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07, 2011

10월14일 삼십일일째, 국립박물관, Jinshantenbo어촌,Yehlin Geopark해양공원, JenFen재래마켓방문.












































10월14일 삼십일일째, 국립박물관, Jinshantenbo어촌,Yehlin Geopark해양공원, JenFen재래마켓방문.

오늘아침식사는 길가의 간이식당에서 30원(약 1달러)정도하는 Soy milk 한공기와 만두한개로 때웠다. 오늘 아침은 완전히
어제저녁과 비교가 된다. 어제 저녁에는 한사람당 약 100원 정도하는 오리고기와 쌀국수등 이었는데, 하늘과 땅차이로 다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구경때문에 식사한끼 굶어본 일은 없이 꼬박꼬박 때가 되면 만사 제치고 찾아 먹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조금은 알것 같았다. 거기다 저녁에는 꼭 Dessert까지 찾아 먹었으니.... 과연 먹거리가 발달한 이유를 조금은 알게하는 이번 여행이다.

국립박물관에 우리 일행은 뻐쓰를 대절하여 갔다. 어제밤부터 리더가 당부한 교포초청 ID카드를 목에 걸고 입구에 도착하니 카드를 확인 하더니 그냥 통과다. ID카드의 위력이 이렇게 큰 것이라는것을 통과하면서 알았다. 일반인들은 구매창구에서 긴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구입해서(값은 모름)들어가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박물관은 전문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전시된 유물의 가치를 알고 귀중함을 알게 되는게 상식인데, 막연했다. 입구를 지나서 안내소에서 영어판 자료를 찾았더니, 없다. 겨우 한장짜리 유물들이 진열되여있는 안내서가 전부였다. 설명용 Audio시스템이 있긴 했으나 한번 빌리는데 100원(3.5달러)라고 해서, 그만한 이용 가치의 효과를 볼것 같지 않아 Skip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길로 들어섰다. 박물관의 규모는 무척컸다. 여기 진열된 거의 모든 유물들은 장개석 군대가 중국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퇴패하면서 같이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오래전 베이징 여행때, Forbidden city를 방문하면서 한건물에 들어갔는데, 안이 텅비어있는채로 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은, 장개석 군대가 약탈하여 대만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비어있다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되살아 났다.

크게 구분하여 보면 3층에는 청동기 돌종류의 유물, 이층에는 그림과 붓글씨종류, 일층에는 각동 서적류 조각품등으로 보였는데, 이러한 설정은 내가 한것이니 다른사람의 생각은 다를수도 있을 것이다. 돌중에서 Jade하면 중국인들을 연상할 정도로, 좀 좋아 보이는 돌이라고 생각되면 옛날부터 Jade로 생각하여,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돌덩인데도 가보로 보관하는 그런 민족같다.

배추포기모양의 Jade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청나라때는 Jade가 무척많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단다. 그시대에 세공된 것이라고 하는데 박물관을 찾는 방문객들은 꼭 이조각품을 보고 간다고 한다. 힌색갈로 부터 녹색까지 3가지로 구분되여 완전히 자연과 인간의 창작력 그리고 존재의 상징을 나타내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최고의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설명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정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Jade를 이용하여 세공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것은 3천년전에 만들어진 거북이라고 한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여러나라에 묻혀있는 Jade의 원석을 표시한것중에서 한국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Jade가 채광되고 있다고 설명되여 있었다.

가구가 진열되여 있는 방에는 옛날 청나라때의 왕족들이 사용했다는 옷장과 의자등.... 지금도 윤이 번질번질하게 나고 있었다. 중국에서의 가구가 발달한 시기는 15세기에서 17세기때라고 한다.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Red sandalwood같은 강한 나무를 사용하여 윤기를 발산시켰다고 한다. 왕실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가구에다 글씨까지 각인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창조적 손길의 능력은 그끝이 없음을 느낄수 있었다.

청동기만든 화로같은 모양의 그릇안쪽에 깨알같은글씨를 정교하게 새겼는데, 이러한 Inscription의 발달은 4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3대의 왕조를 거슬러 올라가 Xia왕조( 2070-1600 BC), Shang왕조(1600BC-1046BC), 그리고 Zhou왕조(1046 BC- 221 BC) 주로 제사와 음악에 이러한 Inscription을 상용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조그만 불상이 눈에 띄었는데 손이, 얼른 눈으로 세어봐도 10개는 넘어 보였다. 설명에 의하면 수천개의 손이라고 했다.

