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30, 2014

Day 14, Cambodia, Tonle Bati 사원, Yeay Peou temple탐방,Roasting 개구리 요리 (11월 11일,2014, 오전)

Tonle Bati Temple은 12세기경후반과 13세기 초에 걸쳐 건축된 사원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페허가되여 돌덩이만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약 20분 동안 달려 도착했었는데, 당시왕조의 Cheyavaraman Vll 에 의해 건축됐다는 설명이다.  이왕조의 특징은 당시에 번성했던 Hinduism과 Buddism 으로, 종교적 신앙정신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고 했다.

이곳 Cambodia에서는 Monk되기위해 만 6세 부터 출가를 할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벽의 구조는 역시 벽돌을 쌓아 축성했는데, 그정교함은 Vietnam에서 보았던것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옛날에 벽돌과 벽돌사이에 아무런 접착제없이 쌓아 올린 그기술은 어떻게 이해을 해야 할것인가?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은 Glue같은 투명한 접착제를 사용 하지 않았을까?라는 나만의 공상도 해 봤다.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곳 Chiso Temple 에는 코끼리상이 서 있었다.  코끼리는 일종의 신앙의 상징물처럼 이곳 캠보디아에서는 흔비 볼수있는 일종의 숭배신으로 이해하는게 편할것 같다.






Buddah Statue앞에 장식된 형상은 거의 대부분 머리가 여러개 달리 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불교문화와 Hindu문화의 복합을 의미하는것으로 이해됐는데,  역사적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마침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여학생(여고생)이 우리가 쉬고 있는 곳에 합석하여 미소를 짖는다.  그녀들은 Tour Guide 와 우리가 영어로 대화하는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Temple 안의 Monk들의 식당에는 마침 점심을 하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Donation해온음식과 또 Volunteer들이 준비한 음식들이 Table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곳 Chiso Temple의 주지 스님과 마주 앉아 인사를 나누고, 사찰구경을 할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가까이서 대화하면서 느낀점은 이들의 생활도 고달파 보였다.  동자 스님이 실과 바늘처럼 함께 움직이는 그들만의 깊은 뜻이 있을것 같이 느껴졌다.

캄보디아는 가난한 왕정국가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고 하는 설명에 깜짝 놀랐다.  캠보디아보다 잘산다고 하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나라들이 의무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쩌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위한, 홍보용이 아닐까하는 냄새가 많이 느껴졌었다.  왜냐면, 초등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오전반 오후반으로.  대학을 진학하기위해서는 많은 학교수업을 하루종일 받아야 하는것으로 인식되여 있는 세계각 나라들과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오전반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는점도 특히했다. 60여년전 내가 초등학교 다니면서 2부제 수업을 했었던 기억과 Ovelap 된다.

이곳에서는 평균 쌀농사가 2모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토론토 수퍼마켙에서 가끔씩 보았던 검정쌀과 황색의 쌀이 실제로 자라고 있을까?라는 수수꺼끼같은 미심쩍은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는데, 차창을 통해 보이는 Rice Peddy에서 검정쌀 이삭이 나와 있는것을 내눈으로 확인 하게 된 순간을 찰칵 해 보았다.
길거리의 갓길에서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지나치는 차창 유리로 보이는 각종 풍경들이다.  스님이 Motor cycle 뒷좌석에 끼어 앉아 달리는 모습도 내눈에는 특이해 보였으며

도로와 옆 Side Walk의 구분은 도심지 내에서도 볼수가 없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것 같았다.




옛사원들을 보면, 이곳의 조상님들의 과거 생활이 윤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아무런 의심없이 믿음을 주는것은, Temple들의 규모에서 느낄수 있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는것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른게 있다면, 당시에는 소나 말 또는 코끼리가 교통 수단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와 Motor Cycle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점이다.   Soft Drink의 빈병들이 대부분 Motor Cycle의 연료통으로  재활용 되고 있었다.  무척 위험스러워 보였지만 이들에게는 일상생활의 한부분일뿐이다.  Gasoline이 들어있는 병들을 정리하고 있다.




유적지관람명목으로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있는 Temple안에서는 주민들이 기거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광경도 목격돼곤 했다.   문화재로서의 그 근본뜻이나 이해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인지?  이런 방법으로 페허가된 유적들을 보존하기란 물가에 어린 아이를 놓아두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체계를 갖추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줄수 있는 보편적 사고방식은 언제쯤 이루어 질수 있을까?  입장료만 제대로 가치있게 사용된다 해도, 지금 보다는 훨씬 더 구경온 관광객들에게 나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관람시킬수 있고, 주민들의 생활향상도 가능할텐데.....
그래서 개발이 덜된 나라일수록 국가를 운영하는 Leader들의 헌신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 더 부각된다.
 Monk가 돼기위해 부모의 손을 떠나 처음 Temple에 들어온 어린 아이들이 기존 Monk들과 분리하여 예비훈련을 받고, 앞으로 2일후면 정식으로 Monk Uniform을 입고 승려의 길을 걷게되는 아동들이 합동으로 식사를 하는 Hall안의 한쪽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가장 어린 아이는 만 6세로 부터 10세 미만이라고 했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옛날의 Stupa가 사찰안에 절반은 페허가 된채로 보존(?)되고 있었다.  Stupa의 개념은 입적한 Monk의 Relics를 보관 한다고 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민중의 신앙의 대상이기도한 일종의 Superstition의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이해됐다

 Temple 탐방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가면서 길가에서 바나나를 사기위해 차를 세웠었다.  깜짝 놀란것은 Bull Frog들을 잡아서 Roasting해서 팔기우해 꼬챙이에 끼워 진열시키고 있는것을 보았다.  지나가는 차에서 먼지가 날아들어서 위생적으로는 도저히 먹을수도 없었지만
 개구리라는 선입견 때문에 엄두를 내지는 못하고, 바나나를 한번들 사서 점심요기로 때우고, Tour Guide와 Driver는 한꼬챙이의 개구리 고기를 사서 배를 채웠다.  다시 차를 달렸다.  이들의 삶을 보면서, 왜 이렇게도 50-60년전의 고국에서 살고 있을때의 어려웠던 삶을 살아갔던 부모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짖누르는 아픔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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