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01, 2008

외롭고 서러운길, 안녕히 가십시요.



인생은 유한한 존재이다. 그것도 항상 서럽고 외로운, 그러면서도 피해갈수 없는 수많은 번뇌속에서 헤매다, 때가 되면 대부분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허무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여운을 주위에 남겨두고, 영원한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난다, 아니 떠나야 한다.  오늘은 캐나다 탄생(독립기념일) 141주년을 맞이 하는 7월1일이다.
부모의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같이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나의 반려자가 무척이나 깊은 서러움과 시름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일찍히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조용이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안보임을 한참후에 알아채리고, 안방을 들어가 보니, 침대에 기대어 흐느낀다.  모든 맥을 다 놓은채.....  그러지 말자고 나는 나름데로 추스려 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인다.  나도 마음이 무겁고, 지난날 그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웬지 그럴려고 해진다.
어제밤 늦게 뜻하지도 않게 고국에서 전화선을 통해 들려온 소식은 그녀를 푹 주져않게 만드는, 그러나 예측하고 있었던, 바로 위의 오빠의 세상떠난 소식이었다.
일찍히 부모님, 그리고 여러 오빠들의, 그리고 시집쪽에서의 부모님, 그리고 시아주버님들 서거 소식에도 이번처럼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의 깊은 슬픔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녀의 모습이다.   
일찍 조실 부모하고, 위로는 여러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세월들이 그오빠를 더 안타깝고, 지난 세월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서러움이 겹쳐서 그러는것 같다.  마음이 여리고 또 어려서는, 흔히들 그나이에 부모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그런 여건은, 그에게는 없었다.   다만 가난하고 험한 세상살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지난 설명에 의하면, 불이익만 그에게 쌓여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오빠는 평생을 그렇게 남이 부러워 할 정도의 삶을 살아본 외형적인 모습은 없었던것 같다.  어렵게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삶은, 흔히들 들어오는 그런 성공적인 것은 못되었던 것 같았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가면서, 해외로 해외로 삶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그오빠만은 그대로 고국에 남아, 아니 그럴수 밖에 없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런 삶 자체도 그에게는 큰 축복(?)이었었는지, 뜻하지 않게 몇년전 부터 치명적인 질병이 그를 덮치고 말았었다.   그소식이 전해 졌을때, 아내는 수소문을 하여, 어렵게 야생삼( wild ginseng) 두 파운드를 구해, 태평양 넘어 그곳 오빠에게 보내는 정성을 보였었다.  어려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같이 시절을 보낸 기억이 항상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에, 평상시의 오빠의 펴지지 않는 삶을 미안해 하면서,  이것으로 라도 생명을 연장해 봤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보내, 그덕택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10년을 신기할 정도로 지탱해 왔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전해진 소식은, 아내를 더 서럽게 만들고 만것 같다.  인생은 어차피 그끝을 향해서 태어난 순간 부터 똑 같은 속도로 달려 가는 유한적인 존재이지만, 종점에서 느낄때의 감정은 그동안에 얽히고 설킨 인연과 살아온 생활 때문에 여러 갈래도 나타나는것을, 나는 오늘 아내의 축 쳐진 모습을 보면서, 더 깊이 느낀다.   진직 생전에 한번이라도 더 상면못한 안타까움을 더 하게 해줄, 마지막 길을 굳이 참석해야 한다는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 할것 같아, 그녀를 조용히 붙잡아  안정 시킬려고 하는 나의 생각이  짧지는 않았는지? 다시한번 조심스럽기만 하다.   모든 계획된 계획을 다 접고, 오늘은 이렇게 그 형님을 생각하면서...... 캐나다 데이를 보내게 될것이다.  안녕히 가십시요.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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