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30, 2017

문통 좌빠들의 국가운영보면서, 옛날 박정희,박태준 두분이 너무나 그립다.

문통정부는 집권 이제 겨우 반년 조금 넘었는데, 그기간동안에 그들의 행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입만열면 거짖말로 거짖말을 덮으려고한 저질 좌빠집단들"로 정의된다.

전정부에서 대통령들은, 국가의 안보와 경제 건설을 위해서 세계의 넓은 시장을 마치 Sales President 처럼 달려가 국익을 위한 정책을 팔았으며,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강경책을 쓰면서까지, 그들의 협박과 위협을 막아냈었다.

문통은 전직 정부의 대통령과 리더들을, 요즘은 마치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철천지 원수처럼, 마구잡이로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국가정책과 운영을 마치 조폭들이 패거리 싸움을 하는것 처럼 밀어부쳐, 국가를 Inferno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당장에 내년의 국가경제 동향은, 우선 수출에 먹구름이 뒤덮고 있고, 특히 그들은 재벌총수들을 마치 부를 부정축적했다는 양심불량자라는 이유를 부쳐, 출국금지시키고, 경제활동을 아예 막아 버리고 있다. 삼성의 총수는 아예 감옥에 쳐박어놓고, 손발을 아예 잘라버렸고, 여당의 추한 여자는 아예 삼성을 국유화 시켜야 한다는 공산국가에서나 있을법한 망말을 해대고 있다.

통일부의 혁신정책발표를 보면서 정말로 어이가 없다. 문빠의 나팔수, 카톨릭대 교수가 주관이 되여 발표한 정책중 한구절을 보면, 전정부 대통령의 개성공단폐쇄조치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펴고, 상대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는, One sided 주장을 폈다.

"천주교신부"라는 가면을 쓰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좌파세력의 앞잡이를 하고 있는 그의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천주교의 전파를 위해 순교한 많은 선배신자들과 종교의 자유를 천명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울부짖음이 로마교황청의 극단적인 조치가 있게 만들것으로 믿는다. 문통과 적와대 안방의 주사파들은 헌법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깡그리무시하고 그위에 군림하면서 한국민들의 입에 자갈을 물려 공포정치로 돌진하고있다.



세계무대에서는 완전왕따를 당해, 국빈초청을 받아 방문한 중국에서는, 식사도 같이 해보지 못하고, 혼자 길거리 대중식당에가서 혼자 배고픔을 해결하는 망신을 당했고, 이보다 앞서 방문한 미국에서도 의전차를 타는데 미국측 관료들의 배웅은 없었던 초라한 대접이었다.  한국의 대통령 외교는 한국민들 먹여살리는 "수출"과 직결되여 있는데.....

그원인을 지금도 문통좌빠정부는 성공한 대통령의 중국, 미국 방문이었다고 자화자찬이다.
한마디로 잘못하고 무시당하는데는 얼굴에 철판을 깔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한척하는, 시정깡패집단의 모습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개성공단, 박근혜 구두지시로 중단”… 北책임은 지적 안해

http://news.donga.com/Main/3/all/20171229/87946785/1

이런 대한민국의 현 문빠들의 국가통치 방향을 보면서, 5천년을 벗어나지 못했던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없애고 오늘의 잘사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Foundation을 만들어 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포항제철을, 포항만의 허허벌판에 세우고, 현시대의 제철산업에서 가장앞선 기술을 발휘하여 세계제일의 혁신기술로 사양길로 접어 들고 있는 제철산업의 든든한 기틀을 만들어논, 박태준 초대 사장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것은, 초일류국가 진입을 눈앞에 두고 다시 좌절의 길로 회귀하는게 가슴 아파서이다.

아직 중국이 초라한 공산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때, 당시의 중국공산당 리더, 등소평은, 국교가 없는 한국을 향해, 한국을 적으로 생각하면서도, 그속에서 꼭 하나 부러운점은, 포항제철의 역군, 박태준같은 일꾼이 중국에는 없음을 한탄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래의 기사는 박정희와 박태준에 대한 여러 기사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 놓았다.

  • 박정희와 박태준의 혼령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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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큰 일꾼 박태준, 그가 사양한다 할지라도 그에게 포스코 공로주를 단 한 주도 권유하거나 선사(膳賜)할 줄 몰랐던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죽음을 위하여 ‘마지막 예의’를 차렸으니, 그것은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두세 평짜리 유택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국가유공자 묘역의 한 귀퉁이, 거기는 박정희의 유택과 이웃이다. 박정희를 그리워한 박태준. 저승의 박정희와 박태준을 이웃으로 맺어주는 과정에는 박정희의 외아들 박지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박태준의 유택을 마련하는 일에 박지만은 아버지의 유택을 찾듯이 성심껏 뛰어다녔다.

