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6, 2012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둘러앉은 성탄절 저녁 테이블

이제는 나보다 훨씬 더 커버린 두아이와 같이 온 친구가 식탁에 삥 둘러 앉아, 엄마가 아침부터 준비해온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코끝이 찡해 옴을 느낀다.   지금은 각자의 집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에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오늘 다시 만남을 만든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커보이던 식탁이 오늘 이시간에는 꽉 찬느낌이다.  어제낯에 Super Market에 나가 터키를 사고, 또 다른 식품도 구입 했었다.   쇼핑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성탄절 저녁에 꼭 참석할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우리 부부는 그렇게 음식준비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었다.   다행 스럽게도 엄마의 offer를 받아 주어서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게 된것이다.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한인들중에는  명절때는 특히 성탄절에는 온식구가 모여  음식을 나누면서  혈육의 정을 나누는 얘기들을 들을때면,  가끔씩은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나도 고국에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런 분위기속에서 하루저녁을  뜻있게 보낼텐데....라고"
이곳에는 내쪽은 나혼자다.   

이민 36년동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삶의 즐거움보다는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뇌리에서 떠오르는것은, 어쩌면 우리 한인 모두가  경험했던 삶의 현실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몸서리 쳐지도록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에 지난 36년간 살아온 삶을 다시 반복해서 하라고 한다면, 삶을 차라리 포기하는쪽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식탁에 둘러 앉아 Turkey고기를 Cranberry Sauce에 찍어 먹으면서, 아이들이 가끔씩은 어렸을적의 얘기를 무심코 저희들끼리 할때면, 괜히 마음이 아파온다.   그때 좀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먹고살기위한다는 핑계를 대고   같이 놀아주지도 못한때가 많았었고,   때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최근에는  Executive Course 로 MBA 학위를 받을때도 그현장에 있어주지 못했던 점들이 아빠의 가슴속에서 옥죄어 나옴을 느끼면서,   그래도  잘자라서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가는 아이들이  보배처럼 느껴진다.

초등학교때, 아이가 학교 밴드부에서 큰 나팔을 맡아 불면서, 때로는 집에 까지 들고와 연습을 하느라 삑삑 소리를 낼때면,  피곤한 몸을 쉬러 방에 들어왔는데, 그소리에 쉴수가 없을때는, "야 빨리 빨리 불고 끝내라" 라고 아이를  야단치는 무식한 아버지 였었던 기억이, 지금 식탁앞에 앉아 있는 아들 아이를 보면서 주마등 처럼 기억속에서 흘러 나온다.   아이는 아마도 기억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때면 아이는" 아빠 3/4박자 노래인데 어떻게 빨리 불수가 있어?" 라고 대답하면서, 무식한(?) 아빠를 쳐다보곤했던 코흘리개 아들이었었다.

삶의 현장에서  손님을 상대로 장사 하기에 바쁜 그때,  손님중에 한분이 가게에 들려, "네 아이가 지금 학교 밴드부에서 리더로  Performance준비를 하고 있는것을 보고 왔다.  아주 잘 하더라.  가서 Cheer해주어라" 라고  아이가 학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알려 준일도 있다.    그럴때면 부모인 나를  위해서 해주는 소리인지? 아니면 넌 장사만 생각하고  아이의  학교생활에는 관심이 없느냐? 라고 비아냥 거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었다.  학교의 Arena안에  Podium에서 연주를 하고 있던 아이가 아빠인 나를 보더니, 더이상 나팔을 불지 못하고  뻔히 한참을 아빠를 쳐다 보다가, 이를 목격한   선생님의 손짖으로 다시 나팔을 부는 순간도 목격한 기억이 떠 오른다.  아이는 아빠나 엄마를 생각할때, 의례히 우리 부모는 장사에 파묻혀 학교에 올것이라고는   상상도 안해왔었다는  증거였으리라.

중학교 졸업식에 모처럼 시간을 내여 참석했었다.   예상치도  않게 아이가 Award를 많이 받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신경써 가면서 보살펴 준일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뿐이었음이 더 있었다.
아이가 어쩌다 아침에 늦잠을 자느라 학교 등교시간에 늦어도,  아이들에게 성화를 부린일이 없었다.    학교 다니는일은 부모가 해줄일이 아니고,  아이들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만 미루면서,  생업과 연결시켜 왔었던 기억이 오늘 저녁 이저녁에 새삼 떠 오른다.

