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02, 2019

Killarney Camping과 French River Provincial Park 탐방 - 역사적으로 뜻이 깊은 곳. 또 다시 올기회가 있을까?



 7월22일(월요일), Camping 짐싸고 되돌아오는길에 French River Provincial Park 탐방, 역사적 고찰(5일째, 마지막날)

며칠사이 우리부부의 보급자리 역활을 해주었던, Killarney Provincial Park과 아듀인사를 해야만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어, Tent를 접고,  Picnic Table 위로 지붕 역활을 했던,Tarp을 걷어내고, 하나씩 정리해서 차에 다 싣고, 아침 9시전에 핸들을 잡았다.  앞으로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는 기약이 없으니 정문을 빠져 나올때, 느끼는 감정이 묘하다. 그래도 세월은 무심히 흘러갈것이다. 오던지 말던지....
French River를 오래전에 들렸을때의 푸른강물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집에 오늘길에, Goolge의 Navigation을 이용하여 French River Provincial Park에 들려 보기로하고 차를 몰았다. Killarney Park에서 약 1시20여분 걸리는것으로, Route를 잘 보여 주어, 쉽게 찾을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Provincial Park으로 지정되여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Park 관리를 하기위한 직원들은 없었고, 주차장에 Parking하고 안내판에 새겨진 경로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 가니, 첫번째 보이는게 옛날 원주민들이 살았던 Cone모양의 Replica 천막집이 눈에 들어왔다.
외형만 덩그러니 있었고, 안에는 Fire place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그옛날의 생활상을 초라히 보여준다. 그나마 건설해 놓은것이 최근인것 같다. 지붕을 덮은 천이 새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Provincial Park의 모양새를 갖추기에는 시간이 걸릴것으로 추측되기도 했었다. 주차장에는 주차된 차들만 있었고, Register 또는 Camper나 Day user들에게 Fee를 징수하는곳도 없었다. 나는 Pass를 구입했기 때문에 어차피 Fee 내는것은 면제지만....


이곳 French River는 "서쪽으로 통하는 카누뱃길"이라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Ottawa, Mattawa강들과 Nipissing 호수를 연결하여, 더 북쪽에 있는 커다란 호수들과 그리고 더 멀리 서쪽까지 이어져, St Lawrence를 중심으로 초기 정착민들이 삶의 터전을 잡게 한곳이었다. 캐나다의 초기 탐험가들, 선교사들 그리고 모피장사꾼들이 17세기에서 19세기를 통하여 활동하면서 이 수로를 이용했었던 것이다.  서부의 평원지대 초기 탐험의 Pioneer였던, La Verendrye, Mexico북쪽의 땅까지 내륙지방을 탐험하여 태평양까지 도달했었던 첫번째 유럽인, Mackenzie, 그리고 위대한 탐험가이면서 최초의 지도를 만들었던 Thompson 등등의 초기 탐험가들이 이곳을 이용했었다는 설명문이 당시의 어려웠을 상황 을 상상하게 해준다.

캐나다에서는 유명한 오늘날의 Hudson Bay Department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해 놓은 내용을 여기에 옮겨 봤다.  Pierre-Esprit Radisson가의 초기탐험에 대한 설명서는, 이들이 불법으로 탐험을 시작했다는것으로 시작된다.  1659년에 Pierr Radisson과 그의 처남, Medard Chouart Des Groseilliers는 Superior호수의 북쪽을 탐험하면서 모피 장사를 하기위해 불법으로 Montreal을 출발한다. 그들은 Hudson Bay지역으 로 부터 모피가 풍성함을 알고 사업구상을 하게된다. 프랜치 정부로 부터 협조받기에 실패한 그들은 영국쪽으로 선을 댄다. 1670년경에 그들은 Hudson Bay 회사를 설립하는 획기적인 결과를 획득하게 된다.  그로부터 약 20여년동안 Radisson은 예상치도 않게 Hudson Bay를 운영하면서 불란서와 영국의 보조를 받으면서, 캐나다와 중남미까지 세를 확장한다.  1687년에 그는 영국인으로 귀화하여 그의 남은 생애를 런던에서 보내게 된다.

