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09, 2011

10월 24일, 월요일 사십일째, 창녕의 우포늪, 거가대교, 통영에서 사시미,
































10월 24일, 월요일 사십일째, 창녕의 우포늪, 거가대교, 통영에서 사시미,

창녕에 있는 우포늪은 한반도(Korean Peninsula)에서 가장큰 내륙습지로 창녕군, 유어면 대합면 대지면 이방면을 포함한 4개면에 걸쳐 펼쳐져 있고, 1998년3월에는 Ramsar convention에 등록되여 있고,1999년 2월에는 환경부에 습지보호지역(Wetland Protected Area)_로 지정되였고, 2011년1월에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유일한 지역이며 면적은 축구장 230개를 합친것과 같은 231ha라고 한다.

이곳 늪지대는 4개의 늪으로 나뉘여져 있었다. 우포늪(소벌)은 모양이 소의 형상을 띄고 있어 그렇게 불려 지는것 같았다. 목포늪(나무벌)은 인근의 장재마을,노동마을,토평마을에 펼쳐져 있으며 예부터 소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6/25동란전만 해도 주민들은 배를 타고 가서 땔감을 해오곤 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나무벌이라는 이름이 생성된것이라고 한다.
쪽지벌은 4개의 늪지중에서 가장 적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사지포늪(모래벌)은 유독히 모래가 많아 부쳐진 이름이라고 했다.

우포늪지대는 입구에 관리사무소가 있고, 매주 월요일에는 휴관인데도 K형이 도착전에 관리소에 부탁하였더니 직원한분이 일부러 우리일행을 위해 출근하여 생태관으로 안내해, 그곳에서 일년 4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늪지대의 모습과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Documentary식으로 영화화해서 상영해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어, 하마트면 의미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번 했던 늪지대의 내용을 보면서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즐길수 있게 해주었다. 철새들, 파충류, 곤충류, 갈대종류들, 식물들, 특히 연꽃이 서식하고 있는모습이 눈을 끌었다. 가시연꽃이라고 불리는 연꽃은 줄기가 가시로 덮혀 있었고, 가운데 버건디(Burgundy)색갈의 꽃이 필때면 그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말로만 들어왔던 주둥이가 빨간 '따오기'를 난생 처음보는 기적(?)도 경험했다. 몇년전 중국에서 한쌍을 들여와 정성스럽게 돌보아 지금은 식구가 거의 100 여마리로 증식되여 곧 방생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는데, 어렸을적에, 민족을 잃고 일제하에서 헤메일때 고생하던 선조들의 삶을 이새에 비유하여 노래했던 기억도 되살아났었다. 또 국민학교다닐때 즐겨 불렀던 '산토끼'의 노래말과 노래가 이곳에서 우포늪을 무대로 해서 작사작곡 됐다는 설명문에 깜짝 놀랐다. 산토끼 노래를 그냥하나의 동요로 알고 출처도 모른채 불렀고, 기억하고 있었는데......다시한번 이곳 우포늪 방문의 의미를 새되겨 보게 된다.

이늪의 생성시기와 명칭 유래는 설이 여러개 있다고 하는데, 그중 첫번째설은 약 1억 4천만년전에 이주변에 있는 퇴적함층에서 살았던 공룡의 발자국 화석과 빗방울무늬화석, 곤충화석이 발견되여 우포늪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약 6,000년전인 기원전 4천년경 지구의 기온이 따뜻해 지면서 육지에 얼어있던 빙하가 녹은 물로 지금의 한반도와 해안선이 구분되였는데 이때 우포늪이 낙동강과 더불어 형성됐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우포늪(소벌)의 뚝을 따라 차를 달릴때 많은 청둥오리들이 푸드득 놀라서 날아가는 광경도 보기 좋았다. 기러기때도 많았고, 늪에는 물위에 떠서 사는 이끼들이 새파랗게 널려있는 그위에서 오리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쪼고 있었다. 가을에는 철새때들의 도래지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고니들도 많이 서식하고있었는데, 토론토에서 일년내내 호숫가에서 보아왔던 Swan들과 내가 볼때는 똑같아 보였는데, 여기서는 고니라 부르고 있었다. 뭐가 다른지? 나는 알수가 없었지만....

