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9, 2010
휴양지의 시간은 빛처럼 빨리 흘러가서, 이젠 역사속으로
직장에 다닐때는 일주일을 보내는게 지겹고 지루하여 마치 일년을 보내는것 처럼 길고, 또 코뚤린 소가 끌려 가는것 처럼 그렇게 시간의 흘러감이 더디었었다. 긴캐나다의 겨울을 피해 남쪽의 따뜻한 캐리비안 섬나라로 피신(?)가서 보낸 8일간의 시간은 태양빛이 태양을 떠나 지구에 닿는 그시간보다 더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흘러가, 몇시간전에 이곳에 놀러 온것 같은 착각속에서 다시 짐을 싸서, 추운 동토의 나라, 캐나다로 되돌아 가야하는 아쉬움은 마음속에 깊이 남을것 같다.
떠나기전날의 저녁식사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매일먹던 식당에서 아니고, 해변가의 야외에서 BBQ가 곁들인 부페식으로 우리를 더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를 호텔측에서 만들어 주었다. 야자수잎을 이용하여 만든 아취형 야외식당입구와 그위에 밝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 장식한 조명등과 어둠침침한 야외조명속에서 Cook들은 고기를 굽고, 또 한편에서는 다른 음식을 식당 Cook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주고, Hall의 Hosts와 Hostess들은 바삐 음직이면서, Red Wine, White wine, Beer그리고 기타 Drink들을 그들의 떠나지 않는 웃음과 함께 씨비스하고, 우리는 마치 제왕이라도 된양, 그들의 써비스를 받으며, 미풍에 야자수의 큰 잎들이 흔들거리는 남국의 저녁 야외 간이식당에서, 그렇게 배를 채우면서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매얼 저녁 식사중에는 Live Show가 곁들여, 먹는 입과 보는 눈을 더 즐겁게하곤 했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야외에 임시로 설치된 밴드에서 귀에 익은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연주자들은, 내가 볼때는 참으로 머리가 좋은것 같다. 연주하는 곡의 악보같은 것은 아예 존재치 않는다. 연주되는 모든곡들이, 마치 유행가를 몇번불러 따라 하면 알고 있듯이, 그렇게 연주를 해대는것 같다. 어렸을때 귀에 익었던곡 Yesterday, Moon river, 그외 곡명은 모르지만, 흘러간 Classic들을 가슴애잔하게 잘도 연주한다. 그들이 캐나다나 기타 서구사회에서 생활한다면, 돈도 많이 벌고, 대접받으면서 풍성한 생활을 하련만.....이들은 이렇게 우리를 즐겁게 하기위해 연주를 하는데도,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않되는, 가련하고 배고픔을 참으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연주를 한다. 아마도 연주가 끝나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집에가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비정한 통제사회의 한단면이다. 불빛이 침침하기에, 나는 더 자유스럽게 슬며시 그들중 한명에게 다가가서, 손에 꼬깃꼬깃 하게 꾸불친 2페소를 손에 쥐어 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워 한다. 그돈이면 그들 큐바시민들이 사용하는 돈으로 환산해서, 약 50페소가 되는데, 그들 월평균임금의 약 1/8에 해당하는 거금이기 때문이다. 평상시 대식당안에서 Show를 하는 Performers 들도 마찬가지다. 낯시간에는 홀에서 식사 시중을 들고, 저녁식사시간이 되면 그렇게 훌륭한 Performers들로 변하여 식사하는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Show의 내용이 저절로 박수를 힘껏치게 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거의 매일 저녁 2시간 이상씩을 하곤 했었다. 그들은 순박하다. 팁을 손에 슬며시 쥐어주면, 그렇게도 고마워한다. 그들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동영상중의 하나는 즉석에서 Show를 즐기는 여성들을 사회자가 차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장기 자랑을 하게 하는 즉흥적인 Show를 연출하는 사회자와 관객의 Talent를 보여 주고 있는 내용이다. 들리는 말로는 Resort 안에서 근무하게되면, 출세했다고 주위에서는 부러워 한다고 들었다. 고국에서 6/25직후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주위친지들을 부러워 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고도 남는다. 그들이 근무하고 나오면서, 갖고온 Shortening을 조금이라도 얻는 날이면, 시래기국에 풀어서 먹으면 그렇게도 맛이 있었던 기억이 이밤에 더 되살아 난다.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읽을수 있는것 같다. 한번은 호텔방에서 나와 점심을 하기위해 식당을 향해 가는데, 바퀴달린 큰 쓰레기통을 밀고 가는 나이든 남자분을 만나게 됐었다. 괜히 안된 마음이 들어 주머니를 뒤져 손에 1페소를 슬며시 쥐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방으로 향하는데, 아까 그남자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웃음을 띄우면서, Lunar손에 두마리의 Locusts 를 쥐어주고 발길을 옮겼다. 야자수잎을 이용하여 만든 정말로 그럴듯한 매뚜기 모양을 한 Craft였다. 감사의 표시로 그사이에 급히 만들어 기다렸다가 이렇게 주고 간 것이다. 한마리는 나의 모자에, 다른 하나는 Lunar의 모자에 꽂아 한껏 모양을 내면서 작렬하는 태양빛을 막았었던 기억도 스쳐간다. 순수한 사람들...