방향표시를 따라 더 깊숙히 걸어서 French River를 보기위해 전진했다.  아뿔사 앞에 보이는것은 French River Visiting Centre가 있고, 그곳에는 박물관 까지 아주 훌륭하게 잘 꾸며져 있는게 아닌가? 전에 방문했을때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명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탐방객들도, 방학을 맞은 어린 학생들과 함께 상당수가 이미 박물관안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인생선배들의 정착기에 상상해 볼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 풍부하게 진열되여 있었다.  각종 동물들과 파충류,  한 Section을 지나칠때마다 자동적으로 Audio System을 통해 설명이 흘러 나와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의 야외실습장 같은 느낌이 든다.


French River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한 벽화도 일품이었다.
박물관의 입구쪽에는 Museum Usher 이 근무하고 있었고 Counter위의 조그만 안내판에는 박물관을 구경하는데 Fee을 내도록 표시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징수하지 않는다는것을 알았다. Senior Rate 적용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구경하라고 설명까지 해주어,아직은 무료입장으로 일종의 Promotion기간인것으로 이해됐다.  각종 Souvenir 들도 진열되여 탐방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Museum안의 시설은 최신 형으로 잘 갖추어져 있음을 구경하면서 새삼 느낄수 있었다. Lunar가 벽화를 카메라에 저장 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초기의 모피상들이 어떻게 모피 장사를 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위해 모피와 모피용 동물들을 노획하는데 사용됐었던 것으로 이해되는 Trap 또는 Net들이 시선을 모은다.


"옛날에는 물물교환하는것, 또  친분관계를 맺음으로써, 원주민들과 불란서사람들이 교역을 하면서 관계가 돈독해지자, 의외로 서로간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는 반사이익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었다. 이러한 협조와 아량은 그들이 서로같이 어울려 살면서 함께 일도하고 도우면서 캐나다의 정신을 개발하는 초석이 된것이다."라는 설명문이 눈길을 끈다.


"벌목은 French River 지역의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업종이었었다.  French River마을, 재제소 업들이 매우 발달하여 1875년경에는 French River 델타지역이 최고조의 산업이 발달하게된다.
1922년경에는 그동안 번성했던 산업이 쇠퇴하면서 타운쉽이 페허가 됐는데, 당시의 페허의 흔적들을 오늘날에도 볼수있다."라는 설명이 당시의 흥망성쇠를 보는것 같다.



동양적인 정서에서는 뱀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흉물로 취급되지만, 이곳 서양에서는 생명체로서의 존중을 받는다.  Lunar가 가리키고 있는 뱀은 Garden Snake로,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들이 집뜰에 나타날때는, 그냥 보기만 한다. 이뱀들이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류에 붙어있는 여러 벌레들을 잡아먹는 이로운 일을 하기때문이란다.





웅장한 바위넘어로는 French River의 잔잔한 물줄기가 갈길을 찾아 흘러가고있다.








또 다른 설명문이 French River의 다른면을 보여준다.
프랜치리버는 Nipissing 호수로 부터 Georgian Bay까지 약 110 Km의 항해를 한다.  이강물은 빙하시대전부터 이곳을 통해 흘러갔었고, 빙하가 녹아 흘러가면서 지면이 바위로 뒤덮히게 하는 자연경관을 만들어 냈다.  이물이 Georgian Bay로 흘러가면서 French River는 아직 발길이 닿지않은 황무지같은 여러 Bay들과, 해협 그리고 심한 파도를 발생하면서 지표면의 암반을 마치 조각해 놓은것 처럼 특히하게 만들었다.  지질학자들은 생각하기를, 이러한 형상은 엄청난 홍수가 지나가면서 자 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나 라는 쪽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위로는 Sudbury, 서쪽으로는 Manitoulin Island, 남쪽으로는 Collingwood, 그리고 동쪽으로는 French River로 이어지는  한바퀴 자동차 여행을 할수 있는 최적으로 코스로 알려져있는 코스를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이코스만을 택해서 Driving하지는 않았지만, Agawa Canyon을 탐방할때, Manitoulin Island를 탐방할때, 또 이번에 Killarney Park에서 Camping하면서 다 지나갔던 길들이어서 더 정겨웠다.
French River를 가로지르는 특이한 모양의 철재 Bridge는 2005년도에 겨울철에 Snowmobile을 즐겨타는 동호인들이 헌금하여 세 웠다고 한다.  Snowmobiler 들을 위한,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길이가 512피트, 넓이가 12피트, 높이가 90피트이다.  중형의  Grooming Machine이 통과할수 있고,동시에 100개 이상의 Snowmobile이 통과할수 있도록 설계되여있다.
이다리는 French River의 새로운 명물로 많은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전에는 강언덕에서 강물이 흐르는것을 봤었는데, 이제는 강한가운데서 여유있게 주위경관을 음미할수 있게 되여, 앞으로  더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을것은 확실한것 같다.



