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8, 2019

인천, 부산을 박정희,이승만 국제공항으로 개명, 망해가는 대한민국을 재건하는 구심점으로 만들어야...

아래의 글은 2011년도에, 5/16혁명 50주년을 성대히는 못해도, 조촐하게 기념하는 그순간을 보면서, 나의 생각을 적었던 내용들이다.
이번, 박정희 대통령 서거 40주년 추념식에서, 모든 애국 시민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관, 충정,경제개발 등등의 모든 미사 여구가 동원된 추념사들을 했지만 그순간들 뿐이었던것 같았다. 오래 아니 영원히 후세들에 기억될 상징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노병이다.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할때마다, 가슴 미여지게 느끼는 한탄은, 왜 우리 나라는 민족의 위상과 경제건설로 영원히 후세에 남겨질, 말뿐만이 아니고, 실질적인 면에서 행동으로 보여준 영웅들 자격이 있는 분들에게, 국가적으로 영웅칭호 하나 못부쳐드리고,  추념식, 기념식을 치러내고 나면, 새까맣게 잊어 버리는, 그래서 후손들에게 증거를 보여줄 여러 자료들이 많은데도 이를 이용하지 못하고, 새대가리같은 후손으로 살아가게하는가? 를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아래 글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지금처럼 난세의 한국을 다시 재건축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후세들에게 박정희는 누구였나의 역사적 의미를 전해주기위해서라도, 최소한 큰 비용 안들이고 기억시킬수 있는 방법으로, 인천공항을 "박정희 국제공항"으로, 부산공항을 "이승만 국제공항"으로 개명해서 사용하자는 생각에서 다시 올린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10/40.html

5/16, 50주년을 회고, 박통에 감사할줄 아는 성숙된 의식필요, "박정희 국제공항"으로 개명



나는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었다. 사회생활 시간, 아니면 역사시간(?)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등등의 내용으로 꽉 차있는 혁명공약을 암기 시키는 선생님으로 부터 회초리 아니면 꾸지람을 피하기위해 우둔한 머리로 제6장까지 암기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5/16혁명 5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아침, 영화 필름을 돌려보듯 희미하게 풀려 나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남들이 박통을 비난하는 대열에 서서, 나자신의 자아 판단도 없이 '국민들의 안녕질서를 잘 지키라고 총칼을 쥐어 주었더니, 하라는 일은 안하고 그총뿌리를 국민들에게 들이 대고, 불법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무너 뜨리고, 정권을 탈취한후, 자유를 억압하고 못살게 군다'라고 비난 했었다.

그생각은 1974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건설하는 Project에 참여 하면서, 일본에 기술습득을 위해 파견되여,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려 Custom clearance를 통과할때 승객들을 검사하고 있던 세관원들의 복장과 자세를 보면서, 지금까지 박통과 그정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무조건 비난만 해왔던 나의 생각을 순식간에 바꾸는, 마음속에 큰 쇼크를 받으면서, 나의 잘못된, 편견된 생각을 바꾸게되는 계기를 접하면서다.

그후 일본에 있는 동안, 공무원 졸병의 신분이라, 돈이 없어 호텔투숙은 엄두도 못내고, 여관에서 먹고 자면서 철도의 신기술 배우는데 몰두 하곤 했었다. 하루는 음식 시중을 드는 젊은 여성의 손을 우연히 만져보는 기회가 있었다. 첫순간에 놀란것은 그렇게 예쁘고 젊은 여자의 손이, 서울에서 보아왔던 여성들의 손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거칠고 군살이 박혀 있는것을 보았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시중드는 그녀의 무릎팍도 보게 됐는데, 거북이 등뚜겅처럼 군살이 박혀 있는것을 보면서, 일본이 잘사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이여성은 고생을 하는가?라고 속으로 질문하면서 해답을 찾을려고 하다가 풀리지않아 무례를 무릅쓰고, 그녀에게 물어 보았던 기억이 이아침에 새삼 떠오른다.