언제 준비 했는지, 선물 꾸러미를 엄마에게 아이들이 내민다.   겨울이니까 춥지 않게 입으라고 두툼한 샤쓰와 부엌에서 엄마가 사용키좋은 Juice Mixer기를 사왔다.   내눈에는 아직도 그들이 어린 아이로만 보여, 선물로 가져온 그물건들을 사느라 지출했을 돈을 속으로 먼저 계산을 해본다.   적은 돈이 아닌것 같다.   고맙기도 하지만, 괜히 마음이 쓰리고 아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하는데...."라고.   엄마의 마음은 더 한것 같다.
부모의 마음은 어느 누구나 다 한결 같은 생각일 것이다.    아까워서 함부로 몸에 걸치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엄마 또한  Juice Mixer기에 대해서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오래전 내가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사회 초년병이었을때,  어머니 돗보기 안경과 털오바를 사드린 적이 있었다.   그땐  어머니가 "괜찮다  나는 그런것 없어도 할일 다한다" 라고 말씀 하셨던  그뜻을  오늘 이저녁에야 어렴푸시 깨달은것 같다.  아이들이 사온 선물을 열어 보면서.
그뒤  주말이 되면 서울에서 시골집에  들리면, 어머님은 돗보기 안경을 끼시고, 양말을 꿔매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었고,  읍에 나들이 가실때는   꼭 오바를 입고 다니셨던 기억이 떠 오른다.
아마도 동네 친지분들과 같이 읍에 걸어서 다니면서도  은근히 자랑을 하셨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것을  식탁에 마주 앉아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실감한다.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할려고 하는 순간,  아이가 아빠 내가 식사감사 기도 할께요.  의외의 발언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언제 아이가 이렇게 기도까지 하는 신앙생활을 삶의 일부로 생활화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한국말 보다는 영어가  그에게는 쉽기에,  그점이 약간은  아쉽긴 했지만.  

터키를 roasting하는 법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잘알고 익숙해 있는것으로 생각돼지만, 그래도 한점 고기를 씹으면서,  "엄마 고기가 참 맛있다.  몇도에 마추고 얼마동안 roasting 했어요?" 라고 엄마에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도 보기좋다.    이런 흐믓한 순간들을  아이들이 보여 주기에
산고의 고통도 이겨 내면서 자식을 생산하고,  그래서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는 Simple한 진리를  머리속에 깊이 각인 한다. 

먼훗날, 나의 아이들을 통해 새생명이 태어나고, 기하학적으로 산술적으로 후손들이 늘어나서,오늘과 같은 식구들, 아니 자손들의 모임이 있을때, 우리의 시조(the father of progenitor)에 대한 뿌리를 찾는다고 한다면, 나와 내아내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어렷을적 나의 부친께서 족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신 기억이 어렴푸시 생각난다.  정처없이 개나리 봇짐을 싸서 헤매다가 한곳에 정착하여 자손들을 생산하고....... 몇대가 흐르고 난뒤, 그가 바로  소위 고국에서는 가보로 여기는 족보의 시조로 등재된것처럼,  나도 그런위치에 서있음을 아이들과 테이블에 같이 앉아서 성탄감사 식사를 하면서,  우리 부부의 위치가 매우 중요(?)한것임을  느끼면서 그러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가는 앞에서 나도 별수없이  인생황혼기를 살아가는 한초로의 심정으로  생각이 좁아짐을 느낀다.

바라기는 건강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맡은바 삶의 책임을 다해가면서 사회인으로서 반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부부의 삶이 다 할때까지 흐믓한 마음으로 볼수 있도록 살아가기만을 바랄뿐 더이상의 아이들에 대한 욕심은 없다.   오늘밤의  식탁은  온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감사의 요건으로 채워진 음식을 먹을수 있는 축복을 주신 그분에게 진정으로 아뢰고 싶은 순간이다.    창문너머 온타리오 호수위에는 한떼의 백조가 한가롭게 거북선처럼  먹이를 찾아 바삐움직이는 모습이  많은것을 느끼게 한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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