끈질기 나무의 생명력은 그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을것 같다. 어떻게 바위속에 뿌리를 내리고 태연하게 삶을 영위할까?


옛날 선조들의 초기 정착지와 그들이 이지역을 중심으로 왕래 했었던 통로를 한장의 지도에 간단히 표시했다. 오늘 우리는 쉽게 탐구하지만, 당시의 선배들은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동안에 이지역들을 누 비면서 삶의 터전을 닦았을 것이다.  그분들 덕택에 오늘 우리는 한눈에 간단히 모든것을 파악하면서 감상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 했었지만,이 Bridge는 겨울철 Sports중 하나인 country skier들이 주로 이용하게되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다리라고 한다.  여름시즌중에는 탐방객들이 더 깊이 전진하여 산세를 즐기면서 Trekking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허리역활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이곳을 방문 한다는것은, 강을 건널수 없어, 멀리 사진 한장 찍는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금강산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비경들이 금강산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암절벽, 유유히 흐르는 강물줄기, 기암절벽바위에 딱 붙어서 살아가는 힘찬 나무들, 이모두가 우리 인간들에게 끈기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산교육장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벌써,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 됐다는것을 알 았을때는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거의 4시간  이상을 French River의 비경속을 헤맨 것이다.
이런 멋진  Wilderness를 탐방하는맛에 또 Camping을 떠날수 밖에 없을것 같다. 감사.



 7월 21일, La Cloche Silhouette Trail 탐방, Birds Specialists, Ailya와 동료들과 대담



Supper는, 막내부부가 남겨놓고간 "감자 수제비"로 성찬을 Lunar가 정성들여 만들었다.  처음 먹어보는 감자수제비, 밀가루대신에 감자가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맛이 일품이다. 곁들인 야생마늘 김치가 맛을 더해주었다.



호수의 윗쪽으로 연결되여 있는 Trail에서 내려다 보는 George Lake의 주위 경치는 어디를 봐도 몇자의 글로 그아름다움과 위용을 표현해 내기에는 인간들의 표현방법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한탄할 핑계밖에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간 지점에서 Park Ranger 두명을 만났다.  이들은 대학생들로 이곳에서  Summer Job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지나치는 Trekker들을 상대로 야생조류들에 대한 서식처, 생활습관, 맹금류 등등에 대한 상식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Ailya와 또 다른 동료는 우리가 여러 질문을 던지자 무료하게 그들의 고객을 기다리다(?) 신이 나서 쉴새없이 설명을 해주었다. 위사진의 오른쪽 새의 부리는 어린 독수리의 박제한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들 수영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수영복을 준비해 오지 못한것을 무척 후회했었다.
그래도 나와 Lunar는 Trekking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준비의 부족함을 위로했다.

이곳 공원에는 Trail routes가 참으로 많다는것을 자료를 통해 알게됐다. 그중에서 몇개를 골라 걸을 생각으로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엄청나게 많다. Granite Ridge trail(2.3Km), Chikanishing Trail(2.7Km), Cranberry Bog Trail(4 Km), The Crack(6Km), Little Superior/Proulx Lake trail(12 Km), East La Cloche Trail(10Km), West La Cloche Trail(21Km), Freeland Trail(12.4Km), Chikanishing Trail-이곳은 Main office에서 부터 시작하여 Main camp ground Hill을 지나 왼쪽으로 꺽어 Trout Creek을 거쳐 Hwy637을 건너 Chikanishing Access Road를 따라 합류하는 코스 (6.5Km), Collins Inlet Trail(14.3Km),





Trail 시작점으로 부터 가까운 곳의 George Lake 끝쪽에 Board Walk처럼 설치된  Bridge가 Trekker들의 발길을 편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Trail route는 전부 빨간 Rock위를 걷는 Circle형으로 된 한바퀴 도는 코스로 주위 경관이 그렇게 경이로울수가 없었다. 특히  가을철 단풍시즌에는,Thanks Giving days전후로는 절정을 이룬다고 설명해 줬던, Park Ranger, Mr. Marc와 Jesse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지금쯤 열심히 80 km정도되는 Circled Trail을 열심히 Trekking하고 있을 것이다. Camp ground에서 시작하여 Lumsden L - Threenarrow L -Little Mountain L - David L - Ruth Roy L- Killarney L - Free Land L - George L - Camp ground.




