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04, 2016

자연속에서 다민족 Camper들이 모여 윗분께 Worshiping(July3,2016. 일요일)

나의 Summer Residence가 있는 Brighton township에는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좋은 Park중의 하나인 Presqu'ile Provincial Park이 많은 Visitor들, 특히 여름철이면 수많은 Camper들이 407개의 Camp site에서 모기들과 전쟁을 하면서 자연을 즐긴다.

그들에게 매주 일요일에는 다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Amphitheare가 Camp site가운데 있고, 일요일에는 그곳에서 집떠나 Camping 하고 있는 Christian Camper들이 모여 Worshiping을 한다.  나와 Lunar는 이곳에 있는 Summer residence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주 찾는 곳이다.  오늘은 이번 Season들어 처음 예배 드리는 시간에 늦지 않기위해 서둘러 참석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맨먼저 눈에 띄는 하얀 Sign판에 "공원 한가운데 교회"라는 표시와 그맨위에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표시가 우뚝 눈에 띈다.  바로 표시판 언덕 아래로는 일요일에는 교회로 변한 다용도로 사용되는 야외노천 Hall이 바로 윗분과 대화를 나눌수 있는 참 좋은 교회이다.

 세상이 변해서 먹을것 걱정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믿고 의지하던 Deity와 거리를 멀리두게 마련인 세상이다.  특히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북미대륙의 사람들은 신앙생활과 자꾸 멀리 떨어져 살아갈려고 발버둥이다.  그래도 우리 한인들은 아직까지는 믿음생활에 의지하면서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기반을 잡는데 겪는 어려움을 덜고, Eternal life를 하기위해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속에 우리 부부도 끼어서 황망한 이민자의 생활을 위로받고 있다.
 이곳에 모인, 주로 Senior들은, 초창기 청교도들이 의지 하면서 북미 대륙을 개척했던 후손들로, 우리 한인 1세 이민자들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이곳에서 본다.  젊은 이들은 대개 이민자들, 특히 아시아 계통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마치 인종 전시장 같은 느낌도 든다.
 Pastor나 Congregation이나 모두가 Casual 복장으로 아주 편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한다.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예배를 들이는 광경을 보면서, 옛날 개척시대에 힘들게 일하면서 지친 심신을 윗분에게 의지하면서 삶을 영위했던 그런 분위기를, 오늘은 웬지 가슴속 깊이, 느낄수 있었다.  Pastor의 Simple하면서도 모두가 알아듣기쉽게 대화형식의 Sermon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적은 숫자의 개척자들이 모여 간절한 기도로 그분을 의지 하면서 살았던....

 일요일 교회를 맡아 설교하시는 분들은 이곳 Cumberland지역에서 사역하시는 Pastor분들로, 종파를 떠나 Season동안 Volunteer로 봉사하신다고 한다.  구세군을 포함한 각종파의 기독교 목사님들이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이면 예배를 할수 있도록 준비하는 숨은 봉사자들도 서너명 있어, Audio System 부터 안내, 그리고 헌금까지 담당한다.  충실한 일꾼들.
 더 고마운것은 이러한 장소를 제공해 주는 Provincial Park 관리자들에게도 배려의 숨결이 쉬고 있음을 본다. Camping을 통해 부모와 자식이 함께, 꼭 편치만은 않은 Tent속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속에서 삶의 원리를 체험하면서, 감사할줄도 알게 해주는 좋은 기회를 체험하는셈이다.
 몇명 안되는 꼬마들에게 Pastor은 Grey 색갈의 곰인형을 들고, 수수께끼같은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지고, 가지각색의 대답들을 꼬마들로 부터 들으면서, 이곳 교회에 참석함의 당위성과, 앞에 펼쳐질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좋고, 쉬운 얘기를 해주는,  magician 같은 행동을 해준다.


