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2, 2019

Ethiopia의 수양 아들, Johannese와 가족과 첫상면 기쁨,여행목적의 절정, 여행은 뒷전. (16일째)

March 4th,2019 ( 월요일)

It's unbelievable and delighted that I and Lunar met and reunited with the adopted son, Johannese at Ethiopia again.  Our promise and dream we made 6 years ago came true. During last 6 years he married with 2 kids, lovely one boy, one girl and charming wife, my daughter in law. Now he has also been running his own business, tour company named 'Escape'. He has lived in a big house which I believed it, compared with from ordinary citizens' living standard in Addis Ababa , having 2 maids who's taking care of 2 kids and house works since Johannese and his wife have worked at their own business. She has her own boutique shop in a busy commercial district in Addis Ababa.

요하네스가 아침에 우리가 쉬고 있는 Hotel로 와서, 다시 재회를 했다. 그는 우리를 Addis Ababa의 구경을 우선하다기 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얘기들을 비롯한 자기 주변의 실상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주로했다. 
그는 우리가 묵은 호텔과 자기집에서 멀지않은 "6/25참전 용사 추모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지난번 여행때 이미, 내가 토론토 한인회 소재, 재향군인회장직을 수행했었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애티오피아군의 6/25참전에  많은 감사와 고마움을 한국민들은 항상 잊지 않고 있다는점도 알고 있다. 어린 그가 한국전에 더 관심을 갖게 된것은 6년전 나를 만나면서 부터 였다고 자랑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표시하는 Arch형  공원표시판은 내용이 똑 같이 양면에 표시되여 있는 간판이 눈에 낯설지 않다. 6년전에도 똑 같이 이자리에 서 있었던것이다.  뒤돌아서 찰칵한 사진에 주변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Shanty houses들이 6년전이나 달라진게 없이 그대로인점이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짖누르면서 마음이시렸다.
 
Lunar와 동행하는 이한국여인은, 호텔식당에서  Breakfast를 먹으면서 우연히 알게된 분이다.  그녀 역시 현재 거주지는 토론토이지만, 이곳에서 여행 끝나면 남편따라 유럽에서 약 6개월을 보낸후 다시 토론토에 돌아 간다고 했다.  이름은 Katarina. 그녀의 남편은 Mr. Rob으로 현재 토론토 대학의 고참 생화학 교수로 재직중인데, 이번 유럽체류는 Research 때문이라고 했다.  Lunar와 Katarina가 금새 친구가 되여, 하룻동안 같이 동행하기로 한것이다. 물론 아들 Johannese의 동의하에 합류한 것이다.

공원은 지난번 왔을때와 변한게 없이, 153명의 전사자를 기리는 묘비는 그대로 있었다.  묘비의 맨 앞에,이공원조성시 현역으로 이곳에 와서 공원조성을 관리 했던분으로 보이는, 1군사령부 관리처장, 정대현 당시 준장의 감사표시 Plaque가  아직도 선명하게 부착되여 있었다.  웬지 오늘 현재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울적해 지기도 했다.

   

 
추모 공원에는 참배객들은  많지는 않지만, 참전용사들과  관계가 되는 가족분들 또는 한국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자주 찾는곳이라고 아들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마침 부모따라 구경온 낯설은꼬마와 우리 일행은 인사를 나누고 Lunar는 Shake hand까지 했다.  Rob은 느끼는 점이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옛날 약70여년전에 있었던  한국전에 대한 긴 악몽의 얘기를 짧막( Long story short)하게 설명해줬더니 고개만 끄덕인다.

지난번 방문때는  없었던, 전쟁추모 Museum이  그후에 다시 한국정부의 도움으로 세워져 관람객들을 맞이 하고 있었다.  그후 한국이 잘살게 되여 이렇게 보훈의 정을 표시하는데 자긍심을 느끼기도 하지만....전쟁의 혹독함을 잊고, 물질만능 주의로 살아가는 한국의 실정이 웬지 마음에 걸린다. 안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한국전 자료들이 잘 전시돼여 있었고, 박물관의 Curator는 믿어지지  않게, 전쟁에 참여해서 산화한 영웅중의 한명이 자기 친아버지 였음을 자랑스럽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나누어 가질게 없어서, lapel에 부착하는 Canadian Flag가 새겨진 Badge하나를 슬쩍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Rob이 전시된 한국전 당시의 자료들을 보면서, 새로 한국에 대한 다른점을 느끼는것 같았다. 오늘의 한국이 있게된 역사적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 하는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1968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던 Haile Selassie 황제가 그의 휘하 부대가 싸웠던, 춘천에서 한국전 참전 연합군협회에서 세운 전적비 개막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Johannese가 애티오피아의 Ahamaric 글자표기를 설명하는 순간이다.  설명이 그들의 문자로 표기돼여 있어서, 우리의 이해를 돕기위해서였다.

