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03, 2018

박정희를 모조리 지우고 뭘 남기려고 하는 걸까 - 박정희 지우기.

쌩뚱맞은 집안 싸움이 성웅 이순신장군의 후손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다.
뉴스감도 안되는 이런 일이 톱뉴스로 보도되는 이유는 문통의 좌파정부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의 정치사상과 반대되는 전직 국가 지도자에 대한 흔적 지우기를 하기위해, 정치와는 무관한,종가집 며느리 역활을 지금까지 잘해온 집안의 맏며느리를 현혹하여, 조용하게 살아가던 종친회를 두쪽으로 갈라놓은 그이유가 너무나 끔찍하다.

문통과 임종석의 흡혈귀같은 좌파색칠하기의 끝은 어디까지일가? 이들의 수법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종가집 며느님 이제 골병들게 생겼다. 나이로 봐서 최소한 35년이상 종가집 며느리로 조용히 헌신하면서 잘 살아온것 같은데..... 한여인의 삶을 빨강게 만들어 버렸구나.


이칼럼의 내용의 표현이 너무도 약해서 꼭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읽을것으로 알기에, 여기에 옮겨놓았다.  Column쓰시는분께 부탁한다. 좀더 구체적이고 강한 표현을 써서 국민들에게 왜 현판이 그대로 있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제목: 박정희 지우기.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에게 영의정을 추증하고, 직접 지은 신도비(神道碑)를 묘소에 세워줬다. 문집인 '이충무공전서' 편찬도 이끌었다. 왕이 나서서 신하의 개인 문집을 만든 전례가 없기에 신하들 반대가 많았다. 정조는 "이순신과 같은 신하가 100명 있다면 100명 모두에게 문집을 만들어주겠다"며 묵살했다.

▶충남 아산에 이순신을 모신 사당이 들어선 것은 그보다 앞서 숙종 때인 1706년이었다. 이듬해 숙종이 '현충사' 현판을 내려줬다. 일제 침략기 단재 신채호가 '조선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고, 박은식이 1915년 중국 상하이에서 '이순신전'을 발표했다. 1932년 현충사를 중건했지만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자취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됐다.




[만물상] '현충사' 현판
▶1966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를 지시했다. 국가 근대화를 뒷받침할 국민적 정신 에너지가 필요했던 박 대통령은 이를 충무공에게서 찾았다. 그는 "이 사업은 공장 몇 십 개를 짓는 것보다 중요한 민족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정원 미화는 산림청에, 도로 확장 공사는 육군 공병감실에 맡겼다. 박정희는 준공을 앞두고 넉 달 동안 네 번이나 현장을 찾을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1969년 현충사는 충무공유물전시관과 이순신이 자란 옛집, 활터를 갖춘 47만㎡짜리 번듯한 유적(사적 155호)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 대통령은 한글로 직접 쓴 현충사 현판을 새로 지은 전각에 걸었다.

▶이 현판의 보존·철거 문제를 놓고 충무공 후손들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 가문 15대 맏며느리 최순선(62)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을 내리고 숙종 현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하지만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현판을 독단적 판단으로 바꾸면 안 된다"고 반대한다.

▶최씨가 박 대통령 현판 철거를 요구하는 배경이 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박정희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현충사도 없다는 점이다. 한 인터넷 매체는 "현충사 속 박정희 적폐 없애라"며 최씨를 거들고 나섰다. 작년 10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도 여당 의원이 '박정희 대통령 현판이 적폐'라며 '적폐 청산하라고 청장 만들어 드린 거 아닙니까'라고 문화재청장을 몰아붙여 논란이 됐다. 박정희 시대는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이런 식으로 박정희를 모조리 지우고 뭘 남기려는 건지 알 수 없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