또 생각나는것은, 해변가 원두막밑의 긴의자에 누워서 파란 대서양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닷물을 보고 있으면, 가끔씩 눈에 띄는, 조그만한 이동식 잡화상이 모래사장과 바닷물이 맞닿기 직전의 단단한 모래밭위에 진을 치고 해수욕객들과 어울려 장사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었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그위에 좌판을 설치하고 선반을 다시 그위에 올려놓고, 손수 손으로 만든 공예품들을 보기좋게 진열해 놓고, 관광온 해수욕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것이다. 공예품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정교한것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값은, 아주 싸다, 내가 싸다고 말하는것은 토론토 시장의 가격과 비교 해서 하는 소리다. 하얀 백사장위를 혼자서 밀고, 끌면서 옮겨 다니기에는 힘들어서인지, 꼭 둘이서 이동 잡화상을, 한사람은 조종하고, 다른 한사람은 뒤에서 힘껏 밀면서 이동한다. 때로는 고객(?)이 많을때는 이동잡화상앞쪽에 공예품들을 쓰러지지 않게 모래속에 쿡찔러 진열하면서 손님을 기다리기도 한다. 태양은 작열하고, 등에서는 땀이 나고, 갈증은 나고... 그럴때는 우리는 아무런 불편없이 바로 백사장뒤에 지천으로 준비되여 있는 Kiosk에 가서 시원한 음료수, Foods등을 써비스 받아 먹으면서 다시 한가롭게 딩굴면서 남국의 정취를 즐길수 있으나, 그들은 애처로운 눈길로 우리의 배부른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는것 같아, 풍요속에서 삶의 괴로움을 보기도 한다. 옆에 있던 Lunar가 갈증이 났던지 아니면 더위를 참지 못한 때문인지 일어나 쏜살같이 Kiosk에 다녀 오더니, 두손에 Ice cube이 둥둥 떠 있는 피나콜라다 쥬스가 담긴 두개의 컵을 들고 오더니, 나한테 주는게 아니고 그이동식잡화상들에게 가더니 그들과 담소하고 웃더니 건네 주고 온다. 그들의 갈증난 목을 추기는데, 그순간에는 더 이상 좋은 보약이나 음료수가 또 존재 할수 있었을까? 원래 인간의 본성은 성선설을 타고 났다는 옛성인의 말이 생각나면서, 인정이 서로 교차하는 현장을 양쪽에서 본다. 그들은 재빠르게 손목에 걸수 있는 조그만 수공예품을 Lunar의 손목에 걸어주면서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감사해 한다. 그들의 처지를 잘알기에 값을 처줄려고 Lunar가 준비하자, 아니라고 손을 절래절래 흔들면서 반색을 하는 모습도 봤다.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이렇게 서로의 마음문이 열려 마음과 웃음을 나눌수 있는 일이 흔한데..... 어찌하여 정치꾼들은 이러한 마음들을 읽지못하고 흘려 보내거나, 큰것만 생각할까? 그큰것 때문에 짖눌려 사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밑바닥을 눈여겨 본일이 있을까? 자꾸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것을, 이광경을 보면서 보게된다. 별로 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내일도 그들은 끝없이 펼져지는 백사장 위에서 딩구는 사람들을 상대로 또 이동식 잡화상의 두바퀴를 돌리기위해 한사람은 조정하고, 다른 한사람은 뒤에서 밀것이다.