   


2011년,참전용사추모공원을 조성한후 당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애티오피아 카뉴부대의 6/25참전의 뜻을 기려 감사패를 증정했는데, 잘 진열되여 있었다.


당시 카뉴부대 파견에 2명의 간호원 병사도 참전한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그녀들은 열심히 부상병들을 치료한  공적이 뚜렷하여 마네킹까지 만들어 추모하고 있었으며, 그중의 한분은 현재도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현재 89세로 노년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전쟁터의 간호원. 감사.

아버지의 생전에 얼굴을 본적이 없는 아들은 Curator로서의 직업에 자랑스러워 했으며,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것 같았다. Lunar에게 많은것을 물어볼때, Lunar는 당시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하늘과 땅차이 정도로 많은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했고, 너희 나라도 마침 새로운 총리가 헌신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으니, 기다려 보면 좋은 결과 있을것이라고 위로해 주기도했3다.
한국전에서 젊음을 산화한  영웅들의 개인별 사진도  잘 진열되여 있었다.
 

이곳 박물관에서 오늘이 있게한 초석이 되는 대한민국을 창설한 이승만 대통령의 고마움을 기리는 부부의 사진을 봤다. 정말로 수십년만에 처음, 그것도 고국땅이 아닌 낯선  이국땅에서.  며칠전 뉴스에서 한국의 석학이라고 하는 "도울 김용옥"은 이승만 대통령을 역적으로 몰아부치는 패륜아적  강의를 한것 보면서, 한국전이 한국인에 주는 교훈이 다 허물어져 가고 있음에 서글프기만 했었다. 전쟁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교육해야 하는데, 한국의 현실정은 그렇치 못한점이 안타깝다.
추모공원 탐방을 마치고 나오면서,  많은 차량들을 봤는데, 특히 신기한것은, Made in Russia인 Lada가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것이었다.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는 그차가 거리에서 달릴때가 한국의 현대차 Pony가 인기를 끌면서 토론토 거리를 달릴때 였는데, 그후 불과 5년도 안돼여 완전히 사라진 차들이다. 품질이 너무도 안좋아 소비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아직도 굴뚝연기처럼 매연을 내뿜으면서 달리고 있다니...

6년전, 탐방했을때와 비교해서 전연 Improvement하지 않은채,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처럼 방치되여 있는 현장을 또 보면서, 개도국의 발전여부는 오직 국가를 운영하는 Leader에 달려 있음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케 했다. Comparing with this shanty scene reseďmbles S.Korea after Korean war, I have again realized that Korea was so lucky to have the leader like Late President Park Chung Hee who lay the strong foundation of highways of development that have blossomed as economically and socially that S. Koreans are enjoying the taste of fruits.
이번에는 이곳의 토박이 여인들이 경영한다는 Pottery shop으로  안내됐다.
가는길에 Charcoal을 산더미 처럼 쌓아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이 많이 팔아서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을 같이 정답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거의 모든 차량들이 굴뚝연기를 품어내고 있다.  마스크가 있었지만, 차마 나혼자서 사용할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를 강하게 만들기위한 Kiln은 보이지 않아 궁금 했지만 물어 보지는 않았다.



도자기 만드는 재료인 mud는 이렇게 쌓아놓고,  약2 주간 이상 사용목적에 따라 fermenting 시킨후 사용하게된다는설명이다.

Johannese가 고운(fine) 재료를 확보하기위해 원료 진흙을 Strainer로 걸러서 반죽을 만들게 된다고, 옆에서 반죽을 만들고 있는 여인의 설명을 듣고 우리에게 다시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많이 보게되는 새(Bird)의 형상을  유난히 많이 만들어 놓은것을 보면, 이새가 의미하는 뜻이 많은가 보다.  여기 수준으로 볼때는 훌륭한 작품(?)일수있었겠지만.....


Lunar가 뚝배기 한개를 구입했다. 귀국해서 저녁상에 된장찌개를 끓여  서방님께 바치겠다는 설명이다.
기대를 갖고,깨지지않게 조심스럽게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포장했다.  그러나 귀국해서 물을 부어서 하룻밤 Kitchen oven에 올려놓고 시험을 해 보았는데 1/3 이상이 Leaking해서, 아깝지만, Garbage로 보내고 말았다.   신문지와 T-Shirt등의 옷으로 포장해서 조심스럽게 모셔 왔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교통수단으로 아주 조그만  당나귀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왔기에 무척 사람들과 친근하다.   Ethiopia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등에는 땜깜, 시장에서 구입해온 식량들.... 잠깐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당나귀들은 먹을것을 찾아 쉬지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여인은 높은 산에 올라가 땔깜으로 사용할 나뭇가지를 모아 등에 지고 이곳까지 와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고된 그들의 삶을 얼굴에서 잘 읽을수 있었다.  많이 팔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가게는 비교적 잘 정돈된 상점중의 하나다. Bottled Water를 마시는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낯설은 이방인들이 가장 많이 신경썼던, 마실물에 대한 걱정은 거의 완전히 덜어진 셈이다. 앞 counter에 잔뜩 쌓여 있다.