 "일본 사람들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읍니다. 제가 여관에서 시중드는것은 다른 노동자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노동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그말에, 일본이 잘사는 이유를 어렴푸시 알수 있었다.


당시의 조국은 남녀 청년실업자들이 그수를 헤아릴수 없을만큼 많았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터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괴로웠던것은 겨울철이 채 지나기도전에 양식이 다 떨어져 보릿고개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돌맹이도 소화를 시킬수 있다는 젊은이들이 굶주린 허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웠었다. 실무자로 현장에서 있었던 내가 본 관점은, 박통께서는 5천년 역사를 통해 보릿고개를 제대로 넘지 못한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국가 기간산업을 발전시키고, 공장을 세워서, 양질의 젊은이들이 그곳에서 일하도록 하는길이 국가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드는 첫길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그과정에서 파생되는 어쩔수 없는 인권과 자유를 유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도 간파 했기에,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될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여, 24시간 개척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앞장서서 이끌었었다고 믿고있다.

역사가들이 기록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조국은 전세계에서 꼴찌인 India 다음으로 GNP가 낮았었고, 이북의 김일성과 그의 Regime이 이끌고 있는 공산정권도 남한보다 3배이상 잘살고 있었다고 한다.

굶주림 앞에는 인권이니 자유니 하는것들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배가 고픈데 그러한 이즘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져 열심히 일해서 그대가를 받아 배부르게 먹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의 조국 젊은이들,아니 60대 아래의 국민들은 비교적 배고픔을 덜겪었기에, 인권과 자유가 먼저인것 처럼 인식하고 있어 피부로는 그절박함을 잘 느낄수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배부르고 여유있는 삶을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어려운때 국가를 이끌었던 박통을 포함한 국가의 지도자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현재의 기준에 맞추어 하는 폄하하고 평가할려는 주위 여건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맞는 평가를 하기가 어려워 질것으로 걱정된다.

성군 또는 대왕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같은분도 오늘날의 자유와 인권을 구가하는 시대를 중심으로한 잣대로 평가한다면, 국민을 사유재산쯤으로 여긴 군왕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로 밖에 평가 받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재단을 했기에 성군, 대왕으로 오늘날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박통의 통치 시대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평가를 해야, 조국 근대화를 위해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자유와 인권을 일부 유보하면서,주야로 건설현장에서 뛰었던 결과로 아시아의 4용(Dragon)중에서 홀로 우뚝서는 경제성장의 발판을 만들고, 보리고개를 영원히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게 했던 공적을 제대로 평가 할수 있다고 본다.

자유와 인권이 일부 유보 됐었다고 하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사회생활 하는데는 불편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고 생각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사회적 생활을 다 할수 있었다. 다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불철주야 건설현장에서 경제의 초석을 놓기위해 뛰고 있을때, 민주주의와 인권유린등을 내걸고 박통을 공격했었던 몇명의 정치적 투사(?)들에게는 제약이 있었지만....

그중의 한사람은 훗날 대통령까지 했었지만, 당시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 투입된 불도져 앞을 막고 드러누워 시위를 하면서, 자동차도 없고,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운반할 물동량도 없는데 왜 비싼 차관을 들여다 낭비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고혈만 더 착취하려는 수작이라고 외쳐 대면서 혼자서 애국자인양 쑈를 했던 생각이 난다. 훗날 그가 고속도로를 제일 많이 애용(?)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고 들었다.

오늘날 대도시의 발이 되고 있는 지하철, 국토의 대동맥 역활을 하고 있는 고속도로들, 중공업단지 조성,그리고 수출만이 조국이 잘살수 있는 길이라는 신념을 당시에 시도하지 않았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과 같이, 박통이 시동을 걸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기에 오늘의 발전된 조국속에서 국민들의 삶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현실을 비뚤어진 눈으로 재단하지 말기를,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고국에서도, 이곳 교민 사회에서도 성지순례여행을 터키로 많이 가고 있다. 다녀온 친지들의 여행담에서 근대터키공화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Mustafa Kamal Artartuk의 시신이 안치된 Mausoleum을 방문해서 그분이 왜 터키사람들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가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고 왔다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아직까지 없다.