"La Cloche Silhouette"Trail로  명명된 사유가 있있다.  많은 Canadian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Group of Seven 화가구룹멤버중의 한명인, Franklin Carmichael(1890-1945)이 주변의 Scenic View를 화폭에 담아 그린 Painting의 제목이 "La Cloche Silhouette"였는데, 이를 기념하기위해 Trail에 그이름을이 부쳐졌었다는 설명이다.




걸어서 오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 차를 타고 왔는데, 빈자리 겨우 하나 발견하여 운좋게 Parking할수 있었다.


Scenic view가 Killarney Park에서 최고로 멋지게 볼수있는 Camp site 77옆으로 이어진 Trail을 따라 절벽끝자락의 바위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이곳에서 다시 George Lake의 이어진 Trail은, 우리는 잘 알지 못했었으나, 그 코스를 지나던 동료 Camper들이 Suggest 해줘서 걸었는데....숨은 비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처음와서 보는 느낌으로 환상적이었다.


오후에는 다시 또 다른 La Cloche Silhouette Trail route를 걷기위해 Camp site 8번쪽으로 길을 나섰다.


마침 Canoeing을 할려고 Beach Parking에서 물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젊은이와 만났다. 그녀는 이곳에 Canoeing하러 거의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George Lake가 지금까지 Canoeing해본중에서 가장 즐기는 곳이라고 설명까지 해주었다고, Lunar가 나중에 얘기해주었다.






Trail Route 표시가 파란색 Heart모양으로 Trekker들의 방향을 Guarding하고 있었다. Lunar가 표지판의 의미를 관찰하면서 Route를 살피고 있는중이다. 이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기도 또 내려가기도 해봤다.  그저께 온 대원들과 함께 왔었던 그 물가에 당도하면서, 이렇게 Trail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됐다.

20년전에 이곳에서 Lunar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곳으로 보이는곳을 찾았다.  바위는 분명 맞는것 같은데, 정확히 어느지점에서 이런 둘만의 모습을 만들었는지는 확실치는 않았으나, 내 스스로 놀란것은 풋풋한 싱그러움을 내품고 있었던 그때의 나와 Lunar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TTC를 어쩌다 이용하게 될때, 젊은이들이 좌석을 양보하면서 앉으시라는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Senior로 변한 그모습에, 다시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애닲아 해본다.



어제 토론토로 떠난 대원, 오빠댁에서 구입할려고 지난 5월달에 Order했다고 들었던것과 같은 형태의 모습의 Tent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어젯밤에 도착했었나 보다. 마치 2층집을 연상할 정도로, SUV차 지붕에 아담하게 설치되여, 난생 처음보는 텐트 구경을 했다. 젊은이들에게는 인기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한편, Senior들에게는 사닥다리 타고 오르 내리는 번거로움이 Burden으로 둔갑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동시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친다.  불과 30여미터 윗쪽으로 떨어져있는 Camp site에서 본것이다.



놀랐다기 보다는 귀여워 이들가족을 더 놀라지 않게 움직이지 않고 자세히 살펴봤다. 엄마로 보이는 큰 Racoon과 새끼들로 보이는 4마리의 귀염둥이로 이해됐다. 다행이도 이들 Baby들은 내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수 있도록 포즈까지 취해(?)주는게 아닌가?  아마도 이들 가족들은 나 말고, 다른  Camper들과도 많은 Encounter를 한것으로 이해됐다.

조용한 이른 아침부터 밖이 소란(?)했다.  혹시 그친구들이 나타난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젯밤 우리를 지켜주었던 Tent의 문을 열고 아직 균형(?)이 덜 잡힌 몸이 넘어질세라 안간힘을 쓰면서 한발짝을 옮기면서 눈에 보인, 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달가워 하지 않은 이곳의 터줏대감(?), Racoon 한가족들임을 금새 알수 있었다.






