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9, 2017

탈북 청년, 역경이기고 Fulbright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공부 - 자유와 감사한 마음 잊지 말기를...

능력이 있으면, 신분에 관계없이 장래의 삶을 개척해 나갈수 있는 여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소위 말해서, 민주주의 사회의 장점이자, 또한 사회전체가 열심히 노력하면서,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분위기속에서, 노력한만큼 그댓가를 개인들은 얻을수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삶의 Pattern이다.

미국의 NBC방송이 그러한 삶을 개척하면서, 현재로서는, 장래의 삶에 청색신호만이 훤하게 보여주는, 한젊은 탈북청년의 지나온 삶을 소상히 소개해 주는 미담이, 요즘같이 정신적으로 고된 언덕길을 올라가느라 수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질수있는 미담을 소개해주어, 인생황혼길을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북한 사회가 아닌 남한사회,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많이 느끼게 했다.  그내용을 옮겨 봤다.

SEOUL, South Korea — 김성열군은 그가 10세의 어린 나이였을때, 살고 있었던 북한땅에서 공개총살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고 증언해주고 있다.
그는 그러한 공개총살이 그가 살았던 시골 장터에서는 거의 매달 열렸었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경찰들은 주민들을 인근장터에 모이도록 한후에, 소위 그들이 말하는 적색분자들을, 즉 이북의 체제를 비판했다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 앞에서 총살, 또는 교수형을 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훨씬 지난후에 지금의 김군은 그자신이, 그때와는 전연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것을 심감한다. 바로 이북의 이웃인 남한의 서울 심장부에 있는 호화판 고층 빌딩의 한 라운지에 앉아 있다는 사실말이다. 그가 세계에서 그유례를 찾아볼수없는 극악한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을 탈출하여 자유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30,000명중의 한명인것이다.who have escaped their totalitarian regime ) 


그가 어린 소년이었을때는 항상 미군들을 죽이는것을 최상의 꿈으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32세의 그는 최근에 Fulbright장학금을 받아 Ph.D.학위를 취득하기위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또한 그는 이북에 살때는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으나, 지금은 착실한 기독교인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인생길은 꼭 그가 희망해왔던것 처럼 평탄치만은 않했음을 실토하기도 했다. 
김군역시, 남한에서 살기위해 탈북후 남한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남한사람들로 부터 고통스러운 차별을 받아왔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때는,어느책이거나,공부내용은 전부 '미국은 철천지 원수나라'임을 항상 주지시키는 흑색선전뿐이었다"
" 처음에 공항에 도착했을때, '아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라고, 서울 도심지의 희뿌연한 대기속의 한고층빌딩 17층에 있는 카페에서, NBC News this week의 기자와 만나 회견하면서,  창밖으로 눈아래 펼쳐지는 도심지를 쳐다 보면서 담담히 얘기해줬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일상생활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었다....Depress돼고, 절망적인것 뿐이었다. 바로 서울생활에는 내가 넘어야할 수많은 장벽들이 있었음을, 살아가면서 알게 됐었다. 
남북한 사이에는 지금도 전쟁중( technically remain at war )에 있다. 남북한 모두 바라는것은 한반도 통일이지만, 통일된후의 결과를 바라보는 생각은 극과 극으로 서로 다른,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한국정부는, 김군이 겪은것 처럼, 탈북자들이 남한땅에 오면 특별한 절차를 거치게된다. 그들이 탈북한 이유와, 이들이 남한에 넘어온 이유가 정말로 정당성이 있는지의 여루를 확인하고, 그런 다음에 남한사회의 시민권을 받게된다.
그런 절차를 거친다음, '하나원'이라 부르기도하고, 또는 "통합의집"이라고 불리는곳에서 남한 적응 훈련을 받게된다. 그곳에서 12주 동안 남한사회의 생활,법 그리고 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게된다. 또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유경제체제에 대해서도 훈련을 받게된다. 
김군은 2004년도에 그의 어머니, 누나와 함께 탈북하여 이훈련과정을 마쳤다. 당시 그는 19세의 십대소년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때였었다. 그가 북한에 있을때 배웠던, '서울은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도시중의 하나다'라는 그뜻을 이해하고 느끼기 까지는 한동안의 시간이 걸렸었다고 실토한다.
"남한은 실질적으로 모든게 잘발달된 사회임을 파악하는데 많은 혼선을 겪어야만 했다. 즉 지하철 타기와 은행구좌를 개설하는것 같은, 사소한 일에서도 혼선이 있었다"라고 김군은 설명해준다.
지난 3월에 실시한 '한국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탈북자의 45%가 남한에 정착후 차별대우에 직면했었음을 발견했었다라고 발표한바 있다.
"according to South Korea's Chosun Ilbo newspaper"