터키의 Capital City인 Ankara의 시내 언덕바지에 조성된 그의 성전은 일년내내 터키 전국으로 부터 찾아온 방문객들과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들끓었으며, 여행객인 나와 Lunar가 성전뜰에 들어섰을때는 마침 터키군 의장대가 그의 시신이 안치되여 있는 중앙성전으로 행진하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여행객들속에 끼어 우리도 안을 구경하게 됐었다. 앞중앙에 그의 시신이 안치되여, 경의를 표하고.... 터키에는 크고 작은 도시 어디를 가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그의 동상이나 기념관을 만들어 그를 추앙하고, 후세들에게 연결시켜주고 있음이 너무나 부러웠다.

사실 Artartuk은 Ottoman제국의 장군으로 세계 일차 대전때, Ottoman제국의 군총사령관으로 호주 독일 영국과 불란서 군이 중심이 된 연합군과 갈리폴리 반도에서 싸워 Otoman 제국(터키)병사 십만명 이상을 전사시킨 패장이었다. 그결과로 Ottoman제국이 멸망하고 많은 위성국가들이 독립해 나가고, 현재의 터키 영토만 남게한,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분명 Traitor 로 낙인찍힐 인물이었지만, 그런 오점은 모두 접어두고 그가 남아있던 터키영토에 공화국을 창설하여 근대 터키공화국의 기틀을 만들었던 공적을 높이사서,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고 했다.

박통을 여기에 비교 하는것 자체가 잘못일수 있겠지만, 역사를 통해서 알게된 Artartuk과 박통의 업적을 비교해 볼때, 박통은 5천년만에 처음 있을수 있는 경제중흥과 국가안보의 초석을 다진 영웅임에 틀림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오늘 조국의 현실은, 그를 기리기위한 기념관 하나 없고, 고향에 초라한 생가만이 있을 뿐이다. 기념관은 고사하고, 일제에 협력했고, 독재자라는 악담이나 안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념관 또는 Mausoleum 건축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면, 아쉬운데로 현인천 국제공항의 명칭을 "박정희 국제 공항"으로 바꾸어 부르면 어떨까? 터키의 이스탄불 공항이 "Artartuk International Airport"로, 미국의 수도 워싱톤 공항을,Reagan 대통령이 서거후 그를 기념하기위해 "Reagan International Airport"로, 필리핀의 마닐라 공항이 "아퀴노 국제공항"으로, 토론토 공항이 "Pearson International Airport"로 그외 영국, 불란서 등의 여러 국제공항들이 리더들의 공적을 기리기위해 개명하여 불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 위상이 OECD국가군에 가입했고, 그에 걸맞는 국가의 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 첫단계로 공항명칭을 개명하는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할 임무라고 나는 믿는다.  지구상 수백개의 나라중에서 역사가 반만년인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도 국가에서 인정한 "영웅"한명을 탄생시키지 못했다. 과연 인물이 없어서였을까?

참고: 나는 고향이 전라북도 정읍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무원할 당시,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의 "우리가 남이가?"라는 슬로건 때문에, 전라도 출신 공무원들이 직 간접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때였다. 나역시 그피해자중의 하나였지만,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셨던 그해에 일본에 기술연수가서부터, 내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코딱지 만한 국토에서 지역감정, 인맥, 동문 등등의 정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백성들, 특히 정치꾼들의 당리당략에 진절머리를 치고, 현재도 그생각은 똑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국가와 민족을 살리기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된다고 믿는 노병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자 영웅을 내삶이 다하는날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새겨둘 것이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1/05/516-50.html

1 comment:

  1. 지금이 국회에서, 시민단체에서 공론화할 적기인데...좀부족한점은 덮어주고 좋은점을 부각시킬수있는 의식수준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 왜냐면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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