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2, 2009

황산의 절경과 규모에 넋이 나갔다.


































































황산의 절경을 요약한다면,4개의 단어로 표현 할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첫째 기송 즉, 모양이 기이한 소나무숲, 둘째 기암 즉 바위산의 신비에 싸인 기암 절벽들. 셋째, 운해, 즉 비행기를 타고 구름위를 달릴때 그아래로 아얗게 깔린 구름바다와 같은 구름을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면서 느끼는 신비, 넷째, 온천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하여튼 온천을 하고 나면 온몸의 질병이 없어 진다고 하는데..... 그내용은 정말인지 난 확신은 없다.

황산의 다다봉에 오르는데 황산태핑의 10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15분을 달렸다. 원래 우리의 여행 팩키지에는 없는 코스인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황산구경에 포함된 일정은 이곳의 반대편에 있는 백아령계곡과 정상뿐이라서, 반쪽밖에 황산의 절경을 보게 되기에, 너무나 아쉬워 추천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커다란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 가면서 창문밖으로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는 바위봉우리의 절경은 표현의 방법이 빈약함에 한탄을 연발하게 될뿐, 다른 표현 방법이 나의 우둔한 머리로는 방법이 없었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는 약 3분 정도 타면 정상에 도달하는데 그의 5배가 넘는 시간을 타고 달려 가고 있으니 그 규모를 상상할수 있겠다. 다다봉에 내려, 그곳에서 올려다 보고, 내려다 보는 절경은, 그래서 전세계에서 관광객들과 산행객들이 수도없이 몰려드는 이유를 이해 할수 있을것 같았다. 

가이드의 안내로 이곳에서 부터,저멀리 보이는산의 정상인 비래석을 향해 약 40분 정도, 만들어 놓은 돌계단과 밑으로는 낭떠러지인 바위계곡사이에 만들어 바위에 부착시킨 선반같은 좁은 길을 타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산천 계곡을 보면서 걷게 되는 것이다. 반대편에서 출발하여 내려오는 사람들과 우리일행과 같이 올라온 사람들과 그외에도 앞서 올라온 산행객들과 어울려 겨우 한사람만이 통과할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인공 가교는 위에는 발자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힘들게 땀흘리면서 바위절벽 한모퉁이를 돌때마다, 새로 펼쳐지는 산수의 수려함에 쏟아내는 감탄사들이 함성으로 들리는것 처럼 느껴진다. 같이 여행와서 또 같이 이험한 계곡의 속의 좁은 언덕길을 오르는 친지 부부가 무척 마음에 쓰인다. 친지의 아내이면서, 나의 반려자의 친구인 그녀는 무릎이 우리들 보다는 약해, 지금까지 먼거리 여행을 자체 했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여 이렇게 같이 여행을 즐기는 중인데,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옆에서 항상 지켜면서 따라가는 낭군의 보살핌과 우리의 응원에 잘견뎌 내면서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절경을 머리속에 입력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 부부의 정겨운 모습이 곁에서 보기에 어울린다. 

정상쪽의 바위속에 신비롭게 자라고 있는 분재같은 소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그옆에 마치 깍아세운듯한 조그만 비석모양의 경관도 주위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서해 대협곡의 좁은 비탈길을 타고 넘고 걸어 비래석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조그만 선물센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많은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모습도 우리와 어울린다. 

이곳저곳에서 카메라의 셔터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자신도 그속에 끼여 있음을 옆의 친지가 저멀리 뒤에 보이는 절경을 배경으로 한컷해 달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듯 느꼈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으로 부터 서남쪽에 위치한 장가계가 여인상이라면, 이곳의 황산은 남성상으로 대별 되기도 한다고 한다. 

과연 중국의 대륙에서 5악중의 하나로 꼽히는 황산의 절경은 한번 보고 지나치는 것으로는 절대로 만족 할수가 없음알 알것도 같았다. 이다음에 언제 다시 기회를 잡을수 있을까? 시신봉에 도착했을때,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북해 호텔과 조우했다. 

