여 날자를 계산한다고 설명이다.  30 Wuku는 30Weeks로 우리의 달력으로 계산하면 약 6개월의 기간이란다. 1 Wuku는 1 Week.  이들이 계산하는 한달은 5주간, 즉 35일을 뜻한다고 했다.  목판에 자세히 새겨진 달력을 보여 주면서 설명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그원리를 공부하기엔 나의 머리가 너무나 굳었다는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이번에는 Coconut Shell을 쉽게 자르는 방법을 시범보여 주었다. 부엌앞의 빈터에 세워진 철근 끝의 도끼날같이 생긴곳에 힘껏 내려쳐서 옆으로 비틀어가면서 조각들을 떼어내는 작업이었다.

Shell안쪽에 붙어있는 하얀 코코넛을 Cheese grater와 같이 생긴 기구에 대고 위아래로 힘주어움직이자, 가루로 되여 그릇에 쌓였다.  요즘은 기계가 발달하여 손으로 일일히 하지않고 분쇄기를 이용하여 바로 가루로 만들고 있다고 시범을 보여 주기도 한다.
만들어진 하얀 가루에 부엌에서 Coconut Oil을 만들고 있던 여인이 주전자에 있는 뜨거운 물과 차거운물을 적당히 섞어 부어 반죽을 만들었다.
가루반죽을, 두부만들때 커다란 천에 콩물을 부어서 짜내듯이 헝겊을 사용하여 반죽을 그곳에 부어 꽉 짜내는 작업이 시작됐는데 나도 직접 해 보았다.  오일이 많아서인지 쥐어짜는데 미끄러웠다.
짜낸 하얀 Coconut물은 다시 큰솥에 부어 펄펄 약한시간동안 끓이면 오일이 물위로 떠올라 오면 오일만 일단 걸러내서 다시 또 끓이기를 반복하면 귀중한 Coconut Oil로 변해 식탁에 오른단다. 오일은 유통기간이 약 한달 또는 두달 동안 사용할수 있다고 한다.
기름이어서 쥐어 짜는데로 무척 미끄러웠다.  여기 아니면 내생전에 어디서 이런 체험을 할수 있을까?  좋은 인생경험을 해봤다고 자부한다.  1970년대말에, 지금은 토론토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평화식품이 두부, 콩나물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안됐을때, 가끔씩 특히 설날이나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일손을 도와주러 새벽에 아니면 직장일이 끝나고, 그곳으로 가서 두부만드는것을 도와주던, 그때는 한판에 30모 나오는 두부틀에 지금 내가 손으로 꽉 짜고있는 하얗고 얇은 보자기를 펴서 놓고,간수를 첨가하여 응고가 되여가는 두부원료를 부어서, 뚜껑을 덮고 지렛대를 이용하여 낑낑 대면서 온 몸무게를 다이용하여 짜서, 두부를 만들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게 하는,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민 초창기의 그때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어도, Volunteer로 참여하여 친지사업을 도와주면서, 이민자로서의 삶을 개척하는 인간사는 맛이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잊지 않던 사장 친구가 어느새 두부, 콩나물을 비닐 봉지에 넣어준비했다가 손에 쥐어주면서 "오늘 수고 많이 했어이...".

이여인은 Coconut Oil제작하는 과정을 우리 부부를 포함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위해 하루의 일과를 부엌에서 보내는것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때가 되니 이곳 Farming House에서 제공해 주는 인도네시아식  점심을, Tour Guide, Driver와 함께했다. 이들은 같이 식사하는것을 사양해 왔는데,  우리는 관광객으로 이들과 다를게 없는데, 아마도 회사 방침에 따르는 행동으로 보였지만, 고집해서, 같이 먹으면서 그들의 밥값, 음료수값은 내가 별도로 지불해 주었었다.  맘이 편했고, 그들 또한 구별없이 같이 밥상에서 음식을 먹었다는데, 무척 고마워 하는것 같았다.
 조그만  Chili pepper가, 점심후, 다음 체험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한컷 해 봤다.

