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08, 2014

Day11,월남,Saigon 외곽의 '구치터널', War Museum 탐방(11월8일,2014, 토요일)

전쟁에서 패자는 할말이 많아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한것은 월남에 무진장하게 많은 지하자원을 차지하기위해서라고 배웠단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 구경한 구치터널과 전쟁박물관에서 비치된 설명서와 비디오를 보면 월남전 당시 남쪽 월남을 통치하고 있었던 "티우 정권"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고, 미국침략자들과 남부 월남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VC조직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One sided Game같은 Propaganda를 어린 아이들, 즉 후손들에게 전쟁후 지난 40여년간을 그렇게 역사를 주입시킨 것이다.


Bird's view from the 12th floor where hotel restaurant sit was panoramic that couldn't feel any scars of Vietnam war was here in this city which ended about 40 years ago.  Breakfast like other hotels where we stayed was served with variety of foods which is totally different from hotels in western countries that served usually toasts and drinks only.  It's a kind of way of surviving and keeping health to carry on the remaining tour schedule, I think.
 With this trip, lunch and dinner are mostly excluded, so I with Lunar must look for restaurants to take meals.  But sometimes we had no chances to take meals due to visiting sites.  We have eaten breakfast a little bit more than usually had at home as meaning of preparing for missing of lunch or dinner.  Today we ate a little bit more as we did yesterday.

 주민들이 '다이찌'하는 모습도 여유있게 보였다.  이들을 보면서 40여년전에 끝난 월남전의 상처는 최소한 겉으로는 한점도 찾아 볼수 없었다.
어제 Guide했던 Thong의 설명을 믿는다면, 전후 40년 동안에 Saigon시내는 고층건물들이 그수를 셀수 없이 늘어났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선뜻 동의 하기는 좀 그렇다. 전후 25년 동안은, 미국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는데.....


시간에 맞추어 Front에는 오늘 다시 새로 만나는 Tour Guide가 미리와서 우릴기다리고 있다가 금새 알아보고 와서 인사를 한다. 아주 젊은 친구로 이름은 Dzung라고 자신을 소개 한다.  나도 모르게 어제 일어났던 Guide와의 일을 생각하면서 이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주 유창한 영어를 해서 마음이 편했다.  바로 대기하고 있던 차로 가서 운전수와도 인사를 나누고 바로 "구찌 터널"을 향해서 출발했다.
 약 한시간을 달려 Saigon 시내로 부터 서북쪽에 있는 '구치'마을에 도착하여 절차를 밟아 탐방에 필요한 수속을 밟았다.


 먼저 Orientation타입의 전시실에는 각종 소총들이 전시되여 있었다.  눈에 낯설지 않은 소총들은 AK 47, M1 정도다.  Carbine은 안보이는것 같았다.  그럴리가 없을텐데.
 미군을 포함한 월남전때 연합군이 사용했던 소총과 북부 월맹군들과 VC들이 사용했던 중국및 소련제 소총들이 나란히 진열되여 있어, 이총은 몇명의 젊은 생명을 앗아 갈을까?라는 생각이 가슴을 쪼여 온다.
 

 또한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중에는 턴넬에서 외부를 살리고 있는 전쟁영웅, 월맹군과 그들이 턴넬을 파고 그속에서 두더지처럼 생활했던 턴넬의 단면도를 그려 놓아 이해를 돕고있다.