이호텔은 1951년에 건축되여 1958년도에 등소평이 이곳에서 하루 묶었다고 한다. 그냥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만 건축된게 아니라는 안내문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의 진지한 모습에 귀를 기울였다. 1979년도에 당시 75세였던, 중국을 전세계를 상대로 개방하여 현대경제개발의 초석을 다졌던 등소평이 어렵게 이곳까지 등반을 한후, 주위 산세와 경관을 보고, 그아름다움에, 웅장함에 탄복을 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을 잘 보존하여 후세에 모두가 등반하여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즐기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선견지명적인 유지를 받들어, 그후 20년이 넘게 개발하여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호텔 입구의 왼쪽으로는 조그만 체구의 등소평이 반바지 차림으로 정상에 오른후 운해속에 신비스런 봉우리를 드리운 건너편의 산봉우리를 쳐다보는 모습의 커다란 사진이 모든 산행객의 시선을 응시하고 있는것 같았다.

우리팀은 이번 황산등정에 2개의 케이블 카를 타게 되지만,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전부 4개의 케이블카가 황산의 절경를 보이기 위해 설치되여 운영중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갑자기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길을 비켜 달라는 음성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한 젊은 사내가, 옛날 서울거리에서 두부장수가 새벽에 딸랑딸랑 종을 치면서 어깨에 두부를 나르는 들것을 메고 다녔던것 같은 짐꾼이 얼른 봐도 50킬로이상의 무게로 보이는 음료수병을 양쪽 들것에 매달아서 날으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인간에 한계에는 그 Limit가 없는것 처럼 보였다. 초인간적으로 보였다. 그냥 올라 오기도 힘들어 했던 우리였는데.....호텔 투숙객들에게 제공 되겠지? 

등소평의 큰 벽화를 한참동안 응시했다. 공산주의자인 그의 얼굴에는 인자함이 묻어 나고 있는, 그러면서도 우수에 젖은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아직 쏘련과 중국이 대표적인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자유세계에 위협적인, 특히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마치 그들 공산주의자들은 머리에 긴 두개의 뿔이 앞 이마에 난 괴물쯤으로 여기면서, 철천지 우리의 원수로만 여긴때가 얼마전이었었는데...... 그중의 한사람이 등소평이었는데...... 이렇게 인자한 할아버지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잘못되고 편협된 지식을 흡수하는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를 그이 사진을 보면서 전율하게 된다.

미풍이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해준다. 인자한 등소평 할아버지의 힘이 미풍을 일으켜 헉헉거리는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것이 아닐까? 연결시켜 본다. 

다시 반대편 계곡의 절경을 걸으면서 운곡계곡을 향한다. 아름답다. 절경이다. 멀리 건너편의 바위계곡벽에 만들어 놓은 발판위를 걸어 이곳으로 오고있는 산책객들의 옷색갈이 형형색색 아름답게 주위 경관과 어울린다. 멋있다. 버쓰가 기다리고 있는 운곡계곡으로 내려가기위해 이번에는 8인승 케이블카를 탔다. 우리친지팀 5명이 함께 탔다. 끝도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케이블카의 로프의 한가닥위에 얹혀 내려가는 우리는 모든것을 이 철선 하나에 지탱되여 하산하고 있는것이다.

내려가면서 다른쪽 산의 절경을 보는것은 또 다른면을 보여 주었다. 더 커보였고, 늠름해 보였고, 품어 주는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15분 이상의 탑승이었다. 대단한 규모다. 비래석 정상에서 백아령정상으로 등반하는 중간에 800년이 넘어 보이는 소나무 한그루가 도도히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흑호송'이라고 했다. 아직도 잎파리가 푸르고 자태가 고고함으로 보아 또다른 800년은 쉽게 살아갈수 있을것으로 보였다. 

요즘 북미 대륙이나, 고국의 산하에서는 산불이 잦아 수십년동안 자라온 숲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참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러한 광경은 안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고 내리는 좁은 산책로 중간 중간에 Hydrant가 설치 되여, 산불에 대비하고 있는 그들의 예방책에 역시 중국은 대국임을 또 느꼈다. 황산의 하단부와 중단부에는 역시 대나무숲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만 볼수있는 대나무 숲이다. 일행 26명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옵션으로 케이블카 한곳을 더 이용하여 전체의 황산을 오르면서 구경한것에 만족의 표정이 역력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산행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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