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9, 2009

매형, 안녕히 가세요. 다시 뵈올때까지....









인생살이는 슬픔과 괴로움의 연속인 장편 소설일가?
음력설이 지난지 2일만에 막내로 부터의 소식은, 나를 멍청하게, 회색빛으로 덮혀있는 그쪽 하늘을 시간의 정지속에서 응시하게 했다.
설날 막내와의 오랜만의 전화 통화에서는 가족들의 안부와 살아가는 얘기등등으로 채웠었고, 다른 얘기들은 없었는데,
오늘 아침 열어본 이멜에서는 나를 안타깝게하는 내용이였다. 2년전 스트록으로 쓰러지셨던 큰 매형께서 어제 하늘 나라로 여행을 떠나셨단다. 그하늘 나라에 가기전에는 뵐수 없는, 그런 곳으로 먼 여행을 가셨다. 문득 먼 기억속에서 매형의 흔적들이 보인다.
아직 사범학교 졸업반이셨던 그형은, 그때 두루마기를 입고, 큰누나를 부인으로 맞이 하기위해, 고향의 넓은 들판을 헤치며, 우리집에 장가 들러온 기억이, 당시 코흘리개였던 나의 기억에, 신기하기도 했고, 왜 누나는 그 생전 처음 보는 그남자에게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는지도, 호랑이 같이만 엄하셨던 아버지를 이해 할수 없었던, 나는 결혼이라는 그이치를 모르면서, 더이상은 같이 한집에서 살수 없는것만 서러워 했었던 기억이 오늘 더새롭게 반추된다.
몇년전에 먼저 이세상을 하직한 작은 매형이 아직 신혼이었을때, 두분이서 같이, 당시에는 전기도 없이 호롱불을 켜고 지내던 그시절에,소달구지도 다니지 못할 정도의 좁은 처가집 가난한 동네입구에 있는 주막집에서 막걸리 몇잔을 마시고, 기분에 젖어 흥얼거리며 집으로 걸어 오면서, 길가에서 먹이를 쪼고 있던 남의집 닭을 날렵하게 붙잡아 목을 비틀어,아직 퍼덕거리는 암탉을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 오면서, '어머니(장모) 이것 잡아서 술안주 해 주시시요 이..' 나를 포함한 동네 코흘리개들은 그뒤를 줄줄이 뒤따르면서 재미있어 했었고, 이를 본 어머니는 '그려 우리 사위 잘 했어, 조금만 기다리소' 하시면서 금방 가마솥에 물을 끓여 펄펄 끓는 물에 튀겨서 요리를 해서, 그러면 두 매형과 형들과 동네 또래의 집안 형님들과 어울려 허탕하게 웃으시면서 술자리를 만들면서 처가집식구들과 그렇게도 잘 지냈었는데.... 엄하시기만 하셨던 아버님은 이 광경을 보시면서, '야 이놈들아 술을 마셨으면 입으로 먹었지 xxx으로 먹었냐?' 하시면서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셔서, 어느새 피를 나눈 일가들처럼 오손도손 가깝게 지내던 닭주인댁을 찾아가 계산을 치르곤 하셨던 아버님까지도, 그렇게 사위를 사랑 하셨었는데......그런날들이 영원히 계속될것으로 꿈을 꾸곤 했던, 코흘리개였든 나는 그런 매형들의 모습이 마냥 좋기만 했었는데.... 처남(형님)이 어렵게 학교 다닐때는 얄팍한 박봉을 쪼개여 하숙비도 보태 주시면서, 털털 하면서도 챙길때는 챙겨주는 그런 매형이었었는데... 아직도 천진난만한 국민학교학생이었을때, 대농인 매형댁을 놀러가면, 농사일에 바쁜 그와중에도 식사를 챙겨주는 누나를 향해, 어느새 닭한마리를 손에 들고, '처남 동생 잘 먹여' 하시면서, 바로 물만 붙고 끓이면 먹을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곤 했던 그 매형이셨는데.....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핑계를 대고, 한번도 방문을 못했다. 그전에 고국을 방문했을때, 매형은 살고 계시는 동네의 노인회장을 맡아, 여생을 즐기는것을 본것이 그분과는 마지막이 된것이다. 집안 식구들이 모여 행사를 할때에도, 매형은 항상 분위기를 맞추어 위로는 형님들과 아래 처남들과 사이에 안계서는 안되는 존재로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정신적인 사랑을 참 많이도 받았었는데, 우둔하고 생각이 짧은 나는 그러한 사랑을 되돌려 드린 기억이 없다. 때가 되면 해야 되겠다고 마음속에서만 되뇌이곤 했을 뿐, 또 하나의 후회와 회한이 나를 꽉 사로 잡는다. 누나가 심장이 나빠 대수술을, 서울의 큰 병원에서 할때도, 옆에서 지성으로 간호하고, 그러면서도 말로는 그러지 않는것 처럼 표현하곤 하셨었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다 제 살길을 찾아 떠난 빈집에서 누나 혼자, 매형을 생각하면서 계실텐데.....인력으로 된다면은 누나 혼자 두고 먼저 가실분이 아닌것을 나는 분명히 아는데..... 생을 주관하는것은 창조주만이 하시는 일인것을, 나는 또 깊이 느끼면서, 고통과 눈물이 없는 그곳으로 가시는 매형의 발길이 가벼웠으면 한다. 지난간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는것을 이제야 조금은 느낄수 있을것 같다.
벌써 내나이도 환갑을 지나 삼년을 더 살았다. 위로는 형님들과 누나들도 계시지만, 오늘 매형의 소식을 접하면서, 또 이러한 이별의 고통이 오게 될날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누가 먼저 일지는 몰라도, 가슴이 저리도록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인생을 산다는 핑계로 나는, 아니 우리인간들은 바로 옆에 것을 보지 못한다는것 경험으로 안다. 잡히지도 않는 그무엇을 잡겠다고, 이렇게 한평생을 떠 돌다가, 집안의 윗 어르신들의 마지막 가는길을 지켜드리지 못한 삶을 어떻게 변명해서 정당했다고 악을 써야 할까? 기가 막힌다. 열심히는 살았다고 말할수 있어도 할 도리를 하면서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음을, 마지막 먼길을 떠나시는 매형앞에 고백 합니다. 매형, 세상에서의 이 못난 처남의 허물을 용서 해 주십시요. 남은 생애동안만이라도 사람도리를 잘 하겠다는 약속은 드릴수가 없네요. 삶은 현실이기에,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 먹고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다만 노력은 하겠다고만 말하겠읍니다. 그리고 먼길을 떠나시는 매형에게 또 부탁을 안할수가 없네요. 언제일지는 몰라도 매형이 계시는 그곳으로 갔을때, 옆에서 같이 지낼수 있는 거처를 미리 부탁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처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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