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1, 2021

민주화유공자증 반납한 민주당 김영환 부부 “온 국민 같이한 민주화때 조금 더 앞장섰다고 마르고 닳도록 혜택은” 부당.

 

문재인이 이해하고 있을까?  김영환 부부가 유공자증을 반납한 그심정을 문재인이는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등등으로 대통령까지 하고 있는 문재인이가 오래전 민주화 운동할때 몸사리느라고 직접 그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사법시험 본다는 핑계로 시위현장에는 분명히 없었고,  그후광을 제일많이 받은 운동권들 중에서 문재인이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권변호사'라는 허울을 쓰고, 시대적 흐름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마치 천사같은 마음으로 인권변호사를 한답시고, 현장에서 민주화 실현을 위해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경찰의 최루탄과 싸우면서 항거할때, 그는 책상에 앉아, 위임받은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서, 창문너머로 민주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사무실 창문틈새를 통해 들어오는 미미한 최루탄 개스를 마시기 힘들다고 물수건에,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뒷짐지고 강건너 등불처다보듯이 수임료 벌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5/11/IOOQHJCBC5DQ5OL4E222TIPMJM/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영환 전민주당 의원 부부가,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유공자증"을 반납했다.  문재인과 그찌라시들의 하는 행동이 너무도 치사하고, 마치 자기네 몇사람들의 전유물인것 처럼 울궈먹고, 또 울궈먹고....특히 문재인같은 인간은 사법시험 공부한다고 민주화 운동대열에 서지도 않았었고, 이해골찬같은이는 5.18민주화 운동때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5.18유공자 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매달 연금형식의 국민세금을 주머니에 챙기고 있는 양심 불량자다. 

반납이유를 김영환 부부는 "전 국민이 동참해 이룬 민주화에 조금 더 앞장섰다고 오랜기간 마르고 닮도록 혜택을 누리는게 양심상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주화 운동을 국민의 짐이자 조롱거리로 만든 운동원 정부에 화가난다" 라고 설명했다. 

부인 전은주씨는 "젊은 시절 가슴이 뛰는대로 이상을 추구한거지 희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김때충정부때 분위기에 휩쓸려 유공자 신청은 했었지만, 평생 많은 부담을 느껴왔었다. 남편이 65세가 넘으니 월 5만원씩 주겠다고 연락이 오더라. 왜 우리가 이런 돈까지 받아야 하는가?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수있는 또 다른 방법은 내팽개치고...."  

민주화 운동했다는 허울좋은 가면을 쓰고, 문재인이가 대통령 하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민주화 운동했다고 유공자증을 받은 우리끼리 누릴수 있는 모든 국가적 혜택을 최대로 활용하면서, 우리끼리 우리의 주머니를 배부르게 채우고 또 대접까지 받자는, 시정잡배같은, 찌라시들의 민주화를 위한 국가관에, 이제는 혐오증까지 느껴진다.  김영환 부부의 이번 결정이 그러한 쪼잔한 자들의 대열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국가관을 선택했다는데 깊은 경의를 표한다.

전은주씨의 한마디는 진정한 동료애를 느끼게 했다. "동고동락한 후배들이 다 한자리씩 잡았으니 잘되길 바랐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저렇게 밖에 못하나' 실망했다"라고.  지금까지 민주화운동, 춧불혁명이 마치 자기네들 전유물인것 처럼 악용해왔던, 찌라시들에게서는 그렇게 진정어린 국가관과 동료애를 설파한 자들은 본적이 없었기에 더 깊이 느껴지는 짧은 한마디였었다.

남편 김영환의원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운동권이 이끄는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에게도 영광이다. 그래야 어디가서라도 자랑스럽게 '내가 민주화운동했다'고 얘기할수 있으니까. 8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시작한 정권이 지금 어떻게 됐나. 문재인주변에 국무총리후보자, 여당대표, 통일부장관 등등 운동권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는데 도대체 국가를 위해 무슨일을 했나? 유공자증을 던지고 나니 온 국민이 환호한다. 민주화 운동이 완전히 맛이가고 존경을 못받는 파탄 지경에까지 치닫고 있다. 이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라고.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시절에 그중심에서 젊음을 불살라 가면서 활동했었던 김영환 부부의 절규를 듣고 있는가? 이제라도 남은 일년간은,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국민들위에서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쪼잔한 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유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데 앞장서라"라고 충고를 한다.  그래야 청와대에서 무사히 걸어 나올수 있을것이기에 충심으로 하는 말이다. 

내가 문재인이라면 김영환 부부에게 전화 또는 카톡을 해서 "후배님 부부를 통해서 '진정한 민주화운동이 뭔가를 다시 깨닫게 됐소, 그용기에 감사하며, 나도 역사에 남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기위한것도 있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삶속에서 고생하는 국민들과 국제무대에서 뒤쳐져가고있는 조국의 앞날을 위해 매진 하겠소"라고.