어느집앞에서 차를 세우더니 잠시 Honking 하니, 안에서 어느 여인이 대문을 열어 주었다. 바로 Johannese가 거주하는 그의 보금자리였었다.  현지 상황에서 볼때는 대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여길수 있는 큰 집이었다. 처음 대하는 그의 아내, Mitche가 반가히 우리 일행을 맞이 했다.  처음 보는 그의 부인이지만, 이미 많은  얘기를 들어서인지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Hugging했었다. Katarina, Rob도 ....



큰아이 Lulla, 작은 아이 Ana, 티없이 맑은 얼굴이다.  Ana는 처음에는 좀 낯설어 하더니 금새 친해져서 Lunar에게 찰싹 엉겨서 할머니와 손녀간의 정을 교환하기 시작 했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새로 태어난 두아이와 며느리까지 합세해서 가족을 만났다는 그 기쁨을, 캐나다에서는 못느꼈던, 친 혈족은 아니였지만, 가슴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개념속에서 느끼는 Grandparents로서의 흐믓함은, 다시 Ethiopia를 방문하기를 참 잘했다는 만족감으로 승화됐었다. 이런게 황혼의 인생 살아가는 맛 아닐까?

아프리카에 새로운 가족을 창조한 이기쁨을 어디에 비하랴. 이순간의 오붓한 정이 오래지속돼고, 이다음 또 5년 10년후에 다시 재회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맘속에 그려 본다.


손님을 맞이하는 Ethiopia 국민들의 커피대접 풍습은  좀특이하다. 3잔의 진한 커피잔을 놓은 조그만 Table과 그주위에는 Savanna풀을 깔아놓는 그 오랜 풍습에 대한 연유는 알수는 없었다.

  
애티오피아 국민들의 기본음식, 마치 한국인 하면 밥한그릇에김치찌개이듯이, Injera(인제라)로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물론 Forks and Knife는 아니고 창조주께서 주신 다섯손가락이 수저요 젖가락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음식을 먹기전에 손을 닦는 물을 제공해서 손을 닦고, 손수건으로  말리고, 그다음에 음식을 먹기시작하는 것이다. 집에서 Daughter in Law와 두 아주머님들이 성심껏 준비한 것이라서 식당에서 먹는것 보다는 훨씬 Fresh 했고 맛도 입맛을 돋구었다. Injera의 참맛을 깊이 느낀 점심이었다. 마치 김치찌개를 처음 먹어보는 외국인들이 맛을 들이면 Kimchi Mania가 되듯이 우리부부는 물론이고  Rob부부도 거침없이 즐겨 먹었다.

 


전통 풍습에 따라 그들 특유의 주전자에서  끓인 커피는 원래3잔을 마셔야 했으나 우리는 한잔으로 족해야했다.  잠을 잘자야 했기 때문에.

 
집안일을 맡아  해주시는 두 아주머님들이  환한 읏음을 보내면서 열심히 커피를 끓이고, 아마도 점심에 평을 물어보는듯 했지만,  정확히는 알수없었다.  그들만의 대화에 끼어들 용기는 없었다.


 

금년에 처음으로  맺기 시작한  열매를( Unfortunately forgot name of fruit)가리키면서, 앞으로 정원 공간에 더 많이 식수 하겠다는 설명이다.  Fruit이 절정에 이르면 맛이 고소해서 모두가 즐긴다는 것이다.

안방에 걸려있는 그들의 결혼사진이  무척 정겹다.  그외 결혼사진첩은 두툼한 2 Album으로 잘 보관하고 있었다.  사랑의 결실인 두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는데, 더 사랑을 독차지 한것은 그들이 칭얼대지 않고 우리와 잘 어울리는 부침성이었다. 딸아이, Ana는 Lunar, 즉 그녀의 Grandmother가 준비해간 Canadian Flag가  새겨진 커다란 수건을 머리에 씌워주었는데 귀엽기만 한다.
저녁식사는, 한국식당에서했었다. 6년전 방문했을때, 만났던, 주인장 여인을 만나기위해 갔었는데, 가던날이 장날이더라고, 그녀는 한국에가고 없어, 식사만하고, 준비해갔던 조그만 선물도 건네주지 못하고 그대로 갖고 나왔다. 무척 아쉽다. Johannese에게 이다음 기회가 있으면 들려서 안부전해 주기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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