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07, 2019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 공동委서 결론낸 사안 - 개인감정개입한 참 나쁜 문통.

GSOMIA협정까지 파괴시키게 만든 원인중 하나인,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문제는 2005년 노무현 정부당시 민관 공동위원회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었다고 발표한 사안으로, 정리됐던 한일간에 원만히 해결됐던 내용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꺼내들고, 문재인 정권의 시녀역활을 하고 있는 대법원에서 그협정결과를 번복시키고 새로운 배상판결을 한데서 시작된 일종의 음모다.

이는 문재인 개인이 일본과 어떤 과거 원한이 있었나는 모르지만, 국가간 즉 한일간에 맺은 Agreement를 그는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자기 맘데로 깔아뭉개버린, 외교의  ABC도 모르는, 5천만 국민들을 그자신의 불모로 붙잡아 놓은, 잔인한 개인의 감정싸움에 끼워 넣은 아주 나쁜 짖이다.

1975년 우리 정부가 피해자 보상을 하면서 강제 동원 부상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 예산으로 위로금과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민관 공동위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위원으로, 국무총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위원장으로 참여했다.

현재 여당인 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현 좌파대동령 문재인씨가 당시 민.관 공동위원회에 멤버로 참석하여 직접 토의하고 결정했던 사안이었는데도, 딴소리를 하고,전정부를 비난하고, 마치 새로운 사안인양 들쳐내어 전임 정권의 책임자들을 치한으로 몰고, 한국경제를 대들보까지 흔들리게 해서, 한일간의 무역전쟁을 발동시킨 모리배들임을 그들 스스로가 제입으로 자인한 셈이된것이다.

요즘 조국 Gate로 온나라가 시끄러운속에서, GSOMIA협정 파괴는 완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그원인이었던 것으로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하겠다.  아래의 관련 기사를 보자.

[일본의 경제보복]
2005년 이해찬 총리가 위원장, 문재인 민정수석은 위원으로 참여
피해자 7만2631명에 6184억 지급

한·일 관계를 '전후 최악'의 상태로 몰고 온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2005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 공동위원회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던 사안이다.

당시 민관 공동위는 7개월여 동안 수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한·일 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자금 3억달러에 강제징용 보상금이 포함됐다고 본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1975년 우리 정부가 피해자 보상을 하면서 강제 동원 부상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 예산으로 위로금과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치로 이어졌다. 민관 공동위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위원으로, 국무총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위원장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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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공동委 회의 참석한 李총리와 文수석 - 지난 2005년 8월 이해찬(맨 오른쪽) 당시 국무총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부 중앙청사에서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 공동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맨 왼쪽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공동위 정부위원으로 활동했던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민관 공동위는 2005년 1월 40년간 비공개였던 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된 것을 계기로 발족됐다.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문서 공개 요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혼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총리·장관 등 정부 인사와 각계 전문가들을 망라한 '한·일 회담 문서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 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쟁점 중 하나는 '국가 간의 협상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느냐'였다. 공동위 '백서'를 보면, 문 대통령은 공동위 회의에서 '개인의 참여나 위임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어떤 법리로 소멸시킬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해찬 대표는 2005년 3월 관훈토론에서 "배상 문제는 정부 간 협상에서는 한·일 협정으로 한 단계가 지나갔는데 개인의 보상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고 했다.

민관 공동위의 결론은 "1965년 협정 체결 당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국가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공동위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고도 했다.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65년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대신 노무현 정부는 피해자 보상에 주력했다. 2007년 특별법으로 추가 보상 절차에 착수했고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이 지급됐다.

당시 발표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끝난 것이란 인식이 굳어졌다. 우리 정부도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종료된 것'이란 입장을 유지했고, 법원도 관련 소송들에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다가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다. 당시 주심이었던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다. 이후 2018년 10월 대법원은 그 판결을 확정했다.

사법부와 행정부 판단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외교적 협상을 요구하는 일본을 상대로, 정부는 '삼권분립에 따라 사법부 판단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8개월의 '대치'는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이어졌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미국 등에서는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부 입장을 듣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사법 자제'의 전통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사법 농단'이 됐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7/2019071700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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