 7월 20일, Chikanishing Trail Walk과, 20년전 방문했던, Killarney Village 재탐방.(셋째날)


갑자기 북적대던 Camp site가 절간처럼 조용해짐을, 같이왔었던 대원, 오빠 부부와 장손 부부가 짐꾸려 토론토로 간뒤였다. 그들은 원래 계획데로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 갔고, 우리 부부는 2 nights더 연장할수있는 Permit을 받아, 규모를 축소하여 간편하게 정리하면서,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들고 나감이 이렇게 impact를 주는것을 많이 느꼈다.  지금쯤 떠난 대원들은 Hwy400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날씨는 덮다. 한국에서 느끼는 거리감각으로 본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북쪽이라서 기후의 차이가 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두툼한 Jacket까지 준비해 왔었는데....지구의 온난화 현상의 영향인것을 어렴푸시나마 느낄수 있는, 덮고 후덮지근한 날씨에 몸놀림이 느슨해진다.
먼저 떠난 대원 누구였는지는 기억안나지만, 가느다란 노란 야생화 한줄기를 냉커피잔에 꽂아놓고 간 그손길을 생각해 보면서, 여유를 느끼게 해준 그마음에 먼저 떠난 대원들의 면면을 생각해 본다.
Killarney Provincial Park을 떠나 20년전에 묶었던 Village안의 남쪽끝에 있는 Lodge와 그주변을 돌아보기위해 차를 몰았다.  불과 15분 정도의 거리로, 북서쪽으로는 Killarney Bay와 동남쪽으로는 Georgian Bay 사이에 반도처럼 돌출해 있는 그끝자락에 Killarney Village가 자리하고 있다.  그사이 이조그만 Village는 얼마나 변화를 가져왔을까? 기대를 하면서....


Lodge는 많이 변화를 주었던것 같다.  Lunar가 서있는 뒷쪽의 8각형 지붕은 Convention Centre이자 Leisure room으로 활용됐는데 그대로 있어 보였다.  20년전 어느날 저녁에 많은 투숙객들이 Group Dancing를 하는 장면을 봤었다.  밖은 가로등으로 역시 밝았는데, 같이 있던  친구부부 Mr. Mrs양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마추어 즉석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분들의 춤실력을 그곳에서 처음 봤는데, 안에서 춤추던 투숙객들이 오죽했으면, 춤을 멈추고 이들 부부의 유연하게 돌아가는 춤솜씨에 흠뻑 빠져, 주객전도가 됐던 그순간들이 오늘 다시 떠오른다.



Marina에는 수상 비행기들과 Boat들이 정박해 있었고, 가게들은 여행객들로 북적이고...석양의 노을을 여유있게 감상할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Mooring Dock에 빨간색 의자를 비치해 놓은 포구사람들의 깊은 생각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묶었던 Lodge 뒷쪽의 바위에 올라 멀리 끝없이 보이는 Georgian Bay 를 향해 주변을 응시해 봤다.
그때 처럼 Lodge에서 하룻밤  묶으면서 당시를 회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일어난다.  Lodge와 downtown을 연결해주는 Board Walk이 강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설치돼있어, 이용객들의 편리를 위해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때는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도로를 타고 Lodge까지 들어와 주차하곤 했었는데...  많은 관광객들과 조우하기도 했다.


북미 대륙, 특히 북쪽 지방의 도시 형성의 역사를 탐구해 보면, 대부분의 초기 정착민들의 생업은 모피장사꾼들이 중심이 되여, 왕래하면서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왕래를 일으킨 중심지 역활을 한데서 비롯된것을 알게된다.

Killarney Village와 Provincial Park에 대한 역사를 잠시 살펴 보면서 당시의 인생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았다.  이곳은 1820년 6월에 Etienne Augustin Rochbert de la Morandiere씨가 이곳의 원주민 부인 Josephte Aai sai go no kwe가 모피장사( Fur Trade Post)를 하기위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Village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Killarney village는 당시에는 Shebahonaning(안전한 통로)알려지면서, 이지역을 지나는 뱃꾼들, Georgian Bay를 중심으로 이곳을 왕래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많은 여행객들, 모피상들,정부관료들, 사업가들,측량사들, 정착민들 그리고 선교사들이 북적이게 된다.
1836년에 Georgian Bay에 처음 정박하게되는 증기선의 이름은 Penetanguishene호로 해상운송의 시효가 되며, 1963년에 Killarney 고속도로의 건설이 완성되면서 해상운송의 역활은 막을 내린다.
오늘날의 Village는 다양한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그만 비행장도 있고, Liquor와 Beer 가게, 선물가게,Kayak과 Boat Rentals, 여행객휴양지, 식당들, 그로서리 가게, BnB숙소, 항구,Camp Sites, 세탁소, 보건소, 우편국, 박물관은 물론 금융기관(Credit union)들이 여행객들의 편리를 돕고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도 Village의 편의 시설들은 대개 다 영업을 한다고한다. Killarney Provincial Park이 년중 문을 열고 방문객들을 맞이 하듯이....

