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13, 2016

5/18의 진실이 밝혀지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국의 현실...

친지로 부터 소식이 전해져 왔다.  1980년에 일어난 5/18 사건에 대한, 숨겨져 왔던 비밀들이 많이 폭로되고, SNS를 통해 알려져 왔었지만, 지상파 방송들은 일체 외면을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기생충당(더불어당)을 비롯한 정치꾼 모임인 여의도 국해 회관에서는 새로 입선한 정치꾼들의 잔치로 밤이 지새는줄 모르고, 국민들의 혈세를 흡혈귀처럼 빨아먹기에만 급급한 고국의 현실에 참담할 뿐이다.

SNS에 그동안 밝혀져 왔던, 5/18의 진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북괴의 지령과 남파된 게릴라들의 선동에 놀아난 일부 순진한 국민들의 경거망동때문에, 당시 정권의 지휘를 받았던 특수부대원들의  동족 상잔으로 치부되고, 북괴의 개입설을 주장하는 증인들과, 후에 탈북하여 그진상을 밝히는 참전게릴라들의 목소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것으로 간주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왔다.

놀러가다 참변을 당한 세월호 유족보상문제에는 입에 거품을 품어대면서,광화문 네거리를 수년째 불법점거 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고, 정부를 비난하면서, 애국열사들의 죽음쯤으로 둔갑시켜, 연평해전에서 북괴군을 무찌르다 전사한 바다의 용사들에게는 고맙다는 인사한마디 해본일 없었던 국해의원님들이다.  그런 위선자들의 모임이기에 이문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해도 놀랄일은 아니지만, 이런위선자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고 편한 잠을 이룰수 없이 두려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혹시 진실을 규명하자는 제안을 하면, 몇년전에 살해된 "이한영" 꼴이 날까봐서 그러는것 같다는 생각이 깊다.  겁은 되게 많아서.

5/18때 게릴라 부대가 남파되여 광주현장에서 국민들을 선동하여 무법천지를 만들고 이를 막기위해 파견된 특수부대원들과 그지휘자들에게만, 동족을 죽인 살인마라고 몰아 부쳤던 그들의 주장이 허위였음을 상세히 알려주는 친지의 이멜을 여기에 옮겨 놓았다.

1960년대 중반에 국가의 부름을 받아 최전방에서 국방을 담당했던 한병사로서 조국의 현실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6/25때 북괴군의 앞잡이로 같은 시골동네의 친구와 동료들을 인민군에 밀고 하기에 바빴던자의 후손이 버젓히 국회에서 마치 애국자인양 원내총무를 맡아 행동을 해도 누구하나 이를 저지하는자 없는 불쌍한 조국의 현실....





5.18에 사망한 북한군 병사 추모비 발견

, 5.18  8월 함북 청진에
추모비 설치<사망자 158명>

1980.5.18 북한군 개입설 증거사진 최초 공개.
<비석 뒷면엔 158명의 이름이!>
지난달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지난달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우리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것이
정당한것인지 전국민에게 물어보아야할일이지요~~~???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5.18 광주사태 당시 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김일성 전 주석의 지령을 받고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그 동안 5.18 사태 당시 남한 내 혼란과 적전분열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 들어온 북한군 장교 출신 탈북자들이 
같은 내용을 증언하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실체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일부 탈북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책으로 펴내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김주호 박사(57, 북한난민보호협회 대변인)의 기자회견은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최초의 증거 공개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김 박사는 이날 회견을 통해 두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북한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를 촬영한 것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주관한 행사 관계자는 북측 인사가 
전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 사진이 5.18 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했다가 사망한 
북한군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들을 위한 ‘가묘’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렬사 추모비’는 
광주사태 직후인 1980 8월 세워졌으며
1998 2 8일 새로 단장됐다.

현재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는 일반 북한 주민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비석의 뒷면을 찍은 사진에는 ‘홍성표’‘리진혁’ 등 
모두 158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홍성표 리진혁 등 외 332명의 인민군영웅 렬사들이 잠들고 있다”
- '렬사 추모비뒷면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뒷면 사진.ⓒ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뒷면 사진.ⓒ  
공개된 사진과 김 박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80년 광주사태 당시
남한에  침투한 북한군은 이름이 밝혀진 158명을 비롯 모두490명이다.
“비석에 이름이 새겨진 158명이 ‘남조선혁명투쟁에서 희생된 인민군 영웅들’이라는 
사실을 각기 다른 문건에서 중복 확인했다”

“사망자의 ‘죽은 날’로 기록된 1980 6 19일은 소속부대의 
광주남파작전 종결일로사망일을 이 날짜에 맞췄다”
- 김주호 박사


김 박사는 이번에 공개한 사진이
5.18북한군 개입설’을 증명하는  
증거의 일부라며 광주시민의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에 대한 
실체규명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군 개입 증거발표로 우리의 공적(公敵)이 
북한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


“북한이 펼친 대남공작의 진실을 밝혀
광주시민에게 2 3중의 고통과 
억울한 희생을 강요한 가해자의 정체를 가려내야 한다.
김 박사는 이날 증거 공개가 "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한 것으로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번 발표는 국민대화합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것
우리 내부의 새로운 갈등과 대립,
불화와 반목의 불씨가 돼서는 안 된다” 
이날 발표에 대해 회견 참석자 중 일부는 사망자의 숫자가 너무 많다며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으나김 박사는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따른 숫자라며 
사진의 신뢰도에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확실한 자료와 근거에 입각한 숫자이기 때문에 많다 적다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광주 인근 야산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수백여구가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오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사망자 명단이 늘어 날 가능성도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석구 변호사 역시 공개된 사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 평가했다.
“공개 사진과 증거자료를 살펴 본 결과 이 정도면 
법적인 증거력을 갖는데 하자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일반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추가 증거와 자료를 보강해 
누구도 부정하거나 반론을 펴지 못 하게 되길 바란다”

- 서석구 변호사
회견 후 김 박사는 추가 자료공개와 관련해 일부 자료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다며 
조만간 2차 공개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말했다

송암 정두찬

<받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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