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30, 2022

우리는 한국전참전 미군용사들의 고마움 항상 새겨야. 한미동맹 영웅 4만3808명 새기다…美 ‘6·25 추모의 벽’ 제막

 간첩 문재인과, 박지원 그리고 더불당 우상호를 비롯한 좌파 푸락찌들이 이뉴스 보도를 보면서, 환영할까? 아니면 김정은 동지에게 누를 끼치는 행위라고 지랄 발광을 해댈까?

좌빨이건 보수건,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들의 6.25참전으로,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 모택동의 병사들이 꽹과리 치면서 한반도에 진입하여, 김일성 공산군이 불법 남침할때 합세하여 서울을 비롯한 남한 전역을 공산당 천지로 만들었을때, 이를 물리치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봤었지만, 3년간의 전쟁을 치르고, 결국은 다시 제자리에서 휴전협정을 맺고, 오늘에 이르러 우리한반도는 Technically 아직도 북괴와 전쟁중에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그래서 항상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연합군들의 한국전 참전으로 북괴군을 물리치고,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한 그고마움을 잊지않고,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참전 16개국의 병사들이 전쟁중 산화한 그명단을 새긴 비석이나 기념탑이 있다는 뉴스를 들어본적이 없고, 부산에 유엔군 묘지가 있는것만 기억하고 있다.

오래전 애티오피아를 탐방여행할때, 수도 아디스 아바바의 외곽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산화한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묘비가 있는 기념공원을 참배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8/08/ethiopiaafrica-322-addis-ababa-ethiopia.html

The Ethiopia is one of 16 countries that dispatched their armed forces to Korea during Korean war( Civil war) erupted 1950 by sudden attack from northern part of communist regime in Korean peninsula  and lasted for 3 years leaving nothing but ashes on both sides with a lots of loss of lives.
After 60 years from that time I and Lunar stood in front of monuments in memorial park in Addis Ababa,Ethiopia that made us think again those days when I was just 5 and 7years old with armistice was signed between UN forces and North Korea.  I did nothing but cried for edible things to fill stomach at that time that made my parents felt so sorry for their kids including me.

동행한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애티오피아가 너무도 가난해서, 6.25참전용사들의 영혼을 모시는 장소하나 조성하지 못해, 몇해전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지금 내가 서있는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산화한 용사들의 개개인 비석과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공원을 만들게 됐었다는 설명도 들었고, 공원조성을 한 대한민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었고, 나는 당시에 우리나라가 이제는 이분들의 덕택에 잘사는 나라가 됐음을 되새기는 계기가 돼기도 했었다.

미국은 한국전에 참전하여 산화한 수만명의 명단이 와싱턴의 국립묘지에 세워진 비석에 다 새겨져 있고, 나자신도 그곳을 방문하여 감사의 묵념을 드렸던 기억이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6.25 전쟁은 수많은 미군과 연합군이 참전하여 북괴군을 무찌른 전쟁이지만, 많은 민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왔었다.  실질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승리한 전쟁이었는데.... 그래서 승리한 전쟁으로 기리기위해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건립을 추진한지 18년만에 그결실을 맺어 피를 나눈 3만 6634명의 미군과 7174명의 카투사 전몰장병들의 이름이 새겨진 역사적 상징물이 백악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4키로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은 정말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이날 행사에선 미국 각군의 군가와 함께 아리랑과 애국가도 울려 퍼졌었다.

한국전의 전쟁영웅 '윌리엄 웨버'예비역 대령(1925∼2022)등 참전용사들이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2013년 건립을 목표로 2004년부터 추진해온 이사업은 우여곡절끝에 전전69주년인 올해 결실을 맺었다. "삶을 마감하기전 추모의 벽을 보고 싶다"던 웨버 대령이 타계한지 석달만이었단다.