그외 수만가지의 각유물들이 진열되여 있었지만, 나같은 문외한이 어찌이를 눈으로 본다고 해서 이해를 다할수 있었겠는가? 눈뜬 봉사같은 기분이 들뿐이었지만, 그래도 내용은 몰라도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던 그시대에도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능력은 오늘날에도 인정받고 이렇게 진열되여 후세사람들에게 선조들의 삶을 보여 주고 있다라는 생각은 어렴푸시 할수 있었다. 무척 아쉬운점은 사진촬영은 철저하게 금하고 있어, 보고온 흔적은 한점도 없다.


박물관 탐방이 끝나고, 한시간 이상 뻐쓰를 타고 간곳은 Jinshantenbo라는 옛어촌이었다. 뻐쓰에서 내려 골목길을 찾아 한참 걸었는데, 그곳에는 좁은 골목길 전체가 음식점들이었다. 각종음식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여 있고, 중국음식 특유의 기름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한곳의 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식탁에 빙둘러 앉았는데, 남자들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게 아닌가? 중국여인들이 나보고도 따라가 보라고 야단이다. 뒤따라 간곳은 여러집건너서 있는 Kitchen이었는데, 그곳에는 각종 음식들이 푸짐하게 진열되여 있었고, 싸여있는 여러종류의 Dish하나씩 들고 먹고싶은 음식을 주문하면 그곳에 담아주어 다시 여인들이 앉아 있는 식당으로 들고 가는 것이었다. 리더가 큰 접시를 집어들고 먹고싶은것들을 담아 가라고 한다. 돈도 지불하지 않고 그냥나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시간 이상을 뻐스타고 오면서 해변가의 아름다운 경치들도 무척 좋아 보였었다. 그런것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리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와서 음식을 먹는다? 그것도 돈도 내지 않고 말이다. 음식은 맛이 있었다. 종류를 알지도 못하지만, 이들 틈에 끼어서 잘 먹었다. 돼지고기, 오리고기, 채소볶은것, 국수, Smelt볶음, 생선튀김등등....다먹고 빈접시를 차곡차곡 싸아 놓더니 식당종업원이 와서 빈 Dish의 숫자만 세어서 계산서를 만들었다. 이런식으로 장사를 하는 이들의 생각은 도둑맞는것 같은 것에는 신경을 전연 쓰지 않는 풍토가 형성되여 있는것 같았다. 먹기가 끝나자 다시 뻐스를 타기위해 되돌아 왔다. 어디를 가기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지도 못한채말이다. 우리는 중국말을 못하니까 그런다 쳐도, 일행들도 한마디 물어보는이 없이 Leader 만 따라간다. 점심한끼 먹으로 이런 산좋고 물좋은 곳 까지 와서 그냥 되돌아간다?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다. 아쉬웠다.

뻐쓰가 방향을 틀어 샛길로 빠진다. 그러면 그렇치 그냥 호텔로 가겠는가? 한참을 달리니 많은 다른회사 뻐스들이 보인다. 이곳은 Yehlin Geopark로 해변가에 있었다. 절차를 끝내고 바닷가쪽으로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갔다. 수백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바윗돌들이 바닷물과 풍화작용에 의해 온갖형상을 다하고 있었다. 버섯같은 모형, 동물의 형상, 날아다니는 새의 형상, 그리고 낙타등모양들이 즐비하게 보였다. 수백만년의 세월이지나면서 이렇게 변하여 오늘은 우리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 주고있는 자연의 섭리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한곳에는 사람들이 Long line up을 하고 있었다. 일행중 한사람이 영어로 슬쩍 'Queen's head'처럼 보이는 돌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기위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모양만 카메라에 담으면 될것을.... 나는 멀리서 Zoom in하여 그형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공원관리는 참 잘하고 있었다. 곳곳에 청소를 담당하고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직원들의 노력으로 휴지한장 달아다니지 않게 깨끗하고 유지하고 안전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이렇게 변형된 돌모양을 보면서 2년전 터키의 Gereme를 방문했을때 보았던 비슷한 돌모양들을 보았던 기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여기서 한때의 한국의 중년여인들로 구성된 광광객들을 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알았다. 억양으로 보아 경상도분들 같았다. 신기한 것은 남자들은 한명도 없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가 부부가 같이 다니고 있는데..... 대화를 걸지는 않았다.