 형식을 중시하는 공산국가들의 전형적인 겉치레 형식의 입장 Ticket를 점검하는 절차를 거치고 통과 하면서, 바로 그위에 여러나라말로 표시된 전광판이 눈길을 끈다.  그중에서 영어와 한국어로 표시된 전광판을 보면서, 한국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오늘 우리가 탐방하는 턴넬은 Ben Duoc 지하턴넬 Complex이다.  이곳은 Saigon-Gia Dinh 지역 공산당 본부와 베트콩 지휘소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1979년도 4월29일에 국가차원의 보존 지역으로 지정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곳의 지하 턴넬 길이는 200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베트콩 간부들의 회의와 모든 필요한 시설들과 또 싸움을 했던 곳이다.
 여기 오기전까지 내가 상상했던 "구치턴넬"과는 전연 딴판인 턴넬을 보면서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해도 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면 이들 턴넬들이 지나곳의 지상에 미군 병영 시설들이 있었으니.... 더말해 뭐 하겠는가.  미군들이 작전을 세우면 그내용이 베트콩들의 아가리에 갖다 바치는식이었으니 말이다.
원래 '구찌'마을은 월남정부 시절에는 주말이면 많은 '사이공'시민들이 나들이를 많이 왔었던 조용한 농촌마을이었고, 또 유락지였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메콩강으로 부터 겨우 1킬로쯤 떨어져 있어, VC들이 지하턴넬을 그곳까지 연결하여 위기시에는 금방 도망갈수 있는등의 여러조건들이 꼭맞았기 때문에 이곳에 지하동굴을 파고 싸웠다는 것이다.
 자유중국의 금문도를 탐방 했을때 보았던  Tunnel을 생각하면서 그런구조의 곧바로 이어진 지하 동굴을 이용한 통로(Path)로 생각 했었는데, 내 생각이 너무나,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의 동굴에 대한 상상이 안이한 나를  기준으로한 엉터리 상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지하 벙커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벙커에 대한 설명과 비디오 상영을 보았다. 영어로 된 비디오 전시실에 가지말고 한국어로 나오는 전시실에서 설명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영어로 하는곳에는 항상 관람객들로 붐비기 때문에 비교적 한가한 이곳을 택해 우리부부가 여유있게 하려는 배려임을 금방 알수 있었다.
우선 영어로 이층,삼층으로된 턴넬의 구조를 설명해 준다.  상상을 초월하는 VC들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탄복안할수 없었다.  일층은 지상에서 2-3미터 아래에, 그다음 지하 이층은 5-6미터에, 그리고 마지막 삼층은 10미터 지하에 있었고, 각층은 서로 연결되여 있었다. 그리고 동굴의 맨끝은 메콩강으로 빠져나가게 되여 있었다.  맨윗층은 접근이 쉬워 환자치료하는곳으로 주로 쓰였고,  지하 이층, 삼층은 생활공간과 작전을 하는 곳으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Ho Chimin의 사진은 걸려 있었다.

한국말의 해설로 된 비디오는 첫마디부터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물리치기위해 월맹의 전쟁영웅들이 동굴생활을 하면서 싸웠었다고 설명을 이어가는것으로 부터 Propaganda는 시작됐었다.  갑자기 주위가 웅성거려 뒤로 돌아보니 한국관광객팀이 우리부부뒤로 앉아있다.
턴넬이 있는 현장을 본 첫소감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것 처럼, 월남전은 처음부터 미국과 연합군이 패할수 밖에 없었던 전쟁이었음을 알수 있을것 같았다.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Carpet bombing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겨내는 그런 전쟁은 애초부터 아니였음을 파악못한 미국정보기관의 실수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것이다.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곳에는 간혹 지붕이 만들어져 있는곳도 보였지만 어떤곳은 평지에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로 정교하게 조그만 뚜껑을 덮어 놓은곳도 있었다.
 이웅덩이는 당시 B-52폭격기가 포탄을 쏘아 생긴 Crater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Crater가 수도없이 많다고 한다.  어떤곳은 물이 고여 있고, 또 어떤곳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나무가 자라고 있는곳도 보였다.
 주로 유럽에서 관광온 여성들이 실제 체험을 시도해 본다.  어떤 여인은 몸이 커서 그냥 나오기도했다.  나는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사진을 찍는것으로 대신했다.
삐짝마른 체구의 사람만이, VC들만이  들어갈수 있는 정도로 파놓은 토굴에 들어가면서 뚜껑을 스스로 덮으면 그대로 평지가 되는 구조의 턴넬을 등치큰 미군들이 찾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이곳은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죽창을 꽃아 놓고 뚜껑을 덮어놓으면 이를 밟은 미군및 연합군들이 그곳에 빠지는 순간 바로 찔려 죽거나 중상을 입게되는 함정이다.  턴넬을 파는데 이곳의 지형은 진흙처럼 단단하여 견고하게 본래의 굴모양을 유지하기에 어쩌면 천해의 조건을 갖춘곳인것 같다.


월남 공산정권의 설명과 안내문에는 미국이 지하자원이 탐나 먼저 침략했다고 몰아 부친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상반되는 증거를 금방 인식할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후 미국은 곧바로 월남에 대해 경제 봉쇄( Economic Embago)를 하면서 부터 월남의 경제는 휘청거리고 Grow 하지못하고 가난과 전쟁폐허에 고생해 오다 1995년도 이를 해제 하면서 미국과의 국교가 시작된다.  다시 경제적 활로를 찾고 지금 경제건설에 한창 열을 올리고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된다.   당시 '티우 정부'가 자유월남을 월맹의 게릴라 전쟁에서 혼자의 힘으로는 지켜낼수 없어 미국에 원병요청을 하면서 개입하게된것으로 설명했어야 앞뒤가 맞는데...... 역사는 승자 마음데로 기록하는 우를 범하는예가 많다는것을 여기서도 본다.

