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07, 2011
10월 13일, 30일째, 금문도의 Gunningtou전쟁박물관, Shuangli Nature Centre, Tai-wu Mountain 등반, 타이페이 저녁시내구경.
10월 13일, 30일째, 금문도의 Gunningtou전쟁박물관, Shuangli Nature Centre, Tai-wu Mountain 등반, 타이페이 저녁시내구경.
Taipei에서 금문도 까지는 비행기로 한시간 날아가는 먼곳이고, 중국본토에서 금문도까지는 불과 2키로 정도의 해협으로 떨어져 있을 뿐이다. 중국본토를 석권한 모택둥으로서는 금문도가 장개석군대의 수중에 있다는것이 마치 목에 가시가 걸려 있는것과 같은 매우 불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장개석 군대가 타이완으로 물러나서, 전초기지 역활을 하고 있는, Penhu, Kinmen과 Matsu에 전초기지를 만들고 중국공산당과 대치하고 있는 1949년 10월 25일 새벽에 중공군은 전함에 9,000 여명의 군대를 싣고와서 Longku와 Kinmen섬의 북서쪽에 있는 Ginnigtou사이에 기습상륙하여 피차간에 사투가 벌여졌었다. 3일간의 격전끝에 중공군은 Ginningtou절벽에서 퇘배하여 별수 없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채, 물러났는데, 이때 상당수의 공산군이 항복하여 장개석 군대에 투항했었다고 한다. 이작전의 실패로 공산군은 그들의 군사작전계획을 대폭적으로 수정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하고, 따라서 대만을 정복하여 군사적 경제적 개발을 할려는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승리를 기념하기위해 Ginningtou전쟁박물관을 만들어 관람 시키고 있었다. 이전쟁에 상황을 벽화로 순서데로 그려놓아 나는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금문도(Kinmen Island)를 둘러 보면서 대만 정부는 격전지의 처참했던 광경을 박물관등으로 잘 보존 시키고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함을 후세에 전해 줄려는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머무를 호텔시설과 이에 수반되는 사회간접시설이 형편없어, 그래서 현재 중국인들만이 관람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들의 계획데로 세계인의 유산으로 등록을 받아 전세계에 더 알려지면 서구에서도 관광객들이 올텐데.... 그런점에 대해서 하루라도 빨리 서둘렀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중국인들은 같이 여행하면서, 상대방을 전연 의식하지 않는것 같다. 따라서 옆사람에게 실례되는 실수를 저질러도 절대로 자세를 바꾸거나 또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할줄을 몰랐다. 같이 뻐스에 타고 구경하는 60대 초반의 여자분은 힌바지에 실례를 해서 뒷궁둥이가 누렇게 되여 보기가 흉하기도 했고, 날씨마져 더워 냄새가 고약했지만, 옆사람과는 상관없이 하루종일 그렇게 하고 다녔다.
그런면에서는 한국인들이 한참 앞서 있는것 같았다.
Shuangli Wetland Nature Centre는 Kinmen섬에서 서식하고 있는 각종 새들과 동물들의 생태계를 잘 표현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전복과 굴양식을 하는 장면의 재현은 실감이 났다. 철새들과 물고기들의 활동상황, 특히 때가되면 이곳은 철새들의 도래지로 많은 철새들의 이동상황을 포착하게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직경이 사람키의 1.5배 이상이 되여 보이는 원추형의 녹슬은 철판이 진열되여 있었다. 설명문에 의하면, 군대에서 적군을 향해 Propaganda용으로 이용하기위해 제작된 스피커중에서 가장큰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무척 긴요하게 사용했겠지만, 지금보면서 참으로 멍청한 짖을 했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번에는 Kinmen 섬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Tai-wu산에 더운데도 모두가 걸어서 정상에 올랐다. 잘정돈된 길초입에는 군대가 아직도 주둔하고 있었다. T-shirt가 다 젖었다. 덮고 후덥지근하여 기분은 별로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일행이 다 걷는데.....