2011년 12월 17일, 영하 10도의 차디찬 동토 속으로 들어가는 박태준을 지켜보며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마지막 연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밤중에 ‘박태준 조각상’에 헌화 묵념하는 포스텍 학생들.
밤중에 ‘박태준 조각상’에 헌화 묵념하는 포스텍 학생들.
박태준의 ‘님’은 조국이었다. 그것도 일류국가인 조국이었다. 그 ‘님’을 만나려고 애를 태우는 그의 신념과 열정과 소원을 가장 북돋은 이가 박정희였다. 박태준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인연을 맺었던 숱한 사내들 가운데 박정희는 그가 임종을 다투는 시각에도 그리운 사람으로 그의 영혼 속에 살고 있었다. 10시간에 가까운 대수술의 마취에서 깨어난 박태준이 구미에서 열리는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비서에게 감추지 못했을 때, 늙은 환자의 가슴에는 그리움이 고여 있었다. 오죽했으면 비서가 미리 준비해둔 원고를 꺼내 읽어드리고 싶었으랴.

박태준이 박정희 동상 앞에 바치려 했던, 이제는 그의 유언처럼 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 유고(遺稿)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뜻 깊은 자리를 빛내주시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어느덧 저의 인생은 황혼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그리운 각하. 고향 사람들과 시민들이 성의를 모아 동상을 세우고 제막하는 오늘, 불초 박태준이 가슴 속에 쌓인 회한을 불러내듯이 ‘박정희’라는 존함을 불러보고, 거듭 명복을 빕니다.
영정 앞에서 하직을 고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세 자녀.
영정 앞에서 하직을 고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세 자녀.
돌이켜보면, 63년 전 저 태릉 골짜기의 초라한 육사 강의실에서 저는 처음으로 박정희라는 특출한 분의 눈에 띄었고, 결국 그것은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나는 임자를 알아. 아무 소리 말고 맡아!” 이 한마디 말씀에 따라 저는 제철에 목숨을 걸고 삶을 바쳐야 했습니다. 지난 1992년 10월 3일, 4반세기 대역사 끝에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완공하고 동작동 국립묘지의 영전 앞에서 임무완수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때, “각하께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셨다”고 토로했습니다만, 박정희라는 한 사람을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낸 것은 우리의 시대였고 대한민국의 역사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각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리운 각하.
드디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일어섰습니다. ‘오천년 빈곤의 대물림’을 확실하게 끝장냈습니다. 그 물적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문화를 꽃피우고,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복지사회를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정치 후진성, 청년실업, 남북관계 등 거대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우리의 역량과 자신감은 얼마든지 해법을 구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박태준 회장.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박태준 회장.
문제는 지도력의 위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조국 근대화의 성공 비결은, 현명하고 근면한 국민과 사심 없고 탁월한 지도력이 좋은 짝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국민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힘으로 승화시킬 지도력을 부르고 있습니다. 시민의 이름으로 세운 이 동상은 하나의 기념물이 아닙니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따지는 시비가 있지만, 무엇보다 지도력에 대하여 진실로 고뇌하는 사람은 여기에 와서 사색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조국 번영, 민족 중흥, 민안(民安) 복지의 영원한 길잡이로서 여기 생가 곁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가족과 함께 포항제철을 방문하신 시절에는 아리따운 아기씨였던 맏따님이 어느덧 이 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로 성장해 있습니다. 참으로 장하고 자랑스러운 그 모습을 통해 한편으로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각하, 이제는 저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재회하여 막걸리를 나누게 되는 그날, 밀리고 밀린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놓겠습니다. 며칠은 마셔야 저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마칠 것 같습니다. 부디 평안히 기다려 주십시오.

아마도 박정희의 혼령과 박태준의 혼령은 밤에 짝을 지어 마실 나가듯이 가끔씩 동작동 현충원을 빠져 나와서 ‘한강의 기적’의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어느 호젓한 자리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곤 할 것이다. 한 번쯤은 국가도 민족도 다 덮어두고 이런 소박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요새 막걸리는 우리 때하고는 맛이 많이 다른 거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막걸리도 아껴야 했으니 물을 엄청 타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물도 안 타는 데다 각하가 그렇게 금했던 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아, 맞아. 그렇군, 그래.”

이러고는 둘이서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은, 그러나 밤하늘에 너울 같은 파문을 일으킬 만하게 한바탕 호방한 웃음을 날렸을 것이다. <完>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육영수 여사, 박태준 사장의 함박웃음.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육영수 여사, 박태준 사장의 함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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