 월맹군의 전투에 임하는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시켜 놓아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월맹군은 모든 사용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던 증거로 Termite가 파놓은 구멍을 이용하여 그들의 지하 환기통으로 사용하는 지혜를 동원한 현장을 봤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에 안성마춤의 외형이다.  당시 VC들의 생활은 두더지에 비유하는게 더 정확하고 현실감을 느낄수 있었을것 같았다.


지하에 파놓은 여러 함정들이 보인다.  뚜껑을 덮어놓고 위장한 위를 미군들이 걸어가면 바로 함정에 빠진다. 그밑에는 쇠꼬챙이, 또는 여러모양의 원시적 무기들이 온몸을 찌르게 되여 있어 치명적일수 밖에 없겠다 생각됐다.   원시적 무기와 대량 살상을 할수 있는 현대식 무기와의 싸움에서, 미국은 참패했다.



 Guide가 보여주고 있는 쇠꼬창이 틀은 민가의 문에 걸려 있었던 살상무기였다고 설명한다.
수색작업을 나가서 민가 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문을 발길로 세게 차면 문이 열리게된다.  그러면 문안에 걸려 있던 이들이 순간적으로 내려 앉으면서 앞으로 튀어 나오게 되면 온몸을 찌르게 된다.  죽지는 않아도 치명적인 상처를 주어 후송되는, 작전이 차질을 빗게 된다는 뜻이다.

 베트콩들은 불발된 포탄을 수집하여 탄피를 잘라 그안에 있는 Powder를 이용하여 다시 그들이 사용하기에 알맞게 포탄을 제조하여  미군과 싸웠다고 한다.  결국 이들의 설명데로라면, 미군과 연합군들은 자기가 쏜 포탄에 희생되는 전쟁을 한셈이다.


 이토굴은 지하3층으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아무런 계단이 없었다.  설명에 따르면 손과 발을 양쪽벽에 대칭으로 밀착시키고 오리걸음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흙이 흘러 내리지 않는 찰흙이어서 땅마져도 베트콩쪽에 손들어 준것은 아니었었나?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당시의 베트콩들이 사용했던 군장품들을 재현해서 만들고 있는 광경이다.
 자동차 타이어를 이용하여 앞뒤가 똑같은 모형의 슬리퍼를 만들어 신고 정글을 헤맬때, 미군들은 발자국에서 어느 쪽으로 적군이 이동했는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매우 큰 슬리퍼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발자국을 보면 심리적으로 무서움을 더줄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곳도 폭탄이 떨어졌던 Crater인데 지금은 낙엽과 풀들로 덮혀 있어, 당시의 참상을 상상해 볼수 있는데,  Propaganda용으로 보인다.


 깊은 동굴속에서는 겨우 사물을 구별할수 있는 정도의 희미한 불빛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기름이 들어있는 종지에 헝겊같은 심지를 넣고 불을 켰다고 한다.   여기서 설명하기를 이곳의 주민들이 철천지 원수인 미군들을 물리치기위해 자진해서 토굴을 파고 월맹군과 협조를 하고 어떤 여성은 사상이 투철하여 직접 전쟁에도 참여 했었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당시의 여건상 협조를 하지 않을수 없어, 낯에는 자유진영의 군대에, 밤에는 월맹군의 통치하에 들어가기 때문에 끌려 다니면서 협조 했다고 보는게 무척 설득력이 있다고 이해를 하고 싶다.



 이곳은 지하 일층으로 된 턴넬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관람객들을 위한 잠시동안이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지하 2층에서 음식을 만들때 불을 태우면 연기가 난다.  이를 어떻게 해결 했을까? 무척 궁금하기만 했다.  그 의문은 금방 해결됐다.  동굴을 나와 한참 이동한곳에 있는 낙엽더미속에서 연기가 모락 모락 나고 있는게 아닌가.  대나무를 이용하여 연통을 만들어 연기가 난다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깊은곳에서 취사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기란 무척 어려웠을것 같다.  월맹군은 미군들을 상대로 속임수를 최대한 이용했다고 봐야 할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따뜻한 Tea Pot과 고구마 같은 삶은 '타피오카' 를 제공해 준다.  맛이 있었고 마치 고구마를 먹는것 같았다.  값을 치를려고 했더니, Guide, Dzung이 이미 입장료에 포함되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써비스도 받아봤다.