그로서리 가게에 잠시 들려봤다. Camp Fire시 필요한 Gas lighter한개의 값이 무려 $7.99 plus tax로 굉장히 비쌌다. 토론토 지역에서는 $1.99 또는 2.99면 구입할수 있는것들인데.... 운송비용이 많아서 라고 하기에는 좀 선뜻 이해가 안된다.


Village 재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와 Lunar는 Chikanishing Trail Route를 걸었다.  이 Trail은 Park 정문을 나와 조금 Village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길건너편에 커다란 Trail 표시판과 마주친다.

이번 Camping중에 처음으로 도면에 표시된 Trail을 걷게되는 셈이다. 전체 구간은 약 3 km쯤 되는데, 걷게되는 입구에서 부터 Route전체가 붉으스레한 바위로 형성되여 있어 또 다른 운치를 느꼈지만, 비가 내리거나 눈이 쌓였을때는 Slippery해서, 또 다른 위험요소가 다분 할것 같다는 노파심이 든다. 오늘은 걷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Volunteer들이 표시 tag를 잘 부착해 두어 고마웠다.



George Lake의 물결을 따라 Canoe를 타고 Rowing하는 젊은이들이 싱그럽다.   하고만 싶다면 rental해서 즐길수 있지만, 살아온 환경이  그러한 경험을 맛볼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살아온 지금, 저들의 Canoe leisure sport를 보는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이 물놀이를 즐기듯이 우리 부부는 그위에서 Trekking을 하면서 더 넓은  Scenic view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Silhouettee으로 보이는, 붉은 바위에 단단히 서있는 Lunar의 백만불짜리의 탐색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을것 같다. 그녀는 어떤 Scenic view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을까?

이번 Camping 여행중 가장 아쉽게 느꼈던점은, 머나먼 북쪽으로 북상한다는 생각에서 수영할수 있는 기회를 잡는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Preoccupation 때문에 수영복 지참을 안한것이었다. 이렇게 나의 예측과는 다르게 덮고 후덥지근 할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었다면, 큐바 여행시 항상 준비해갔었던 그수영복을 짐보따리속에 넣었을텐데.... 이순간 George Lake를 내려다 보면서 호수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나를 번민하게 했다. 주위에 Trekker들이나 Rowing하는 배들이 없었다면, 나와 Lunar단둘이만 있었다면 뛰어내려 맑은 호수물맛을 흠양 했을 것이다. 녹슬은 수영실력도 실험해 보면서....

Landscaper들이 정원에 있는 정원수들의 모양을 보기좋게 잡아주어 잘자란 나무를 보는것 같은, 2 stage 모습의 Spruce가 눈길을 끈다.
수천년 아마도 수만년 동안 빗물에 깍여서 만들어진 수로였을까? 금새라도 맑은 물줄기가 이바위에 난 통로를 통해 흘러내릴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바위가  살아움직인다, 그렇게 보였다.
Trekking을 마치고 Chikanishing Trail의 Parking장을 빠져 나오는 갓길에 마치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고사리숲을 보면서 한컷했다. 이른 봄철에 이곳에 왔었더라면 겨울밥상이 더 많이 풍부해질수 있었겠다라는 상상을 해봤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기에 이렇게 무성하게 위용을 뽐내리는 것이겠지...


 7월 19일, 2일째 캠핑, 2일먼저온 Young부부도, George Lake 산책


Sunrise가 무척 일찍인것 같이 느껴진다. 북쪽이라서 그런가? 모두가 아침 5시경에 기상해서 Camp fire하고, 그참에 이번 Camping의 마스코트(?)인 푸들까지 정위치 하면서 숲속의 푸른 아침의 맛을 흠향하고 있다.