이러한 차별대우는 그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경험하게된다.
"남한에서의 학교 급우들은 나를 팀웍 프로젝트에 끼워주지를 않았었는데, 그이유는 내가 프로젝트의 기술적인면에서 이해를 못하고, 또 리포트를 쓸줄도 모르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할것이라고 나에 대해 편견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학교생활은 현대화 되지 못하고, 다만 유일신, 김일성일가에 대한 흑색선전만이  모든 학과목의 기본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라고 그는 설명이다. 
이러한 것들이 그자신에 대해 분노케 만들었지만, 그점이 또한 그를 분발케 한 점이기도 했다 라고 설명하면서 "그러한 환경이 나를 더 노력케 했고, 남한사회의 사람들이 기대하면서 노력하는것 보다 더 노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었다"라고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다.
직장을 잡기위해 이력서를 제출하면 받아주고, 그다음 단계인 면접시험에 들어가서, 면접관들은 그가 탈북자인것을 알게돼면, 그를 합격에서 제외 시키곤 했었다고 한다.  
70개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으나, 면접과정에서 다 거절됐었다.  면접관들은 묻기를, '중고등학교 생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보시요'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처럼, 중고등학교생활이 거의 없다시피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설명하기를 '저는 탈북자입니다. 그러나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순간에 면접관은 많은 혼선을 하곤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김군은 남한사회가 그에게 이런 대접을 해주는것을 느끼면서 불안과 실망을 심히 느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그가 남한사회에 살면서 전부 나쁜것들 뿐이었다고 말하는것은 적절치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2015년에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미국 뉴욕에 소재한 'Open Society Foundation'에서, 내가 서울의 한대학에서 '통일연구'에 대한 석사학위논문을 유심히 보고, 미국에서 공부할수 있는 장학금을  그에게 수여하기로 한것이다. 그리고나서부터, 그는 미국을 증오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곳으로 가서 공부하게 된것이다.
"내가 어렸을때,  모든 교과서와 모든 커리큘럼에는 항상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의 적이다'라고 귀가 아프게 학생들에게 주지 시켰었다. 그래서 어렸을때는 항상 미국인들과 싸워 이기는 꿈뿐이었었다"라고.
그러나 2009년에 미국의 텍사스주에 소재한 '기독교선교협회 산하 청년선교'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게 됐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부터 나의 생각범위를 넓히게 됐다. 내가 미국학교친구들을 만나면서 부터 내생각을 바꾸게 됐고, 세계는 지구촌이라는것을 보게 됐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모든면이 그시점에서 부터 바뀌게됐다. 지난 8월에는 Fulbright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게돼서, 내년부터 시작하게되는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연구하게 된다. 
  
"나는 아직 어느 대학으로 갈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할수만 있다면 펜실바니아대학, 또는 콜럼비아 대학에 가고싶다.  이들 대학은 Ivy League에 속해있는 훌륭한 대학으로, 나는 이들 대학에 가기위해서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의 미국사랑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해당안되는데, 특히 지난달 연설에서(during a speech last month) '북한을 완전 박살내겠다'라고 언급한후부터다.


"그의 연설은 나를 매우 화나게 했었는데, 북한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여러 방법들이 많이 있는데, 왜 그는 꼭 '완전박살'내겠다고 했을까? 내생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할수 있는 많은 다른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김군은 설명하기를,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미국인들이 북한정권만을 겨냥하여 보지를 말고, 그뒤에는 순수한 2 천5백만명의 북한 주민이 있다는것을 인식해주기를 바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남북한 다 막대한 인명손실이 있게됨을 뜻하는것이지만, 김정은의 측근과 인척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는 뜻이다. 
"북한주민들은 우리와 똑 같은 보통사람들이며, 그들은 매일매일 그들의 삶에 온신경을 쓰며 살아가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그것이 그들삶의 전부이다."

여기서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김군은  김정은 Regime의 폭정에 못견뎌 남한에 왔기 때문에 민주주 사회에서 누리는 Freedom에 대해서 그가치를 남한사람들이 느끼는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귀중함을 알것이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전서방 세계와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마져도 김정은 Regime의 불법 핵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막기위해 지난 25년간, 외교적으로, 6자회담을 비롯한 당근과 채찍을 열손가락으로 셀수 없을 만큼하면서, 해결할려고 노력해 왔었음을 마음속 깊이 느꼈어야 했다.  트럼프와 서방세계에, 무력말고 한반도의 전쟁위협을 막을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구체적인 내용은 언급이 없었음이 아쉽다.

어렵게 장학금 받고, NBC와 인터뷰까지 하는 영광을 얻었으니, 무사히 유학공부를 마치고, 조국을 위해서 일할수 있는 동량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부탁하고 싶은것은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고, 이를 지킬힘이 있을때에만 가능하다'라는 Truth를 잊지않았으면 한다.
http://www.nbcnews
.com/news/north-korea/north-korean-defector-overcomes-past-become-fulbright-scholar-n8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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