이러한 Police State 탈이 언제 벗겨져 저들도 우리처럼 자유롭게 삶을 살수 있는 날이 올까? 큐바 혁명 61주년이 지나가는데....
2일전에, 평소 토론토에서 친히 잘 알고 지내는 선배친지분들을 만나 같이 Golfing했을때, 여자분들팀에서 Hole-in-one을 하신분이 그렇게도 좋아하시면서, 파안대소 하시던 모습과, 같이 라운딩 하셨던 Lunar와 선배 아주머님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 오른다. 그분들도 지금 이시간에 그들이 묶고 있는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즐기고 계실것으로 짐작된다. 토론토에 돌아가면 거기서 정식으로 홀인원 파티를 하자고 약속을 할수밖에 없었던 그순간의 아쉬움이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평생에 골퍼로서 한번 할까말까하는 행운(?)인데..... 그날 스코어 카드를 들고 프로샾에 찾아가서 얘기 했더니, 프로샾의 매니져가 한 조치는 들고간 스코어 카드에 그의 Signature와 간단한 축하의 단어를 써준게 전부였었다. 어찌 그인들 팬난트며 기타 선물을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제한된 현실의 벽안에서, 그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어 준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또 행운(?)인것은 골핑후 해수욕하면서 우연히 만난 PGA Pro Golfer 라고 자기를 소개한 건장한 사내를 만난것이다. 그는 약 10년정도 PGA 에서 현역 선수로 뛰고 있으며, 약 4번정도 Win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귀에 익지않은 생소한 것이었다. 여기에 오기전주에는 Jamaica에서 골프를 즐겼고, 이곳에서 끝나면 다시 Bahamas로 날아가 그곳에서 골핑한다고 스케쥴을 말해주기도 했었다. 그린이 좋지도 않는 이곳에서까지 라운딩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프로는 좋은곳에서, 또 나쁜곳에서도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줬었다. 그러면서 Toronto의 북쪽 외곽도시 Markham, Onatario에 있는 Sheraton hotel에서 1월말에 프로선수 여러명이 Signature 파티를 갖게 되는데, 그때 참석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거기서 만나면 골프볼에 정식으로 서명을 해 주겠다고 약속도 했었다. 지난 며칠동안에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과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Live Band Show에서 흘러 나오는 멜로디와 어울려 더 빨리 추억속의 뒷전으로 시간은 쏜살같이 달아나는것을 이밤에 더 깊이 느낀다. Red Wine잔은 계속 비워지고.... 평상시에는 한글라스도 목에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알코홀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데..... 이밤에는 슬슬 잘도 넘어 간다. 이밤의 환상적인, 낭만적인 정취를 뒤로 하고, 몇시간 후면 추운 토론토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삶을 이어가야한다는 무거움 때문일까? 이제 내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Packing해야 한다.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이곳 휴양지에서 사용되는 큐바돈 즉 Peso의 남은돈을 점검해 보았다. 왜냐면은 큐바공항을 나갈때 Airport Tax 를 개인당 25Peso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모자란다. 호텔 Front Desk에 가서 다시 환전 해야 할것 같다. 국제 무역을 하는데 미달러가 기축통화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미국 달러가 맥을 추지 못한다. 환율은 미화 100달러를 바꾸면, 그들 페소로 80페소를 준다. 그들페소와 미달러사이에는 환율이 불변이다. 캐나다 달러는 Up and Down한다. 첫날 와서 캐나다달러 100 불을 바꾸었더니 82페소를 주었었다. 오늘은 79페소만 준다. 환율이 떨어져서란다. 그들식의 환율방법이다. 큐바밖에 나가면 큐바돈은 휴지조각으로도 사용되지 못하는 종이조각일뿐인데.....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큐바돈은 상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큐바에서만은 캐나다 달러가 미국달러보다 더 값이 나가는, 이해못할 나라 큐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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