이러한 사업을 우리나라가, 애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기위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추모공원을 조성해준것 처럼, 만들어 주었었으면 더 의미가 깊었을텐데....간첩 문재인과 그찌라시들이 그동안 허송세월을 보낸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나라에 상주해 있는 미군들을 눈엣가시처럼 대해온 망국적 행위와, 혈맹인 미국에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었을 뿐이었다. 

다행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안보강화를 주창하여, 지금은 한미혈맹의 동지애는 그어느때보다 튼튼해졌다고 하겠다. 

이날 헌화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참석하여, 더 큰 의미를 부여한셈이다. 1952년 경기연천군 '포크촙힐'전투에서 아버지 한상순씨를 잃은 신희씨(72세)는 카투사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의 벽을 찾았다.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탁본하며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에 이름이 각인됐다는게 아버지의 원을 풀어드린것 같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박보훈처장은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위해 기꺼이 포화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었고, 조태용 주미대사도 참석자들에게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대한민국과 미국은 혈맹의 관계를 가면 갈수록 돈독히 해서, 호시탐탐 남침을 또 노리는 북괴 Regime이 6.25때처럼 또 오판하여 재남침 할수없도록 필요시는 선제타격을 해서라도 그들의 야욕을 분쇄시키는데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필요시는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라는 국토방위 신념은 우리 국민들에게 마음 든든함을 확실하게 보여준 쾌거였었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설치된 ‘추모의 벽’ 제막식을 하루 앞둔 26일(현지 시간) 6·25전쟁 전사자의 유족들이 하얀 장미꽃을 전사자의 이름 위에 올려 두고 있다. 추모의 벽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 4만3808명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워싱턴 추모의 벽 제막]
6·25전쟁 정전 69주년 맞아 ‘추모의 벽’ 워싱턴서 제막식
전사한 한미 장병 이름 새겨… 백악관서 1.4km거리에 세워져
尹-바이든 ‘동맹 강화’ 메시지

비가 내리던 26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들어선 앤 임리 씨(67)의 손에 하얀 장미꽃이 들려 있었다. 그는 둘레 130m, 높이 1m의 거대한 화강암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한 이름 앞에 멈춰 섰다. ‘로버트 킹웰 임리.’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KATUSA)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에서 앤 씨는 삼촌의 이름과 마주했다. 그는 밝게 웃는 23세 청년의 모습이 담긴 낡은 삼촌 사진을 이름 옆에 뒀다. 그러곤 정성스럽게 연필로 탁본을 떴다.

다음 날인 27일 이 공원에서는 7000여 명의 6·25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의 벽 제막식이 열렸다.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던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기리기 위해 미국 참전용사들이 건립을 추진한 지 18년 만이다. 피를 나눈 3만6634명의 미군과 7174명의 카투사 전몰장병의 이름이 새겨진 역사적 상징물이 백악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4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것이다. 제막식의 첫 순서로 6·25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미국인 유족들과 한국인 참전용사들이 호명되자 참석자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에선 미국 각 군의 군가와 함께 아리랑과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전쟁 영웅’ 윌리엄 웨버 예비역 대령(1925∼2022) 등 참전용사들이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2013년 건립을 목표로 2004년부터 추진해 온 이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정전 69주년인 올해 결실을 맺었다. “세상을 뜨기 전 추모의 벽을 보고 싶다”던 웨버 대령이 타계한 지 석 달 만이다.