 베트콩복장을 한 병사들은 멀리서 보면 꼭 실물 같은데,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Lunar와 Dzung이 함께 하니 더 어울린다.




우리가 즐겨먹는 Cashew가 이런열매속에서 나온다고 한다.  처음본다.  천연과일들이 많다. 이천연과일들 때문에 베트콩들이 정글속에서 지구전으로 버티면서 승리를 이끌었던것 같다.
 다시는 이런 참상을 보게되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토굴을 파기위해 수많은 인명이 전쟁도 하기전에 죽었을 것이다.  파낸 흙은 흔적이 없이 버려야 하는데, 마지막 버리는곳은 동굴로 연결된 메콩강가에 버렸다고한다.  이곳의 '구치턴넬'이 있는 면적은 자그만지 250 Km square라고 하니 엄청난 넓이다.   말없이 소리없이, 자의든 타의든 참가하여 굴을 팠던 그사람들의 희생은 어떻게 보상하고 기록되고 있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은것 같다.  결국 살아서 후에 권력을 잡은자들만이 그보상을 송두리째 채가고 있는것은 아닐지?
사이공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 Guide 가 차를 세우더니, 타피오카로 만든 간이용 음식을 한봉지 산다. 달러로 환산하면 겨우 $1달러 꼴이라고 한다.  맛이 꼭 맞는다. 다만 뒷탈이 있지 않을까 약간 걱정을 하면서 맛있게 먹고 보았다.  무난하다. 아마도 삶아서 그런것 같다.

특산품을 파는 곳에 잠깐 들려서, Weasles 똥에서 채취하여 가공한 커피를 대접 받았다.  지구상에서 이커피가 가장 비싸다고 한다.  Weasels ( 족재비?)가 이런 고급일을 하다니..... Weasels의 똥을 우리는 즐겨 마시고 있는 셈이다.  허긴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는 꿀도 따지고 보면 이와 별로 다를게 없을것이다.


 War museum으로 향하는데, Lunar는 탐방하고 싶지 않고 대신에 인근에 있는 백화점에 가겠다고 하여, 아직 Museum Open하는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 또 한군데, 자개장을 만드는 공장에 들렸다.  그곳에서는 Pearl 껍질뿐만이 아니고 달걀껍질도 이용하여 장식하는 수공업 공장이었다.  한개 한개를 핀센트로 집어서 부치고 그위에 또 다른 물질을 덮어 완성하는 것이었다

박물관에 가는길에 어제 보았던 Cathedral Church 뒷모습을 다시 담아 보았다.
전쟁박물관에서 본 아래 사진은 1965년도에,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깊은 물속을 헤쳐 나오는 장면이다.  이사진을 전시한 목적도 다분히 Propaganda냄새를 풍겼다.  미군이 폭격했기 때문에 고향과 집을 버리고 베트콩지역으로 도망가서,  결국 해방된 조국에서 살수 있게 됐다는 식이다.  1966년도에 사진부분에서 플리쳐상을 수상했다고 설명을 덧부쳤다. 

 전쟁박물관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3층의 건물에 주로 전쟁통에 찍었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승자의 자랑만 자기네 입맛에 마추어 설명하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면서, 역사가 정말로 이렇게 기록되여도 되는것인가? 라는 안타까움이 더 했다.  전쟁의 참상을 지켜본 많은 전문가들이 중간적인 입장에서 기록한 내용들이 언젠가는 여건이 허락되면 세상에 밝혀져 가려진 전쟁의 진실을 후세에 보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관람후에 느낀 소감이다.
 박물관 밖의 광장에는 미군들로 부터 노획한 전쟁 장난감들이 진열되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치눅헬기가 내시선을 모은다.  당시 전쟁터에 내려앉아  Soldiers을 내려놓는 장면과 또 때로는 부상병을 운반하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지나고 보면 다부질없는 몇사람들의 욕심때문에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바보짖들인것을 알면서도..... 그런 투쟁은 오늘도 중동 어딘가에서는 진행되고 있다......

Lunar 가 잡은 순간들을 모은 오늘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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