이런 여유로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가 지금 대원들이 즐기고 있는 순간이다. 현실의 삶에서도 이런 시간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편리하고 환경이 좋은 최상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자연속으로 들어와 모기와 싸우면서 신체적으로는 불편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마음만은 천국이 부럽지 않은 이순간을 느끼기위해 짐싸서 달려온것 아닐까?
라면의 이름이 좀 특히하다. "남자". 어떤 맛일까?  준비해온 대원들의 음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혹시나 하고 라면 먹을수 있을까? 기다렸는데, 대원중 한명이 야외용 그릇으로 사용하기위해 가져온 그릇이라는말에,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
막내, Chris부부가 Killarney Village의 호텔에서 하룻밤 무사히 지내고 지금 막 다시 Camp site에 합류하는 순간.  막내가 어제 장거리 운전하고 오면서,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이었는지, Stomach ache가 계속되여, 대원들이 비상용으로 구비해온 각종 소화제등을 복용했었으나, 그래도 편치않아, 편한 호텔에서 하룻밤 푹쉬고 오라는 대원들의 suggestion에 Village로 가서 푹쉬고 좋아진 상태로 합류한것이다. 대원들의 기도가 약발이 들었었는지, 거의 완쾌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먼저 알려줬다.  갑자기 대원들 사이에 활기가 도는것 같다.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라는 옛말이 꼭 맞는것 같다.  막내는 Head Nurse로 근무하고 있는 현역병이다.  좀 아리러니 하지 않나?
Camping에서 먹는 고구마는 또 다른맛을 느꼈다.껍질채로 먹는 그맛이 더 좋은것을 새삼 느꼈다. 앞으로는 Peel off할려고 헛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공용 주차장에 세워둔 내차와 Chris의 차가 무사히 위용을 보여주어 마음이 편하다.

풍부한 아침음식은 모두의 기분을 풍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먹음직 스러운 Dish가 유난히 돋보인다.  새댁이 은박지에 싸서 준비해온 고구마의 익는 냄새가 맛을 더해준다.  항상 오늘을 즐겁게 해주시는 윗분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감사.




대원들의 협조가 이렇게 풍성한 식탁을 창조해 냈다. 같은 먹거리인데도 캠핑에서 먹는 그맛은 경험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풍부함이 그속에 깊이 배어있다.


대원들 모두가 George Lake까지 산책을 해봤다.  Georgian Bay에서 깊숙히 떨어져 있는 George Lake의 주변의 산새가 그렇게 경이로울수 없었다. 흰색과 붉은색의 바위와 사철 푸른 Pine Tree들과 서로 어울려 풍광이 저절로 감탄사로 변해 입을 통해 나온다.




George Lake의 물결은 잔잔해서 Kayak,  Canoe꾼들에게는 최상의 좋은 장소같다.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배경으로 오랜옛날, Group of seven painter들이 그들의 혼을 도화지에 쏟아 부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여성 대원들이 멀리 바라보면서, 그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Camping 보다는 지나온 세월의 덧없음을 이호수에서 뿜어 내고 있는 것일까? 20년전에 왔을때는 오늘같은 감정은 없었고, 그저 마냥 환상적인 주위경관과 Killarney Channel의 경치에 정신을 온통 빼앗긴 상태였었다.
정신적으로는 많이 성숙됐지만, 성숙돼기까지의 긴시간동안에 겪은 인고의 세월을 탓할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지 묻고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곳 Killarney Park의 Theme은, 내가 보기에는, Canoe타기, Kayak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위한 Park인것 같다.  Camp Site를 중심으로 바로 옆에 있는 George Lake는 바위산으로 빙둘러있어, 파도가 거의 없고, 물이 증류수처럼 맑아, 이같은 Sports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것 같다.  우리의 Camp site를 지나 Lake쪽으로 지나가는 차량들의 대부분이 차 roof에는 Canoe아니면 Kayak이 매달려 있음을 볼수있다.
물가를 따라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Trail을 따라 대원들이 Exploring을 즐긴다.  Lunar가 그녀의 뒤로 보이는 Water Lily들을 자랑스럽게(?)보여주고있는 순간이다. 막 노랗게 피기시작한 Lily Buds들이 보일듯 말듯, 수줍은듯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 꽃들이 만발할때는 온통 이곳은 보드라운 노란색으로 뒤덮혀 있을 것이다.




약간의 비가 내려, 더위를 식히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사하는데는 불청객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옛날 그것도 60년 훨씬전에, 10명이 넘은 나의 형제들과 부모님 조부모님들이 함께 모여 보리밥 또는 시래기죽을 먹었던 그기억이 Overlap된다.  지나고 보면 배고파 어려웠었지만, 그때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오늘 이시간 대원들과 어울려 그기분을 기억에서 꺼내 느껴 보지만, 음식의 맛은 너무도 싱그럽고 넘쳐난다.
Camp Fire 속에서 또 하루가 역사속으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세월이 무상하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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