완만한 길은 자동차가 충분히 다닐수 있도록 잘 포장되여 있었다. 지금도 군사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옆으로 돌계단이 있어 그곳을 향해 나와 Lunar는 걸었고, 일행은 계속해서 큰 길을 따라 더 걸었다. 우리가 오른 그곳에는 높은 Pagoda가 축조되였고, 탑의 꼭대기부터 중간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한문으로 글귀가 있는데, 뜻을 알수가 없어 아쉬웠다. 힘들여 걸었는데, 산정상의 높이는 겨우 해발 252미터란다. 조금더 전진했는데 그곳에는 큰 돌에 한문으로된 글귀가 있었다. 장개석 총통의 필치라고 하는데, 내용은 내가 먹통이라서 모른다. 멀리 보이는 다른 봉우리에는 군사시설이 크게 설치되여 있고, 민간인 접근금지라는 표시도 보인다. 이번 금문도 방문에서 첫째로 놀란것은 영어로된 관광용 자료가 전연 준비되여 있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넘어간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섬전체가 사방으로 잘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따라 Foggy하여 어렴푸시 보여 아쉽다. 이섬은 지금으로 부터 1500년전부터 민간인들이 살아 왔다고 한것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내려다보면서 느낄수있었다. 시가지와 외곽지역에 주거지와 상가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내려오면서 Tai-wu산 입구에 이는 충렬사( 국립묘지같은)를 보았다. 전사한 용사들의 묘지가 잘 정돈되여 있었고, 파란색 지붕의 본당 건물에는 산화한 용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군데군데에는 큰 돌기둥을 세우고 그곳에 한문으로 군지휘관들이 썼을 것으로 간주되는 문구들이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본당앞에는 연못도 있고, 그위를 아취형의 돌다리가 운치있게 걸려 있었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다시 타이페이를 향해 Kinmen Island를 떠났다. 고생은 했지만, 같이 여행한 일행들 덕택에 교포행세를 하면서 이런구석까지 구경할수 있었다는점은 우리 부부로서는 굉장히 Lucky한 여행을 한셈이다. 그점 감사한다. 맏며느리처럼 두툼하게 생긴 Guide와 헤여질때는 서로 아쉬워 Lunar와 사진도 한컷 찍고 서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저녁에 시내 구경을 잠깐 했다. 식사를 하기위해 시내의 음식점이 많은 거리를 찾아서 쌀국수에 오리고기를 곁들여 주는 전형적인 중국음식점이다. 맛이 감칠났다. 국수도 그렇고 오리고기도 토론토나 한국에서는 쉽게 맛볼수 없는 기회였다. 저녁후 거리를 걸으면서 느낌점은 시내의 밤거리가 어디를 가나 무척 활기있게 젊은이들이 그들의 생활을 즐기고 있구나라고 본점이다. 거리의 군중은 거의가 젊은층인것 같았고 우리같이 나이먹은 노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Hanjhong Rd와 Chengdu Rd가 만나는 지점에는 큰 광장이 있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이 활기있게 더운 저녁을 즐기는모습을 보면서 대만이 밖에서 생각했었던것 보다 젊은이들의 발랄하고, 경제가 잘 움직이고 있는것 처럼 보였다. Mr.Kan이 호텔로 향하는 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꺽어 걸어간곳은 불교사찰이었다. 그는 불상앞에서 봉양을 먼저 했다. 뭔가를 우리부부에게 설명해주고 싶은데 언어때문에 안되는 안타까움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수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그냥 지나쳐 이곳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Interpret할 기회가 전연 없었던 것이다. 불교의 나라답게 복잡한 시내의 한복판에 사찰은 오랜세월동안 자리하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무운을 빌어온것으로 느낄수 있었다. 불빛에 화려하고 종교그체로서 건축물은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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