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07, 2016

Presqui’le Previncial Park 주변의 2개의 커다란 등대에 대한 역사.

1804년, 이곳 Presqui'le 주변에는 남부 온타리오주의 장래를 계획했던 이정표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커다란 변고가 발생하여, 그후광(?)을 입은 지역이 바로 오늘, 캐나다에서 제일 크고, 바쁘고, 교통지옥이 돼버린 "토론토"라는 도시가 형성됐던 그뒷면에는 슬픈 사연이 있었다.

원래의 계획데로라면, 당시로서는 "New Castle"로 알려졌던 현재의 Presqui'le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도시건설계획이 있었는데, 당시 York(현재의 토론토)에서 이곳으로 범선(Schooner) Speedy호가 달리고 있었는데, 그배에는 당시의 York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Leader들이 세기의 큰 살인 사건의 재판을 하기위해 오다가 풍랑을 만나 타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 범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역사가 완전히 바뀌는 비극이 있었다.  불과 200여년전의 일이다.

역사를 보면, 이범선의 침몰사건으로 사람들은 충격에 빠져, 이지역의 항로가 매우 위험한것임을 깨닫고, 한참후인 1840년과 1856년도에 2개의 타워(등대)를 건설하여, 주야로 이부근을 항해하는 크고작은 선박들의 길잡이가 돼기 시작한다.  불과 200여년도 지났는데, 유명했던 Tower들이 이제는 역사의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천년 만년 서로 얽혀서 살고지고 할것같은 우리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역사를 통해 보면서,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이곳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영화와 자료를 통해 방문자들에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실이다.  앞쪽으로는 바다처럼 넓은 Lake Ontario의 호숫물이 잔잔하게 춤을 주고 있고, 한여인이 뭔가를 열심히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에 담고(?)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내가 여름동안에 잠시 거주하는 Brighton에서 명소로 꼽히는 Presqui’le Park에는 많은 전설같은 얘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온타리오 호수의 동쪽 끝쪽에 자리하고 있는 Presqui’le 공원의 반도끝에 자리한 2개의 등대에 대한 얘기를 해 보고져 한다.  그중의 하나는 이제는 폐허가 되여 Ruin된 상태이고, 하나는 다행히도 관리를 무사히 해서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마져도 앞으로는 갈길이 막막하다는 얘기다.  역사를 더듬어 보자.

초기 온타리오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아직 “Ontario”라고 알려지기전에는 “Upper Canada”로 더 많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었고, 당시의 교통수단은 수로(Water way) 를 이용하는것이 대부분이었었다고 한다.  도로가 있긴 했으나, 관리가 잘 안돼 길은 거칠고, 일년중 대부분은 도로를 이용하여 왕래할수가 없이 거의 버려진 도로였었다. 얼어 붙거나 미끄러워서, 당시 사람들은 수로를 오직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온타리오 호수는 크고작은 보트와 선박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됐었다. 그런데 Prequi’le Park 이 있는 동부쪽은, 위험한 암초와 깊지않은 수로, 크고작은 섬들, 호수로 향한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데 마치 미로(Maze) 같아서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박들은 밤에는 위에 언급한것 처럼 장애물이 많아 밤에는 항해가 거의 불가능했었다고 한다.  운이 나쁘게 바람이라도 세게불면, 항해하는것은 더욱 어렵게 됐었고, 심한경우 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궁리끝에 환하게 비춰주는 높은 등대를 설치해야할 필요를 느꼈고, 이렇게 해서 주야로 위험한 지역을 항해할때 주의를 요하도록 했다고 한다.

당시의 정부는 이러한 등대설치를 위한 벌려, 수로를 이용한 여행을 용이하게하고 또한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기도했다.
1828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온타리오호수 동부쪽에 여러개를 세웠는데, 그중에는 1840년에 세워진 Presqui’le 등대와 1856년에 세워진 Scotch Bonnet 등대도 포함되여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Speedy


2개의 등대중 나중에 세워진 등대에 대해, Presqui’le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풀리지 않은 얘기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이곳의 등대에 대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인공위성을 통해 Park의 끝자락에 있는 “등대에 대한 자료실”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호수 중간지점에서 빛나고 있는 저 불빛은 왜 있지요?” 라고 불빛만 깜박거리는 그곳을 보고 질문을 던진다.  실질적으로 불빛이 발하는곳은 아주 조그만 섬으로 지도상에는 등록되여 있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약 250미터길이에 수면위로 약 2미터 정도만 나타날 뿐이어서 항해하는데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곳이다.

Prequi’le 등대가 세워진지 16년후에 건설된 Scotch Bonnet 등대는, 같은 형태로 건설됐고, 또한 같은 라인스톤재료를 이용했고, 이등대에 잇대어 등대지기의 거처까지 건설된 것이었다. 약 2에이커의 작은섬에 건설된 이등대는 등대지기와 그의 가족들의, 1856년부터 자동화가된 1911년까지, 보금자리 였었다.  이곳에서 지낸다는것은 여간 심적 고통이 큰게 아니었다. 1959년도에 관리가 어려운 이등대를 대체하기위해 철재등대가 새로 세워졌었다.  원래의 등대는 그대로 방치되여 다 폐허가 되여갔고, 이섬은 결국 새들이 보금자리로 이용하도록 양보돼고 말았다.

그후 이섬은 “야생 조류보호구역”으로 1979년도에 지정됐고,  그이후로 이곳은 새들의 번식지가 되여 관계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한편 Presqui’le Park 끝단에 있는 등대역시,라임스톤이 침식되여 부식되는 문제점들이 발생하여, 이부식을 막기위해 1894년도 향나무 조각들을 표면에 부착해 놓았다.  1935년 전기가 들어와서 등대불이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대체되면서, Part-time으로 근무하는 직원이 1965년도까지 근무했었다고 한다.

2개의 등대를 현시점에서 비교해 볼때, 라임스톤으로 건설된 Scotch Bonnet 등대는 다 폐허가 되여있음을 금새 알수 있으며, Presqui’le 등대역시 같은 운명에 처할수 있었으나, 향나무 조각들로 외부벽을 보호하여 현재도 옛모습을 그대로 볼수 있는 것이다.  이마져도 이제는 또 다른 문제점에  직면해 있다. 

2009년도에 수로를 관리하는 연방정부는 이 등대의 ownership을 버리고 관리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이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관리조직을 결성하여 이등대를 보호하기위한 모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2개의 등대는 과거를 볼수 있는 창구역활을 해주고 있다.  왜냐면 수로와 항해를 무사히 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등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교통수단과 발달된 기술때문에, 한때는 없어서는 안될 등대들이 이제는 관리하기에 비용이 엄청나게 커서 그중요성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이 2개의 등대는 앞으로의 등대는 어떻게 변화될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Presqui’le 반도 끝에 있는 등대가 계속적으로 파괴되여가는것을 막고, 보존하기위해 2012년도에 “Presqui’le Point Lighthouse Preservation Society” 가 민간인 봉사자들로 결성되여, Brighton의 상징이기도한 등대를 후손에게 전수하고 또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모임의 목적은 이등대의 상태를 향상시키고, 빌딩의 외부와 내부를 보강하여 더 악화되는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고 원래의 상태를 유지시킴으로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져 함이다. 모금은 계속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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