김영환(왼쪽) 전 의원과 아내 전은주씨가 6일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치과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부는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이룩한 민주화인데 조금 앞장섰다고 해서 오랜 기간 마르고 닳도록 혜택이나 명예를 누리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김영환(왼쪽) 전 의원과 아내 전은주씨가 6일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치과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부부는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이룩한 민주화인데 조금 앞장섰다고 해서 오랜 기간 마르고 닳도록 혜택이나 명예를 누리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김영환(66) 전 의원과 전은주(63) 부부의 20대 시절은 민주화 운동이 삶의 전부였다. 연세대·숙명여대 재학 시절 시위 현장을 누비다 각각 구금됐고 징역을 살았다. 그런 부부가 지난달 민주화유공자증을 국가에 반납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국가보훈처가 유공자 지위 반납을 위한 서류 양식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부부는 더불어민주당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민주화 유공자 대상과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을 낸 것을 보고 이 같은 결심을 했다. “전 국민이 동참해 이룬 민주화에 조금 더 앞장섰다고 오랜 기간 마르고 닳도록 혜택을 누리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만난 부부는 “민주화 운동을 국민의 짐이자 조롱거리로 만든 운동권 정부에 화가 난다”며 “후회는 없다”고 했다.

◇ 유공자 권리 포기해 홀가분

-유공자증을 반납할 필요까지 있었나.

김영환(이하 김): “특혜 입법을 시도함으로써 남아 있는 한 줌의 체면마저 거덜 냈다. 우리가 지난날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은 특권을 내려놓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자는 생각이었지 가산점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했다. 피해라면 대학을 10년 늦게 졸업한 정도인데 이걸 피해라고 할 수 있는가? 전 국민이 동참해 이룩한 민주화다. 조금 더 앞장섰다고 해서 감투 쓰고, 오랜 기간 마르고 닳도록 혜택이나 명예를 누리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식들도 동의했다.”

전은주(이하 전): “젊은 시절 가슴이 뛰는 대로 이상을 추구한 거지 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 분위기에 휩쓸려 유공자 신청은 했지만 평생 많은 부담을 느껴왔다. 남편이 65세가 넘으니 월 5만원씩 주겠다고 연락이 오더라. 우리가 왜 이런 돈까지 받아야 하는가.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 전 의원 부부를 포함해 2020년 기준 5·18 민주유공자 숫자는 4406명이다. 유공자 본인과 배우자, 자녀는 중·고·대학교 수업료 같은 학비 지원을 받고, 취업 시험에서 가산점(모든 과목 만점의 5~10%)이 부여된다. 수혜자 중에는 정치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지만,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유공자 명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설훈 의원 등은 지난 3월 ’1964년 이후 유신 반대 투쟁과 6·10 민주항쟁 공헌자'로 대상을 확대하고, 주택 분양 같은 지원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운동권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자 엿새 만에 이를 거둬들였다.

-막상 반납하면 서운한 감정도 들었을 것 같은데.

김: “국가보훈처에서 처음에는 ‘보훈 가족으로 남아 달라’며 설득했다. 계속 거절하니 권리 포기 각서를 만들어왔다. 자기들도 이런 일은 처음인데 차제에 나름의 절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돈이 있다면 천안함 폭침 같이 억울한 사건으로 목숨 잃은 사람들을 더 많이 도와주는 게 맞는다. 뜻 있는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리라고 생각한다.”

전: “보훈처 직원이 자택까지 찾아와 서명을 받아갔다. 후회는 없고 홀가분했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설훈·우원식 의원 모두 다 운동권 출신들이다.

김: “운동권 사람들이 나와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배신자’나 ‘탈영병’ 같은 딱지를 붙이는 이들도 있다. 지금 여권에서 민주화 운동만 놓고 따진다면 연세대 출신이 가장 큰 계보를 이루고 있을 거다. 우상호·윤후덕 민주당 의원이나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서로 경조사도 챙기고 막걸리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인간적인 사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길을 걸어온 지 오래됐다.”

전: “뒤에서 욕하고 있을 것이다(웃음).”

-송영길 신임 민주당 대표도 연대 출신 운동권이다.

김: “1980년대 초중반 전기 기술자로 노동자 생활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내가 치대 실습생일 때 사랑니까지 뽑아줬을 정도로 가깝고 부부들끼리도 각별했다. 평소 부지런히 독서하고 공부하는 친구다. 한미 FTA에 찬성했을 정도로 용기 있는 사고를 갖고 있다. 다른 운동권 후배들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만큼이나 제복을 챙기자’는 첫 메시지를 보고 고맙다고 생각했다.”

◇ 운동권 정부, 기대 컸지만 실망

부부는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1985년 만나 결혼했다. 처가에선 “똥끼리 만났다”며 못마땅해했고, 전씨도 “처음 봤을 때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운동권 후배들이 주축인 문재인 정부를 응원하는 마음은 없었나.

전: “동고동락한 후배들이 다 한자리씩 잡았으니 잘되길 바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저렇게밖에 못하나’ 실망했다.”