 예배동안에 모두가 함께 불렀던 찬송가의 내용인데, 노랫말이 너무나 친근하다.  같이 따라 부르기에는 습관이 안돼, 한국어로만 불러댔던 평상시의 예배에서와는 다르게 노랫말을 음에 맞추어서 부르기가 무척 서툴러서 그점이 조금은 안타까웠었다.
 Pastor와 같은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한가족이 앞에서, 위에 언급한 Hymn을 인도하고 있다.  외형을 치중하는 우리의 믿음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너무나 허술한 옷에 버릇이 없는것은 아닐런지?라는 생각도 하지만, Practical한 삶의 한부분으로 항상 편하게 수시로 접할수 있는 실리적인 그들의 믿음생활이 어느면에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나자신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할때는 거의 정장차림에 신경을 쓰는데.... Casual 복장일때는 웬지 행동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는 습관이 꼭 좋은것인지는,  쉽게 정의를 내릴수 없다.  그러나 모든 민족과 Tribe는 나름데로 습관과 풍습을 Inherit하는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의 깨끗하고 잘 차려입은 예배자세는 현재로서는 유지시켜야 된다는 쪽으로 나의 생각은기운다.
 마음은 가볍다.  나름데로 윗분과 마음속에서 대화를 하고, 그분을 통해서 세계각처에서 모인 당신의 또 다른 식구들을 보게 해주셨다는 그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많이 그들을 이해할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는데 감사한 마음이다.  Pastor의 말 한마디가 가슴속에 머문다. " 내가 살고 있는 내집,캐나다만큼 편한곳이 없다"라는 평범한 말씀.  우리의 이웃인 미국을 여행하면서 약 3년 살았었는데, Domestic flight를 탈려고 공항에 갔었는데, 미국인이었으면 필요치 않는, 여권 제시를 요구받아, 국내선이라서 ..... 라고 했더니, 외국인은 항상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여권없이는 탑승할수 없다 라는 선언에 그만 미국에서 사는것보다, 조국 캐나다가 내집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짐을 싸고 되돌아 왔다는 설명이었다.  그말에 나는 충분히 수긍이 갔다.  내집이, 내나라가 제일 좋다는것을.  기독교인들에게는 바로 그런 편한집이 바로 위에 계시는분의 품이라고.
 집에 오는길에 나보다 훨씬 커버린 갈대숲이 Marsh Board를 따라 자라고 있는 그가운데를 걸었다.  윗분께서 왜 이곳에는 Swamp를 만들고, 그속에 갈대숲을 이루게 하셨을까?  생각이 많다. 인간의 키가 하잖은 갈대보다 적다는 그이유를 알게 하시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자연의  Balance를 이루어 귀엽고 값진 믿음의 자식들이 편하게 살게 하시려고 만든것일까?  더 많은것을 알기위한 인고의 세월을 주시려는가 싶다.

 효녀 심청이가 환생했다는 연꽃(이곳에서는 Water Lily로 불린다)이 너무도 하얗다.  물은 비록 탁한 색갈이지만, 열매를 맺기위한 꽃만큼은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일까?  심청의 효심은 이연꽃처럼 깨끗했기에 아버지가 다시 세상을 볼수 있게 만들었다는 그뜻을 이해할것같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일가족이 우리부부처럼 Marsh Board를 걸으면서, 잡히지도 않을 곳에서 낚시를 던지고 있다.  그자체만으로 행복해 보이는 이가족에게 이순간만큼은 더 필요한게 또 있을까?
 잠시 굽어진 향나무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Lunar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어느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긴세월을 살아왔다는게 실감나지 않아서 였을까?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해야할일이 많다는 현시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좋았던 날보다는, 이민자로서의 고생투성이의 지나온 세월이 기억속에서 되살아나는것을 잠시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하여 필름을 되돌리고 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Swamp안의 생명체들이 너무도 평화롭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Presqu'ile Park에는 거북이 서식지이다.  많은 거북이들이 길위를 달리다(?) 희생되는게 상당수라고 한다.  오늘도 커다란 거북이가 아스팔트길위를 건넌다.  이녀석은 운이 좋다.  낯이었기 때문에 차들이 멈춰 서거나, 또는 다 건너가기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만약에 밤이었다면, 아마도 희생당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거북이를 보면서 길을 가로질러 새로운 시설물이 묻혀져 있는것을 보았다.  Park에서 방문객을 위해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이시설물은 거북이들이 왕래할수 있도록, 지하 통로를 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하 통로를 만들어 보호하는것만으로는 마음이 안놓여, 지하터널을 기준으로 길양쪽에 보호벽을 새로 만들었음을 발견했다. 거북이들은 다리가 짧아 이벽을 넘지 못하고 벽을 따라 옮겨가다가 지하 통로를 만나면 그곳을 통해서 왕래할것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깊이 느낀다.  어리고 젊었을때는 못느꼈었던점들이다.  내가 어렸을때 나에게 희생당한 생명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인도 여행때는, 그들은 그들이 믿는 힌두교의식에 따라 살행을 금한다는 명제하에, 모기를 잡는것도 살생으로 여겨, 우리가 타고 다니던 차속에 침입한 모기까지도 그냥 놔 두기에 무심코 손바닥으로 잡았더니..... 살생이라고 한마디 들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이지역에서 사는 거북이는 최소한 희생당할 확률은 이제 확 줄어든셈이다.
토론토에서는 이러한 자연속에서 이루어지는 life chain에 대한 경험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나에게 이런 체험을 할수 있는것도 축복으로 알고 더 감사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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