다시 들린곳은 Jen Fen이라는 재래시장이었다. 산중턱쯤에 형성된 아주 오래된 곳이었는데, 시장 골목은 아주 좁았다. 여기서도 주요상품은 역시 먹거리였다. 그리고 가끔씩 선물가게, 과일가게등이 드물게 자리잡고 있었고....관광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꾸역꾸역 이좁은 길로 들어온다. 우리일행도 이들에 밀려 자동적으로 밀려서 시장깊숙히 들어갔다. 먹는 인심은 좋아서인지? 아니면 장사속인지는 잘 몰라도 Sample을 많이 얻어 먹었다. Tea종류도 많이 얻어 마셨다.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모여서 형성된 시장은 자연발생적이라서 꾸불꾸불하고 생김새가 대동소이한것 같다. 세계 어느나라를가봐도 재래시장의 구성은 비슷한것 같다. 덮고 후덥지근하다 했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의매일 오후가 되면 빗방울이 떨어지기는 했었지만, 지금은 옷이 젖을 정도로 내린다.
일행들 뿐만이 아니고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들고 다니뎐 우산을 펴고 좁은 골목길을 계속 밀리면서 걷고, 선물을 사고 한다. 우리부부만 우산이 없다. 이정도비는 신경쓸 심한 것이 아닌것으로 여겼지만, 이들은 즉각 우산을 폈다. 금새 우산을 펴는것으로 보아 관광객거의가 내국인들이라는 증표가 되는것 같기도 했다. 일행중 한명은 이곳을 이번까지 3번 방문했는데, 올때마다 비가 내렸었다고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중턱에 위치한 곳이라서 지리적으로 비가 자주 내리는것일까?

4시15분경에 뻐쓰는 시내의 호텔로 달리고 있었지만, 밖은 안개와 비가 내려서인지 벌써 어두워진 느낌이다. 해안가의 포구에는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그들중에서 눈에 띄는 배는 많은 Light Bulbs를 배갑판위에 매달아 놓은것들이었다. 이들은 오징어 또는 멸치잡이 배들인것이다. 1970년도에 Lunar와 같이 전라남도 홍도에 구경 갔을때, 이러한 배들을 본기억이 있다. 새벽에 이들은 불을 훤히 켜놓고 멸치때를 유인하여 어망으로 잡는것이다. 여기 정박해 있는 배들도 오늘밤에는 출항할 것이다.

타이베이도시는 며칠을 본것에 불과하지만, 매우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첫날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올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었지만, 밤에 시내를 걸어보면, 도시가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것 같았다.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로 꽉매인 시내거리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손빠른 움직임....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본것은 많아도, 특히 Taiwan여행은 그내용을 알기가 무척 힘들었다. 설명이 전부 중국어로 되여있고, 더욱히 Tour Guide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행중 영어를 좀하는 친구에게 물어서 이해하는게 전부였으니 그점이 아쉽다. 그래도 마음으로는 우리 부부를 많이 신경을 써주는 분위기라는것은 확실히 읽을수 있었다. 저녁을 마지막으로 같이 하고, dessert까지 먹고, 내일 아침에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공항으로 가야하고, 나머지 일행은 우리보다 늦게 전부 홍콩으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에 작별인사를 하고 그들중 몇명은 다시 토론토에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그래도 이들과 어울려 여행을 할수 있었기에 해발 4000-5000미터 이상에 놓여 있는 기차를 타고 구경도 하면서 티벳을 갈수 있었고, 또 버마와 태국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남쪽지방의 마을들을 구경할수 있었음은 우리로서는 무척 다행스런 여행이었다. 또 타이페이에서는 이들틈에 끼어 교포가 되여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되여 구경도 하고 대접도 받고....다른 서구의 여행사나 한국의 여행사를 통해서는 절대로 갈수 없는 지역의 여행을 한것은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타이베이에서의 밤을 지내는것도 몇시간후면 기억속으로 사라질것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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