김: “운동권이 이끄는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에게도 영광이다. 그래야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내가 민주화 운동 했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8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시작한 정권이 지금 어떻게 됐나. 문 대통령 주변에 국무총리(후보자), 여당 원내대표, 통일부 장관 등 운동권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했나. 유공자증을 던지니 온 국민이 환호한다. 민주화 운동이 완전히 맛이 가고 존경을 못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김영환 전 의원이 지난달 26일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치과에서 민주화 유공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김영환 전 의원 제공
김영환 전 의원이 지난달 26일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치과에서 민주화 유공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김영환 전 의원 제공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 “내 생각만 100% 옳다는 확신이 제일 큰 문제다. 자기네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좌든 우든 이런 사고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남편이 정치할 때도 시민단체·여성단체 활동을 했지만 생각이 진화하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느낌이라 답답했다. 나중에는 같이하기 어렵다는 생각까지 들어 점점 발을 뺐다.”

김: “학생 운동에 성공해 곧바로 명예와 권력을 얻으니 자신을 돌아볼 성찰의 기회가 없었다. 도덕적 우월감이 충만하니 자기가 잘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묻지 마’ ‘입 닥쳐’ ‘너 뭐 했니?’ 늘 이런 식이다. 자신들은 민주화 세력으로서 정통성이 있다고 자부할지 몰라도 이번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 민주당에도 민주주의 없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뭔가.

김: “민주당만 봐도 당내에 민주주의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도 당사에서 떼야 한다. 학교를 잘리고 감옥을 갈 때의 각오라면 대통령에게 직언도 하고 국민을 향해 올바른 목소리도 내야 하는데 당권에 붙고 권력에 붙어서 침묵하고 동조한다. 그러니 ‘문자 폭탄’이 활개 치는 거다. 이런 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전: “시민단체도 노무현 정부 들어 예산이 투하되면서 관변으로 변해갔다. 우리 때는 운동으로 했는데 이제는 직업이 된 거다. 예산으로 월급을 주니까 예산이 없으면 일을 안 한다. 예산 받는 일만 하니 정부 비판을 못하고, 시민운동은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2018년 경기지사 선거를 치를 때 그 어느 여성 단체도 이재명의 여자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후배들인 데다 성남시에서 재정 지원을 받으니까 ‘그 사람 일은 잘하잖아’라고 하더라. 세월이 흐르면서 순수성이 바뀌고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배신감을 느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여성단체들이 박원순 피해자에 대해 침묵하거나 2차 가해를 방조했다. 말도 안 되는 거다.”

◇ 민주화운동 긍지 훼손돼 화가 나

-이렇게 각을 세우면 후배들로부터 더 고립되는 것 아닌가.

김: “정치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 일이다. 5년 뒤에도 우리 중에 정치하고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막걸리도 먹고 옛날 얘기도 하면서 같이 살아야 하는데…. 청주고·연세대 출신 카톡방이 있는데 노영민 전 실장, 변재일 의원도 멤버다. 친구들을 배려해 정치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데, 요즘엔 자꾸 정권 비판적인 게시물들이 올라와 난처하다. 정치가 사람을 갈라 놓더라. 그렇지만 그들을 인간적으로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전: “숙대 운동권들 카톡방이 있는데, 퇴장하면 ‘언니 왜 나갔어요?’ 전화 와서 또 불려 들어가고 한다. 한두 명이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는데 거기에 동의할 수 없어 조용히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나는가.

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긍지가 훼손됐다. 지난해 총선 때 처음 보수당(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는데 젊은 선거 운동원들이 ‘민주화 운동 투옥 경력을 프로필에서 빼면 안 되냐’라며 진지하게 얘기하더라. 이 문제 때문에 선거 캠프가 하마터면 쪼개질 뻔했다. 여태까지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게 자부심이었는데 그거를 다 죽여 놓은 거다. 그래서 우리도 누가 묻기 전에는 어디 가서 얘기 안 한다.”

김 전 의원은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지낸 4선 의원이지만 근래에는 낙선하는 일이 더 많았다. 국회의원 선거만 도합 네 차례 미끄러졌고, 지난 2018년 바른미래당 후보로 나선 경기지사 선거에선 득표율이 4.8%에 그쳐 선거 비용조차 보전받지 못했다. 당적도 여러 차례 바뀌어 지금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그는 “철새는 철새인데 추운 지방만 찾아가는 철새”라고 했다. 아내 전씨는 “정치나 선거는 너무 소모적”이라며 “이제 허업(虛業)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는 싫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 전 의원은 “운동권의 내로남불과 위선을 계속해서 고발할 것”이라며 “‘너희는 그때 뭐 했니?’라는 반문에 꿇리지 않고 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김영환

1955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청주고와 연세대 치과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학내 시위를 주도해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2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고, 석방 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0년 서울에서 광주 상황을 알리는 전단을 뿌리다 합수본에 연행돼 42일간 구금됐고, 이로 인해 2003년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 권유로 정치에 입문, 15·16·18·19대 국회의원(경기 안산상록을)에 당선됐고, 2001년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2016년 총선은 국민의당 소속으로, 2020년엔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5/10/VPYL52UAHJHPZI6CY72K7MAP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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