한미 정상은 이날 한목소리로 한미 동맹 강화를 다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추모의 벽은 한미 혈맹의 강고함을 나타낸다”며 “역사적 상징물이자 평화의 공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축사에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는 “미국과 한국 청년들이 자유와 한미 동맹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며 “추모의 벽은 양국이 앞으로도 나란히 함께 설 것이란 영원히 지속될 약속을 상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지키려 모든걸 바친 삼촌… 영웅으로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한미동맹 영웅 새기다
4만3808명 이름 새긴 ‘추모의 벽’… 제막식 하루 앞 500여명 헌화식
친구 이름 찾고 눈시울 붉힌 80대… 오빠 사진 그려진 셔츠 착용 70대
새겨진 부친 이름 탁본 한국인 등… “추모의 벽이 우리의 근거지 됐다”


2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추모의 벽’ 제막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더글러스 엠호프 미국 부통령 남편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왼쪽부터)이 6·25전쟁 참전국 국기와 한미 정상이 보낸 화환 앞을 지나고 있다(왼쪽 사진). 1952년 경기 연천군 ‘포크촙 힐’ 전투에서 전사한 한상순 씨의 아들 한신희 씨가 카투사 장병이던 부친과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제공·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26일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있는 ‘추모의 벽’을 찾은 앤 임리 씨(67)의 삼촌 로버트 씨는 1950년 7월 제2보병사단 소속으로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았다. 로버트 씨는 1950년 11월 평양 인근에서 부대가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리자 전우들이 후퇴할 수 있도록 부상당한 손으로 끝까지 기관총을 놓지 않았다. 앤 씨는 “삼촌에 대해 물으면 할머니와 아버지는 늘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먼 한국 땅에서 실종된 삼촌을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삼촌의 유해는 실종 50년 만인 2000년 발견됐다. 미군은 유전자검사를 통해 삼촌의 신원을 확인한 뒤 2007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은성훈장을 수여했다. 앤 씨는 추모의 벽에 새겨진 삼촌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도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을 거예요. 전우들을 살리고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삼촌을 영웅으로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합니다.”

6·25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 500여 명은 제막식을 하루 앞둔 이날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식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노병부터, 아빠 손을 잡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증조할아버지를 찾아온 어린아이까지 다양했다. 참전용사의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맞춰 입은 유족들도 있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온 참전용사 로버트 자무디오 씨(88)는 친구인 제임스 크리번 씨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크리번 씨는 쌍둥이 형과 함께 나이를 속이고 1950년 18세에 참전했다. 1953년 경기 연천군 전초기지를 방어하던 크리번 씨는 중공군의 공격으로 전우 40여 명과 함께 전사했다. 약 1km 후방에 배치됐던 형 월터 씨는 박격포탄에 부상을 입은 채로 동생을 찾으려 구호소의 시신을 하나하나 뒤졌지만 끝내 데려오지 못했다. 자무디오 씨는 빼곡한 이름들 속에서 친구의 이름을 찾자 “이제 내 소망이 이뤄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0년 청천강 전투에 참전했다 실종된 오빠 조지프 셀버그 씨의 동생 재닛 씨(71)는 ‘결코 잊지 말라(Never Forget)’는 문구와 함께 오빠의 사진과 이름, 실종 장소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재닛 씨는 아직 오빠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그는 “미 정부로부터 받은 파일 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전장에 있던 오빠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들이 그대로 있었다”며 “미국인들이 오빠의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하는 추모의 벽이 가족을 잃은 우리의 근거지”라고 했다.

이날 헌화식에는 한국인 카투사 장병 유족들도 참석했다. 1952년 경기 연천군 ‘포크촙 힐’ 전투에서 아버지 한상순 씨를 잃은 신희 씨(72)는 카투사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의 벽을 찾았다. 그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추모의 벽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탁본하며 “세계의 중심인 워싱턴에 이름이 각인됐다는 게 아버지의 원을 풀어드리는 것 같다”고 했다. 박 보훈처장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포화 속으로 뛰어든 영웅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태용 주미 대사도 참석자들에게 “여러분 가족들의 희생 덕분에 한국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이뤘다”고 했다.


백악관과 미 전역 연방정부는 제막식이 열린 27일 6·25전쟁 정전 기념일을 맞아 조기(弔旗)를 게양했다. 미국은 2009년부터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에 이어 두 번째로 6·25전쟁 정전일에도 조기를 달아 기념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728/11469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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