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1, 2014

Day 16, Myanmar,운전석과 달리는방향 모두 오른쪽, Bago의 왕궁 및 Huge Monastery 탐방(11월13일,2014, 목요일 오전)

Yangon에서 동쪽으로 약 190 킬로 지점에 있는 , Myanmar에서 가장 유명한 Golden Rock, 불교성지로 출발하기위해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일행 4명( 나, Lunar, tour guide, driver)은 차를 몰았다.  운전석은 오른쪽, 차량도 오른쪽 Lane을 달린다. 앞뒤가 맞지않은 이상한 교통법규임을 알았다.

미얀마의 청년부터 모든 남자들은 마약성분이 들어있는, 이름을 알수 없는것을, Milk 같은것을 나무잎에 발라서, 같이 Wrap해서 질겅질겅 씹는다.  이때문에 모든 남자들의 이빨( Teeth)는 검정색에 가까운, 흉칙한 모습들이다.  이들의 설명은 담배 대용품 또는 소화제 역활을 하는것이라고 하는데.....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이 물질에 중독되여 있었다.
Bago downtown에 가는길에서 길가의 노점상에 들려 갈증을 해소하는 수박을 한덩이 사서 목을 추겼다.  맛이 무척 달아서 청량제 같은 느낌이었다.  밤에도 거의 그대로 놔두고 다음날 다시 장사를 하는, 즉 도둑걱정이 거의 없다는 뜻으로 이해를 할수 있었다.

Bago는 6세기경에 버마의 수도였었다고 한다.  지금은 불교문화 유적이 남아 있는 조그만 타운이다.  Golden Rock에 가는길에 먼저이곳에서 탐방을 시작하게됐다.
Kambawzathardi Golden 왕궁은 1553년에 건축되여 Veyineeung 왕조의 정치적 중심지 였었다고 한다.  중간에 1570년경에 원인모를 화재로 궁전이 불에 타 방치되여 있다가 199년에 정부에서 다시 재건하여 오늘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있다고 했다.
버마는 불교의 나라이면서, 황금색을 무척 좋아하고, 불교하면 황금색갈을 항상 같이 연상케 하는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로 이해됐다.

이왕궁의  Main Hall 은 당시에 왕이 칠의를 하는 법정(  Court House)으로 널리 사용됐었다고 한다.  중앙에 세워져 있는 아름드리 기둥은 전부 Teak Tree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Teak Tree는 매우 단단하여 그수명이 철골자재 이상으로 오래 유지된다고 해서, 이곳 버마를 비롯한 남쪽 아시아 나라에서는 건축물에 널리 사용되여왔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으로 예측된다.


중앙Hall의 한쪽에는 처음 왕궁을 건축할때 사용됐던 커다란 낡은 Teak Tree 기둥이 옛모습을 간직한채 전시돼고 있었다.  화재로 타고 남은 부분들이다.


옛날에 왕궁을 건축할때, 당시의 고위 관리들이 사비를 들여 Teak Tree기둥을 구입하여 기증했다고 하는데, 기둥의 맨밑에는 당시 기증자의 이름과 연혁이 선명히 각인되여 있음을  Guide, 나인조( Maing Jaw)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당시 왕궁의 조감도와 내부를 그림으로 재탄생시켜 진열하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옛왕조의 왕들은 절대 권력과 초호화판 생활을, 국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했었음을 볼수 있다.

Myanmar의 역사를 통해 기억되고 있는 3개 왕조의 시조들이 이왕궁의 한쪽 전시실에 비치되여 있다.


실내 장식역시 모두가 금빛 도금이다.  버마인들의 불심은 생활의 전부 같아 보였다.

당시의 왕 Baint-Naung은 버마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연합 정부를 세워 통치 했으며, 농업이 왕성하고, 국민들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Lunar가, 임금이 앉아서 정무를 보았던 Throne앞에서 무엇을 상상하고 있었을까?


위에서 언급한 기증자들의 이름과 내용이 각인되여 있는 Teak Tree 기둥의 맨 밑바닥이다.  수백년을 지나왔지만, 아직도 금방 가공된 통나무 처럼 윤곽이 뚜렷했다.

Lunar를 포함한 우리 인간의 형상이 너무나 초라하다는것을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기둥과 견주어 보면서 깊이 느꼈다.  잘 단장된 나무기둥은 찬란한 금빛을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었고, 그옆에는 Original Teak Tree 기둥의 잔해를 같이 진열시키는 별도의  Hall이 있었다.
1567년경에 당시의 왕 Caesar Fredrick가 이용했던 그의 전용 마차가 지금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채 보존되고 있었다.  설명서에 의하면, 이마차는 황금으로 도색되여 마차위에는 Canopy를 씌워 마치 하나의 집이 움직이는것 처럼 꾸몄으며, 아주 건장하고 잘생긴말 16마리가 끌었었다고 한다.  왕은 마차의 중앙에 앉았고, 그주위를 고위관리들 20 여명이 동석하여 행차했었다고 한다.

왕궁방문을 마치고 Bago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Kyakhatwine Monastery를 탐방했다.
이곳 Monastery에는 약 500 여명의 Monks들이 하면서 불교에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찰역시 500여년의 긴역사를 갖인 건축물이라고 했다.  버마인들은 항상 불교의식과 함께 생활해 오고 있다는것을 어느곳에서든지 느낄수 있는 불심이 깊은 나라였다.

이곳 Monastery에는 불자(Monks)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일종의 기숙사 같은 역활을 하는곳으로, 이들은  Monastery로 칭하고 있어, 처음에는 이들의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혼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Monastery의 뜻하는 내용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것과는 다른 의미로 널리 사용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형 Hall의 기둥에는 지나간 고승들의 초상화들이 전시되여, 그들을 기리게 하고 있었다.