우포늪을 탐방하기위해 새벽5시에 비몽사몽간에 기상하여 간단한 준비물을 Back Pack에 집어넣고, 처음에는 택시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2호선 서현역에 도착했을때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L형은 오늘 해결해야할 일이 갑자기 생겨 같이 행동을 할수 없게 됐으나, 떠나는 일행을 환송해주기위해 먼저 혜선과 함께 이곳에 도착하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목소리는 들었지만 대면하기는 한국방문후 처음이다. 고마웠다. 그곳에서 우리부부를 포함하여 친구8명이 홍천에서 부터 달려온 S형의 차에 올라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이곳에 도착했을때는 거의 12시 경이 됐었다. 친구들이 우리부부의 고국방문을 축하해주기위해 계획을 짜서 2박 3일 일정으로 남해안 일대를 돌아보는 스케쥴중에서 첫번째로 이곳의 우포늪에 들렸던 것이다.

점심에는 붕어찜을 대접해 주어 맛있게 막걸리 한잔과 곁들였다. 붕어는 우리고유의 물고기이다. 이물고기를 마지막으로 먹어본지가 55년을 훌쩍넘은 오래전이었다. 코흘리개 어린이였을때 시골동네의 친구들과 동네의 동네앞 방죽(Pond)에서 손으로 물속을 뒤져 잡아서 집에 가져가, 어머니가 매운탕을 해주셨던 그때를 마지막으로 붕어를 먹을 기회는 물론이고 본일조차 없었는데, 오늘 친구들의 정성어린 대접을 이렇게 받고 있는 것이다. 매운탕찜은 맛이 그때의 고향산천모습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이붕어는 이곳 우포늪에서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기회를 남은 생전에 또 갖어 볼수 있을까?를 문득 생각해보니, 괜이 코끝이 찡해온다. 친구들의 마음씀이 더 고마워진다. 이것이 우정이리라. Lunar가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해줘, 나를 포함한 남편들도 이제는 옛친구가 되여버린것이다.

거제도 지역과 부산지역을 연결하는 거가대교를 달려 보았다. 오래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이다리의 건설에 대한 내용을 읽은바 있는데 지금은 명소로 바뀌어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설명해준다. 다리의 일부분인 해저 터널을 통과하면서 터널 중앙을 달릴땐 천장에 '해저 48미터'라는 안내판이 뚜렷히 보였다. 바닷물속 바닥으로 부터 48미터 밑을 우리는 지금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이어지는 고가 다리는 현수교로 그규모에 놀랐지만, 경관도 과히 장관이었다. 조국의 발전하는 모습을 여기서도 보면서 가슴이 뿌듯해 짐을 느꼈다. 부산신항부터 이곳 거제도를 지나는 동안에 바닷가와 항구에는 그수를 셀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들은 수출품을 싣고 세계 5대양 6대주를 달려가서 고국의 일꿈들이 힘들여 만든 물건들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Foggy한 날씨로 선명하게 이경관을 볼수 없었던점이 아쉬웠지만, 위에 계신분의 깊은 뜻이 계셨기에 이만큼만 보여주신것으로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통영에서 이번에는 생선회를 저녁으로 마음껏 먹었다. 어시장을 구경하는데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아주머니에게 우리는 걸려든(?)것이다. 바다에서 막잡아온 방어, 농어 그리고 이름도 잘 모르는 생선을, 그분의 재빠른 솜씨에 팔팔뛰던 생선들은 금새 뼈와 가죽은 없어져 버리고 먹기좋은 생선회감만 Chopping Board에 남기는 Magic같은 솜씨를 발휘하여, 옆에 있는 음식점으로 옮겨 즉석에서 초고추장과 상추, 그리고 들깻잎에 싸서 씹어먹게 해주었고 뼈와 머리는 매운탕으로 변하여 뒤따라 상에 올아왔다. 그맛은 토론토에서 먹는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고소하고 신선했다. 친지들의 말에 의하면 값도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좋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멍개도 곁들여 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걸치고, 친구들도 평소에 나처럼 술을 입에 거의 대지 않는데, 오늘은 기분에 이끌려 이렇게 한잔씩 걸친것이다. 기분이 최상인데.... 한잔씩으로 취할리는 없다. 맛을 음미하고, 한모금을 넘기면서, 친구란 이래서 보통 알고 지내는 사이의 사람들과는 상상할수도 없는, 최하급의 표현을 하면서 이바구를 하는데도 그져 웃기에 바쁠뿐이다. 이들의 살아온 삶을 볼때, 자존심도 세고, 세상살이도 사람들의 선망이 될정도로 인격을 중시하면서 살아온 친구들인데, 지금은 어린애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져 누가 한마디 하면 웃기에 바쁘다.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이렇게 시간을 내여 같이 여행하는 그정성을 나와 Lunar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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