 Lunar의 오른쪽 다리가 정상적이지 못해 신경이 쓰이는데, 안내자 Modi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해서 Keep going했는데, 예상외로 계단도 많고, 시간이 좀 걸렸다.  Irrigation은 아주 잘돼있어 물걱정은, Dry season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몸통이 큰 대나무들이 무척 많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유럽에서온 관광객들이 먼저와서 벼농사의 체험을 거의다 마치고 있었다.  두마리의 Buffalo가 모를 심기위해 물이 가득찬 논바닥을, 내가 어렸을때 사용했던 단어로 말하면, 써래질을 하는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Lunar 는 용감했다.  이들이 시키는데로 써래위에 올라타고, 고삐를 양손에 잡고, 방향을 조절하면서 마부 노릇을 한다.  이곳에서는 써래위에 올라타고, 몸무게에 의해 써래가( Rake역활) 논바닥에 깊이 박혀서 끌려 가기에 모내기를 할 땅이 평평하게 되는 것이다. Lunar옆에는 전문인이 밀착하여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고 있었다.  밀집모자를 쓴 Lunar의 모습에서 월남의 밀림지역을 탐방할때 보았던, 월남여인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내차례가 되여 써래위에 올라타고, 움직이면서, 일부러 고삐줄을 이곳 저곳으로 당겨 보기도하고 늦추어 보기도 해봤다.  어렸을때 동네 어른들께서 많이 하시는것을 봤지만, 내가 직접 해보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빨간 난방샤쓰에 흙탕물이 튀기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껍질이었고, 진짜 시골촌놈으로서의 삶을 몇분간이지만, 만킥한, 오늘의 벼농사 체험은 두고 두고 머리속에 오래 자리하고 있을것 같다.  행여나 Arrogant해질까 봐 이런 체험까지, 인생말년에 하게 하신 그분의 섭리는 깊이 이해는 못하지만, 나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하는, 그래서 내가 먹는 양식이 돈만 주고 사면 되는, 돈의 위력을 너무나 의지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세지로 이해하고, 조심스러웠다. 감사.

 이번에는 모내기를 해봤다. 옆에서 같이 모내기를 하게되는 아주머니와 멋진 포옹을 해봤지만 내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이미 살아왔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사진에서 보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연인, 아니면 오누이 같이 보여 옷에 튀긴 흙탕물은 신경쓸 대상이 안됐다.

 이곳에서는 다랭이 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 기계를 사용하여 모내기를 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안돼기에 50여년전 한국에서 했던 그방식 그대로 모두 손으로 논바닥에 꽂았다.  일손을 덜기위해 아직 국민학교 졸업전인데도 모내기에 동원 됐었던 기억이, 깊은 추억의 앨범속에서 하나씩 튀어 나왔다.



 체험을 마치고 쉬는데, 수고했다고 Coconut 쥬스를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게 해주었다. 차거운 Ice cube이라도 몇개 넣어 먹었으면 더 시원 하련만..... 그래도 맛은 잊지못할것 같다.



 같이 모내기한 아낙과 헤여지기전, 또한번 멋진 폼을 잡아봤다.  Lunar는 내가 용도페기가 됐다는 뜻인지는 잘 몰라도, 전연 개의치 않는다.  용도폐기전에 왔었더라면.....




 모든 Schedule을 마치고 Farming House에 되돌아 와서 준비해준 Snack으로 또 배를 채웠는데, 바나나를 Coconut Oil에 튀긴 비스켓과 검정쌀을 이용하여 만든 Pudding, 그리고 수박을 제공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기전, Modi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Neck lace를 Lunar와 내목에 걸어줘, 감사했는데, 이들의 글자로 우리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거리마다 Benjor Ceremony축제 장식이 걸려 있다. 일년에 2번씩 하고, 한달간 계속된단다.

탐방을 마치고 그들과 헤여질때, Mudi가 아까 자기네 기록물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우리 이름을 새겼던 잎사귀로 만든 Neck Lace를 슬쩍 Lunar와 나의 손에 쥐어준다.  같이 묶어놓은 오래된 엽전은, 한때는 이곳에서 화폐로 통용됐었던 중국에서 들어온, 지금은 이렇게 기념물로 사용되는 기호품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목걸이를 마련 했으니, 오래 오래 목에 걸고 다녀야 될것 같다.
오늘밤은 깊은 잠에 빠져들것 같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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