Monks들은 식사를 하러 가기전 또는 필요시 이렇게 그들만이 사용할수 있는 목욕탕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더위를 식히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상의 한 과정이다.
500 여명의  Monks 들이 공동생활하는 Monastery는 어느 왕궁보다더 더 규모가 커 보였고,  숙소에서 식당까지 이어지는 긴 Corridor에서는, 마침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줄지어 걸어가는 Monks 들을 보기위해 모여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그들틈에 끼어, 좀더 낳은 위치를 확보하기위해 주위를 살펴보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었다.

오전 11시 정각이 되자, 한 고참 스님이 대형식당 입구쪽에 매달려 있는 종(Bell)을 타종하기 시작하면서 Monks들의 긴 행렬이 식당으로 향하게 될것임을 알려 주었는데, 종소리가 울리자 마자, 같이 기거하고 있는 여러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약 2분간 짖어대는게 아닌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살고 있는 개들만이 느끼는 그무엇이 작동하고 있는것으로 생각됐었다.

종(Bell)이라고 하지만, 큰 통나무를 깍아 만든 것이기에 깊은, 두둘겨 맞은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만큼 오래 사용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공동식당앞에 준비된 큰 밥통에는 수북히 흰쌀밥이 쌓여 있다.  보시를 하고 싶은 관광객들과 식사당번으로 차출된 Monks들이 한데 어울려, 줄지어 지나가는 Monks 들에게 밥을 퍼서 개인용 식기에 담아 준다.

이곳에서 만이 볼수 있는 유일한 광경이다.  처음에 이런 행렬이 이어질때, 많은 관광객들은 밥한그릇씩 떠서 승려들에게 건넬려고 마치 경쟁을 하듯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순간들을 다 포착한 다음에는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일종의 밀물, 썰물 흘러들어오고, 나감을 생각케 하는 순간이었었다.


결국 맨 뒷줄에 서서 식당에 입장하는  Monks들은 당번을 맡고 있는 동료 Monks들이 그들의 밥그릇을 채워 주는 광경이 목격돼기도 했다.  Monks 들은 자기 개인용 식기들을 항상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Lunar가  끝까지 남아 정성스레 지나는 Monks들에게 밥배식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한번이 아니고 스님들의 행렬이 거의 끝나갈때까지 Monks 과 어울려 배식에 참여 했었다.
Lunar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면서 흔히 타종교에 대한 비하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남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하는것이 바로 나의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간단한 철칙을 고수하는 신앙인이다.  그녀가 정성으로 써빙하는 그모습이 보기에 든든해 보였다.

이곳에서만이 구경할수 있는 유일한  Monastery의 한장면이다.  승려들은, 즉 수도승들은 전부 맨발이다.


대부분의 Monks들은 어린 소년들 아니면 청년들이다.  이들이 평생 이곳에서 불교에 심취해서 Monk생활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Monastery에 들어오고 나가는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그래서 이들이 입고 있는 승복의 한쪽 어깨는 항상 외부에 노출되여 있다.  이는 수도승이라는 뜻이다.


Monastery의 진풍경을 경험한후 우리도 식사를 해야 했기에 Guide의 안내를 받아 값싼 Local Restaurant에 들려 식사를 주문하는데, 우리가 주문하기에는 방식과 음식의 맛을 몰라 Guide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공된 음식들을 큰  Tray에 쌓아놓고 진열대에 올려 놓으면, 마음에 드는 종류를 골라 Order를 하면 Plate담아 주는, 그리고 종류에 따라 다른 가격의 Fee를 지불하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Guide와 Driver 것까지 지불해서 마음이 좀 가벼워 진것 같았다.  원래는 그들은 우리와 따로 밥을 먹게 되여 있지만, 같이 행동하는 한식구들이었기에 가능하면 같이 할려고, 그래서 그들위에 군림하는 여행객이 아니라는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내포되여 있다.

많은 Local People들이 가족들과 어울려 점심을 즐기고 있다.  이곳의 식당은 한국의 재래 식당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즉 Side dish가 많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버마의 여인들만이 얼굴에 노란색갈의 그들 전통의, 집에서 만든 화장품(?)을 볼따구니에 바른것을 보았는데, 남자 종업원이 그러한 화장을 한 광경을 보고 한컷 했다.

오후 2시경에 Golden Sunrise Hotel에 여장을 먼저 풀었다.  이곳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기에 여러가지로 Service가 많이 열악하다.  방을 배정받아 들어 갔는데, Air Cond.이 작동안돼 다시 다른방으로 옮기는 소동도 있었다.
Wi- Fi 써비스가 된다고 하여 좋아 했었는데, 막상 내방에서 시도했을때는 먹통이었다.  다시 Front Desk에 갔었으나, 같은 대답이다.  어떻게 할수 있나. 그냥  Give up 하는수 밖에.
Kyaiktiyo에 있는 Golden Rock은 버마에서 가장 성스러운 불교성지로 버마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호텔을 나와 산정상에 있는  Golden Rock으로 가기위해 Base  Camp로 달려가서, 그곳에서 추럭을 Open Car로 개조하여 앉을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서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달려가야만 한다고  Guide가 설명해 준다.  우린 차에 올라 좌정하고 출발을 기다렸다.
수십대의 개조된 추럭들이 쉴새없이 In-Out하고 있었지만, 좌석은 꽉 차서 몸을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게 됐을때 추럭은 출발했다.   Guide도 함께 동승했다.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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